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근'은 바보'다. 띨띠리, 띨빵, 반편이, 쪼다-쉬, 빠가야로, 기봉이, 영구, 헐렁이, 개구리, 깍두기'다. 하지만 그'는 사실 알차다. 신대리 농민들이 모두 빚더미'에 시름시름 앓을 때에도 우리 만근'은 근면과 성실로 가계 빚 하나 없이 잘산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마을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일을 한다. 그는 < 마을길 풀깎기, 도랑 청소, 공동우물 청소...... 용왕제에 쓸 돼지를 산 채로 묶어서 내다가 싫다고 요동질하는 돼지에게 때때옷을 입히는 > 일도 한다. 궂은 일은 모두 도맡아서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황만근이 사라졌다. 만근이가 사라지가 그의 부재는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큰 구멍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만근이가 했던 궂은 일을 하며 그를 그리워한다. " 만그이 자슥이 있었으마 내가 돈을 백만 원 준다 캐도 이런 일은 안 할 낀데, 아이구. 이 망할놈의 똥냄새, 여리가 싸놔 그런지 독하기도 하네. 이기 곡속한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도 모르겠구마. "
- 만그이, 어데 갔노 中
천재와 바보
어머니'는 늘 우스갯소리로 한동네에 살던 또래 만식이' 얘기를 하신다. 이 이야기'는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 이야기'다.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던 시절이라 끼니 굶는 경우가 허다하다 했으니, 고기 구경'은 동네 잔치'가 아니고서는 구경하기 힘든 풍경이었다고 한다. 돼지 한 마리 잡아다가 가마솥에 우거지에 넣고 된장 풀어 한솥 끓인 괴깃국 맛이란 ! 동네 잔치'가 벌어지면 동네 일꾼 만식이'는 분주하다. 장작을 패고, 물을 나르고, 잔심부름'을 하고. 가마솥에서 보글보글 연기가 피어오르면 만식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다고. ( 이거 tv 특종 세상에 이런 일'이 멘트처럼 들리는군. ) 침이 고인다고. 아 ! 침이, 고인다, 고......
이즈음 동네 사람들이 만식이를 놀린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이 만식이가 짝사랑하는 월례'를 들먹이며 ( 달밤 아래 냇가에서 훔쳐보았던 월례 젖가슴은 얼마나 뽀얗던가! ) 한 마디 한다. " 우리 월례는 괴깃국 좋아하는 남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 우리 만식이도 괴깃국 별로 안 좋아허지. 아마. 늘 먹는 게 괴깃국이라며 ?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괴깃국이 꿀맛이지만서도. 만식이는 부자여. 누군지 몰라도 만식이에게 장가 가면 팔짜 핀 거여, 안 그려 그려 ? " 신호가 떨어지면 동네 사람 모두 다 이구동성으로 " 만식이이이이. 부자아아아아아아 ! " 큐 사인이 떨어지면 월례는 부끄러운 척을 한다. 그러면 만식이는 흘끔흘끔 월례를 보다가, 흘끔흘끔 점례를 보다가 한 그릇 퍼 담아주는 고깃국'을 일일이 사양하며 큰소리로 외친다고 한다.
배부르다고. 배고프지 않다고. 뱃속 거지가 훅 들어왔다가 훅 나갔다고. 괴기 별로 안 좋아한다고. 늘 먹는 게 괴깃국이라고 ! 아. 뱃속에서는 박연폭포 같은 번개가 으르렁으르렁거리며 소리를 내는데, 괴기 생각만 하면 입에 침이 괴는 데에에에에에에..... 동네 사람들은 웃음을 참으며 만식이에게 말한다. " 그려. 글지, 암... 글구 말구. 떡집 아들이 떡 헐레벌떡 먹는 거 봤는감 ? 우린 여기서 쬐께 괴기 좀 뜯다 갈 테니께, 자넨 볼 일 다 봤으니 집에 가 있어. 이젠 뭐 할 일도 없잖혀 ! " 아, 일만 하다 쫒겨나는 만식이. 어슬렁어슬렁거리다가 뒷마당 가서 운다. 어머니는 이 즈음에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늘 듣는 얘기'지만 나도 여기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만식이를 놀리는 데 앞장섰던 월례 아버지는 박장대소를 하며 만식이 없는 마당에서 만식이 칭찬을 한다.
" 우리 만식이가 바보여두 동네 일은 을마나 잘하는겨. 변소깐 똥 풀 때 봐봐. 똥물 튀어도 씨익, 한 번 웃어주고 계속 똥 푸잖어 ? 여보게들, 만식이 거시기 보았는가 ? 워메. 글씨 목간에서 만식일 만났는디 글씨 만식이 거시기 그것이 미꾸린 줄 알았는디 장어여, 장어 ! 을메나 길고 튼튼한지.... 첨엔 다리가 세 개 달린 줄 알았단 말이여. 어 ?! 얼라 ! 이 사람들 보게. 농담 아니여. 만식이 지금 뒷마당에서 울고 있제 ? ㅋㅋㅋㅋ 월례야, 가서 한 그릇 넉넉하게 담아 주고 와라. 늙은 노모, 병수발 든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냐. 만식이 효자여, 효자 ! 그런 놈 읎다. " 누가 그 소리를 듣다 외친다. " 그럼 월례 만식이한테 시집 보낼껴 ? " 월례 아버지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 떽 ! " 일동 까르르르르르르르. 참... 깔끔한 토론이다.
어머니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하고는 했다. " 얘. 얘. 한참 있다 보면 만식이가 안 보인단다. 어디 담' 아래에서 울고 있는 게지. 배가 고파서 말이다. 얼마나 먹고 싶었겠누. 그러면 월례 고것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만식이에게 다가가 괴깃국 한 그릇 수북히 담아 갔다 주고는 했지. 어찌나 잘 먹던지. 만식이 가는 손'에는 누워 있는 엄마 몫도 챙겨서 보내고는 했단다. 지금 만식이 뭐 하나 모르겠다. 옛날에는 늘 동네바보 하나씩은 다 있었는데 말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굶지 않아서 그런가 바보'가 없어 "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마음 한 켠이 짠하다. 만식이 아저씨, 잘살고 계실까 ?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만식이 아저씨가 보고 싶다.
나는 동네 바보가 이건희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건희가 동네 바보'보다 더 똑똑하다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동네 바보가 이건희보다는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며, 굳이 비유를 들자면 보다 더 자연 친화적 무공해 채소'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 루스벨트였나? 정확히 모르겠다. ) "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 " 루스벨트가 답했다. " 거리에 장애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상적인 사회입니다. " 묻고 싶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 떠돌던 그 많은 동네 바보는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페스트처럼 가난했던 시절에 잠시 창궐했다가 사라진 선캄브리아 시대의 공룡이었을까? 편리하고 깨끗한 21세기 대한민국 환경이 동네 바보를 천연기념물로 만들어 놓았을까?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다양한 답을 마련했으나 결론은 하나다.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겨 놓은 것이다. 좋은 동네는 그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서울이, 내가 사는 동네에 바보가 어슬렁거리지 않는다면 이유는 하나'다. 동네사 살기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큐 60의 삼식이 형, 오줌싸개 동팔이, 있으면서 맨날 없다고 외치는 영구, 피규어'이면서 살아 있는 공룡인 척하는 공룡 쮸쮸, 발기하지 않는 곱추와 맵지 않은 곱추 형제, 선풍기'는 선풍기인데 선풍기는 아닌 선풍기 아줌마,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둘리 그리고 절뚝이, 외팔이, 맨드라미, 개망초, 앗, 사루비아 ! 모두 나와 당당히 거리를 걸어라, 라고 외치고 싶다.
장애인들과 동네 바보'가 거리를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이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과 가장 긴 대교'를 소유한 나라가 좋은 사회는 아니다. 꽃 피고 새 울면 그들이 다시 오려나 ? 기다리겠다.
- 네이버 블로그, 2009/10/23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