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소리는 매력적이다.

" 주말의 명화 " 로 대표되는 티븨 영화는 반드시 " 명화(masterpiece) " 를 송출하지는 않았다. 꾀죄죄한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과대 광고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 엠비씨 주말의 꾀죄죄한 영화 > 라는 타이틀로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티븨 영화에 불만을 가지는 이유는 작품성 때문이 아니라 목소리 더빙 시스템 때문이었다. 성우 더빙은 오리지날이 가지고 있는 본때와 때깔을 50%는 갉아먹었다. 성우 양지운과 박일은 수퍼맨이 되었다가 존 맥클레인 형사가 되기도 하고, 로버트 레드포드가 되기도 했으며, 닝기미.... 브레드 피트가 되기도 했을 때는 화딱지가 나기도 했다. 연기'에서 중요한 것은 잘생긴 얼굴보다는 표정이며, 표정보다는 목소리'다. 표정이 4'라면 목소리는 6이다. 톤, 호흡, 휴지기, 말투, 멈춤 따위는 캐릭터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목소리가 돼야 표정이 나오지, 표정은 기똥찬데 목소리 연기가 개판이면 개그콘서트 < 시청률의 제왕 > 에 나오는 아이돌 스타(류근지)처럼 " 가로 열고 가로 닫고 " 캐릭터가 되기 십상이다. 요즘 한국 영화 배우 대세는 연극 무대 출신 배우들이다. 김윤식, 송강호, 최민식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간장게장(씬스틸러의 순우리말)들까지 합하면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영화판을 접수했다고 보아도 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다양한 목소리에 있다. 연극'이란 가까이 하기엔 꽤 먼 거리에서 관람하는 형태다. 영화는 롱쇼트, 풀쇼트, 미디엄쇼트, 클로즈업 쇼트 등 다양한 거리 조절이 가능하지만 연극은 오로지 풀쇼트'다. 관객이 배우의 미세한 얼굴 표정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연극 무대는 영화 스크린과는 달리 표정 연기'보다는 목소리 연기를 중요하다.
연극 배우들은 대본 발성법에서 목소리에 감정을 효과적으로 담는 기술을 연습한다. 연극 배우에게는 목소리가 경쟁력이고 영화배우에게는 얼굴이 경쟁력이다. 내가 연예 기획사 대표라면 특정 배우와 장기 계약을 맺을 때에는 표정 연기는 되는데 꾀죄죄한 목소리를 가진 배우'보다는 목소리는 되는데 표정 연기가 미흡한 배우를 선택하겠다. 입만 열었다 하면 모기가 날아다니는, 앵앵 소리'를 내는 베컴이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끔찍한 상상이다. 현영'이 신파 멜로 주인공이 되어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한다거나 설상가상 하얀 소복'을 입고 곡을 하는 연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성우 더빙 영화에 질려버린 나는 티븨 영화를 외면하고 영화관을 들락날락거렸고 결국에는 집에 홈시어터를 장만하기에 이르렀으니.......
3개월 동안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장만한 " 5쩜1채널 " 홈시어터'였다. 물론, 당시 재생기는 VHS 비디오 데크'였다. 일명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는 녹화기'였다. 보기에 좋았어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는 모건 프리먼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 좋은 목소리 > 와 < 좋아하는 목소리 > 는 다르다. 대중적 보편성을 획득한 목소리가 듣기 좋은 목소리'라면 좋아하는 목소리'는 개인의 취향에 방점을 찍었다고 보면 된다. 모건 프리먼은 좋은 목소리를 가진 배우였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였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탐 웨이츠처럼 위스키와 담배 연기로 숙성한 까끌까끌한 목소리를 가진 배우였다. 그런, 목소리. 좋다. 사실 모건 프리먼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탁월한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할 수는 없다.
얼굴 표정 연기'만을 놓고 보면 그들은 베테랑은 아니다. 그들보다 뛰어난 얼굴 표정의 달인은 많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위스키와 담배로 숙성시킨, 이 알 수 없는 " 찰스 부코스키的 건성 " 이 웅숭깊은 맛을 전해준다. 그들은 얼굴로 먹고 사는 배우라기보다는 목소리로 먹고 사는 배우다. 이런 목소리 연기는 잘생긴 젊은 배우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영토'다. 내가 < 용서받지 못한 자 > 나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라는 영화에 환장하는 이유는 두 배우가 전해주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멋진 목소리는 잘생긴 얼굴'보다 더 강력한 최음제 역할을 한다. 물론 멋진 목소리에 잘생긴 얼굴이면 금상첨화이기는 하나 그리 흔한 황금 조합은 아니지 않은가 ? 배우 이병헌은 예외다. 그는 잘생긴 얼굴에 목소리도 좋다. 그가 < 달콤한 인생 > 에서 보스에게 " 왜 그랬나요 ? " 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은 마치 허진호 감독의 < 봄날은 간다 > 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 라고 묻는 떨림'처럼 느껴졌다. 수컷끼리 대화를 나눌 때 내는 소리가 아닌, 달콤한 목소리처럼 들렸다. 내게는 < 왜 그랬나요 ? > 가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 처럼 들려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아, 했다. 이 영화는 퀴어 영화'로구나. 이병헌은 보스를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그 역도 마찬가지구나. < 달콤한 인생 > 은 배신에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두 수컷 간 질투를 다룬 퀴어 영화였다(김지운의 이러한 성향은 전작인 < 장화 홍련, 2003 >에서도 나타난다. 영화 속 설정은 자매지만 사실은 레즈'다). 어쩌면 이병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 하관 > 이 아니라 하관 속에 감추어진 < 성대 > 다가 아닐까 ? 그렇다고 해서 목소리 좋은 사람만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권상우'다. 그가 < 말죽거리 잔혹사 > 에서 " 대한민국 다 좆 까라 그래 !! " 라고 말했을 때 관객들은 " 대한민국 다 족구 하라, 그래 ! " 로 들려서 뜬금없었다. 갑자기 < 족구 > 하자고 하니 뭔 소리인가 했다. 족구는 군대에서 델몬트 오렌지 쥬스 내기 게임이나 남한산성에서 백숙집 공터'에서 하는 놀이가 아니냔 말이다. 혀 짧은 발성으로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기적처럼 보인다. 내가 장담하지만 그런 배우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예로 유명한 배우 한 명 더 거론하고 싶으나 대한민국 여성들로부터 " 곰곰발, 다 족구 하라, 그래 ! " 라는 소릴 듣고 싶지 않아 이 자리에서 밝히지는 않겠다. 난 당신과 한가하게 족구 하고 싶지는 않아. 됐고. 좋은 배우는 대부분 안정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좋은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 매력'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은 그렇다. 잘생긴 얼굴보다는 멋진 목소리를 가진 수컷이 좋다. 유감스럽게도 내 목소리는 모기 앵앵거리는 소리'다. 신이 내린 천벌이리라. 그래서 가급적이면 말을 하지 않고 " 바리톤 " 을 가진 양 가증스럽게 마초처럼 굴며 글을 쓴다. 일종의 개수작이요, 개똥 같은 소리요, 은폐요, 결핍의 대체'다. 나, 그런 놈이다. 하여튼 배우에게 목소리는 보물이다. 玉소리'를 가진 사람은 매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