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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워크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3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롱워크 : 국토대장정, 오이디푸스 그리고 복면가왕
해마다 여름이 되면 : 연중 행사'처럼 진행하는 퍼레이드가 있다. 동아제약에서 진행하는 << 국토대장정 >> 이다. < 박카스 > 가 대한민국 대표 자양강장제라면, < 국토대장정 > 은 < 지신밟기 > 의 20/21세기적 문화 행사'다.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돌며 땅을 다스리는 신령을 달래고 안녕을 빌던 풍속은 지금에 와서는 기업 스폰서를 받아 글로벌하게 확장되었다. 해남 땅끝에서 서울로 범위를 넓힌 것이다. 국토대장정은 일종의 답정굿'인 셈이다. 행사 취지는 분명하다. 맨발의 청춘들은 해남 땅끝에서 시작해 서울로 입성하는, 600km가 넘는 거리'를 밟으면서 나라의 안녕을 빈다. "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평화통일 이뤄 주시고(할렐루야~), 부국강명 이뤄 주소셔(아멘~) ! " 이 퍼레이드가 성공하자 여러 단체에서도 희망원정대, 국토횡단모험단, 나눔로드 따위로 행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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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단체에서 진행하는 21세기 지신밟기 행사에는 참가비가 무료이지만 몇몇 단체는 참가비를 내고 참여해야 한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 딱 > 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21세기 지신밟기 풍속 서사'는 < 기-승-전-國 > 이 아니라 < 기-승-전-家 > 이다. 주최 측에서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 화려 강산 " 보며 자긍심을 가지라며 " 팔도 유람 " 시켜 줬으나 대원들 머릿속은 집 생각뿐이다. 당연한 결과'다. 지신밟기'란 원래 내 집의 안녕을 비는 기복신앙에서 파생된 풍속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 세상 모든 행사 취지는 " 좋은 취지 " 에서 시작하지 " 나쁜 취지 " 는 없다. 이명박(or 박근혜)은 항상 나쁘지만 취지는 항상 좋은 놈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면 취지와는 다른 놈이 얼굴을 드러내는 법이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청춘은 모두 오이디푸스'다. 오이디푸스가 " 퉁퉁 부은 발 " 이란 점에서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오이디푸스'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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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 행사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극기나 애국 따위가 아니라 " 집 나가면 개고생 " 이라는 평범한 진리'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돈 내고 집 나가서 개고생 하는 게 국토대장정이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휴먼드라마의 주제'다. 아 ! 쪽팔린 일이다, 이런 서사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런데 좀더 비판적으로 접근하면 군사 문화의 잔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은 " 개인의 극기 " 를 다루는 게 아니라 " 집단의 극기 " 를 다룬다. 이 행사에 참가한 청춘은 독단적 주체가 아니라 조(組)의 일원'일 뿐이다. 그들은 팀의 일원으로서 팀워크를 강요받는다. 팀워크는 하나를 위한 전체의 희생을 강요한다. " 너만 힘드니? 나도 힘들거등 ! " 국토대장정이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는 것은 << 완주 >> 이지만, 팀원 중 낙오자가 없을 때에나 빛나게 되는 가치'다. 특정인의 낙오는 곧 그 특정인이 소속된 팀 전체의 낙오로 간주되어 얼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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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낙오된 자는 나쁜 신체'라는 멍에를 쓴다. 그러다 보니 도중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국토대장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파시즘적 군국주의를 읽어낼 때, 스티븐 킹은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966년에 << The Long Walk >> 라는 소설을 쓴다(여러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출판사는 모두 거절한다. 후에 스티븐 킹은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가명으로 출간하게 된다). 번역하자면 " 오래달리기 " 이지만 오래달리기'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자기계발서 제목 같아서 거부감이 든다. 차라리 " 국토대장정 " 이라는 이름이 그럴 듯하지 않을까 ? < 킹 > 은 오래 전에 이미 변방의, 어두컴컴한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한국판 국토대장정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어린 청춘들은 국토대장정과 유사한 오래 걷기 대회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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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룰 > 은 다음과 같다 : ㉠ 경기에 참여한 선수는 최저 제한 속도는 6.5km 이상으로 행군해야 하며, ㉡ 행군 중 최저 제한 속도 이하로 떨어지면 경고를 받는다. ㉢ 이 경고 횟수가 3회를 넘어 4회에 이르면 탈락된다. ㉣ 참가 인원은 100명이다. ㉤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게임은 지속된다. ㉥ 당연히 최후의 1인은 엄청난 금전적 보상이 따른다 - 는 줄거리. 아참, 중요한 것 하나를 빼먹었다. ㉦ 경고를 4번 받아서 경기에서 탈락하게 되면 ....... 총살(즉결 처형)을 당한다. " 어때요, 킹답죠 ? " 깊이 있게 이 소설을 이야기하고 싶으나 스포일러 대방출이라는 어쩔 수 없는 덫에 빠지기에 생략하기로 하자. 이 소설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가명으로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다. 쉽게 말해서 리처드 바크만은 스티븐 킹의 복면가왕인 셈이다. 킹이 바크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문단의 홀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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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킹은 문단으로부터 대중에게는 인기가 높지만 퀄리티는 떨어지는 싸구려 대중 작가'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킹 스스로도 실력보다는 운이 따른 영광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복면가왕이 바로 리처드 바크만'이었다. 그가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고등학생 때 쓴 << 롱워크 >> 를 내놓자 평단은 호평 일색이었다. " 킹, 보고 있나 ? 장르 소설을 쓰려거든 바크만처럼 쓰시게나. 킹, 자네는 바크만의 발톱 때만도 못하다네...... " 장정일이 << 사계 >> 를 읽고 나서 이런 소리를 한 적 있다. " 스티븐 킹이 이 단편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 장정일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똑같은 소리를 했을 것이다. " 스티븐 킹이 이 소설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고등학생 때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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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 << 롱 워크 >> , 쥑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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