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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평점 :
간 때문이야.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 책을 주문할 때 " 진지하게 읽을 책 " 과 함께 " 가볍게 읽을 책 " 을 고른 후 장바구니에 담는 편이다. 전자는 책을 " 읽기 " 위해 사고, 후자는 책을 " 보기 " 위해 산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따분하고 고통스러운 반면 책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쪽에 속한다. 그렇기에 읽을 책과 함께 볼 책도 함께 주문하는 행위는 보상 심리 비스무리한 행동이다. 쓰디 쓴 약을 먹고 나면 달달한 사탕 같은 주전부리를 찾는 심리라고나 할까 ?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내게는 난독증 비슷한 경향이 있어서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할 수도 없고, 설령 이해했다고 해도 쉬이 까먹는다. 프르스트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를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거라곤 홍차와 마들렌 밖에 없다.
우연한 기회에 마들렌 과자를 먹었을 때 생각보다 꾀죄죄한 맛에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홍차와 함께 먹으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했다. 절묘한 궁합 때문이리라. 프르스트가 가지고 있는 미덕은 소소(小小)한 것에 대한 집요한 애착이 아닐까 싶다. 사실 주류 문학은 그동안 홍차를 다루었지 홍차를 마실 때 딸려 나오는 과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프르스트는 최초의 " 스끼다시 예찬자 " 였다. 내게 있어서 서평집은 " 진지하게 읽을 책 " 이 아니라 " 가볍게 읽을 책 " 에 속했고, " 홍차 " 로 분류하기보다는 " 마들렌 " 에 가까웠다.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가볍게 읽을 책'이라고 해서 읽지 않아도 되는 종류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홍차만 마실 수는 없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하루키 소설(홍차)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쓴 에세이(마들렌)는 좋아한다.
스스로를 삼류 서평자라고 소개한 금정연의 < 서서비행 > 을 집 밖에서 서서 읽었다. 짧은 서평을 모은 집(集)이다보니 시간과 장소에 대한 구속이 없어 좋다. 이런 책은 집 밖에서 여러 날을 두고 야금야금 읽어야 제맛이다. 종로 3가에서 을지로 3가를 향하는 3호선에서 톨스토이의 < 전쟁과 평화 > 를 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평론 > 이 맛을 보는 행위라면 < 서평 > 은 간을 보는 행위'다. 전자는 [ 詳味 : 자세할 상, 맛 미 ] 이고 후자는 [ 嘗味 : 맛볼 상, 맛 미 ] 이다. 간을 본다는 것은 전체를 감별하는 게 아니라 부분을 감별하는 행위다. 짠 정도를 보는 것이다. 반면에 맛을 본다는 것은 전체를 보는 행위다. 간뿐만 아니라 식감 따위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깐 간이 맞다고 해서 반드시 맛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간이 적당해야 맛이 좋을 확률도 높다는 점이다. < 간 > 이 음식 맛에 미치는 영향은 49%다. 서평을 읽는다는 것은 음식 간을 보는 행위와 비슷하다. 서평가는 < 간 > 에 대해 말한다. 짜다, 싱겁다 혹은 알맞다. 맛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간을 보기 위해 서평을 읽고 책 속에 언급한 몇몇 책은 사서 맛을 본다. 간이 맞다고 해서 무조건 음식 맛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간은 적당한데 고기가 질겨서 식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중매를 잘못 서면 뺨이 석 대'라지만 책을 잘못 소개했다고 따귀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집 밖에서 틈나는 대로 읽을 요량으로 가방 속에 넣어두었는데 그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재미있다는 소리다(서서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을). 그는 서평가가 맛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간을 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국물을 떠 혀끝을 적실 뿐이지 냄비 통째로 들고 국물을 삼키지 않는다. (뜨거우니까!) " 말하자면 우연 같은 일들 " 이라는 제목을 단 글은 김연수 작가의 < 우리가 보낸 순간 > 이라는 책에 대한 꼭지인데 책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그냥 서울역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다가 일을 보기 위해 들어온 김연수와 마주친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이 " 딴청 " 에 대해 유감은 없다. 나는 프루스트처럼 주전부리를 좋아하니까. 어쩌면 이 글도 < 서서비행 > 에 대한 딴청'인지도 모른다. 마들렌은 홍차와 먹어야 맛이 좋아.
덧대기
저자는 LG 트윈스 팬'이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