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상처 입은 자'의 몫이다.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 모두 다 예쁜 말들 中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한글을 맹가논 이후 " 용비어천가 " 는 꾸준히 나왔다. 가장 아름다운 미문으로 손꼽히는 용비어천가는 서정주 시인이 전두환 각하 56회 탄신일'에 쏘아올린 < 처음으로 > 가 될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강철 군화'로 백성을 짓밟은 동토의 시대'였다. 전두환 생일'이라고 하면 곧바로 공안부로 끌려갈 것 같은 시대에 쫄지 않을 문인이 누가 있을쏘만.... 이 정도면 < 도 > 가 지나쳐 레,미,파,솔,라,시'가 된다. 서정주가 두환이에게 "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 라고 찬탄하는 대목에서는 시인의 과대망상'이 읽힌다. 어쩌면 시인은 "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든 신이여 " 라고 썼다가 스스로 생각해도 아부의 화룡점정'인 것 같아서 " 만드신 이여 " 라고 고쳤을 것이 분명하다. 조병화 시인도 서정주 못지 않다. 아부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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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서정주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조병화
...온 국민과 더불어 경축하는
이 새 출발
국운이여! 영원하여라
청렴결백한 통치자
참신과감한 통치자
이념투철한 통치자
정의부동한 통치자
인품온화한 통치자
애국애족 사랑의 통치자
........
이 새로운 영토
오, 통치자여! 그 힘 막강하여라
아, 이 새로운 영토
이 출발
신념이여, 부동불굴하여라.... (80년 8월 28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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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문학평론가 이태동'도 잘못된 선례를 남긴 선배를 따라한 모양이다. 그가 박근혜 각하'가 쓴 생활 에세이'에 부쳐 쓴 < 바른 것이 지혜이다 > 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박근혜의 수필은 우리 수필 문단에서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 수필과는 전혀 다른 수신에 관한 에세이로서 모럴리스트인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 ...... ) 실로 그의 에세이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
- 바른 것이 지혜이다 중 발췌
피식, 웃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대통령에게 몽테뉴와 베이컨의 전통을 잇는 적자'라니 ! 서구 문명을 우위에 두고 그 대상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음에 대해 감격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몽골리안 열등감'이다. 흥선대원군이었다면 따귀'를 때렸을 것이다. 차라리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의 뒤를 잇는 문장가라고 해야 되는 것 아닐까 ? 그리고 평소 바른 문장에 대한 고민을 했더라면 퇴고할 때 " 그의 에세이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삶에... " 에서 조사 < ~ 의 > 가 지나치게 반복되는 문장에 대해 손을 보았을 것이다. 가급적이면 문장에서 중복되는 요소는 피하는 것이 좋다. 이태동 할배 ! 이래저래 막, 이래.... 웃습니더 ! " 또
"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 " 고 했을 때에는 문득 제주 은갈치가 생각나서 "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제주 갈치와 같다 " 로 고쳐 읽고는 낄낄거렸다. 그 옛날, 정약전은 섬 마을 아이들에게 文을 (가르쳐)주고 魚를 얻었다면, 이태동은 文을 주는 대신 무엇을 얻고 싶었을까 ? 은갈치와 먹갈치'가 있다. 종이 다른 갈치'가 아니다. 같은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난 놈들이다. 다만 어떻게 잡히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은갈치는 어부가 던진 낚시에 걸려서 바로 잡히기에 은은한 은빛 비늘이 그대로 살아있지만, 먹갈치는 그물에 걸려서 살려고 그물 안에서 발버둥치다가 비늘이 다 떨어져나간 상태로 잡힌다.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으니 속은 까맣게 탔으리라 ! 그래서 먹갈치'이다.
이태동이 한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쓴 문장이 은은히 빛나는 진주이거나 은갈치 같다면 그것을 칭찬하기에 앞서 부끄러워 해야 한다. 곱게, 곱게, 곱게 자랐다는 말이 아닌가 ! 우리는 구중궁궐 속 공주'를 원하지 않는다. 아픔을 공유한, 그물에 갇힌 적이 있어서 < 멍 > 이 든 서민의 팍팍한 삶을 알고 있는, 속이 까맣게 탄 경험이 있는,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 은빛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옅은 먹빛처럼 투박한 대통령을 원한다. 마을이 가까운 곳에서 자란 나무일수록 그 나무엔 흠집이 많다고 한다. 그 나무는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요,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나뭇가지가 꺾이고 기둥이 긁힌, 상처뿐인 영광이지만, 이 치열한 흉터에 대하여 누가 흉볼 것인가 !
콜린 윌슨의 < 아웃사이더 > 같은 뛰어난 평론집'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대한민국 문학 평론계가 지나치게 권력지향적이어서 그렇다. 이태동이 보기에는 박근혜가 쓴 수필'이 훌륭한 글'일 수는 있다.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말이란 상황에 따라서 < 아 > 다르고 < 어 > 다른 법 아닌가 ? 몽테뉴에 버금가는 수필 문학을 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대통령 당선 후 몰아서) 읽었다는 이태동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그는 성실하지 못한 평론가'다. 그가 피천득 수필을 비판하면서 " 과공(過恭)이 비례( 非禮) 인 것처럼, 과찬도 비례 " 라고 지적한 표현을 그대로 이태동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칭찬이 과하면 실례'가 된다. 이태동에게 있어서 올해의 발견이 " 박근혜 수필 " 이라면, 나에게 있어서 올해의 발견은 " 이태동 평론 " 이다.
하여튼 대한민국 평론가들이여 ! 먹갈치, 싸다고 비웃지 마라. 당신은 언제 단 한번이라도 치열하게 문장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던가 ! 내 몸이 너무 성한 자가 쓴 글은 생기가 없다. 글은 상처 입은 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