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대한 생각(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남자'였다. 그는 일단 마음에 안드는 학생을 불러내서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른 후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른 폭력 선생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주먹으로 학생을 개 패듯 때렸지만 거친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거친 말은커녕 고운 말을 하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상황을 재현하자면 : ( 따귀를 연속으로 다섯 대 때린 후 ) " 내가 화난 이유를 알겠어요 ? 몰라요 ?! 왜 몰라요 ? 말을 알아들으라고 귀가 달린 거 아닌가요 ? - 이런 식이었다. 우리들은 이 상황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먹질과 존댓말의 이상한 동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유일하게 존댓말로 수업을 하는 선생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주먹질을 가장 빈번하게 날리는 폭력 선생이었다. 이 사람은 수업 시간에 영어사전과 함께 국어사전'을 가지고 다닐 것을 학생들에게 요구했다.

 

사전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해서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수업 시간에 맞는 아이들은 대부분 영어사전이나 국어사전을 가지고 오지 않는 학생들이었니 괘씸죄'가 적용된 탓이리라. 그가 영어 시간에 국어사전을 가지고 오라고 한 이유는 영어 독해를 잘하려면 국어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 개똥 철학 "  때문이었다. 모범생들은 영어 선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보란 듯이 " 대따 큰 " 사전 두 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선생이 자신을 보아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푸들처럼 말이다. 선생이 특정 단어를 찾아보라고 명령하면 선생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몇몇 학생은 경쟁을 하듯 사전을 넘기며 단어를 찾아내서 큰소리로 뜻을 읊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그 학생을 향해 방긋 !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이 가르친 수업은 < 영어 수업 > 이 아니라 < 번역 수업 > 이었다.

 

요즘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소식은 단연 " 이방인 번역 논란 " 이다. 이번 논쟁'을 보면서 새삼 " 번역이란 무엇인가 ? "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번역 > 이란 주부가 살림을 조금만 게을리하면 티가 팍 나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티가 나지는 않는 < 집안일 > 같다. 번역은 돈이 되는 일도 아니요, 명성을 얻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이익보다는 번역에 따른 손실이 클 확률이 높다. 번역을 깔끔하게 매조지한다고 해서 칭찬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반응은 매섭다. " 번역이 개판이네...... " 라는 독자평은 " 배송이 빨라서 좋아요 ! " 라는 댓글 문장만큼 인기있는 레퍼토리'다. 언론사 서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사 서평 담당 기자들이 "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 " 라거나 " 번역이 거칠다 "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던데 그럴 때마다 의문이 든다. 원서를 읽고 나서 대조 평가 끝에 나온 평가인가 ? 그럴 일은 거의 없다.

 

매주 쏟아지는 신간을 읽기에도 빠듯한 서평 담당 기자 양반들이 원서까지 꼼꼼히 살펴서 서평을 쓸 리는 거의 없다. 번역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원작의 문장 자체가 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란 자신만의 개성적인 문장을 가지고 있다. 코맥 매카시 소설과 플로베르 소설은 느낌이 확~ 다르다. 만약에 플로베르 문장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해서 단문 형식으로 하드보일드하게 번역할 수 있을까 ? 원작이 난해하면 난해하게 번역해야 한다. 오히려 난해한 원작을 쉽게 번역하면 그 번역은 나쁜 번역이다. 무조건 쉬운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을 내면서 " 세대마다 고전 문학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 라고 주장하며 젊은 감수성을 주장하지만 고전을 젊은 감각에 맞게 고전을 다시 번역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비장한 저 말은 그저 책을 팔아먹기 위한 상술일 뿐이다. 19세기 소설에는 19세기 감수성이 있기 마련인데 이것을 21세기 감수성으로 번역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번역된 외국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번역 작품은 절대 오리지날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번역은 필연적으로 번역투 문장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번역 소설을 두고 번역투 문장이라며 비판한다면 어불성설이 된다. 나는 이정서의 도발이 쓸모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소모전이라고 생각한다. 지지한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화가 나서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자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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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4-04-14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모작가의 개츠비 번역을 질색.합니다. 이 동네의 번역 논쟁은 재미진데, 포탈에선 무반응이라 슬퍼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4 20: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저도 여기서 번역 논쟁이 일길래 이야 포텔 반응 좀 볼까나, 하고 들어갔더니 새벽 3시의 밤처럼 조용하더군요..

asnever 2014-04-1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민음사 번역은 별로 신뢰가 가지 않네요.
호밀밭의 파수꾼 앞 몇장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asnever.blog.me/70188360728?Redirect=Log&from=postView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4 21:12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번역가를 매우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번역이라는 게 득이 거의 없어요.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욕만 먹는 작업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몇몇 고약한 번역만 아니면 모두 땡큐입니다. 전 무식해서 잘은 모르겠으나
민음사 출판사 자체가 좀 꼴보기 싫다고나 할까요 ? ㅎㅎㅎㅎㅎㅎ. 하여튼 이자리를 빌려 번역하시는 분들 대단하십니다. 독자로써 고맙습니다. 몇몇 꼴보기 싫은 고약한 번역가를 빼고 말이죠.....

과객 2014-04-1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종호 교수의 <파리대왕>은 일본어판을 참고한 것 같네요. 어휘가 그러네요.
제가 읽었던 책은 다른 사람 번역이었던 모양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이방인> 번역 논쟁을 보면서 참 많이 씁쓸하네요.
출판업이 그렇게 서로 치고 싸우고 할 정도로 힘든 상황인가 싶기도 하고,
번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른 채로 그냥 떠들어대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기자들마저도......

이게 우리 문화의 수준이려니, 할까요? 말까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5 07:12   좋아요 0 | URL
일본어판을 꽤 참고하신 것 같죠 ? 저는 문예출판사로 읽었던 것.. 아니다. 잘 모르겠네요....
누가 원문과 대조를 해서 올렸으면 합니다.
유종호가 " 하층토 "라고 옮긴 것 원문에는 영어로 뭐가 쓰였는지 굉장히 궁금합니다만......
전 역설적이게도 이번 소란을 보면서 번역가가 참 소중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김화영을 비판할 생각도 없고 이정서를 비판할 생각도 없습니다.
솔까말 서평 쓰는 기자들 책 다 읽었을까 항상 의문이 들어요. 대충 읽죠. 그리고는 서평 쓰고.
전 신문 서평 읽고서 기자들이 제대로 읽었구나, 이런 생각한 적 한번도 없습니다.

rtour 2014-04-1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번역..잘 해야죠. 근데 돈도 안되고, 힘 들고..욕 안먹으면 다행인 일인 것도 사실. 안하고 싶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5 07:11   좋아요 0 | URL
번역하는 일'은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전 항상 고마운 생각으로 읽고는 하죠. 번역가가 없었다면 읽지 못하니깐 말입니다.

마립간 2014-04-1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창작/감동에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수평적 가치관의 적용), 번역에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수직적 가치관의 적용)으로 이야기하더군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동양의 고전도 주석을 읽으면서 실제 원작자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썼을까 의심하죠. 가끔 알리딘 서평을 읽고 책을 읽을 때, 책보다 서평이 더 좋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미뤄 생각하면 원저보다 번역서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을 생각합니다. 확률적으로 희박할지라도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비판하는 상황은 조금 우습지만,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비판할 수 있나도 정확한 판단이 안 섭니다.
저는 방식/예의도 중요시 여깁니다. (이에 관해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비교적 쉽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5 11:4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을 종종합니다. 너무 과한 후세의 해석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서평이 책보다 더 화려한 글빨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이런 서평은 좋은 서평이 아니죠..ㅋㅋㅋㅋㅋㅋ

예의 중요하죠. 하지만 싸울 땐 물불 안가리고 싸우는 것도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싸울 때 " 너 몇 살이야 ? " 이런 말 하는 인간만큼 꼴불견도 따로 없죠...

마립간 2014-04-15 12:09   좋아요 0 | URL
저의 의견을 수정합니다. 책보다 좋은 느낌을 주는 서평은 나쁜 서평으로. 대신 서평 자리에 독후감 또는 그냥 글로 대체합니다.

실제 전쟁과 정치는 예禮는 커녕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잘못된 결과가 수정되지도 않습니다. - 그래서 이 두 분야는 저의 스타일이 아니죠. 이 두 분야의 책은 거리감 때문에 읽게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자고 농담한 건데 수정까지 하시면..... ㅎㅎㅎ.

아, 누가 한 말인지는 까먹었는데 책에 이런 소릴 하더군요.
전쟁의 추동은 대개 노획물 때문이었다라고 말이죠. 약탈하고 강간하는 것 때문에 병사들은 열심히 싸웠다고....
누가 말했더라? 하여튼 누가 그리 말했는데 전 이 말에 굉장히 와닿더라고요.
사실 전쟁은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위한 싸움이기는 보다는 주로 노획, 강간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samadhi(眞我) 2014-04-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번역이 너무 어색하면 책이 안읽혀요. 지금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 몇 번이나 읽다가 만 소설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애들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영어를 일본에서 해석한 것을 한자로 옮겨적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얘기에 무척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식이 아닌 일본식 한자조어를 쓰다보니 이게 이해가 될 리가 없죠. 제가 가장 민감하게 싫어하는 부분입니다. 거의 광분하는 정도지요. 일본식 어투, 일본식 한자조어. 그래서 일본소설의 번역투도 너무 일본식이라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늘 의문을 가지거든요. 일본어로 "쏘오까나"였을 "그럴까나" 등으로 하는 식이요. 우리는 "그럴까"가 편하고 당연한데, 일본어처럼 "~까나"를 붙이는 걸 보면 화가 나서^^ 씩씩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5 14:08   좋아요 0 | URL
그럴까나///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게 그런 의미였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유종호의 파리대왕이 아마 전형적인 일본어 번역판을 참고해서 나온 걸 걸 겁니다.
막힌다 싶으면 일본판 봤겠지요. 저렇게 해놓고 새로운 번역 운운하다니...
거기에 나오는 단어를 막 끌어다쓰다보니 저런 단어들이 작품에 무작정 들어간 거 아니겠습니까.

samadhi(眞我) 2014-04-15 14:1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진짜 잘 안쓰는 한자어 보니 정말 갑갑합니다. 누군가 아주 잘 정리해 놓았군요. 저도 그런 거 보면 막 교정하고 있어요. 짜증만 내고 책에 몰입할 수가 없어요. 작품 자체의 수준까지 의심하게 돼요.
법조문이 가장 심하죠. 행정법 공부하다가 마구 살의가 일어나더라구요.

엄동 2014-04-1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저 원작의 전달자 노릇을 충실하게 하겠다.. 란
어느 번역자의 말이 생각이 나네요
(정확한 워딩은 아님)

사회초년생때
회사에서 국어사전 떠들어가며
문서를 작성하곤 했는데
(다른건 몰라도 단어의 의미를 모르고 쓰거나 틀리게 쓰는건 되게 자존심이 상했었음)

불과 몇년 사이에
그 두꺼운 사전은 행방이 묘연해졌네요
(회한)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5 19:01   좋아요 0 | URL
어떤 한계 아닐까 싶어요. 번역이라는 게 말이죠.
오리지날을 뛰어넘으로고 하면 안됩니다.
전 어느 신문 서평에서
원작보다 훌륭하다는 번역본'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런 말을 쓴 기자의 글을 봤는데 욕 나오더라고요.
그건 오리지날에 대한 모독입니다.
최소한의예의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엄동 님 사전을 끼고 사셨군요 ? 허허..

스누피 2014-05-02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출판사 사장 새끼가 가명 쓰고, 불어 원본도 아닌 영어판 중역 했다는 군요. 참 대단하고 새로운 이방인 번역입니다. 젠장.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4 06:19   좋아요 0 | URL
그렇더군요. 상상을 못했는데 말입니다. 영어판 중역을 하고 과연 이게 최고의 번역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전 처음에 이 호기로운 선언을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이가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