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에서 주문이 많은 요리점까지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전 글에서 목적 없이 도서관에 갔다고 말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오늘 곰곰 생각하니 주말에 도서관에 관 이유는 미시마 유키오의 << 우국 >> 을 읽을 목적이었다. 그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시작은 좋았다. 당당하게 일본 문학 코너 앞에서 << 우국 >> 을 찾다가 구리 료헤이의 << 우동 한 그릇 >> 을 발견했다. 그래, 이 작품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 힐링 푸드 - 서사 " 의 삼촌뻘이었지. 힐링 푸드 서사의 아버지(어머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그 책을 서고 앞에서 서서 읽다가 문득 아베 야로의 << 심야식당 >> 이 떠올랐다. " 도서관에 만화가 구비되어 있으려나 ? " 찾아보니 14권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띄엄띄엄 읽기 시작했다. << 심야식당 >> 은 요리 만화'이지만 허영만의 << 식객 >> 처럼 거창하지 않았다.
<< 식객 >> 이 " 최고의 예술(요리) " 를 찾아가는 모험이라면, << 심야식당 >> 은 " 보통의 요리 " 를 보여주는 만화'다. 비유를 들자면 << 식객 >> 은 < 한식대첩 > 에 가깝고, << 심야식당 >> 은 < 집밥 백선생 > 에 가깝다. 심야식당이 밤 12시에 문을 열어 아침 6시면 문을 닫으니 이곳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밤손님들이다. 그들은 남들 잘 때 일한다는 측면에서, " 나인 투 파이브 " 가 주류인 정상 가족의 구성원'은 아니다. 그들은 주류 이성애 가족 사회의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집(가정) 없는 자'에 가깝다. 심야식당은 거창한 요리를 내놓지 않는다. 정해진 메뉴는 없다. 손님이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을 요구하면 식당에 구비된 식재료로 만들어 준다. 손님 또한 허름한 식당에서 호텔 요리'를 주문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흔히 먹는 요리가 대부분이다.
결국 이 만화가 관통하는 서정은 " 집밥에 대한 향수 " 다. 그런 점에서 칼자국이 있는 마스터는 " 엄마 " 다. < 마스터 > 는 엄마인 듯, 엄마 아닌, 엄마 같은 남자'다. 여기서 드는 의문. 집밥이 집(가정) 없는 자의 결핍을 메우기 위한 오브제'라면 : ㉠ 주인공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요리를 해야 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지 않을까 ? ㉡ 왜 < 요리하는 남자 > 라는 문장은 자연스럽지만 < 음식 만드는 남자 > 라는 문장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까 ? ㉢ 왜 남자가 주방에서 내놓은 결과물은 요리이고 여자가 부엌에서 내놓은 결과물은 음식'이 되는 것일까 ? 우선 이 만화는 어머니의 손맛'을 대표하는 집밥을 주제로 집 없이 떠도는, 엄마 없는 고아(들)을 위로한다.
여기서 마스터는 손님의 서사'에 끼어들어서 흥야항야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듣고 요리를 내놓을 뿐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아베 야로는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아닌 과묵한 아저씨'를 마스터로 내세운다. 단골손님들이 이 식당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이중적이다. 그들은 엄마가 해 주는 요리를 그리워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엄마의 잔소리'는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모순적 태도가 반영된 캐릭터가 바로 " 마스터 " 다. 우리는 항상 어머니의 손맛으로 대표되는 집밥을 그리워하지만, 그 그리움에는 경제적 이득'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은 돈을 지불해야 되지만 집밥은 공짜'이니 말이다. 공짜는 다.... 맛있다.
남성 주류 시선의 집밥 찬양은 결국 여성의 가사 노동을 공짜로 인식하는 편협한 자세'가 낳은 판타지'이다. 여기서 남성 주류가 찬양하는 어머니는 < 아낌없이 주는 나무 > 다. 모성 신화에서 어머니는 어릴 때는 그늘이 되고, 그네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밑동을 잘라 그루터기가 되는 존재'다. 집밥 찬양도 이와 유사하다. 주류는 " 집밥 " 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가사 노동을 공짜라고 생각한다. 어머니, 혹은 어머니 같은 여자'는 항상 아낌없이 주는 존재이니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 아내(혹은 엄마)가 해 주는 한 끼'를 먹을 때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과 동일한 가격을 지불해야 된다면, 여전히 < 닥치고 집밥 예찬 > 을 할 수 있을까 ? 오히려 잔소리가 늘어날 것이다. 집밥이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집밥이 가사 노동의 결과라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심야식당에서 만들어내는 요리는 집밥이지만 사실은 집 밖에서 먹는 식당 밥'이다. 도서관 모퉁이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심야식당 1,2,3,4권을 내리 읽었다. 그리고 5권을 읽기 위해 다시 책장으로 향했다. 심야식당5권을 찾다가 불현듯 미야자마 갠지의 << 주문이 많은 요리점 >> 이 떠올랐다. 아, 그래.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란 동화가 참... 독특했지 ! 나는 < 심야식당 5 > 를 읽으려고 서고 앞에 섰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미야지마 겐지의 << 주문이 많은 요리점 >> 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모퉁이 테이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 겐지와 겐이치로 >> 라는 소설집이었다.
이 소설집 b권에서도 " 주문이 많은 요리점 " 이라는 단편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도서관에 가면 항상 엉뚱한 책만 읽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