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바닥 그리고 천정'에 대한 고정관념.

  

 "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어... " 라는 달달한 대사'를 드라마에서 종종 듣고는 한다. 멋진 프로포즈이기는 하나, 사람이 처음 본 대상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거위 새끼도 아니고 뭔 놈의 < 눈 뜨자마자 타령 > 인가 ! 신혼 3년만 지나봐라.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알람 시계'다. 나 또한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보게 되는 것은 시계'였다. 불면증은 내 오랜 병, 새벽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잠이 드니 다음날 출근 걱정에 깊은 잠을 잘 수도 없다. 아침에 천근만근 내려앉은 눈을 뜬다는 것은 차라리 고통에 가까웠다.  1분이라도 더 자고 싶다는 욕심에 벽에 걸린 시계를 자주 보게 되는데 방 구조상 상체를 일으켜  세우거나 몸을 비틀어야 시계를 볼 수 있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다 보니깐 사소한 움직임조차도 고통스러웠다. 곰곰 생각했다. 눈 뜨면 시계를 바로 볼 수 있는 위치는 어디일까 ? 다음날, 벽에 걸린 시계를 떼어다가 침대 머리맡 바로 위 천정에 걸어 고정시켰다.  액자를 벽에 걸듯이 말이다. 눈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 시계'였다. 상체를 일으켜 세울 필요도 없고, 탁상용 시계를 찾아 손을 더듬거릴 필요도 없었다. 이불 속에서 꼼짝하지도 않은 채 눈만 뜨고도 시계가 보였다.  친구 놈은 발리로 신혼 여행 다녀와서 < 꽃잠 > 잔 얘길 하는데 나란 놈은 이곳에서 < 쪽잠 > 에 대해 말해야 하다니 감개가 존나 무량하다.  친구가 결혼을 하여 아침마다 퉁퉁 부은 아내의 얼굴을 질리게 볼 동안 나는 시계만 질리게 보았다. 

▷ 꽃잠 : ( 순우리말 )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사람이 당신이었다고 고백했던, 멋진 프로포즈로 로맨틱 가이'라는 칭찬을 받던 친구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 신혼은 딱 1년이더군.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누라 얼굴이 보이면 화딱지가 나기 시작해.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마누라가 침대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날 아침 밥은 물 건너 간거지. 침대에서 눈 뜨자마자 아내 얼굴이 보이면 그때부터는 불행한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거라네. "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계와 마주치는 나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잠꾸러기 아내를 둔 친구의 말을 듣고는 박장대소했다. 그래도 눈 뜨자마자 파란 하늘이 보이는 사람'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오래 전, 술에 취해서 화물차 트럭 위에서 파란 방수포를 이불 삼아 잠을 잔 적이 있다. 그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보이던 파란 하늘을 아직도 기억한다. 정말..... 판타스틱했다. 시계를 천정에 걸어두는 것은 생각보다 근사하다. 훌륭한 인테리어 배치'가 된다. 뭔가 아방가르드的이지 않은가 ! 물론 부작용도 따른다. 첫날 눈을 떴을 때는 천정을 벽이라고 생각하고는 서서 잠을 잤다고 착각했다. " 가지가지하는구나. 아... 이제는 내가 몽유병'을 앓고 있구나 ! " 하지만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번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시계는 항상 벽에 걸어두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천장은 반드시 조명 기구만 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좋은 인테리어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 에피소드 : 나는 망할랑 말랑 한 독립문의 허름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간호사가 세상에 막 태어난 내 다리를 거꾸로 붙잡고는 말랑말랑한 엉덩이를 때렸다. 나는 우렁차게 울었다. 울음소리를 듣자 모두들 기뻐했다.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크면 클수록 건강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내가 망할랑 말랑 한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배운 것은 내가 울면 사람들이 즐거워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힘차게 울었으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배운 것은 인간의 배신'이었다. 사람들은 울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분만실에서의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묻고는 한다. 맞는 말이다. 최초의 기억'은  4살 이후라고 한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4년 동안 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4살이었다. 나는 내 엉덩이를 때린 간호사를 아동학대죄로 경찰에 고발했다. 다음날, 한국일보 < 표주박 > 코너에 조그마한 기사가 실렸다. " 신생아, 자신을 아무 이유 없이 때린 간호사 고발 ! " 조선일보는 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 세상만사 >에 기사를 실었다. " 신생아 간호사 고발 사건 일파만파 ! 아동 성추행으로 확산 조짐. " 이 이야기'는 모두 100% 실화다. 모르면 당신은...... 간첩이다.

그러므로 나는 남자이지만 산부인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 늬낌 아니까.

■  하이파이브 / 김선우 

 

 

하이파이브/ 김선우

 


1년에 한번 자궁경부암 검사 받으러 산부인과 갈 때

커튼 뒤에서 다리가 벌려지고

차고 섬뜩한 검사기계가 나를 밀고 들어올 때

세계사가 남성의 역사임을 학습 없이도 알아채지

 

여자가 만들었다면 이 기계는 따듯해졌을 텐데

최소한 예열 정도는 되게 만들었을 텐데

그리 어려운 기술도 아닐 텐데

개구리처럼 다리를 벌린 채

차고 거만한 기계의 움직임을 꾹 참아주다가

 

커튼이 젖혀지고 살짝 피가 한 방울,

 

이 기계 말이죠 따듯하게 만들면 좋지 않겠어요?

처음 본 간호사에게 한마디 한 순간 손바닥이 짝 마주쳤다

두 마리 청개구리 손바닥을 짝 마주치듯 맞아요, 맞아!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니깐요. 자요, 어서요, 하이 파이브!


- 시집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문학과지성사, 2012)

 

펼친 부분 접기 ▲

내가 산부인과 의사'라면 벽에다가 좋은 마감재'를 사용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 비용을 천정 마감재에 사용했을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아본 여성들은 모두 공감하리라. 시집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 에서 김선우 시인'은 산부인과 진찰실'에서 " 차고 섬뜩한 검사기계가 나를 밀고 들어올 때 / 세계사가 남성의 역사 " 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 여자가 만들었다면 이 기계는 따듯해졌을 텐데 / 최소한 예열 정도는 되게 만들었을 텐데 / 그리 어려운 기술도 아닐 텐데 " 말이다. 출산의 공간인 산부인과는 정작 여성을 위한 배려가 없다.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진찰대에 누워 30분 정도만 천정을 바라보았다면 이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산부인과에 다녀본 경험이 있는 아내에게 물어보았다면 " 차고 거만한 기계의 움직임 " 이 불쾌하다는 정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일 텐데도 산부인과는 여전히 여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부족한 공간이다. < 바닥 > 을 경험하지 못한 자가 < 천정 > 을 볼 턱이 없다. 여성이 남성보다 인간적인 이유는 바닥에서 뒹굴며 고통을 이겨낸 경험이 남성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만약에 당신이 바닥의 고통에 대해 말을 했을 때,  애인이 군대 유격장에서 뒹군 경험을 빗대어 그 고통을 공유하려고 한다면 그런 남자와는 헤어지는 편이 낫다. < 측은지심 > 은 < 역지사지' > 에서 나온다. 바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닥이 되어야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인간적이다.

괴테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언젠가 여성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개인적으로 괴테 문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말한 이 경구는 좋아한다. 바닥에서 뒹굴며 고통을 참아야 하는 산모를 위해서 희멀건 천정에 멋진 그림을 그려넣는 것은 어떨까 ? 천정에 아기 천사'나 구름 위에서 굽어보시는 자상한 성모 마리아'를  그려넣었다면 진료실 침대에 누운 여성들은 부끄럽고 떨리는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병원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산모의 눈높이에서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섬세한 의사라면 훌륭한 의사이니 산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지 않을까 ? 산부인과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산부인과에 갈 때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 팬티 > 가 아니라 < 양말' > 이다.

산모들은 팬티를 벗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에서 진찰실에 눕게 되니 정작 중요한 것은 양말이다. 의사는 발 거치대에 올려진 양말을 본다. 그러니 양말 바닥에 밥풀이 짓눌려 있는 상태로 산부인과를 찾지는 말자. 그렇다면 바닥에 신경을 써야 할 병원은 어디일까 ? 대장 항문과'다. 산부인과의 반대말이 대장 항문과'이다. 산부인과 환자는 천정을 보고 대장항문 클리닉을 찾는 치질 환자는 바닥을 본다. 바닥에 미키마우스 그림이라도 그려져 있다면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 늬낌 아니깐 ! 치질 전문 병원을 방문하던 날,  나는 새벽 일찍 목욕탕에 가서 하루 종일 엉덩이만 닦았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 성정머리 없는 놈들, 너희들도 대장 항문 클리닉 한 번 가봐라 ! " ○○○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오, 아름다운 항문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 보기 드문 국화 무늬'입니다. "  국화 무늬에 위안을 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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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9-23 0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정말... ㅎㅎ 이 글 산부인과, 대장항문과 종사자들이 꼭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3 11:28   좋아요 0 | URL
치과 천정에 미키마우스 그림 좀 그려넣옸으면 좋겠어요.
애들이 보면 울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새벽 님 정말 잠이 없으시군요. ㅎㅎㅎ.

엄동 2013-09-2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워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공포를 위로하며

슬며시 손내미는 아기천사와 미키마우스라. 우앙굿


산부인과에도 대장항문과에도

여지껏 누워보질 못했지만.

매우 귀여운 생각이십니다 ㅎㅎ


명절연휴 후 후폭풍이 센 오전입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얼마나 오늘이 싫던지 아후우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3 11:27   좋아요 0 | URL
설한 님 오셨군요. 뭐.... 대장항문과는 바닥에 반드시 미기마우스가 그려져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삭막하던지......
사실 산부인과는 여성 중심적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남성 중심적 디자인으로 가득합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모두 지긋지긋한 하루가 되겠군요...
연휴 길면 좋을 것도 없어요..ㅎㅎ

잉크냄새 2013-09-2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정에 형광 별자리를 붙여야지 생각은 했는데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군요.

천정과 바닥의 인테리어는 멋진 발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3 15:55   좋아요 0 | URL
형광 별자리... ㅎㅎㅎㅎㅎ. 한때 유행하기도 했죠. ㅎㅎㅎㅎㅎㅎ.

J 2013-09-2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형광 별자리 만드는 걸 실제 실행하기도 했는데, 큰 곰자리, 작은곰자리, 백조자리, 독수리자리, 쌍둥이자리 까지 정확하게 모두 방천장에 있기를 원했었지요. 그렇게 욜리 팔아파하며 삼일동안 만들고나서 불을 딱 끄고 자리에 누우니 지독히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별의 자세한 위치가 보이지 않았어요. 안경을 써야만 보였지요. 잘 때 안경쓰고 잠을 자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사서개고생이었다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4 15:24   좋아요 0 | URL
가람 님은 워낙 별자리에 관심이 있으시니 천정에 형광 별자리가 잘 어울립니다.
저도 어느 집 갔더니 형광 별자리를 했더라고요.
근데.... 지저분하더이다. 별은 하늘에서 봐야지 천정에서 보면 안 됨...ㅎㅎ

히히 2013-09-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옛날(유년기) 살던 집엔 천정 중앙에 50x50cm의 아크릴(?)창이 있었어요.
아마도 채광때문에 만든 모양인데
저에게는 그 목적과 상관없이
때론 조심스럽게 때론 파닥거리던 빗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흐릿하여 별구경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다음에 집을 지을 때 저의 추억을 주문하였으니
신랑이 소홀히 넘기진 않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4 15:26   좋아요 0 | URL
신기하군요. 살다살다 그런 집은 처음 보는데요.
가끔 멋진인테리어 집 소개할 때 언덕에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서 종종 그런 구조를 보는데... 아마 전 주인이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9-24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계하니 우리 어머니 생각납니다. 집에 가면 온 방에 시계가 있고, 심지어 큰방에 시계가 2개가 있습니다. 시계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탁상시계의 쨰각거림이 싫고, 전자시계의 붉은 빛이 번쩍이는 것도 싫어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핸드폰 알람 정도입니다. 시계에 너무 집착하면 시간에 집착하게 되니 말이죠. 안 그래도 조급증에 성격이 불같읁데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5 15:34   좋아요 0 | URL
시계가 온 방에 있다라..... 제 집에는 시계가 없습니다. 탁상 시게가 있을 뿐...
천정에 달아놓았던 시계 이야기'도 이미 오래 전 이야기... 방엔 각각 탁상 시계가 있을 뿐입니다.
요즘 논문 쓰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건투를 비니다...

응화 2013-09-2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과 바닥, 그리고 천정에 대한 고민은 아마
유럽의 성당들을 인테리어하던 건축분야의 마에스트로들이 가장 많이 하지 않았을까요.
르네상스... 낭만과 지독함이 공존하지만 실용성보다 아름다움의 중요함을 알았던 시대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5 15:36   좋아요 0 | URL
고딕 성당 그림을 보고 싶군요... 천정 높이 그려진 거 보면 느낌이 다르겠죠 ?
종이책에 인쇄된 거 말고 진짜 가서 보면 웅장할 것 같습니다.
빛과 높이가 만들어낸 신성함이 묘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