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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 - 소속감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사회 치유의 역사
티나 로젠버그 지음, 이종호 옮김, 이택광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SMO KING / NO SMOKING
Smoking/No Smoking 라는 제목은 알랭 레네의 영화 제목 << Smoking/No Smoking, 1993) >> 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고지합니다.
- 업계 대변인, 금연 광고 캠페인
풍채 좋은 중년 남자'가 회의실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위풍당당한 말투로 말한다. " 여러분, 우리 담배 업계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수십 조 달러에 달했던 건초 수익'이 거덜났어요, 너덜너덜. 띠바 ! 하루바삐 골초 새끼들을 포섭해야 합니다. 날마다 2천 명이나 되는 골초 새끼들이 건강을 이유로 금연을 선언하는 상황이오. 그뿐입니까 ? 매일 1천 100명이나 되는 뻐끔이들은 이제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아요. 왜냐 ? 피우고 싶어도 피울 수가 없소. 흡연으로 인해 하루에 1천 100명이 뒈지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이 결손을 담배를 피우지 않아 아직은 허파가 싱싱한 잠재적 뻐끔이들로 대체해야 한다는 점이오. 암, 심장병, 뇌졸증 따위는 잊읍시다. 시바, 우리가 무슨 건강 전도사요 ? 건초 장사꾼이지...... "
일동 : ( 격한 동감과 골초에 대해 조롱이 섞인 웃음을 날리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위 동영상은 캘리포니아 주의 지원금으로 만든 금연 공익 광고'로 광고인 폴 키 씨'가 << 업계 대변인 >> 이라는 제목으로 1990년 4월 10일에 선을 보인 작품'이다. 이 광고는 다른 금연 광고'와는 사뭇 달랐다. 기존 광고는 < 흡연이 당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ㅡ 류 > 와 < 당신이 뱉은 담배 연기가 당신 아이를 죽일 수 있습니다 ㅡ 류 > 따위의 " 보건소(스타일) 광고 " 가 대부분이었다. 이 광고들은 " 끽연가여, 각자 알아서 조심하십시다 ! "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광고 속 흡연자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으며, 아무것도 모른 채 속을 태우니 속도 없는 놈으로 묘사되었다. 당신의 불행은 자업자득'이라는 논리가 박혀 있었다. 하지만 << 업계 대변인 >> 광고는 흡연가에게 1차적 책임을 묻는 대신 불투명한 적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광고 속 업계 대변인'은 잇속을 위해서 커튼 뒤에서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야비한 인물처럼 보인다. 흡연자는...... 속고 있는 것이다.
광고인 Paul Keye 씨가 보기에 흡연이 증가하는 원인'은 담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담배 회사들이 수백만 달러를 들여 만든 이미지 마케팅'에 있다고 보았다. << 업계 대변인 >> 은 담배 회사'를 악당으로 묘사한 첫 번째 광고'였다. 공격 방향을 <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 > 에서 < 담배 회사 > 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이 전략은 통했다. 인간이란 자고로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알고 있는 이상은 속고는 못 사는 족속이니깐 말이다. 손실 회피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안 피우면 안 피웠지 꼭두각시 장단 놀음에 놀아나지는 않겠다며 주먹 불끈 ! 또 다른 광고에서는 흑인 래퍼가 나와 담배 업계를 디스한다. 시바 새끼들, 우리가 니네 꼭두각시니 ? 이젠 우리가 타바코(TABOCCO) 다 바꿔, 타바코 다바꿔. yo ~ 이런 메시지였다. 적이 선명할수록 의지 또한 불타는 법이다. 플로리다 주'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캘리포니아 주가 공급한 금연 광고가 성인 흡연 인구 전체를 겨냥한 캠페인이었다면, 플로리다 주는10대 청소년을 겨냥한 금연 공익 광고에 주력했다. 애초에 싹을 뽑자는 의도였다. 이 캠페인에는 SWAT : Student Working Against Tabacco 이라는 " 담배를 반대하는 학생 모임 " 이 중심이 되어 제작 단계에서부터 캠페인 광고에 적극 참여했다. 십대들은 뻔한 보건소 광고에 식상하고 있었다. 그들은 "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 " 라거나 " 담배 오래 피우면 이빨이 누렇게 됩니다. " 라는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았다. 비록 십대들이 < 트와일라잇 > 같은 병맛 건전 판타지 소설에는 열광해도 이따위 금연 광고 메시지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십대에게는 금연 메시지'가 뭔가 근사하다는 점을 심어줘야 했다. 그래서 저항'이라는 코드로 접근을 시도했다. 십대 하면 반항 아닌가 !
" 진실 " 캠페인 시리즈는 담배 회사와 맞짱을 뜨는 또래 짐단을 담았다. 십대들이 보기에 광고 속에 등장하는 거대 담배 회사는 다스 베이더처럼 보였고, 또래 집단은 루크 스카이워커처럼 보였다. 십떼( 오타 아니다 ) 들이 우르르 거대 담배 회사 건물 앞에 모인다. 티셔츠에는 하나같이 1200이란 숫자가 적혀 있다. 그 숫자 옆에는 각자 고유 번호가 적혀 있다. 카메라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부감으로 십떼'를 비춘다. 흡사 좀비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어느 한 순간, 십떼가 모두 쓰러진다. 죽은 것이다. 궁금증은 곧 해소된다. 누군가 피켓을 들고 있다. 날마다 흡연 때문에 1200명'이 죽습니다 !
ㅡ 진실, 금연 공익 광고 캠페인
10대 청소년이 주축이 되어 만든 " 진실 " 시리즈는 10대 청소년들이 사악한 집단에 맞서 저항한다는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흡연에 반대하는 금연자 혹은 비흡연자'는 흡연자가 뱉는 담배 연기에 인상을 찡그리거나 코를 막는 소극적 행동에서 벗어나 담배 회사'를 상대로 적극적 행동에 나선다.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 같다. 이들은 마치 정의를 위한 투사처럼 보인다. 나와라, 이 시밤바들아 ! 정의의 사도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바로 이 코드'가 십대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돌이켜보면 십대는 폼생폼사가 아니었던가 !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플로리다 주의 10대 흡연율은 2007년에 이르러 고등학생 흡연율이 14.5 퍼센트로 떨어졌다. 10년도 안 돼 절반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그러자 금연 정책에 대해 팔 걷고 and 발 벗고 나섰던 주 정부가 다시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관객의 예상과는 달리 이야기는 골때리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런 것을 두고 " 황당한 반전 " 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 정부는 담배 가격 인상을 중단하고 진실 캠페인 자금 지원을 대폭 삭감한 것이다. 주 정부는 금연 프로그램 효과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자 담배 회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금연은 곧 세금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플로리다 주는 더 이상 금연 공익 광고 캠페인에서 담배 업계의 조종이라는 테마'를 활용하지 않았다. 다시 " 흡연은 당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ㅡ 보건소 광고 " 로 돌아왔다. 가파르게 하락했던 곡선은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는 티나 로젠버그가 쓴 << 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 >> 에서 자세히 다룬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일독을 권한다. 티나 로젠버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또래 집단이 개인에게 행사하는 긍정적 압력'이다. 같은 처지에 놓인 또래 집단의 친화력을 이용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긍정적 또래 압력이라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면 "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 " 는 속담으로 바꿔 생각하면 쉽게 와 닿으리라. < 또래 끼리 어깨 톡톡talk talk > 이라고나 할까 ? 티나 로젠버그는 풀리쳐 수상 작가답게 다양한 사례를 뽑아 짜임새 있게 정리한다. 그러니까 또래 끼리 어깨 톡톡 운동은 상부 구조가 하부 구조를 계몽하는 구태가 아니라 하부 구조를 구성하는 또래끼리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북돋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섹스할 때는 콘돔을 사용하자는 러브 라이프 캠페인으로 남아공의 10대 에이즈 감염 수치를 줄였고, 미적분학 클럽'으로 학업 성적을 올렸으며,
그라민 은행은 대출 부적격자인 빈민에게 돈을 빌려줘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오트포르 민주화 운동으로 세르비아 민주화에 공헌을 한 예를 든다. 러브라이프, 미적분학 클럽, 그라민 은행, 오트포르 운동은 모두 지도자, 스승 따위가 하위 그룹에 영향을 준 게 아니라 또래 집단 스스로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를 주도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티나 로젠버그는 또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친화력과 전염성에 주목했다.
다시 담배 이야기로 돌아오자. 대한민국 금연 광고는 대부분 " 흡연이 당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 와 " 당신이 내품은 담배 연기가 아이를 죽일 수 있습니다 " 뿐이다. 흡연자는 사탄처럼 묘사되거나 배려가 없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런 광고는 지긋지긋하게 본 터라 경각심은커녕 시큰둥하기 일쑤'다. 대한민국 금연 공익 광고를 보고 담배를 끊을 결심을 하는 흡연자가 있을까 ? 역설적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금연 광고'는 담배 판매 수익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기 때문에 썩 괜찮은 광고'다. 담배 제조사인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보자면 말이다. 박근혜 정부는 연초에 담배 가격을 대폭 올렸다. 가격 인상 목적 가운데 하나가 금연 효과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 말을 믿을 인간이 있을까 ?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말이 떠오른다.
끽연금지회喫煙禁止會' 라는 구국 운동 단체가 있었다. 1907년, 대구에서 조직되었는데 금연을 통한 저축으로 일본에 진 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국가 수익 가운데 중요한 수입원이 바로 건초 판매 사업'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대놓고 흡연을 장려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금연을 적극 장려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다. 그러다 보니 금연 공익 광고'도 보건소 광고가 전부다. 대한민국 금연 광고는 폭력 주체를 흡연자'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흡연자는 폭력 주체가 아니라 피해자일 뿐이다. 국민 속을 태워 이윤을 챙기는 주체가 폭력 주체를 흡연자로 설정하는 꼴을 보니, 이 정도면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이런 고리타분한 공익 광고는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전파 낭비일 뿐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