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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ㅣ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외로워도 슬퍼도
하니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엄마 품이 그리운 사춘기 소녀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소녀는 달리기'로 슬픔을 잊는다. 나애리 나쁜 계집애'가 사사건건 괴롭히지만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리라. 하니와 처지가 비슷한 캔디도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우니. 이라이쟈 쌍년이 괴롭혀도 울지 않아. 울면 바보니까. 피식 ~ " 두 소녀, 울지 않는다. 뻐꾸기는 밤에 울고, 앵무새는 몸으로 울고, 알람 시계도 날마다 아침 6시면 우는데, 씩씩한 소녀라고 해서 울고 싶지 않으랴. 다만, 남들 보는 데서 울지 않을 뿐이다. 어금니 꽉 깨물고 눈물을 삼켰으리라. 그런데 캔디 아빠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는커녕 남들 보는 데에서만 눈물을 흘린다. 마치 사람이 볼 때에만 곡(哭)을 하는 귀신처럼. 그는 기자 앞에서 " 아들아, 사랑한다 ! " 울부짖고, 시민 앞에서 " 딸아, 미안하다 ! " 절규한다.
그 목소리, 아... 물 먹은 습자지 같다. 고승덕 이야기'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하지만 어른이 남들 다 보는 데서 일부러 눈물을 전시하는 것은 속보이는 태도'다. 박근혜가 울었다, 정몽준도 울었다, 고승덕도 울었다. 이 정도면 새누리라는 이름의 정당(party)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 " 눈물의 파티 " 라도 하는 모양이다. 이번 지방 선거 결과를 보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다 하셨는데 대한민국 할아버지는 운다고 떡 하나 더 준 모양이다. 응석을 받아주기 시작하면 버릇이 없어지는 데 말이다. 여당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들지만 야당이 잘못하면 칼을 드는 편애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 그네 " 가 흘린 것은 누수(淚水 : 눈물 루, 물 수)가 아니라 절묘한 한 수'였다.
세월호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독한 마음을 품은 " 앵그리맘 " 은 그네가 흘린 눈물 앞에서 " 엉크러진 마음 " 이 흩어졌다. 40대 앵그리맘'이여, 조까라 ! 그나마 진보 교육감 후보'가 선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씩씩한 캔디가 찌질한 아빠를 이겼다. 눈물은 힘이 세지만 눈물보다 힘에 센 것은 용기'라는 사실을 알린 사건이었다. 고승덕은 기자회견을 열어서 구질구질하게 가족사를 늘어놓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가 진실이라며 한여름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놓은 말은 구차한 변명처럼 보였다. 좋은 문장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말머리로 시작해서 마침표로 끝나는 간격이 길면 길수록 정성일 문체'가 된다. 사과는 맛있고, 맛있으면 바나나이고, 바나나는 길고, 길면 정성일 문체'다 ! 진실'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은 길고 참말은 " 참말로 " 짧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쓴 에세이 << 기사가 비숍을 잡다 ? /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에 수록 >> 에서 굴드는 " 처음 거짓말을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복잡하게 뒤엉킨 거짓의 그물망을 치는가 " 라고 말한 후 " 복잡한 이야기를 정직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말하는 것 " 이라고 지적한다. 고승덕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심을 유권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짧게 말했어야 했다. 변명이랍시고 장황하게 말하는 놈치고 진정성 있는 말을 하는 놈은 없어요. 진실은 복잡하지 않다. 진실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복잡한 거짓말을 진실 속에 섞기 때문이다. 진심도 마찬가지다. 진심은 복잡하지 않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 가운데 하나였던 문용린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를 " 패륜 " 이라고 지적했을 때,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그가 자식'을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불완전체 정도로 인식하는 태도'다. 그는 < 아버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 > 을 < 아버지에게 지지 않겠다는 말 > 로 받아들인다. "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 " 와 " 지지 않겠다는 말 " 를 착각한 것이다. 그에게는 가족 쿠데타'처럼 보인다. 우석훈과 함께 << 88만원 세대 > 라는 책을 쓴 박권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캔디의 고백을 정치 발언( " 아버지를 지지하지 않는다 ! " ) 이 아니라 사적 폭로 ( " 아버지에게 지지 않겠다 ! " ) 로 인식한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28531 캔디는 27살 씩씩한 여성이다. " 생물학적 아버지 고승덕 씨 " 와 정치적 입장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문용린과 박권일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식은 불초/不肖에 불과하니깐 말이다.
<< 밝게 빛나는 커다란 땅반딧불 애벌레 >> 라는 에세이'에서, 굴드는 미성년을 미성숙으로 인식하는 꼰대의 태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인간 존재의 여러 측면 중에서, 성장과 발생이라는 생명 주기보다 더 기본적인 것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을 찬미하지만, 서양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을 덜 발달한 불완전한 성인으로 간주한다. 성인보다 작고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고, 어린 시절은 위를 향한 경로일 뿐이다. ( 360쪽 )
굴드는 애벌레와 성충을 예로 든다. 그는 애벌레가 " 성충을 예비하는, 아직 발달하지 않은 또는 불완전한 무엇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 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애벌레는 완전체'다. 나비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 고시오패스 " 고승덕과 " 문제적 역린 " 문용린은 캔디를 단순하게 나비가 되기 전 애벌레 정도로 취급한다. 하지만 틀렸다. 애벌레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독자적인 존재'다. 윤도현 밴드는 < 나는 나비 > 라는 노래에서 애벌레를 원시적 형태'라고 노래하지만 애벌레는 결코 나비의 불완전체'가 아니다.
나비가 완전체라면, 전 단계인 애벌레도 완전체'다. 날개 활짝 펼 필요 없다. 총을 든 포수에게 과녁만 넓혀 줄 뿐이니깐.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라고 말했다. 극장에서 극장 간판을 그렸던 내 아버지는 장길수 감독의 영화 < 추락하는 것을 날개가 있다 > 라는 간판을 그리다가 실수로 제목을 < 추락하는 것을 날개가 없다 > 라고 썼다. 하지만 극장 간판이 걸려 있는 동안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사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으니까 ! 나는 아버지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를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했다. 중요한 것은 추락이지 날개가 < 있다> 아니면 < 없다 > 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됐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 나비가 완전체라면 애벌레도 완전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