가난을 팝니다
옥탑 방에서도 살아 본 적 있고 반 지하 셋방에서도 살아 본 적 있다. 탤런트 이재황 씨가 반 지하 셋방 거주자였다면 " 반 지하 제왕 " 이 될 뻔했다. 미안하다, 말장난이다. 반 지하 방에서 살다 보면 옥탑 방이 근사해 보이고, 옥탑 방에서 살다 보면 차라리 반 지하 셋방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옥상 낭만 달빛 ?! 니미, 살아보시라. 옥상이라는 허허벌판 위에 세워진 방은 12월 칼바람을 견디기엔 너무 추웠고, 그렇다고 8월 한낮의 직사(直射)를 고스란히 흡수하기엔 찜질방에서 계란 찜 쪄먹는 수준의 더위에 즉사(卽死)할 정도였다. 더워도 너무 더운 것이다.
옥탑 방에서 살아본 사람은 절대 옥탑 방 낭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름에는 다른 집보다 덥고 겨울에는 다른 집보다 추운 곳이 바로 옥탑 방이었다. 한여름에 옥탑 방에서 살다 보면 << 이방인 >> 의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반 지하 방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두더지처럼 땅 파고 살다 보면 영화 << 넘버 3 >> 에서 불사파 두목 조필(송강호)이 핏대 선 얼굴로 “ 해삣‘은 비치디 않아 !!!!!!!!!!!!!!!!!! ” 라고 외쳤던 처절한 절규를 이해할 수 있다. < 햇볕 > 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상상 그 이상이다. 우선 < 햇볕 > 은 종합비타민제‘다. 볕만 잘 쬐도 비타민D는 생성되니 태양이야말로 영양가 높은 < ① 비타민제 > 인 것이다. 또한 햇볕’은 세로토닌을 생성하니 < ② 항우울제 > 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살균 소독 건조 기능이 있으니 < ③ 식기 건조기 > , < ④ 살균기 > , < ⑤ 빨래 건조기 > 이다. 또한 볕만 잘 들어도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 ⑥ 절약형 보일러 > 요, < ⑦ 형광등 > 기능도 가지고 있다. 볕 잘 드는 남향 집에 살면 살림살이 절반은 장만하는 꼴이다. 어떻습니까, 불사파 두목 조삐리(조필)가 목에 핏대 세우며 해삣, 해삣, 해삣 할 만하지 않습니까 ? < 해삣 > 의 중요성은 다들 아시리라. 그래서 반 지하 방에 난 창문‘은 조형적 균형을 포기하면서까지 조각 볕을 받들어 모시기 위해 높은 곳에 위치한다. 더 많은 빛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유명 블로거’가 있었다. 그는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는 입만 열면 자신이 이룩한 성공을 자랑스럽게 말하고는 했다.
어느 날, 그가 “ 셀카 ”를 찍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쥐새끼 같은 추리력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 사진을 보자마자 그가 허언증에 사로잡힌 환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의 얼굴 뒤로 비친 창문이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던 것이다. 정상적인 집구석이라면 창문 위치가 그렇게 높은 곳에 달려 있지 않을 뿐더라 쪽창일 리 없었다. 이건희가 (높은 곳에 위치한) 쪽창 달린 방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해 보라. 한강이 보이는 고층 스카이라운지'에 산다던 그는 “ 반 지하 세입자 ” 였던 것이다. 모른 척했다. 느낌 아니까 ~ 생각해 보면,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은 햇볕을, 더 질 좋은 햇볕을 공급받는다. 태양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니었다. 불공평한 배분은 " 태양 " 만이 아니었다. " 좋은 풍경 " 도 거래되었다.
빈부 격차에 따라 부자는 좋은 풍경을 선점하고 빈자는 기껏해야 더러운 골목길을, 꽉 막힌 건물 벽을 바라볼 뿐이다. 풍경이 좋은 곳은 모두 가진 자'가 차지했다. 내가 반 지하 방에서 1년을 살면서 절실히 깨달았던 것은 " 좋은 것을 본다는 것(풍경) " 의 중요성이었다. 높이 달린 쪽창은 풍경을 거세한다. 밖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통풍을 위해 열어 놓을 뿐이다. 내가 반 지하 셋방에서 몸소 배운 것은 " 조망권에 대한 이해 " 였다. 조망권(眺望權) - 바라볼 조, 바랄 망, 권리 권. 조망권은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한 조항이다. 그렇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먼 곳을 바라볼 권리가 있는 것이다. 교도소 감방에 난 쪽창이 높은 곳에 위치한 이유는 죄수의 조망권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몇 년 전, 세 모녀가 동반 자살한 곳도 반 지하 방이었고,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죽은 곳도 조망권이 차단된 지하 셋방이었다. 종종, 드라마에서 옥탑 방이나 반 지하 방을 낭만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옥탑에는 낭만적인 달빛이 비추고, 반 지하는 " 벙커 " 라는 이름으로 소비된다. 시청률을 위해서 가난의 이미지'가 낭만적으로 포장되어 팔리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지 못하는 것은 없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물(物物)은 물론이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이미지化해서 판다. 다들 아시다시피 섹스-이미지'는 잘 팔리는 상품이다. 그리고 공포(걱정,위기감 조성) - 이미지'도 잘 팔리는 상품이다. 박근혜 정권의 주력 상품이 바로 공포 상품이다. 그리고 가난 - 이미지'도 돈벌이에 좋은 상품이다.
타인의 가난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이들이 있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그들은 " 착한 소비 " 혹은 " 윤리적 소비 " 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파는 상품을 " 착한 자본주의 " 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잇속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를 윤리적 소비자(혹은 자신을 진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기업이 경영하는 대형 마트에 가서 비싸더라도 < 공정 무역 커피 > 따위를 사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막상 지저분한 동네 구멍 가게'에서 (대형 마트에서 싸게 파는 맥주보다) 비싼 맥주를 사기보다는 대형마트에서 저렴한 묶음 상품 맥주를 사는 것을 선호한다. 효율성을 놓고 보자면 동네 구멍 가게에서 비싼 맥주를 사는 것이 낫다. 내가 이 사실을 지적하면 그들은 항상 불쾌한 얼굴을 한다.
오늘 소개할 책은 두 권이다. 라미아 카림의 << 가난을 팝니다 >> 와 에드워드 로이스 Edward Royce 의 <<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 이다. 에드워드 로이스( Edward Royce )라는 이름에서 쌀(Rice)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흙수저'다. 당신에게 읽기를 권한다.
덧대기 ㅣ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아직 이 책들을 읽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