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고릴라 - 우리의 일상과 인생을 바꾸는 비밀의 실체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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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을 믿지 마세요.

 

 

< 보이지 않는 고릴라 - 심리학 실험 > 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심리학 전공이 아니더라도 교양 수업'에서 자주 언급되는 심리학 실험'이니깐 말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모니터에는 흰 옷을 입은 팀과 검은 옷을 입은 팀이 섞여서 같은 팀'에게 농구공을 주고받는다. 이때 흰 옷을 입은 팀이 주고받은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면 되는 것이다. ( 내 말이 아리송한 사람은 당장 네이버로 달려가서 < 보이지 않는 고릴라 > 를 입력하면 동영상이 나오니 참고하면 된다. ) 그런데 함정'이 하나 있다. 패스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고릴라가 나와서 춤을 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가 이 실험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고릴라 ?! 웬 고릴라 ?

 

농구공'에 정신이 팔린 우리는 농구공 만을 쫒느라 정작 모니터 중간에 나타나서 킹콩 흉내를 냈던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실험을 진행한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는 이 유명한 실험'을 통해서 인간의 인지 능력'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에 대해서 통쾌하게 증명한다. 이 책은 이러한 불안전한 인지 능력에 의한 < 착각 > 을 다룬다. 결국 내용은 " 인간이란 꽤나 멍청한 존재야, 낄낄낄 ! " 이다. 이런 식의 조롱, 좋다. 그래, 인간은 멍청하지. 암, 그렇고 말고 ! 기대를 잔뜩 가지고 이 책'을 펼쳤으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총 6장으로 이루어진 구성 가운데 1장 < 주의력 착각 " 제가 봤다고 생각합니다 ! " > 를 읽다가 몇 번이나 책을 덮을까, 생각했다.

 

< 보이지 않는 고릴라 > 실험은 매우 독창적이고 창의적인지는 몰라도 이 책 < 보이지 않는 고릴라 > 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자화자찬도 어느 정도껏 해야 듣기 좋은데, 지나쳐서 민망할 정도'다. 1장'은 시작부터 " 고릴라 실험 " 이 얼마나 유명한가에 집중한다. ① 이 실험은 심리학 전반에 걸쳐 가장 폭넓게 입증되고 논의되는 연구, 라거나 ② 2004년 심리학 부문 이그노벨상을 수상했고, ③ 텔레비젼 시리즈 csi 에서는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로 소개되었다는 식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쓴 글치고 좋은 느낌'을 경험한 적이 없던 터라 무릎을 탁 치며 아, 했다. 우, 했다. 오, 오오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글 솜씨'가 형편없는 거라. 보석 아저씨 ( 재래미 다이아몬드 ) 가 쓴 책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다. 다 아는 내용'을 마치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인간이란 어디서 다 주워 듣는 습속이 있는 법 아닌가 ? 영화 평론가 로저 애버트 옹'은 < 쉰들러 리스트 > 에 대한 짧은 감상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스필버그)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수백만의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방식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 글쓴이는 아무래도 스필버그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 착각 > 중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 추적 60 > 제작진 앞으로 제보 한 통이 도착한다. 제보자 사연인 즉, 억울한 누명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불알 친구 셋'이서 차를 몰고가다가 1명은 사망하고 2명은 중상을 입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문제는 사고 당시 자신은 조수석에 있었는데 의식이 깨어 병실에서 눈을 떴더니 자신이 운전자'가 되어 있더란 기막한 내용이었다. 제보자는 억울해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친했던 친구2가 사망했는데 그 원인 제공자'가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 그그그그러니깐 말이죠. 옆에 있던 만근이 새끼'가 운전해 놓고는 내가 운전했다고 거짓말을 한 겁니다. 어, 어어어억울해서 잠을 못 자겠습니다 !

 

추적 60분 제작진'은 이 사내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사고 당시 목격자와 119 구조대원'을 찾아나서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다. 의견은 분분했으나 대체로 제보자의 말'이 맞다는 진술이 쏟아졌다. 제보자 말처럼 사고 당시 차 조수석에는 제보자'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미 2년 전 사고'라 증거가 없었다.  제작진은 제보자가 가해자'라고 지목한 친구1'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데 뭔가 의심스럽다. 당당하지 못하고 거짓말하는 느낌이 강하게 와닿았다. 횡설수설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만근이, 이 나쁜 자식 !  프로그램 < 추적 60분 > 은 방영 57분까지는 거의 제보자 진술'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그가 한 말은 구구절절 진실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마지막 3분'을 남겨놓고 거대한 반전이 생긴다. 어렵사리 사고 당시 사진'이 발견된 것이다. 놀랍게도 사진 속 조수석에는 제보자가 아니라 친구1'이 타고 있었고, 운전석에는 제보자가 타고 있었다. 제보자가 사고 가해자'였다.  제작진도 당황한 눈치였다. 결국 제보자'가 그토록 진실'을 알고 싶어했던 부분은 자신이 가해자'라는 팩트'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  수습이 안 될 땐 정신과 의사'가 등장하여 정리를 하면 된다. 정신과 의사'가 내린 결론은 < 기억 조작 > 이었다.  제보자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제보자의 뇌'가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 정보를 흘린 것이었다. 뒷자석에 타고 있던 가장 친한 친구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제보자는 결국 기억을 조작해서라도 그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추적 60분'은 그렇게 끝난다. 기막힌 반전으로 마무리한 채 말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온통 수상한 것투성이'다. 뇌'는 자신의 숙주인 주인에게 유리하도록 기억을 저장하는 버릇이 있다. < 뇌 > 입장에서 보면 숙주인 < 주인 > 에게 불리한 진실'로부터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어떤 < 확신 > 에는 " 정치적 입장 " 이 반영되기 쉽다. 백인우월주의자가 목격자인 경우에는 백인과 흑인 용의자 중 흑인'을 지목할 경우가 높다. 어두컴컴한 밤에 목격한 것이라고는 겨울 점퍼를 뒤집어쓴 범인의 그림자가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최근의 NLL 논란'도 이와 비슷하다. 팩트'는 어떻게 나열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팩트'가 된다. 인간은 몽타쥬 이론의 대가'들이다.

 

 

 

 

 

+

아이가 실수로 도자기'를 깼을 때, 아이들은 종종 거짓말을 한다. 이럴 때 부모가 가장 흔히 하는 말은 "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돼도 거짓말하는 것은 용서 못한다. " 이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이다. 부모는 아이가 잘못을 거짓으로 은폐하려고 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냥 잘못을 저지른 행위 자체에 대해 화가 난 것뿐이다. 그러니깐 도자기'를 깨놓고서는 안 깼다고 우기는 아이의 거짓말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깬 것 자체'에 화가 났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 아이의 거짓말 > 에 화가 났다고 말하는 이유는 실수를 가지고 화를 내면 뭔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부모는 아이에게 "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돼도 거짓말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결국 부모 스스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꼴이다. 부모는 아이'를 훈계해야 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른은 아이'를 훈계할 만큼 훌륭하지는 않다. 그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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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08-3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몽타주 이론의 대가들이다... 아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명언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31 19:07   좋아요 0 | URL
한국인은 특히 에이젠슈타인의 후예입니다.

푸른희망 2013-09-0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내용보다. 말미의 한문장.. 사실 어른은 아이를 훈계할 만큼 훌륭하지 않다. 그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다.. 이 두문장이 가장 와닿네요... 그걸 인정하면 마음이 편할까요? 오히려 더 전전긍긍하게 될까요? 어른이 된다는게 참 어렵다고 생각되는 요즘이라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2 14: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푸른희망 님 ! 어른 또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측면에서 아이의 불완전한 측면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훈계가 아닌 위로' 말입니다. 아이 같은 어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yamoo 2013-09-0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다맨님 의견에 한표!!!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2 14: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야뮤 님 ! 저도 한 표 !

히히 2013-09-02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십 줄에 들어서니 제 기억은 온통 수상한 것 투성입니다.
<뇌>의 충정에 가족들만 억울하게 뒤집어씁답니다.
사멸할 것 같지 않은 심장과 다르게
이놈의 뇌는 유연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히히가 안쓰러워 먼 산 보며 주루룩거리기도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2 14:27   좋아요 0 | URL
전 제 기억'을 잘 믿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그때 그랬잖아, 라고 주장하면
내 기억을 접고 그 사람 기억이 맞다고 말하고는 해요.

그게 여러모로 편하더라고요...

레베랑스 2013-09-0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니 영화 '메멘토'가 떠올라요.
혹시 보셨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8 12:08   좋아요 0 | URL
에이.. 그럼요. 저 메멘토'란 영화 무척 좋아했습니다. 안나수이 님 ! 참... 에티튜드'가 알고 봤더니
발레 용어더군요 ! 그렇죠 ? 발레리나 안나수이 님...

J 2013-09-11 15:36   좋아요 0 | URL
엇 안나수이님^^저도 놀러왔어요

레베랑스 2013-09-28 12:25   좋아요 0 | URL
가람님 여기서 뵙다니~ 반가워요~
근데 전 알라딘에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왜 제가 단 댓글에 답글이 달린건 확인이 힘들죠..?
찾아 찾아 와서 확인을 해야하니.....
아직 기능을 다 파악하지 못했나봐요..잉잉


네 애티튜드가 발레 용어에요.
아라베스크랑 비슷하지만 뒷 다리를 살짝 구부려서 우아하게^^
아름답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8 16: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여긴 답글 알림 기능이 없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일일이 찾아와서 확인해야 합니다.
좀 많이 불편하죠.. 흠흠...

맞아요.아라베스크도 에티튜드도 무용 용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