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논란의 맹점
국가 예산을 알기 쉽게 정리하자면 "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 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속담이다. 부자 나라'라고 해도 예산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다. 만약에 예산이 남았다면 그것은 예산을 편성하는 정부 조직'이 살림을 잘 꾸리지 못했다는 증거'다. 홍준표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무상급식을 선별급식'으로 말을 바꾸면서 하는 변명이 예산 부족 타령'이다. 말을 바꾼 것에 대한 미안함은 없고 포부가 당당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 시바, 돈 없으니 배 째 ! " 라는 어깃장'처럼 들린다. 여기에 사람들은 < 보편주의 > 와 < 선별주의 > 사이에서 우왕좌왕한다.
돈이 부족하니 가난한 아이에게만 무상 급식하겠다는 주장이 얼핏 들으면 타당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 여기에는 꼼수'가 있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예산'이 남는 나라는 없다. 예산이 늘어나면 예산을 편성해야 할 항목'도 당연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웃돈이 생겨서 장남에게 나이키 신발을 사줬더니 둘째, 셋째, 막내까지 신발 사달라고 징징거리니 말이다. 작년에는 예산이 부족해서 시청 신축 공사 건설을 미뤘는데 올해에는 여웃돈이 생겨서 시청 신축 공사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년에는 왜 시청 신축 공사에 들어가는 예산이 부족했을까 ? 답은 예산 편성 우선 순위에 있다. 시청 신축 공사'를 예산 편성 우선 순위 100위'라고 하자.
작년에 시청 신축 공사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예산 편성 99순위까지는 비용을 가까스로 감당할 수 있는데 100순위'인 시청 신축 공사'를 짓는 데에는 그 비용이 모자라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편성 우선 순위'는 어떤 기준에 의해 정하는 것일까. 쉽다. 매우 쉬운 질문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1순위에 놓는다. 만약에 당신이 집으로부터 살림을 독립해서 새로운 생활'을 꾸려야 한다고 가정하자. 살림을 장만할 때 넉넉하면 좋으련만 돈이 모자라서 장식장과 냉장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바보가 아니라면 장식장'보다는 냉장고'를 우선 순위에 둘 것이다. 홍준표의 무상 급식 문제로 돌아오자.
순위 결정은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선택은 정치적 결과이니까. 그 점을 감안한다면 홍준표는 무상급식보다 선별급식을 주장했던 새누리당에 소속된 정치인이기에 무상급식을 후순위에 두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그의 선거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공약 > 이라는 것은 자신이 약속한 정책을 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다짐'이 아니었던가 ? 홍준표 경남 도지사에게 있어서 < 무상급식 > 은 도대체 우선 순위 몇 번째에 해당될까 ? 공무원 해외 문화 연수 비용은 59순위'이고 무상급식은 1049순위'는 아니었을까 ? 후순위로 밀리면 당연히 예산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나는 홍준표가 무상급식 예산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게 엄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짜 예산이 부족한 것이다. 왜 ?! 무상 급식 항목이 예산을 쓸 수 있는 범위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선거 공약이니 앞자리에 배치해야 할 항목을 뒷자리에 배치하고는 돈이 없다고 징징대는 것이다. 무상 급식 비용은 경남 예산의 0.5 % 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비용이 결코 아니다. 눈치 없이 밥을 먹이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 올바른 정치 철학을 가진 이'라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0.5% 밖에 되지 않는 무상 급식을 예산 편성 1순위에 놓지 않았을까 ? 점심값 없다고 징징대는 것은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기에 발생한 결과'이다. 사람들은 무상급식'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파탄 날지도 모른다고 징징거리지만,
전체 예산에서 1%도 안되는 " 0.5% 예산 " 을 가지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것은 과장이 심하다. 가난을 증명하는 방식은 매우 쉽다. 홍준표 도지사'는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16장의 서류'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행정 절차의 문제일 뿐, 가난을 증명하는 순간은 가난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때'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가난한 아이의 얼굴을 붉히고 나서야 밥 한 숟가락 떠먹이는 태도'가 옳은 것일까 ? 홍준표 도지사의 중앙 정치'에 대한 장미빛 미래 때문에 아이들은 오늘은 핏빛으로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