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과 캔 로치

 

 

 

 

영화 잡지 << 키노 >> 편집장'이었던 정성일은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 내용 > 보다는 < 형식과 스타일 > 이라고 생각하기에, 그가 쓴 평론은 내용 분석'보다는 쇼트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정성일 입장에서 보면 내용 중심 영화는 형식 중심 영화에 비해 글감을 뽑기 어렵다. 일반 관객은 홍상수, 봉준호, 데이빗 크로넨버그 그리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기)가 어렵지만 평론가에게는 오히려 이런 영화가 글 쓰기 쉽다. 평론가는 내용이 형식이나 스타일을 압도하는 영화에 대한 비평을 쓸 때가 더 난처하다. < 디워 > 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겨 ? 생각해 보니, < 디워 > 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링크를 걸어둔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49114 )

 

당신이 시네필'인가, 아닌가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라는 이름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냐에 달렸다. 아피타퐁, 아파퐁찻, 아치타퐁'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시네필 자격이 없다. 설령 아슬아슬하게 아피찻퐁 단계를 무사 통과했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다음 단계인 위세라타쿤, 위세라쿤타, 위라타세쿤, 위쿤라세타 덫이 기다리고 있다. 내게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라는 이름이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라는 풀네임을 가진 멘델스존 이름보다 외우기 어렵다. 차라리 " 경찰청 쇠창살 외철창살, 검찰청 쇠창살 쌍철창살 " 이라고 말하는 게 더 쉽다. 왤케, 어려운겨 !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화장실에서 옛날 잡지'를 읽다가 우연히 정성일이 캔 로치 감독에 대해 짧게 언급한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잡지 씨네21'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씨네21은 화장실에서 읽기 좋은 잡지'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정성일: 이건 개인적인 느낌인데 나는 켄 로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한 번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켄 로치는 그냥 정치를 다룬다. 나는 영화가 정치를 다룰 때 촌스러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 때는 행복하다. 정치적인 영화는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오즈가 <오차즈케의 맛>의 마지막 장면을 찍었을 때, 그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롱테이크로 찍었을 두 부부의 식사 장면을 샷을 나눠서 한 명씩 잡았음) 전후 일본사회에서는 오즈에게 있어 숏을 쪼개는 그 결단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전후 일본이 패전을 딛고 경제성장을 향해 나아갈 때 가족이 어떻게 쪼개지느냐, 개인화, 파편화 하느냐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다루진 않지만 샷을 쪼개는 것 그 자체가 오즈를 정치적으로 만든다.
 

정윤철: 영화가 정치를 다룰 때와 영화를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은 다르다는 말인가.

정성일: 나는 후자를 지지하고 싶고, 후자가 항상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영화를 진행하며 해서는 안되는 결정적인 일이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함부로 죽이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영화는 쓰레기야, 네가 창조한 인물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면 너는 파산한 거야, 그런다. 그것이 아무리 미학적인 것이더라도. 나는 미학적인 결정보다 상위에 있는 결정은 윤리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윤리라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은 도덕과는 다르다. 나는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 미학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학은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학에 매달릴수록 영화는 빈곤해지고 퇴폐적이 될뿐만 아니라 몰락한다. 미학의 절정에 도달한 순간 모든 예술은 타락을 경험했지 않았나.

 

글을 읽다가 " 개 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黃毛 못 된다 " 는 속담이 생각났다. 여기서 황모는 붓을 만드는 데 쓰이는 족제비 털을 말한다. 쉽게 말해 천성은 고치기 힘들다는 소리'다. 정성일은 < 영화가 정치를 다루는 것 > 과 < 영화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드는...)> 은 다르다고 말한다. 전자는 촌스럽고 후자는 세련된 장치'다. 그에게 캔 로치 영화는 " 촌스러운 것 " 이다. 정윤철이 묻는다. " 영화가 정치를 다룰 때와 영화를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은 다른다는 말인가요 ? " 그도 나와 같이 이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성일은 < 영화가 정치를 다루는 것 > 과 <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 > 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간다. 왜 ? 그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캔 로치는 정치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영화라는 장르를 자유발언대'처럼 활용했다. 그는 노동 계급 사람들에게도 발언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일은 " 미학은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학에 매달릴수록 영화는 빈곤해지고 퇴폐적이 될뿐만 아니라 몰락한다. 미학의 절정에 도달한 순간 모든 예술은 타락 " 한다고 말했지만 이 표현은 완벽한 모순이다. 미학은 형식에서 나온다. 정성일은 내용보다는 형식(미학)에 높은 점수를 줬으면서 지금 와서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한다. 자기가 말하고도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른다. 캔 로치는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나는 내용이 스타일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본다. 그리고 내용이야말로 영화에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반드시 핵심적인 경험 속에서 나온 핵심적인 생각을 중심으로 다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전혀 중요치 않다..... 내가 위험하다고 느낀 것은 스타일이 카메라 앞에 있는 대상보다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 있는 대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

 

캔 로치는 현대 영화가 형식과 스타일을 중시한 나머지 정작 카메라 앞에 있는 대상의 순수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움직이고 쇼트와 쇼트를 나눈다. 그 사이 " 대상 " 은 실종된다. 캔 로치야말로 미학은 별로 대단한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학에 매달릴수록 영화는 빈곤해지고 퇴폐적이 될뿐만 아니라 몰락한다(고 캔 로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캔 로치는 카메라를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영화가 촌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교를 최대한 배제했기 때문이다. 형식을 보지 말고 노동자 얼굴을 보라는 메시지'다. 정성일이 켄 로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할 말이 없고 글감을 뽑아내기가 힘들다. 이럴 땐 모른 척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그는 캔 로치가 정치 영화를 만든다고 비판한다. 사실 그는 정치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었는 데 말이다. 정성일 식 글빨과 말빨을 보면서 늘 느낀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만드는 건 쉽지만, 어려운 내용을 쉬운 문장으로 쓰는 건 어렵다. " 죄송합니다. 짧게 쓸 시간이 없어 길게 씁니다 ! " 파스칼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란다. 정성일에게 필요한 것은 간단 명료'다.

 

 

 

 

덧대기

 

1. 고다르는 영화를 정치적으로 다루는 감독이다. 그는 영화 소재로 " 정치 " 를 다루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무기처럼 활용한 감독이다. 캔 로치도 마찬가지'다. 그는 카메라를 칼처럼 사용한다. 캔 로치와 장 뤽 고다르는 동일하면서 동시에 차이'가 난다. 그는 고다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 생각에 1960년대에는 모두가 프랑스 누벨 바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그들로부터 영향받지 않고 어떤 다른 것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화의 문법에 그토록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진정한 영향이기보다는 유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 우리들은 아주 젊었고, 영화를 이용하는 방법에 있어 성숙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영향이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종류의 영향은 곧 서서히 사라져갔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관해서보다는 스타일에 대해 더 많이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스트들이 길게 보아 더욱 더 영향을 가질 것이라고 본다. 나는 비토리오 데 시카, 체코의 밀로스 포먼, 이리 멘첼 등을 더욱 좋아한다. 나는 결국 그들에게서 더욱 많은 영향을 받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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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퀸 2014-06-09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차즈케의 엔딩 샷에 대한 정성일의 설명엔 공감을 하면서도 (그리고 이렇게 영화들이 좀 더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영화가 정치를 다뤘을 때 촌스러워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마침 좀 전에 켄로치 글을 올린지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켄로치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구나 ! 누가 마음을 움직이나 !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9 19:37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전 케스'를 꼭 보고 싶었는데 캔로치 영화제를 한다는 거 자체를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당장 달려갔을 텐데 말이죠. < 케스 > 놓친 건 정말 아쉽습니다.

정성일 이 사람은 말을 좀 이상하게 하는 버릇이 있어요. 따로 따로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전체를 놓고 보면 무슨 소린지 모릅니다. 영화를 정치적으로 다룬다는 말은 고다르 영화를생각하면 되죠. 고다르는 정치를 소재로 다룬다기보다는 영화를 정치적으로 다루니깐 말이죠.

제가 보기엔 캔 로치 영화야말로 영화를 정치적으로 다루는 감독이지 로치 영화가 정치를 다룬 것은 아닙니다. 스톤의 제이에피케이 같은 영화가 정치를 다룬 거죠... ㅎㅎㅎ 하여튼 저는 정성일과는 코드가 안 마즘..

매직퀸 2014-06-10 00: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덧, 수정해서 추가하셨군요.
마침 내일 고다르 영화 보러 가는데 좀 더 생각할 부분이 생겼네요~ ㅎㅎ
저도 고다르 영화에 그리 감명 받지 않습니다. 많이 본 게 아니라 뭐라 하긴 그렇지만, 깊은 감명을 받지 않다보니 잘 안 찾아 보게 되는 거겠지요. 고다르 하니까 형식미와 내용을 갖춘 감독중에 브레송이 생각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0 00:51   좋아요 0 | URL
오,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내용 따로 형식 따로는 별로 없죠. 많은 감독들이 내용과 형식을 둘 다 고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만 있는 영화 혹은 형식만 갖춘 영화 이렇게 분류되지는 않잖아요.
내용에 맞는 형식을 고민하고 그에 맞는 스타일을 고르겠지요. 고다르는 내용보다는 형식을 실험한 감독이었죠. 장르라는 게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오르면 형식을 실험하게 됩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잖아요. 처음엔 실제와 똑같은 것을 따르다가 어느 순간 형식을 고민하게 됩니다. 인상파가 그런 경우겠죠. 미술에 모네가 있다면 영화판에는 모네와 비슷한 사람이 바로 고다르였죠. 형식 실험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죠. 인상파, 다다이즘 같은 게 주류였다고 해서 계속 그런 식으로만 흐르지는 않습니다. 극사실주의'가 등장하기도 하죠. 사진 같은데 보면 회화죠. 이런극사실주의는 과거로의 회귀적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로치는 네오리얼리즘으로 회귀하고자하는 욕망을 가진 감독입니다.

매직퀸 2014-06-10 01: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무엇보다 (나라는 다르다고 해도) 고다르와 누벨바그를 깔 수 있는 그쪽의 문화가 제일 부럽군요. 아마도 그쪽 문화의 강점은 바로 이런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유명 선후배끼리 도저히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 짓 (뒤에선 다하지만)

sirene 2014-06-09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완전 공감합니다.

p.s. 아래 세 번째 문단, 밑에서 세 번째 줄 '관련도니'(^^;;;)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9 19: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예리하시군요. 복 받으실 겁니다.... 갑자기 정형돈 생각나네요.. ㅎㅎ

K잉여 2014-06-0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의 얘기는 에이젠 에이슈타인의 영화로만 봐도 완벽한 모순이 되죠. 그는 충돌 몽타쥬이론을 창시해서 형식과 편집 기교를 강조했잖아요.그러면서도 영화를 공산당 선전에 이용한 그야말로 윤리도 없는 정치영화인데 말이죠. 정성일 말에 따르면 에이젠슈타인 영화는 미학적이지만 촌스러운 영화가 되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9 21:45   좋아요 0 | URL
취향의 문제인데 정성일은 에이젠슈타인보다는 고다르를 더 사랑한다는 고백 같습니다. 그가 뜬금없이 윤리와 도덕을 끌고 와서 이야기하니 갑자기 붕 뜬 느낌입니다. 형식미란 일종의 미학인데, 실컷 미학 좋아, 하다가 느닷없이 미학은 버려도 된다... 고 하질 않나... ㅎㅎㅎㅎ 중구난방이에요..

수다맨 2014-06-0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 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 못 된다 ㅎㅎㅎㅎㅎㅎ 아 이 대목 읽다가 뿜었어요.
켄 로치 영화를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는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문제는 정성일 말의 배면에 깔린, 곰곰발님 말씀처럼 내용과 대상이 어떻건 형식과 스타일만 잘 살리면 된다는, 오연한 심리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저런 심리가 영화계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문화계 전반에 만연해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0 00:53   좋아요 0 | URL
정성일은 고다르르 좋아하든 아니든 그건 그 사람 취향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
그 사람 글이나 논리를 보면 논리 모순에 종종 직면하게 된느 걸 보게 됩니다 요게 답답하다는 거죠.
그가 미학 따위는 윤리를 위해서라면 버려, 라고 말하는 건 정확하게 캔 로치가 영화 속에 담고자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성일을 로치 영화를 비판합니다. 논리 모순이죠. 그는 언제나 횡설수설해요.

매직퀸 2014-06-10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성일씨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검색해보다가 재미난 글을 발견했습니다. http://www.djuna.kr/xe/board/687749

페루애님이 쓴 글과 시선이 비슷하신 듯. 눈이 아파서 댓글은 안 읽었고, 본문 중간 링크 페이지가 짤려서 중간에는 대강 건너 뛰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0 03:24   좋아요 0 | URL









저도 중간 부분은 대충 넘겨 보았습니다만 글쓴이 생각과 제 생각이 비슷하네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겁니다. 부분을 놓고 보면 맞는 소리 같은데 전체를 놓고 보면 서로 뒤엉켜서 논리 모순이 발생합니다.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니란 점이죠. 그는 어렵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못 쓰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그가 쓴 문장입니다.



" 이 때 이데올로기는 이미 소유한 결론을 내세워서 새롭게 드러난 모순을 단지 낡은 문제틀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스크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종종 문제가 구조로 바뀌는 어떤 난처한 교환 관계에 놓인다. "



이렇게 쓸 필요가 있을까요 ? 문장을 이따위로 쓰면 ( 첫 말머리와 마침표 간격을 보십셔셔 !! ) 주어와 술어가 꼬이게 되고, 수식 관계가 엉망이 됩니다. 나눌 필요가 있죠. 저 문장을 가지고 편집자나 교정하시는 분에게 가져가 보십셔. 한 문장에 부사나 형용사를 빼는 게 좋죠. 보십시요. 한 문장에 < 이미 > < 단지 > < 종종 > 라는 부사가 남발합니다. 솎아내야죠. 초등학생도 아니고 무슨 놈의 부사 남발입니까.. < 결론을 ~ > < 모순을 ~ > < 마스크 효과를 > 에서 격조사를 남발하니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게 됩니다. 이걸 이해할 수 있습니까 ? 전 10번 이 문장 읽었는데 모르겠습니다.

새벽 2014-06-10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켄 로치 영화 중 [랜드 앤 프리덤]과 [빵과 장미]를 인상적으로 봤지요.

개그 콘서트의 로비스트 여사를 만나면 재밌겠다 싶은 평론가들이 몇몇 있어요. "뭔 또라이 같은 소리야?!!"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0 14:01   좋아요 0 | URL
랜드, 빵, 바람 흔들, 하층민, 요란 직 요런 작품들 좋죠...며칠 전에 로치 영화제가 열렸어요. 아쉽게 놓쳤네요.
어차피 취향의 문제이니 좋고 나쁘고에 대해 관심은 없지만, 문장은 좀 알기 쉽게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6-1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켄 로치의 <보리밭에 흔드는 바람>을 보면서 처음에 졸음이 나오는 카메라이지만, 그 졸음이 나오는 것 자체가 완벽한 등장인물에 대한 비극적인 역사를 하나의 사실성처럼 여겨지더군요. 촌스럽게 한 것은 그 자체를 강조하기 위한 연출이라 여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0 14:04   좋아요 0 | URL
간섭을 최소화하자는 게 로치입니다.
그리고 시간 순서대로 영화를 촬영한다고 합니다.
물론 배우들은 그날그날의 사건 전개만 통보 받습니다. 랜드에서 아... 여자 주인공이 죽는데
그 장면을 동료 배우들은 그날까지 몰랐다고 하네요.
그래서 영화 보면 연기가 리얼한데 그당혹스러움은 연기라기보다는 실제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깐 로치 영화 속 배우들은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과거를 체험하는 방식입니다.

드팀전 2014-06-1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고다르가 '정치영화'와 '정치적 영화' 구분 한 것은 쉽게 말하자면, '정치영화' 라는 것은 기존의 제도, 즉 우리가 말하는 현실의 정치와 그의 지형들을 말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제도와 법의 선한 집행이라는 방식에 의존하기 때문에 미학이 가진 정치성의 한계를 짓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공화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는 그런 것들로 어떻게든 봉합시킵니다. 고다르는 그런 '정치영화'는 진짜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구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고다르에게는 리얼리즘이나 재현성의 한계에 갖히지 않는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영화의 정치적 힘이었을 겁니다. 영화나 예술에서 필요했던 것도 그것이라고 믿었을 거구요.이러한 정신은 68혁명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있어보입니다. '정치영화'의 효용이나 가치를 정성일 선생은 영화미학적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영화'의 실효적 가치나 의의를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제가 뭐 알겠습니까..고수들 사이에서 구경이나 하며 그냥 뭐 그런거 아닐까 하는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0 15:22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 저도 대충 정성일이 < 정치 영화 > 와 < 정치적 영화 > 를 구분한 의도는 알고 있습니다. 뉘앙스를 보면 정성일은 로치 영화를 단순히 " 프로파간다 영화 " 쯤으로 인식하는 거 같습니다. 제가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로치 영화가 정치 영화'라고 단정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고다르가 말했죠. 영화란 두 시간 동안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 해서 관객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라고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 열쇠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정치 영화, 예를 들면 올리버스톤 감독의 < jfk > 는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관객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지는 않습니다. 올리버 스톤은 그냥 정치'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반면 로치 영화는 재미, 감동, 슬픔, 불의에 대한 분노'보다는 반성과 실천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정성일은 윤리를 위해서라면 미학은 버려도 좋다고 말하지만 로치야말로 공공 윤리'를 위해서 잡다한 미학을 버리고 순수하게 영화를 직시한 감독이었습니다. 정성일은 모순에 빠진 겁니다. 그가 말하는 정치적 영화가 윤리를 위해 미학은 버려도 좋다는 자세를 가진 순수 영화라면, 로치 영화야말로 정치적 영화입니다.

뭐, 그렇다는 겁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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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4-06-1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와 페이퍼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페이퍼만 되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2 19: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만애비 님도 페이퍼에 당선됭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삿갓이오 2014-06-1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켄 로치는 그냥 정치를 다룬다. 나는 영화가 정치를 다룰 때 촌스러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 때는 행복하다."

0. 형식은 미학이 아니다. 형식=미학이 아니라는 뜻이다. 형식=>미학이라는 뜻이다. 정성일은 언제나 '형식=>윤리'인 영화를 최우선으로 지지해왔다. 언제나 그랬다. 가령, 오즈의 영화가 가진 위대성은 형식=>윤리이다. 미학은 부수적인 것이다.

1. 정치가 영화의 대상이 되는 것과, 영화가 정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분명 다르다.

2. (켄 로치의 영화가) '정치를 대상화한다'는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정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상대적인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데, [정치]와 [정치의 대상]의 차이를 알리가 없기 때문이다.

3. 정치란 무엇인가? 그리고 도대체 정치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 일종의 윤리학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정치는 (조지 오웰의 표현을 빌리면) 삶을 (더 좋다고 판단되는)어떤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의 대상은, 정치적 행위가 추구하는 무엇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4. 켄 로치의 영화는 명백히 정치적이다. 다시 말하면,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정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정성일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정성일이 지지하는 영화와 켄 로치의 영화 사이에는, 대중 영화와 예술 영화 사이 만큼의 간극이 존재하니까. 정치를 다루는 영화는 관객을 각성시키지만, 정치의 대상이 되는 영화는 관객의 영혼을 움직인다. 우리를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것은 켄 로치 영화 외에도 다른 많은 것들이 있다. 반면,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나는 이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5. 나와 같은 생각을 '스스로' 해본 사람만이, 나의 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방점은 '스스로'에 있다. 모든 중요한 문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6 19:04   좋아요 0 | URL
0. 개똥같은 소리 마라. 예술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있다. 칸트가 한 말이다. 그리고 헤겔은 형식과 미학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생각했다. 헤겔 선생이 이런 소릴 하셨다. 형식을 규정하는 것은 내용이나 그 형식은 다음 내용을 규정한다. 또한 과도한 형식은 내용을 붕괴시킨다. 로치는 과도한 형식이 내용의 순수'를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성일은 형식주의자'다. 무론 형식주의자가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1. 정치가 영화의 대상이 되는 것과 영화가 정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르다. - 누가 같다고 했나 ?

2. 어째 댓글이 정성일 글보다 헷갈리나 ? 한번 자세하게 풀어서 써봐라. 정치를 대상화한 예를 들어보고, 정치의 대상이 되는 영화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될 것 5가지를 들어봐라. 그 상대적 명제'에 대해서도 말이다.

3. 이 글을 쓴 당신이 정성일이 아니길 바란다. 혹여 맞다면, 영화 졸라 재미없더라.
정치의 대상은 정치적 행위가 추구하는 무엇이다 본다 본질적이다 - 꼭 이렇게 비비꼬아서 써야 하냐 ? 한번 알기 쉽게 써봐라 . 글을 쓸데. 어떤, ~ 무엇이다. 요런 거 남발하지 마라. 두리뭉실하게 말이다.

5.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방점은 침묵이다. 모든 중유한 문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p.s 댓글이 무척 좋다. 앞으로 자주 올려달라... 당신의 의견 존중한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물론 빈말이다.



삿갓이오 2014-06-16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학의 본질이 형식에 있는 것과, 형식의 본질이 미학에 있는 것이 구분이 잘안되나? 지금 이 둘을 혼동하고 있다.
시작부터 동문서답을 하면, 상대는 대화할 마음이 사라진다. 상대가 바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고.
미안하지만 내 답변은 <카탈루냐 찬가>의 서문으로 대신하겠다. 궁금하면 찾아보시라.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정성일은 성균관대 재학시절에 이미 박사들 연구논문을 대필해주던 사람이다.
아쉽지만 본인과는 클라스가 다른 사람이란 소리.
형식주의 어쩌고 하는데 정성일이 오래 전에 형식주의를 비판했던 것도 알고있나?
그는 물론, 구조주의자같은 구석이 있지만, 그의 글쓰기는 포스트구조주의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알려주자면, '미학과 윤리학은 동일한 것'이다.
아, 내가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이 입장의 기원은 물론 플라톤이다.
철학서는 날독하거나 개설서만 읽지말고, 열심히 천천히 오랫동안 소화하시라. 철학함은 즐거움이니까.
본인은 인터넷 잘안한다. 굿바이 포레버.. 러뷰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4 13:59   좋아요 0 | URL
감사하다. 장난처럼 쓴 덧글인데 진지하게 받으주어서 고맙다.
카탈루니아찬가는 집에 있길래 찾아서 읽었다. 서문이 아니라 인용문이더라.
하여튼 멍청이'라는 소리 아닌가. 참고하겠다.
그리고 박사 논문 대필이나 했으니 정성일 또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보인다. 고발조치하겠다.
농담이다. 앞으로는 날독하지 말도 정독 가서 정독하겠다. 겨울엔 추운데 6월에는 정독도 꽤 풍경이 좋다.
감사하다.....

그리고 하나 더 !!!!

비트갠은 미학과 윤리학은 동일한다고 지지했는데 어쩌나 시바... 정성일은 다른 소릴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숭고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미학에 사로잡히는 것이 윤리적 타락의 징후로 보인다. 눈을 움직이는 건 미학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것 숭고함이다. "



카탈루냐 찬가 서문 너나 읽어라.. 인터넷 잘 안해도 이 덧글을 읽을 거란 걸 나는 안다. 밥은 먹고 다니냐 ? 밥 먹을 때는 고기만 먹지 말고 콩나물고 천천히 오랫동안 소화하시라. 너 똥 쌀 때 콩나물 그대로 나온다. 쾌변은 생의 즐거움이니까...



지나가던노숙인 2014-07-18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성일이 윤리적 타락의 징후라고 말할 때의 '미학'은,
윤리가 배제된 '감각적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미학적 태도를 가리키는거고,

비트겐슈타인이 미학과 윤리학이 동일하다고 말한건,
미학이 미학이 아니란 소리임.
쉽게 말해,
미학(감각적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이 진정한 미학(윤리적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이 아니란 소리임.
즉, 미학 + 윤리학 => 숭고미
다시 말해, 선한 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플라톤주의를 뜻함.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비트겐이 러셀을 찾아갔을 때, 러셀이 이렇게 말함.
니 고민이 논리적인 문제면 내가 도와줄수 있지만, 윤리적인 문제면 도와줄수 없다.
비트겐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마디하고 나감.
"윤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은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비트겐은 윤리적인 것과 아름다운 것이 동일하다고 말함.
다시 말해, 논리적인 것과 아름다운 것은 동일하다.
'구조주의' 짜잔

지나가던노숙인 2014-07-18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구, 예술영화의 역사 자체를 움직인 본질은 '윤리'가 맞음.
오즈 야스지로 뿐만 아니라 미조구치겐지, 구로사와아키라, 나루세미키오 등의 영화가 지향하는게 결국, 현실비판이고..
켄로치처럼 뉴웨이브 영화감독들도 결국 계급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으니 '윤리'에 근거하는 것이고..
문제는, 문학을 예로들면, 또스또예프스끼나 똘스또이같은 러시아문학자들처럼,
정치적이고 체제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이전에 인간 본연의 것까지 카메라가 포괄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거장의 반열을 가르는 요소일것임.... 이상 오늘도 밥굶고 지나가던노숙자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