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율은 낮아도 출루율이 높은 선수를 품사로 따지자면  < 조사/助詞 > 다.  조사란 " 체언이나 부사, 어미 따위에 붙어 그 말과 다른 말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 / 네이버 사전 "  이다. 실력 있는 문장가는 조사'를 정확히 사용한다. 김훈은 종종 어떤 조사를 쓸 것인가에 목숨을 건다. 그의 문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조사 덕이 팔 할이다. 반면 타율은 높은데 정작 출루율이 낮은 선수는 형용사나 부사 혹은 감탄사'와 비슷하다. 이런 문장은 자극적이기 일쑤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이라면 이런 문장은 다 훑지도 않고 탈락시킨다.  좋은 문장은 좋은 조사'에서 나오듯이, 좋은 타자는 품사 " 조사 " 같은 선수다. 그러므로 쫄지 마라, 시바. 키 작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남자 새끼가 가슴 대신 젖가슴 달렸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젖가슴이 작다고 쪽팔릴 필요도 없다. 허리 사이즈가 77사이즈이면 어떤가 ? 그리고 전문대 나와서 별 볼 일 없는 직장을 얻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별 볼 일은 천문학자들이나 해야 하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에게는 오클랜드 소총부대'가 있다.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경기에서는 지는 날보다 이기는 날이 많았다. 이 세상은 아이큐 100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야구란 10번 중에 3번 성공하면 잘했다고 대접받는 스포츠다. 10번 중에 3번 성공했다는 말은 뒤집으면 10번 중에 7번은 실패했다는 것 아닌가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697511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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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의 인지상정.

 

 

 

< 티라노의 발톱 > 을 보고 나서 < 디워 > 를 볼 수는 있다. 그리고 < 디워 > 를 보고 나서 < 티라노의 발톱 > 을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심형래 영화 가운데 < 디워 > 보다는 < 티라노의 발톱 > 을 더 재미있게 보았지만 " 티라노 " 를 볼 정도의 인내심이라면 " 디워 " 도 참고 볼 수 있다. 둘 다 도 긴 개 긴'이다. 하지만 비교 대상'인 두 작품의 질'이 확연하게 드러날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 디워 > 를 보고 나서 < 에일리언 > 을 볼 수 있지만, < 에일리언 > 을 보고 나서 바로 < 디워 > 를 끝까지 볼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투 플러스 에이 인증을 받은 꽃등심으로 배를 채운 후 삼겹살'을 먹으라고 하면 먹기 힘든 것과 같다. 삼겹살이 맛이 없는 고기'라는 말이 아니다. 삼겹살'보다는 꽃등심'이 맛있다는 말이고, 고기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다시 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후식으로 단단하지만 달달한 감 한쪽을 먹는 게 속이 편하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다, ○○○이나 ○○○ 시를 읽고 나서 김신용 시집을 읽을 수는 있으나, 김신용 시를 읽고 나서 ○○○이나 ○○○ 시를 읽을 수는 없다. 현기증이 난다. 덮는 게 상책이다. 내가 ○○○이나 ○○○를 비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은 나누면 사라지고 독점하면 커진다. 삼권분립'은 바로 이러한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에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문단도 마찬가지'다. 교수를 하면서 시를 쓸 수는 있다. 시를 써서 먹고 살 가능성은 각하가 10년 안에 자신의 죄를 한 톨만큼이라도 뉘우칠 가능성보다 희박하다. 꾀죄죄한 심장에서 나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를 쓰면서 소설을 쓸 수도 있다. 직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나 소설을 비평하는 문학평론가가 시를 쓰면 안 된다.  < 100분 토론 > 을 진행했던 사회자 손석희는 100분 토론의 공정한 진행을 위해서 사람들과 사적으로 만남을 가지는 것을 자제했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사적 만남을 가지다 보면 친분이 생기고, 친분이 생기면 정이 생기고, 정이 생기면 결국에는 인지상정에 이끌려서 균형잡힌 저울대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같은 이치 아닐까 ? 시인이 시인들과 잦은 만남을 가지며 친분을 도모하다가 문학평론가로 돌아왔을 때 과연 인지상정에 휩쓸리지 않고 날카로운 비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과 사를 확실히 한다면야 그보다 좋을 수는 없지만 사람이라는 게 정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국인은 인지상정에 존나 약한 민족이 아니었던가. 여기에 문예지 편집위원이나 심사위원까지 겸하면 이것이야말로 삼권분립이 아닌 삼권합일'이다. 결국에는 끼리끼리 노는 꼴이 된다. 권성우는 < 비평과 권력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현재 문예지에 발표되는 비평문 중에서 과연 비판에 값하는 비평문들이 어느 정도나 될까 ? 내가 보기에 비판적 글쓰기에 해당되는 비평문들은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여전히, 해설비평, 덕담비평, 텍스트 물신주의 비평이 우리 비평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 비평과 권력, 소명출판

 

비평문을 보면 문학평론가들이 문학 평론은 하지 않고 주말에 예식장 가서 주례 선생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검은 머리가 흰 파뿌리가 될 때까지 글을 쓰시오 ! 그들은 과연 원고료를 받는 것일까, 아니면 주례비'를 받는 것일까 ? 평가하기에도 고약한 소설 앞에서는 무작정 " 전복적 상상 " 이 돋보인다거나 " 감성적 떨림 " 이 돋보인다고 말한다. 그놈의 전복적 상상은 어떻게 생긴 것이고, 감성적 떨림은 어떤 느낌인지 경험해 보고 싶다. 할 말 없다면 비평문을 쓰지 말아야 하고, 문제가 많아서 할 말이 있으면 예봉을 휘둘러야 한다. " 전복적 상상 " 이라는 말은 " 현대인의 불안 " 과 함께 비평문에서  56억 7천만 번이나 들어서 정말 전복이라는 전복과 조개'가 상상도 하는 짐승으로 오해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전복적 상상'이 현대인의 불안'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나쁜 나는 < 현대인의 불안 > 이 자꾸 내 눈알에는 < 현대인의 불알 > 로 읽혀서 곤혹스럽다. 나는 한탄하고는 한다. 왜 문학 평론가가 문학성의 질적 저하를 걱정하지 않고 남성의 전립선 기능 저하를 걱정할까 ? 오호, 통재다. 정치평론가는 정치평론가와 정치가를 겸하지 않는다. 영화평론가도 영화평론을 하다가 감독으로 전향해서 성공한 사람은 있지만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영화감독까지 겸하지는 않는다.  길드를 위한 쉴드가 아니다. 그게 기본이다. 그런데 어째서 문학평론가가 소설가나 시인을 겸하는 것일까 ? 심심풀이로 시를 쓰나 ? 시는 아무나 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쓰면 안 된다. 시도 쓰면서, 교수도 하면서, 문예지 편집위원도 하고,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고, 평론도 하는, 마당발 문학평론가여, 꾀죄죄하게 투잡 뛰지는 맙시다 ! ( 성실히 시를 쓰는 가난한 시인과 열심히 비평문을 쓰는 정직한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소 ? )

 

*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다 아는 소리이지만 야구는 실패를 다루는 스포츠다. ( 야구에 대한 오고가는말풍선은 카테고리 모호한 취향 내 야구관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뿌잉뿌잉 ~ ) 그래서 야구에 대한 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학'을 다룬다. 사실 교훈은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얻는 것이 실용적이며 가치 있다. 샴페인을 터트리게 되면 들떠서 판단력이 흐리게 되어, 자신이 성공 요소'라고 뽑은 것이 사실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 공산이 크다. 심형래는 자신의 무모한 도전을 성공 요인으로 뽑았으나 파산 신청을 한 지금 되돌아보면 계획성 없는 무모함이 실패를 결정짓는 요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좋은 타자는 경기가 끝난 후에 반드시 자신이 치웠던 경기를 녹화한 테이프롤 다시 보면서 복기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홈런을 쳤을 때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삼진 당했을 때를 유심히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실수를 발견하게 되고 다음 경기에서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평론도 마찬가지다. 덕담이나 줘서 시인을 기쁘게 할 수는 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될 수는 없다. 차라리 매서운 채찍이 낫다. 평론가나 동료들이 김애란의 < 두근두근내인생 > 에서 쏟아낸 찬사'는 최악이었다. 대책 없는 지지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시인은 경기가 끝나면 녹화실에 들려 자신이 치룬 경기를 복기해야 한다. 홈런을 쳤을 때의 장면은 한 번만 보고 넘겨야 한다. 그리고는,  뼈아프지만 삼진을 당했을 때의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서 볼 필요가 있다. 한때 불광동에서 도깨비풀로 악명이 높았으며 원 펀치 쓰리 강냉이'라고도 불렸던 나를 알음알음 찾아온 건달들에게 늘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는 했다.

 

" 잘 들어라, 아그들아 !  지금은 인왕산 시장 아래에서 어수선/魚水船 이라는 모퉁이 생선가게 생선 장수로 손에 칼을 잡지만 옛날에는 맨주먹으로 양아치 18명을 1분 안에 작살낸 적도 있다. 음, 그러니깐 말이야. 권투선수가 상대방 주먹을 피하기 위해서 상대 선수의 글러브를 쳐다보면 백 프로 맞게 되어 있어 ! 왜 그런지 아나 ? 글러브는 두 개야. 상대방이 내 글러브를 쳐다본다 싶으면 오른손으로는 잽을 날리는 시늉을 하면서 움직이지. 자기 촉수를 벌레처럼 움직여서 물고기들이 먹이인 줄 알고 다가왔을 때 냅다 입을 벌리는 아귀처럼 말이야. 오른손 잽은 아귀 촉수 같은 거야. 상대방 선수는 왼쪽 팔로 가드를 친단 말이야. 바로 그때, 상대 선수가 내 오른손 움직임에 정신이 팔릴 때 왼손으로 결정타를 날리는 거지. 원 펀치 쓰리 강냉이. 이빨 세 개는 기본이다. 니들이 나처럼 전설의 주먹이 되기 위해서는 글러브를 쳐다보지 말고 상대 눈깔을 부릅뜨고 꼬라봐야 한다. 상대 선수의 눈빛이 변하고 어깨가 다른 방식으로 움찔할 때, 그것은 바로 결정타를 날린다는 신호를 의미하거든. 주먹을 피하지 말고, 눈빛을 읽어라. 타자도 마찬가지야. 중요한 것은 공의 포물선이 아니라 투수의 눈빛과 어깨란다. 이왕 왔으니 방어나 사 가지고 가라. 생물 싱싱한 거 들였다. 꽁치 한 마리 덤으로 주마. 그나저나 이 새끼들아, 정신 차려. 주먹도 한때다. 명왕성이란 새끼가 꼴사납다며 주접을 떨 때 옛날 같으면 사시미로 얼굴을 온통 칼질했을 텐데.... 지금은 참고, 참고, 참는다. 주먹은 헛것이여. 치욕은 한때이고 영광은 굴비다. 알긋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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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1-3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꺄악~! 불광동 도깨비불 옵빠!! 마지막 명문단에 박수와 환호를..! 짝짝딱!!

곰곰생각하는발 2013-11-30 18:47   좋아요 0 | URL
제가 한때 조양은과 맞짱 뜨고는 했죠. 참.... 미스타코리아 대회인가. 아, 육체미 대회 어떻게 되셨습니까 ?

새벽 2013-12-01 17:3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은메달 땄습니다. 장년부에서 ^^;
언젠간 일반부에서 이삼십대들과 같이 함 서보려구요
색다른 경험으로 회춘과 전복의 괴물이 한 번 쯤 되볼까 싶어요. 나중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1 18:03   좋아요 0 | URL
아니.. 뭐 이런 경우가 !!!! 굉장하군요 !
ㅎㅎㅎㅎㅎ 대단합니다. 정말 성실하신 새벽 님....
하하하하.. 축하드립니다. 멋지십니다.

아, 이거 제가 새벽 님 팔뚝에 매달리는 거 고거 사진 한 장 남겨도 되겠습니깡 ? ㅎㅎㅎㅎㅎㅎㅎ
아,생각해 보니 육체미 선수들은 그런 요구를 제일 싫어한다는 걸 어디서 읽은 적이 있네요.
급 취소... 하여튼 축하드립니다.

새벽 2013-12-01 18:5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하하.. 맞아요. 그건 좀 그렇죠. 그러나 곰곰발님이시라면..!

여튼 감사합니다. :)

saint236 2013-11-3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론과 친분이라.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제가 알라딘 서평단을 할 때에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지요. 좋게 리뷰 써달라고 준 책인데 영 아니올시다 싶을 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이 책은 돈주고 사서 읽기는 아깝다는 늬앙스의 글을 썼습니다. 솔직하게 썼지만 마음 한편은 무겁더라고요. 손석희씨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30 21:04   좋아요 0 | URL
전 서재 들어갔다가 별 5개로 도배된 서재를 보면 글 안 읽고 바로 나옵니다.
그런 건 전혀 의미가 없거든요.
saint 님처럼 별 하나가 종종 보일 때 믿음이 갑니다. 아, 이 사람은 인지상정에 이끌려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구나.. 이런 믿음 말이죠. 어차리 서재 글 읽는다는 것은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해서 꼭 읽어야 할 책을 고르는 행위잖습니까...

수다맨 2013-11-3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이문구 소설가가 후배 작가들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까이 지내지도 말고 너무 멀리 지내지도 말라. 이것이 어쩌면 하나의 일리 있는 대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들끼리 너무 만나면 친분이 생겨서 서로에 대한 엄밀한 평가를 하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너무 안 만나면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사실 모두가 마루야마나 조지 오웰처럼 살기란 어려울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곰곰발님 말씀처럼 작가들끼리 좀 떨어져 지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겸직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가깝게 다붙어 지내니 엄밀하고 예리한 평가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때문에 저 같은 독자들이 잡지에 실리는 평론이나 서평을 불신하면서, 알라딘 서재를 자주 찾게 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30 21:57   좋아요 0 | URL
제가 항상 하는 말이 문예지 비평을 쓰는 문학평론가 글보다는 소박하지만 서평가 서평이 내가 보기에는 더 예리하다. 거든요. 프로가 쓰는 비평은 ( 특히 대형 출판사 끼고 도는 문예지 전속 평론가 ) 지나가는 개에게 줘라. 서평이 더 근사값에 가까울 수 있다... 뭐.. 이런......

적어도 우리가 서평을 읽을 때는 아닌 것을 골라냅니다. 에이, 이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네..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평론은 뭔가 막 그들이 강요하는게 있어요. 어라, 그럼 내 생각이 틀렸나 ? 프로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그래, 나도 그냥 아리송했는데 좋다고 생각하자.. 이런 거... 알고 보면 다 뻥인데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1 12:21   좋아요 0 | URL
가끔 김현 시대처럼 평론집이 읽히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
비상업적이라거나 지나치게 딱딱한 서술 탓이라고 문단 자체에서 분석하던데...
까놓고 말해서 읽지 않는 이유는 병신같아서 안 읽는 겁니다. 평론이 어려워서 안 읽는 게 아니라 말이죠.
출판사 끼고 책장수가 된 것처럼 덕담이나 주고받으면 누가 봅니까... 차라리 장정일이나 로자 님 같은
서평이 훨씬 믿음이 갑니다. 이들은 적어도 어떤 출판사에 소속되어서 대빵 눈치를 보지 않으니깐 말이죠.
전 요즘 출판사 끼고 사는 평론가 보면 책장사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12-0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교수같은 분들을 보면 미학으로 보는 것과 미학을 볼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분리해야죠. 그저 오덕 평론처럼 오덕오덕거림이...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1 12:47   좋아요 0 | URL
그놈의 오덕'이란 말은 늘 들어가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도 바쁘십니까 ? 이거, 부산 직업 때려치고 서울에 터잡으십셔 ~

수다맨 2013-12-0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로쟈님 서평은 뭐랄까 점점 요약 수준으로 가는 것 같아 아쉽더군요. 예전에 보았던 고종석과 김훈, 김규항을 비교하는 글처럼 논쟁적이고 예리한 글은 잘 안 쓰시는 것 같더라구요. 어쩌면 너무 책을 많이 접하고, 거기에 파묻혀서 그런지 요즘은 신간을 소개하고 그것을 요약하는 데만 힘쓰시는 듯합니다.
반면에 장정일 글은 여전히 뚝심과 예기가 있어 좋더군요. 자기 주관이 때로 지나치게 글에 스며드는 것이 흠이긴 합니다만, 그것이 나름의 일관된 그의 태도라 미덥게 보이더군요. 시사인에 싣는 비평이 굉장히 읽을만 한데, 모옌의 신작을 소개하면서 (그에 비하면) 하루키는 '인스턴트 식품'이고 황석영은 '듣보'에 지나지 않는다며 조소하는 것이 재밌더군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1 13:33   좋아요 0 | URL
아마 로자 님은 바빠서 그냥 쉽게 쉽게 요약 정리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고종석 김훈 김규항 비교하는 거 읽은 적 있습니다.... ㅎㅎ. 장정일 님이야 뭐, 워낙 눈치 안 보고 할 말 안 할 말 다 하는 양반이어서 시원하더군요. 물론 사람이라는 게 오류는 다 있지만, 그 오류가 무서워서 무조건 덕담으로 가면 그게 더 막장 아니겠습니까. 장정일의 독서 참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하여튼 제가 장정일 같은 경우는 하 60% 믿고 들어가는 반면, 문예지 끼고 열심히 하는 평론가의 평론은 4%만 믿습니다. 책장사 같잖아요. 그들이 쏟아내는 설레발을 적용하면
노벨 문학상 한 10번은 탔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