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 세 끼

언제부터인가 << 리얼버라이어티 >> 가 방송가를 장악했다. 보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 리얼 버라이이이어티 쇼 " 다. 버리어이터 : variety' 가 각양각색'이라는 뜻이니 < 버라이어티 쇼 > 는 가수, 연극 배우, 코미디언, 차력사 등이 한 무대에 올라 여러 가지 재주를 뽐내는 볼거리 형식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 쑈, 쑈, 쑈 " 다. 하지만 모든 소비 형태에는 유행을 타는 법. 시청자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 말 그대로 쑈하는 모습에 질려버리자 새로운 형태의 버라이이이어티가 탄생했으니 바로 << 무한도전 >> 이다. 무한도전이 다른 쑈쑈쑈 형태와 다른 이유는 정해진 룰(대본)이 없다는 점이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 < 버라이어티 > 가 짜고 치는 대본'이라는 뜻이라면, < 리얼 > 은 정해진 대본 없이 진행한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리얼버라이어티 방송은 대본없이 진행되는 다큐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이 성공하자 소비자본주의 특성상 유사품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방송 대세'가 되었다. 다큐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나쁜 예'에 속하는 퍽유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속하는 << 우리 결혼했어요 >> , << 아빠 어디 가 >> , << 진짜 사나이 >> , << 슈퍼맨이 간다 >>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뿐만 아니라 << 짝 >> 같은 일반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그런데 이들 프로그램은 정말 " 리얼 " 할까 ? 이 말은 정해진 대본이 없다는 것이 반드시 " 리얼리티 " 를 보장하느냐는 질문이다. 대본 없이 좌충우돌하는 리얼버라이어티'가 짜고 치는 쑈쑈쑈와 다른 영역을 탐색한다고는 하나 본질은 똑같다. 리얼버라이어티'도 쑈쑈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식으로 번역하자면 " 얼어 죽을 동태와는 다른, 죽은 척하는 생태(학) " 이다. " 얼어 죽을 동태와는 다른, 죽은 척하는 생태학 " 라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유머 감각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쑈하는 장르라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진짜(리얼)인 척하는 가짜(버라이어티)라는 점에서 쑈쑈쑈'보다 더 연극적이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모든 인물은 보드빌 배우 가 된다. 무한도전'에서 각각의 배우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장기를 살려서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이 캐릭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페르소나'가 아니다. 그들은 리얼하게 캐릭터를 연기하는 보드빌 배우일 뿐이다. 대중은 페르소나와 캐릭터'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 캐릭터 >> 는 소설이나 연극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적 인물일 뿐이지 리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박명수라는 페르소나는 버럭이라는 캐릭터와 동일한 " 더블 ( 도플갱이 ) " 이 아니다. 리얼버라이어티 속 캐릭터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연기할 뿐이다. 그 사실에 속으면 안된다. 병맛 죽은 척하는 생태학'인 << 아빠, 어디 가 >> 와 << 슈퍼맨이 돌아왔다 >> 는 순진한 아이'를 전면에 내세워서 보다 강력한 " 리얼 " 를 표방하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와 다르지 않다. 모든 동선과 행위는 철저하게 계산된 상업적 이득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추성훈이 입고 있는 옷과 아이들에게 입힌 옷은 일상복이 아니라 협찬 받은 고가의 옷'이라는 점은 일상 가족의 소소한 다큐'라는 겉멋에 치명상을 입힌다. 그리고 모든 동선이 이미 방송국에서 짜 놓은 생활계획표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럭비공보다는 예상 가능한 당구공의 궤적에 가깝다. 어찌 보면 방송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이용해서 보다 리얼한 방송인 척할 뿐, 따지고 들어가면 철저히 상업적 계산이 깔린 방송이다. " 리얼하다 " 라고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리얼하지 않다. 왜냐하면 진짜 리얼'을 지시하는 언어는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 표현이지만 " 진짜 " 는 리얼한 것이 아니다. 나영석 피디가 연출한 << 삼시 세 끼 시즌 2 >> 는 요즘 대세인 " 죽은 척하는 생태학 " 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차승원과 유해진'이 등장하는 " 어촌 편 " 은 어릴 때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짝패가 되어 즐겨 하는 놀이인 소꿉놀이'를 재현한다. 특이한 점은 남ㅡ여 커플이 아니라 남ㅡ남 커플이 펼치는 케미'다.
마흔을 훌쩍 넘긴 어른 두 명이 신혼부부 흉내를 낸다는 측면에서 << 삼시 세 끼 : 어촌 편 >> 은 " 우리 마흔 넘어 결혼했어요, 시바 ! " 이다. 비록 삼시 세 끼'는 전통적인 성 역할에 충실하기는 하지만 " 게이 신혼 로망스 " 라는 측면에서 진보적 파격성을 갖췄다. 삼 시 세 끼'가 지상파를 포함한 금요일 예능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한 힘에는 대한민국 게이들의 열렬한 지지'가 포함되어 있으리라 감히.... 추측해 본다. 삼 시 세 끼'가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와 격이 다른 이유는 연극적 요소'를 적극 끌여들었다는 데 있다. 이 예능은 시작부터 철저하게 연극적 상황에 적응하는 두 명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들은 가식적으로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노동자'다.
mbc 예능 << 우리 결혼했어요 >> 는 출연자가 돈을 벌기 위해 사랑에 빠진 척 연기를 한다는 사실은 숨긴다. 선남선녀의 신혼 연애질'이 기만적이라는 점에서 다큐라기보다는 퍽큐 연애'에 가깝다. 반면 << 삼시 세 끼 >> 는 돈을 벌기 위해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을 시청자에게 숨기지 않는다. 사십대 중반의 남성 둘이 부부 역할을 소화하며 소꿉놀이'를 연출하는 풍경'은 이미 연극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삼시 세 끼'에는 << 우리 결혼했어요 >> 에서 보여주는 기만이 없다. 차승원은 아내 역할을 하고 유해진은 남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 애틋한 감정적 교류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연극에 충실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기할 뿐이다. 하지만 이 결핍을 채워주는 것은 두 배우가 가지고 있는 (뽕끼 없는) 진솔한 재능에 있다.
차승원이 매 회마다 선보이는 요리 솜씨'는 알렉스 같은 " 포장된 요리하는 남자 이미지 " 가 아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차승원은 알렉스처럼 몇 시간씩 공을 들여서 요리를 작품으로 승화하지 않는다. 차승원에게 있어서 요리'는 공인으로서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고상한 취미라기보다는 가족에게 따순 밥을 먹이기 위한 숙성된 몸짓에 가깝다. 그는 주어진 재료만 가지고도 요리를 척척 해낸다. 정확한 복기는 아니지만, 그가 방송에서 " 요리의 생명은 시간이다. 허기를 놓치면 아무리 맛이 좋아도 실패한 음식'이다. 식구들이 배 고플 때, 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내놓는 음식이 맛이 좋은 음식이다. " 라는 식으로 말했을 때, 그가 진정한 내공을 가진 요리하는 남자'라는 것을 증명한다.
차승원의 요리 솜씨'가 가지고 있는 리얼은 가상 남성 짝패 부부'라는 연극적 버라이어티'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우고도 남는다. 삼시 세 끼'는 차승원이 펼치는 " 일 인 요리 쑈 " 이다. 이 예능은 만화 << 식객 >> 처럼 미션이 주어지는 요리 경연 대회 형식을 띠면서 << 심야 식당 >> 에서 선보이는 음식으로써의 치유 기능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 유해진은 그동안 갈고 닦은 명품 조연으로써 자신에 해야 할 몫을 톡톡히 한다. 그는 예능 달인'이 보여주는 특유의 뽕끼가 없다. 비록 차승원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는 역할이지만 그 내공이 묘하게 감칠맛이 난다. << 삼시 세 끼 >> 가 그 흔한 리얼버라이어티의 과잉'에 빠지지 않는 데에는 유해진이라는 타고난 배우'가 큰 몫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차승원이 셜록 홈즈'라면, 유해진은 왓슨이다. 시청자가 기막한 짝패의 소꿉놀이에 동화되는 이유'다 ■
- 16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유행한 풍자적인 노래를 뜻했으나 차차 무대예술적인 요소와 결부되어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발생지 발 드 비르(Val de Vire)가 전화(轉化)한 것이라고도 하고 본래의 풍자성을 뜻하는 부아 드 빌(voix de ville:거리의 소리)이 변한 말이라고도 한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