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와 밥값

 

 

 

 

웬만한 회사는 활동비 명목으로 법인카드'가 지급된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유독 " 업무 외 기타 잡비 " 에 관대했다. 말이 좋아 품위 유지비'이고 대외 활동비'이지 툭 까놓고 말해서 " 술값 " 이었다. 물론 법인 카드 사용 한도액은 정해져 있었다. 직급과 카드 사용 한도액은 비례했다.  문화 사업으로 분류되는 회사였으나 사풍 : 社風 은 기수 문화가 존재하는 해병대'였다. 내가 " 두더지 새끼 " 라고 부르던 부장대우 과장이 하는 일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낮에는 과장 직급이었으나 밤에는 상무였다, 술상무'였다. 직원 회식은 한달에 두서너 번 정도였다. 1차는 삼겹살집이고, 2차는 맥주홀이었고, 3차는 자기가 좋아하는 측근만 모아놓고 룸쌀롱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는 신나는 트로트'였다. 싸랑에 빠떼리가 다 된나 봐요 ~ 땅신을 향한 나으 싸랑은 뜩급 싸랑이야 ~ 아가씨는 몸을 팔았지만 나는 영혼을 팔았다. 아가씨는 엉덩이를 흔들었고 나는 탬버린을 신나게 흔들었다.  4차는 다들 아시리라. " 홍콩 " 갔다 !   사실 직원 회식'은 정식 업무에 해당되었으니 이 정도에서 끝났지 그가 주로 밤에 하는 ( 거래처 사람들 만나서 ) 물밑 교섭'은 꽤나 하드코어'했다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아랫물이 흐리니 윗물이 맑을 리 없었다. 한번은 술상무가 아니라 진짜 상무가 격려 차 내려왔다. 술상무가 아닌 상무는 밤에만 상무인 척하는 술상무와 쫄개들을 이끌고 거나하게 술상을 차렸다. 마셔라, 흥한다 ! 그가 마지막으로 데려간 곳은 집창촌이었다. 

 

열외는 없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되어서 홍등 아래에서 명을 거역하고 도망치는 자는 목을 벤다고 소리쳤다.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게 의리'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흐린 것이다. 두더지 새끼는 영업을 뛴다는 이유로 법인 카드로 긁은 금액이 무려    1년에 사용한 금액 총액인지 아니면 2년 동안 사용한 총액인지는 헷갈리지만     1억이 조금 안되는 돈을 썼다. 주로 룸쌀롱 비용이었다. 접대비에 관대한 회사'였다고는 하나 이 정도면 과했다고 판단한 회사는 그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 김 과장, 오입질은 적당해 하쇼 ! "  하지만 카드 사용 금액이 제한되었다고는 하나 3차로 룸쌀롱만 안 가면 배가 터지도록 흥청망청 쓸 수 있는 넉넉한 금액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는 직원 회식 때마다 내가 1차, 2차, 3차를 샀으니 4차는 너희들이 돌아가면서 술값을 계산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3차까지 밥값, 술값 긁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자기 돈으로 밥을 산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법인카드 덕에 항상 통 큰 사나이'라는 사실을 자랑했다. 이 꼼수를 모르는 자 누가 있으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4차는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해결해야 했다. 문제는 4차 장소가 대폿집이 아니라 룸쌀롱이었다는 데 있다. 룸쌀롱 비용은 한달 월급보다 비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두더지는 늘 같은 수법으로 " 밥값은 내가 냈으니 커피는 네가 사 " 전략으로 나왔다.

 

그때 한 직원이 술김에 한마디했다 " 과장님 ! 밥값은 법인카드로 긁으셨으면서 찻값은 직원 호주머니 속 쌈지돈으로 충당하는 건 이상한 논리 아닙니까. 과장님 돈으로 우리에게 눈깔사탕 하나 사신 적 있습니까 ?  " 다음 장면은 다들 짐작하시리라. 주먹이 오고가고 술병이 깨지는 꾀죄죄한 싸움이 일어났다. 잠자코 상황을 주시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 그만하지 못해 !!! " 그리고는 참고, 참고, 참았던 주먹을 날렸다. 오, 놀라지 마시라. 내 주먹은 두더지를 향한 게 아니라 사원 얼굴을 향했다. " 이 자식이 어디서 하늘 같은 과장님 얼굴에 스크래치'냐. " 두더지, 보기에 좋았어라. 나는 그날 이후로 두더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애제자가 되었다. 헤헤, 저는 과장님의 귀염둥이 막둥이입니다요. 에헤, 우헤,  으하하, 에헤 

 

ㅡ 했다는  싸움 이야기는 농담이고 !    하여튼 법인카드로 밥값과 술값을 내면서 온갖 생색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늙지는 말자는 다짐을 했다. 두더지는 치사한 꼰대의 전형이었다.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용한 1년 밥값이 2억6천 만원이란다. 1인 한 끼 식사 비용이 26만 원인 점심을 먹었다고. 초중고 무상 급식이 시행되면 나라 살림이 거덜난다고 뒷방 늙은이 앓는 소리를 하던 그가 정작 법인 카드로 긁은 밥값이다. 무상 급식을 원하는 사람을 거지 근성이라고 놀리던 입치고는 꽤나 적나라한 카드 사용 내역'이다. 이럴 때마다 비교 평가되는 곳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세부 항목을 기재하지 않아서 김한길이 밥값으로 얼마를 긁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염치없기로는 새누리나 민주당이나 똑같지만 싸가지가 더 없는 쪽은 민주당이다.

 

나랏돈으로 밥값 내는 주제라면 최소한 사용 내역은 밝혀라. 씹새끼들아. 박신양 성대모사로 말하련다. " 동태 찌개 먹었으면 동태 찌개 먹었다. 갈치조림 좋아하면 갈치조림 좋아한다. 왜 말을 못해 !  " 그나저나 두더지'는 룸살롱 가서 술 마시면서 뻘짓 하느라 법인카드로 1억을 썼다지만 황우여와 김한길은 밥만 먹었는데 억 소리가 나니 고상하기는 하다. 두더지는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법인 카드로 생활비까지 챙기는 바람에 월급은 한 푼 쓰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했다고 했다. 알뜰한 두더지 아저씨. 회사는 망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수합병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홍등가에서 이순신과 이승만을 연기하던 술상무가 아닌 진짜 상무는 상호만 말하면 모든 이가 " 아 ! " 하게 되는 커피 체인점 사장이 되었고,

 

상무도 아니면서 상무 행세를 했던 술상무도 멀티플렉스 전략 기획팀에서 임원으로 있다. 인수합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룸살롱 접대비로 200만 원이 넘는 돈을 계산할 때 손을 벌벌 떨었던 말단 직원들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에 컵라면을 먹고는 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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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9-1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에서 거품과 욕이 동시에 나오지요. 어제 언니랑 언니친구 만나서 수다 떨다가 서울시 무상급식 얘기가 나왔는데, 새똥 하는 짓이랑 민주(라는 이름이 부끄럽게) 하는 짓이 같거나, 민주가 더해서 그놈이 그놈이고. 친환경급식의 실상을 듣게 되었지요. 그 뒷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간다는 뻔하지만 우리는 "설마" 하는 얘기들.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4 12:31   좋아요 0 | URL
개새들... 오죽 했으면 박근혜 같은 어르신이 인기가 하늘을 찌를까요...
이게 무조건 새누리가 언론을 장악했다고 막 우기지말고 진짜 민주당 좀 깨달아야 해요..
정신 좀 차려야 합니다.

마태우스 2014-09-1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건을 너무도 잘 정리해주셔서 읽기만 해도 분노가 치미네요. 정말 한방 날렸으면 좋았을뻔했는데, 그게 쉽진 않죠 ㅠㅠ 황우여 법인카드 사용액도 대단하네요. 2억6천이면 매일 70만원 가량 쓴 건데, 그렇게 잘먹으니 나이 들어도 건강한가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4 19:50   좋아요 0 | URL
옛날 오바마에서 만찬 할 때 인가...
그런 때 보니 만찬은 아니고 하여튼.. 뭐 그런 거인데
각국 참가국 회원에게 각자 포도주 마신 거 더티페이로 내더라고요..
고거 보고 깜짝 놀란 적 있습니다. 아니 왜 정치인 밥값을 나랏돈으로 내야 하나요 ?
그게 외교 업무도 아니고 말입니다.

수다맨 2014-09-1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사람들 평균 수명이 워낙에 낮아서 그당시에는 오십만 넘게 살아도 고령자 축에 속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예외라고할 만한 부류들은 바로 (고위) 정치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놈들은 참, 역적으로 몰려 죽거나 불치병에 걸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 오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 어느 계급보다도, 이놈들만큼 진수성찬 먹으며 신수가 편한 족속들도 없을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4 19:49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아마 40도 못되었지 싶습니다.
단명했다는 임금 보면 사실 그 시대 평균 수명이잖아요.
오히려 정조 이런 양반이 정말 어마어마한 장수를 한 거죠...
평민들이야 못 먹고 영양실조에 전염병 창궐하고 그러면 그냥 평균 수명 10살씩 막 깎아먹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여튼 기득권은 내내 잘살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