乞 :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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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에서 좀비는 무서운 존재이기는 하나 인간의 힘으로 퇴치가 가능한 존재이다. 좀비가 떼거지로 몰려다니지 않는다면 혼자 어슬렁거리는 좀비 한 놈쯤은 삽 하나 가지고도 때려잡을 수 있다. 좀비는 너무 많이 먹어서, 혹은 너무 굶주려서 행동이 굼뜨고 멍청하다. 괴물치고는 가장 만만한 괴물이다. 좀비의 행동 패턴을 정신분석학으로 풀어내자면 구순기 고착 장애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고, 뜯고, 빠는 구순 쾌락 욕망이 강한 존재가 바로 좀비'다. 이들에게 입은 곧 생식기'다. 그렇기에 식욕은 성욕으로 전이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 죠스 >> 는 구순기 고착 괴물'에 대한 두려움을 시각화한 영화'다. 죠스의 " 아가리 " 는 식탐을 상징하는 입 口 구멍이면서 동시에 무시무시한 이빨 달린 밑구멍'이기도 하다.
무식한 표현을 유식하게 돌려서 말하자면 죠스 아가리'는 " 바기나 덴타타 ( 이빨 달린 질 ) "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 구순기 괴물들 : http://myperu.blog.me/220167057805 ) 를 참고하기 바란다. 작년에 전남 나주에서 발생한 어린이 성폭행범 고종석은 전형적인 구순기 고착 성격 장애 환자'에 속한다. 신체는 어른이지만 정신은 구순기에 고착된 상태인 것이다. 그가 아이에게 남긴 이빨자국이 그 증거'이다. 그에게 입은 " 음식물을 섭취하는 입구 input " 이면서 동시에 " 욕망을 배출하는 구멍 output " 이다, 쾌락 기관이다. 좀비와 구순기 고착 장애 환자'라는 표현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면 " 걸신 " 이란 말로 대체해도 된다. 좀비를 동양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 걸신 " 이다. < 걸신들린 사람 > 처럼 먹는다, 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걸은 한자로 乞이다. 뜻은 " 빌어먹을 걸 " 이다. 걸신 乞神은 곧 빌어먹는 귀신'이라는 말. 귀신 중에서 가장 꾀죄죄한 귀신'이요, 멍청한 귀신이라 할 수 있다. 걸신과 좀비가 모두 식욕만 남아 있는 죽은 자'라는 의미에서 걸신과 좀비는 이음동의어'이다. 입으로는 좀비'라고 말하고 손으로는 걸신'이라고 쓴다. 내가 이 단어에서 주목한 부분은 바로 乞이라는 한자 구조'다. 乞의 부수는 乙이다. 그러니까 을은 수천 년 동안 허기에 굶주려서 빌어먹는 좀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수천 년 후를 꿰뚫는 옛날 선조의 선견지명'이다. 뉴스를 보니 대한민국이 내년에는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할 예정이라고 한다. ( 국민 총생산 GDP와 국민 총소득 GNI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지식인'으로 ! ) 왕년에 " 제국 " 이란 타이틀을 획득한 적이 없는 국가로는 처음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에 도달하게 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아, 이 영광스러운 굴비의 맛 ! 이 동력을 발판으로 근 미래에는 곧 일본을 앞지를 전망이란 장미빛 청사진도 나온다. 1인당 소득이 삼천 만원'이라고 한다면, 한국인 가정 평균인 4인 가구 기준으로 보자면 일억 이천 만원이라는 환상적인 소득이 발생한다는 말인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듯싶다. 내 주변머리없는 이웃은 모두 거지에 가까운 것일까. 두 자녀를 둔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총소득이 5천만 원을 못 넘기는 가정도 많다. 설레발이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 노동자 가운데 둘 중 한 명은 월급이 2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100만 원대 소득이 고작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치즈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돈을 버는 계급은 서민이 아니라 재벌'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상위 1%가 부를 독식하는 하는 것.
이 아메바적 재산 증식은 결국 노동자 몫으로 돌아가야 할 몫을 상위 1%가 갈취했기에 가능했다. 하는 일은 동일한데 오로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월급은 반토막이 났고, 이제 대학 교육은 마치 국가 의무 교육이 되어서 사학 재단에 매년 국민 1인당 천만 원을 조공한다. 천만 원 등록금을 조공한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잘 풀리면 롯데리아에서 닭을 튀긴다. 이제 청춘은 창창한 앞날의 < 빛 > 대신 울울한 앞날의 < 빚 > 을 걱정한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빚만 남은 꼴이다. 이러다 보니 < 네 일 > 에는 관심이 없고 < 내 일' > 에만 관심이 가지기 시작한다. 그 결과 20대 청춘은 점점 보수로 흐른다. 하지만 그 누가 탓하랴 ? 탁 트인 앞을 보지 못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게 만든 것은 바로 기성 세대'였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 때문에 망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대립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이미 80% 이상이 보수화된 나라이다. 보수끼리 싸운 것을 두고 보수와 진보가 싸웠다고 우기면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은 양 진영 간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 의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거대한 싱크홀'이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굶어죽는 이는 없으나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기에 헛배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 갑질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는 것은 곧 한국 사회가 신분 사회'로 신속하게 전환되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후'이지 않을까 ? 감성팔이 박정희 향수 영화 << 국제시장 >> 에서 아버지 세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동 ( 피와 땀 ) 을 팔아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제 아들 세대'는 노동을 팔아도 부를 축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노동자의 절반은 똑같이 피와 땀을 흘려도 200만 원도 못받는 월급을 손에 쥐게 된다. 대학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등록 등본에 기재된 가족 구성원이다. 조상이 개고생한 걸 모르면 호로 자식이고,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이 갑이제 ~ 내가 보기엔 좀비, 드라큘라, 고스트버스터, 디워, 죠스, 옥토퍼스 따위는 모두 걸신의 현현'이다. 갑이 굶어 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니 결국 식탐에 빠진 괴물은 모두 태생이 乙이라고 보아야 한다. 굶어 죽는 이가 많을수록 이들 괴물은 문명 사회에 출현하여 " 갑질 " 에 대한 복수를 감행할 것이다. 그러니까 좀비나 죠스 따위가 당신 목이나 허버지를 물어뜯는 행위는 " 갑질 " 에 대한 반항, 즉 " 을질 " 이다. 괴물이 두렵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 갑질 " 을 멈추는 것이다. 타인의 허기'를 구질구질하다고 조롱하지 말고 깊이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괴물의 습격을 늦출 수 있다. 결론을 히마리 없이 매조지하는 것을 용서하시라.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 죠스는 국내 상영 시 << 아가리 >> 란 투박한 제목으로 극장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