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다.
< 코 > 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다, 란 상투어'를 좋아한다. 절묘하다. " 비뚜름하다 " 는 코와 연결이 될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 눈이 비뚤어지게... " 라거나 " 입이 비뚤어지게... " 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 눈 > 은 " 사납다 " 거나 " 흘기다 " 란 단어와 어울리고, < 입 > 은 " 틀어지다 " 와 어울린다. 같은 이유로 < 코가 사납다 > 거나 < 코가 틀어지다 > 는 뭔가 맹숭맹숭하다. 곰곰 생각하는 지랄'이 도져서, 나는 어제 술을 마시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왜, 술을 마시면 코가 비뚤어질까 ? ( 비뚤어지게 보이는 것일까 ) 일리 있는 표현일까 ?
생각해 보니, 코는 < 얼굴의 중심 > 이다. 그리고 가장 돌출된 부분이다. 개인적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제일 먼저 상대방 코'가 보인다. 관심 있게 보는 부위가 아니라 내 시각적 기능은 기계적으로 코에 포커스'를 잡는다. 내 눈에서 발사된 포커스 아이콘은 코에 붙는다. 아이코 !! 그러니까 코는 중심 가운데에서도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다 > 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비뚤어지다'라는 단어는 "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쏠리다. " 라는 뜻인데 이 말은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결국 < 코 > 는 술에 취해서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는 꼴'을 표현하기 위해서 간택된 것이다. 누가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절묘한 문장력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뜬금없이 < 비뚤어진 코 > 에 대해 장광설을 펼친 이유는 내가 어제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술을 마시다가도 코가 비뚤어졌을까 봐 화장실 거울'을 유심히 볼 정도였다. 1차 - 아직은 괜찮군 ! 2차 - 아직은 괜찮군 ! 3차 - 아직은... 아, 코가 삐둘어졌다 ! 문제는 새벽에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는 블로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 결혼합시다 ! " 라는 덧글'을 남겼다는 것. 맙소사 !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으나 서른 명이 넘는 것 같았다. 이만저만 팔만이 아니다. 덧글 테러를 당한 분 중에는, 아.... 남성'들도 다수 있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 이 자리를 빌어 사과 말씀 올린다. 내가 핸드폰을 없앤 이유가 술만 마시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못된 버릇 때문이었다. 입력된 번호 순서대로 전화를 거는 것이다. 이 모습이 꼴도 보기 싫어서 핸드폰을 없애버린 것인데 이 버릇이 교묘하게 덧글 테러'로 이어졌다. 아, 진짜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 내가 덧글로 프로포즈를 한 명단에는 50대 주부'도 있고 60대 할아버지도 있다. 아, 아아아아.....
앞으로는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면 안 될 것 같다. 어제 저지른 흔적들을 찾아 지우는 과정에서 이상한 글도 발견했다. 메모장에 쓴 글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과 같다.
널 좋아해서
난 종로에서
온종일 서서
널 기다렸어
온종일 서서
비가 내렸어
라임을 맞춘 것을 보면 노래 가사 같기도 하다. 술에 취하면 래퍼'가 될 욕심으로 랩 가사'를 쓰는 버릇이 있으니 말이다. 라임도 적당히 넣어야지 운이 사는데 저 문장은 거의 강박적으로 라임을 줬다. 하여튼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사과 말씀 올립니다. 산도적 같은 놈에게 억울하게 첫 프로포즈'를 강탈당한 여성분들에게 사과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충북 음성에 사시는 60대 할아버지 죄송해요. 저 게이는 아닙니다 ! 거듭 거듭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