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집에 왔다.
이번 주부터 조카가 집에 머문다. 2주 정도( 15일 ) 머물면서 강남에 있는 학원에서 쪽집게 집중 학습 과외'를 받는다고 한다. 집이 멀다 보니 외할머니집에서 학원 등하교를 하기로 했다고. 평소 큰누님의 교육열은 극성맞은 데가 있었다. 아이는 원어민 유치원과 해마다 어학연수를 다녔다. 명절에도 아이들은 참고서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 이번 선거에서 큰누님은 교육감은 진보 후보를 찍고 지방 선거는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다.) 그런 부모로부터 잠시 떨어져 있으니 놀기 좋은 찬스가 아닌가 ! 나는 조카와 놀러 갈 계획을 꾸몄다. 학원 안 가고 " 농땡이 " 치는 것은 낭만에 속하니깐 말이다. 조카는 대한민국에서 상위 1%만 갈 수 있는 특목고에 진학했는데 그곳에서도 장학금을 받는다고 하니, 꾀죄죄한 곰곰발 가문으로써는 이 녀석에게 기대는 게 많다.
말이 좋아 사립 학교이지 아이들을 강제로 몰아넣은 후 교육을 시키는 살벌한 규율 학교'다. 전체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아침 6시에 기상해서 기숙사로 돌아오는 시간은 새벽 2시가 일상이라고 했다. 놀라지 마시라, 식대, 기숙사비, 교육비 포함 1년 고지서를 통해 지급되는 비용만 2천만 원이었다.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학교'다. 공부만 해서 그런지 애가 비실비실하고 잔정이 없는 편이라서 속된 말로 " 우아미 " 가 좀 떨어지는 녀석이다. 전철을 타 본 적이 없어서 혼자서 외할머니 집을 찾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다. 부모가 차로 학교다, 학원이다 바래다주니 버스나 전철을 탈 일이 없다. 나는 평소 이 녀석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지라 2주 정도 함께 있으면서 거칠게 키울 생각이었다.
" 땡땡이 " 의 오묘한 멋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할까 ? 후후. 그런데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조카 입에서 튀어나온 학원비 때문이었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루 3시간 총 2주 과외 비용이 170만 원'이란다. 17만 원도 아니고 170만 원이란다. 사교육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나친 학원비는 심각한 문제다. 학원 강사'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라 해도 2주 교육에 수학 실력이 일취월장할 턱이 없다. 2주 교육에 수학 실력이 쑥처럼 쑥쑥 큰다는 건 착각이다. 그 사실은 조카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 삼촌, 그거 비싸기만 하지, 수업은 학교 수업이나 다 똑같아. 내 수학 실력이 그 사람 때문이 늘 것 같지는 않아. " 결론은 " 불안 " 때문이다. 학부모 커넥션에서 쏟아내는 것은 학원 정보'다. 어디 어디가 잘한다고 하더라 ! 라는 소리에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를 강남 학원에 보내야 한다.
그래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조카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 " 친구들이 들으니깐 나도 그냥 듣는 거지, 뭐....... " 170만 원짜리 초단타 과외'가 그냥 듣는 수준이란다. 할 말이 없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정말 옛말이 된 것이다. 요즘은 개천에서 큰이끼벌레만 득실거린다. 상당수 교육마피아들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사교육법 개정에 목숨 걸고 투쟁을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이제 교육 상품은 돈을 버는 상품이 된 지 오래이다. 이번 주말에 조카를 데리고 잠실 야구장에 가려는 계획은 취소한다. 지금까지 내 말을 들으면 조카가 부잣집 도련님 같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매형은 고만고만한 중소기업에 다니고, 큰누님은 아이 학원비를 위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이 되었다.
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외를 하는 거다. 나는 아이에게 시계 이야기를 했다. " 삼츈이 말이야. 시계 하나 장만하려 했지. 스와치 시계 말이다. 근사한 시계 하나 있더라. 삼사십 정도 아니 큰 부담도 아니더라고. 사려고 하다가 가격 비교를 하고 사려고 인터넷을 뒤지는데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시계가 있더라고. 근데 그 시계 가격이 백만 원이네. 이내 단념하고 처음 보았던 시계를 찾는데....... " 로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은 이는 클릭을 ! 내가 그 이야기를 왜 조카에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갑자기 꼰대가 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누굴 지적질하고 그럴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처음 고른 시계 ▼
스무살 때 근사한 스와치 시계'를 가져본 기억이 나서 스와치 시계'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을 했다. 예상은 10만 원 정도'였으나 비쌀수록 시계'가 근사한 거라. 그래, 나도 이제 돈을 버니 30만 원짜리 시계 정도는 찰 자격이 있지. 내가 고른 시계는 정말 멋있었다. 저 시계를 차고 다니면 이 세상 모든 소녀들이 날 쳐다보겠구나. 남성 패션의 완성은 시계'라고 하지 않던가 ! 마지막 정보 입력을 하고 결재'를 하려는 순간 망설여졌다. 같은 값이라면 더 좋은 시계'를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가격 대비 비교 평가를 한 결과 모 제품이 더 근사했다. 그래서 그 시계 카달로그를 죽 훑다가 그만 마음에 쏙 드는 시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설상가상 가격은 더 저렴한 것이 아닌가 ! 120.000원'이었다. 야호, 이런 게 알뜰 구매'구나 !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0'이 하나 더 붙어서 백이십만 원'이나 되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스와치 시계'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못 볼 정도로 후진 시계가 되어 있었다. 백만 원이 넘는 시계를 보다가 플라스틱 스와치 시계를 보니 마치 인형뽑기 기계 속 상품처럼 보였다.
다시 백만 원대 시계'를 구경하다가 점점 명품 시계 쪽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모 제품의 ** 시리즈 시리얼 넘버 A326 제품'은 예술이었다. 가격대가 700만 원'을 호가했다. 악어 가죽으로 된 시계줄'은 감동이었다. 박음질 또한 예술이었다. 숫자 12 아래 다이아몬드 하나가 박힌 제품이었다. 아, 정말 아름답구나 ! 그것은 내 인생의 티.오.피'였다. 며칠 전에 보고는 내 영혼을 빼앗겨버린 백만 원'짜리 시계를 다시 보니 자판기 커피'도 안 되었다. 쪽팔려서 차고 다닐 수나 있겠나. 허허허.
그런데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7000만 원대 명품 시계를 보았다. 100% 테엽 시계였다. 숫자 대신 다이아몬드가 12개 박혀서 반짝거렸다. 시곗줄'은 금속 재질이었는데 그 품위가 남달랐다. 정말 아름다웠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명품에 빠지는 거구나. 한 달 전에 본 시계가 생각났다. 700만 원짜리 시계'를 보고 더 이상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시계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내 판단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시계를 다시 보니, 아.... 이건 어디서 꼴뚜기처럼 생긴 시계'로 둔갑을 한 것이 아닌가 ? 닝기미,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무슨 악어 가죽 시곗줄이냐. 내가 방금 본 이 시계야말로 명품 시계의 종결자다 ! 이보다 더 좋은 시계'는 없다. 끗.
그런데 이러한 선언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30억 짜리 파텍 시계를 본 것이다. 시곗줄이 모두 다이아몬드로 박혀 있는 명품 시계였다. 시계 장인'이 일 년에 걸쳐 만든다고 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눈부셔서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일주일 전에 본 7000만 원짜리 시계가 정준하'라면, 이 시계는 원빈'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 장바구니에 담겨져 있던 최초의 스와치 시계'를 클릭해 보았다. 30억짜리 시계를 보다가 30만 원짜리 시계'를 보니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시계 구매'를 포기하게 되었다.
내가 이 경험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욕심은 끝이 없다는 점이다. 비교 평가'는 곧 다음과 같은 망상을 심어준다. ①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고 ② 싼 게 비지떡이며 ③ 비싼 게 좋은 거라는 착각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욕망을 자꾸 업데이트 시키도록 만든다. 30만 원짜리 고급 스와치 시계'를 사려고 할 때 자본-국가'는 나에게 메일'을 하나 보낸다. " 고객님, 이왕 같은 가격 대비 만족할 수 있는 명품 시계 카탈로그'를 보내드립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 그런데 막상 같은 가격 대비 시계는 달랑 하나이고 나머지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고가의 시계들로 진열을 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 욕망 시스템'이다. 여기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
사실 가장 좋은 제품'은 처음 구매하려고 했던 그 소박한 제품'이다. 자기 수준에 맞는 소비'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첫사랑'도 알고 보면 처음 본 그 스와치 시계'다. 낡은 아버지의 어깨도 저렴한 시계이고 내가 사랑했던 그 여자'도 30만 원대 적당히 소박한 시계였다. 우리는 이 저렴한 시계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 어느 것과도 내 시계를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았으니깐 말이다. 그리고 비교할 수도 없었으니깐 말이다. 아버지의 싸구려 어깨'가 부끄럽다고 다른 아버지의 견장'을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사랑이라는 것은 더 이상 다른 제품의 카달로그를 훔쳐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옳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 그 말은 곧 다른 제품의 시계 카달로그'를 훔쳐보지 말라는 말이다.
- 네이버 블로그, 2012/10/2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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