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머니 손맛



                                        동네마다 맛집 하나 정도는 있다. 내가 전에 살던 곳에서는 " 닭내장탕 " 이라는 생소한 음식을 단일 메뉴로 내놓는 식당이 있었는데, 식신원정대(꽤 많은 미디어에서 이 집을 소개하고는 했다)에서 다녀간 후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이 집에서 닭내장탕을 먹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 옛날 맛 >> 과 << 어머니 손맛 >> 을 외치고는 했는데,        뭔가 작위적인 냄새가 나고는 했다. 치킨의 향미 가운데 팔 할이 기름 맛이라면  ○○ 년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점에서 내놓는 대표 음식의 팔 할은 옛날(어머니) 맛'이다. 일단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그래서 감칠 맛이 부족하고 혀끝에서 겉도는 거친 식감을 보이는 음식에 대해 신뢰를 보낸다.

 

< 웰빙 >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감칠 맛이 부족하고 혀끝에서 겉도는 음식을 웰빙 음식으로 생각한다.  입에 좋은 것은 쓰다는 믿음이 작용한 탓이다. 이 믿음에 부합하는 것이 바로 " 사랑과 정성 " 으로 만든 집밥이다. 건강을 생각해서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다 보니 맛은 텁텁하고 쌉싸래하며 슴슴하지만 사랑과 정성이 담긴 건강 음식이라 생각하고 참고 삼킨다. 참고 견디면 아침에 황금 똥을 누리라 !  그런데 이런 주장을 보고 들을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된다. 사는 게 지쳐서 요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주부들은, 혹은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마트 노동자 주부는 조미료를 대체하기 위한 레시피는 그림의 떡'이다. 조미료 사용을 게으른 레시피로 취급하는 태도는 가난한 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백주부의 집밥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와 설탕에 의지할 때 오는 죄책감을  백선생이 덜어주기 때문이다. 차주부(차승원)의 << 삼시세끼 >> 가 인기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조미료에 대한 신뢰였다. 그는 마법의 가루를 신뢰했다. 이처럼 백선생과 차주부는 이들에게 구세주다. 이러한 선입견을 심어준 방송이 <<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 >> 이다. 이 방송은 아예 조미료를 사용하는 음식을 쓰레기 음식으로 규정한 후, 조미료를 쓰지 않는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나선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를 반영한 히트 상품인 경우다. 이 방송이 유포한 것은 옛날 맛에 대한 판타지'다. 일종의 강박적 순혈주의'인 셈이다. 예를 들면 : 시중에서 파는 밀과 밀가루를 섞는 메밀 국수 요리'를 가짜라서 설정한 후,  100% 메밀로만 만든 국수를 파는 식당을 찾아나선다는 식이다. 그것이 옛날 시골집에서 먹던 맛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날마나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왜 100% 메밀로 만든 국수를 먹었을까 ? 건강을 생각해서 ?!  답은 간단하다. 옛날에는 밀가루가 귀했다 !  일반 식당에서 메밀과 밀가루를 섞는 이유는 손님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밀이라는 재료가 끈기'가 없기에 밀가루가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속사정은 생략한 채 100% 메밀로 만든 국수를 찾아나선다. 순혈에 대한 맹신이 혓바닥도 속이는 것이다. 툭, 툭툭.... 끊어지는 면발'에 침이 고이는 경우는 과연 몇 %나 될까 ? 음식에서도 혼혈에 대한 혐오가 반영된다는 사실은 유괘하지 않다. 혈통이나 뼈대부터 따지는, 이 지긋지긋한 순혈주의'가 100% 라는 이상한 맹신을 낳았다. 우리가 찬양했던 옛날 맛은 최고의 레시피가 아니라 부족한 식재료로 맛을 낸 레시피'였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허기에 침이 고이면 모든 음식은 맛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옛날 맛과 어머니 손맛은 맛이 있기 때문에 맛이 있다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옛것은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옛것 가운데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 옛날 맛이라거나 어머니 손맛으로 극찬을 받았던 << 닭내장탕집 >> 은 작년에 문을 닫았다. 개 사료용 닭내장을 사용했으며 닭 내장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인체에 치명적인 카바이드'로 세척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신이 그토록 찬양했던 옛날 맛은 개 사료용 닭내장과 석유 화학 약품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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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7-2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그 선전이 없어진 것 같은데 작년까지만 해도
<미원> 선전에 미국에서 한식으로 성공한 어떤 여자가 나와서
이 화학조미료에 대한 인식을 바꿀려고 했었죠.
미원은 사탕수수로 만든 거다. 이곳 미국에선 보편적으로 모든 음식에
미원을 쓰는데 한국은 안 그런 것 같더라. 이렇게 맛이 좋은데 왜 안 쓰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 선전을 했었죠. 이젠 먹힐만도 할 텐데 그 선전 오래 가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희집은 이 미원이 초기에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먹고 있습니다.
그 선전 아십니까?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미원, 미원, 미원 우리 우리 엄마뽐내는 요리 솜씨도 할머니 미원 미원이죠.
우리들은 건강한 미원 가족!˝
뭐 그런 노래가 뇌리에 박힐 때부터요. 김창숙인가? 영화 배우 문희 한창 젊고 황정순이 시어머니로 나올 때부터
말입니다. 곰발님 아시려나요? 흐흐.
어쨌든 앞으로도 끊을 생각이 없어요. 전 미원 사랑합니다.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0 07:21   좋아요 0 | URL
미원 같은 조미료가 이미 1908년부터 팔렸더군요. 깜놀 ~
그 당시부터 조미료가 맛을 한층 엎그레이드시킨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한 모양입니다.
이거 ... 알고 보니 다 조미료 맛이잖습니까.
일본산 조미료 쓰다가 한국 미원을 쓰기 시작한 해가 1955년인가 6년인가 하죠...
그러니깐 나이 좀 있는 양반들이 어머니 손맛이라고 한 것은 대부분 미원 맛이죠....
미원은 안 넣어야 그 옛날 맛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그 광고는 모르겠습니다. 미원하면 김혜자 아닌가요 ? 아니구나 다시다지...

samadhi(眞我) 2015-07-19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국장 맛이 끝내주는 식당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비법을 알려달라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던 할머니가 마지막에 며느리에게만 살짝 비법을 유언하시기를, ˝미원 두 숟갈 반˝이다. 라고 했다는 ˝와탕카˝ 만화를 보고 깔깔댔었죠. 저는 정말 맛있는 식당 가면
˝흠, 조미료 배합이 훌륭한 걸˝ 하고 감탄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0 07:22   좋아요 0 | URL
미원이 56년부터 국산으로 팔렸고, 그 전에는 일본 제품이었다고 하니 이미 미원의 역사는 오래된 것입니다.
5,60년대 맛을 그 옛날 맛이라고 하면... 그때도 미원 맛 아니겠습니까...

수다맨 2015-07-20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친구가 착한 식당이라며 어느 분식집에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는다고 해서인지 김밥이나 떡볶이 가격을 다른 식당보다 두 배는 더 받더군요. 그래서 비싼 값은 하겠지, 하면서 먹었는데 솔직히 너무 맛이 없더군요. 대체 `착한` 이라는 수식어를 뺀다면 암것도 없는 식당이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0 07:23   좋아요 0 | URL
미원 많이 넣으면 그렇지 적당히 넣으면 나쁠 것 뭐가 있겠습니까. 이런 판타지는 개나 줘야 함....
노력 나쁘지 않죠.. 사실.... 저희 집도 미원을 사용 안합니다.
단 한번도 맛있다고 느낀 적 없습니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