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한국 사회.
나는 경상도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편이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모님 고향은 충남과 충북 출신이시지만 그렇다고 내가 국가에서 발급하는 주민 번호에 충청도를 의미하는 지역 번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서대문 ○○ 조산원 출신'이다. 나를 담당한 산파 ○○○ 씨는 2840명을 받았고 그 가운데 284명은 사산이거나 돌을 지나지도 못하고 죽었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예 ! " 당시 젊은 조산원이었던 그녀는 막 태어난 내 발목을 잡아 거꾸로 세운 후 손으로 엉덩이를 때리며 엄마에게 말했다. 그 후 나는 그 조산원이 쓰던 말투가 대구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엄마는 힘겹게 말했다. " 고마워유 ! "
내가 만약에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 자유롭게 출생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경상도 사람으로 당당하게 태어나고 싶다. 이왕이면 대구 사람으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랄하게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타 지역 사람이 경상도 비판'을 하면 지역 갈등을 조장한다고 하니 이럴 바엔 차라리 경상도 대구 사람으로 태어나서 신나게 내 출생지'에 대한 빅엿'을 날리고 싶다. 이 글 서두를 읽고서 곰곰생각하는발 씨의 신비로운 성장 스토리'라고 생각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유감을 표한다.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정치 이야기'이다. 정치인이 청와대에서 축구 찬 얘기하려다가 참는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라고 묻는다면 지금 상황을 보면 no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각하가 그 사실을 증명했고, 지금은 국정원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이토록 뻔한 증거들 앞에서도 발뺌을 하며 당당하게 소리치는 것을 보면 민주주의'는 실종된 것 같다. 어제 뉴스'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모 시립소년소녀 합창단 단원들이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공연을 했다고 해서 책임을 물어 지휘자를 중징계 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였다. 옷을 자유롭게 입을 자유마저 없다는 것인가 ? 그런 식의 논리라면 총'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은 무기 소지죄'로 다스려야 하고, 사탄이 그려진 헤비메탈 옷은 사이비 종교 유포죄'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
대한민국은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라는 한탄을 모 알라디너 블로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좋은 소리'가 아니다. 비아냥거리는 소리'다.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종북 좌파'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덮으니 아예 북한이 망하고 통일이 되면 더 이상 종북 좌파들이 알전구 반지하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따위'로 변명은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새누리'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 사초'를 허락없이 관람한 ○○○은 여전히 다음 선거에서도 당당히 당선되어 갑을 대표할 것이 분명하다. 갑갑하다. 대구는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되니 대구가 지역구인 당신은 당선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참 좋겠다. 이 꺼지지 않는 철옹성'은 민주화를 막는 장벽이다.
단도직입적을 고백하자. 나는 경상도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대구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태도가 일반화의 오류'라는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답답해서 하는 소리이다. 사초를 자기 득에 따라 열람을 하고 그것을 선거에 이용한 인물들이 다음 선거에서도 당당하게 등장할 생각을 하니 아찔해서 해본 소리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파시즘에 가까운 보수적 색체'를 드리우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숨통이 막혀서 숨 쉬기가 막막하다. 하지만 희망적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젊은 대구 출신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아버지 세대'가 가진 가부장적 태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인다. 끼리끼리 모인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균열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 계급 > 이란 단어를 불온'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니 계급 투표가 이루어질 리가 없다.
그들이 지지하는 동종의 계통, 계보, 계열'은 < 군사부일체 > 라는 이상한 혈맹'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혈연은 종종 혈맹'이라는 이름으로 뭉치지만 대부분 이러한 유사 혈연'은 지하 세계를 지배하는 가계도'다. 乙은 乙을 지지하고, 甲은 甲을 지지하는 것이 계급 투표인데 엉뚱하게 乙은 사이비 계통, 계보, 계열인 임금과 어르신과 아버지'를 지지한다. 계급 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황새가 뱁새들 노는 곳에 와서 어울리면 겸손이 되지만 뱁새가 황새'라 착각하고 황새 꽁무니 따라다니다가는 가랑이 찢어지는 법이다. 뱁새는 뱁새를 지지하고, 황새는 황새를 지지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계급 투표를 하지 않고 사이비 혈맹 투표를 하는 이유에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군사부일체로 대표되는 정치 기득권'은 집요하게 색깔'을 건드린다. 새누리가 주장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 적은 늘 내부에 있다. " 는 주장이다. 그들은 정체를 숨긴 채 암약하는 존재가 된다. 색깔이 다른 놈은 색출해야 한다. 주사파'는 좋은 먹잇감'이다. 복지를 외치면 종북 세력이 된다. 박정희 이전 시대가 적은 외부에 있다는 반공 철학'이라면, 지금은 적은 내부에 있다는 음모 이론을 믿는다. 이 기묘한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적 구별법은 묘하게 헐리우드 공포 영화를 닮았다.50년대 헐리우드 공포 영화는 항상 적은 외부'에서 왔다. 지구를 습격하는 것은 화성인이 아니었던가 ! < 그들은 외부에서 왔다 > 라는 헐리우드 B급 오락 영화 제목은 그 사실을 명확히 한다. 소련으로 대표되는 외계인(화성인)은 늘 외부에서 온 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조는 바뀌기 시작한다. 돈 시겔의 < 육체 강탈자의 침입 > 은 적은 내부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외계 괴물들은 인간의 몸 속에서 기생한다. 그러니깐 나를 위협하는 적은 더 이상 우주선을 타고 온 화성인이 아니라 이웃집 남자이거나 여자'다. 평범한 이웃이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피부를 찢고는 기어나와 공격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적은 지구인 모두가 힘을 합쳐 싸워야 하는 대상에서 이웃를 수상한 동태를 감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웃 행세를 하지만 그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이다. 모든 서스펜스 영화는 사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장르'다. 가장 믿을 만한 놈이 범인이다. 이로써 < 적은 내부에 있다 > 는 서사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 영화는 아무도 믿지 마라, 라고 말한다. 믿을 놈은 나밖에 없다. 서스펜스 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놈은 두 가지 부류'이다. 진짜 악당이거나 사랑하는 연인이거나.
대한민국 사회는 < 육체 강탈자의 침입 > 과 유사하다. 적은 내부에 있다. < 사람 탈을 쓴 외계 괴물은 누구인가 > 는 < 사람 탈을 쓴 종북 세력은 누구인가 > 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종종 낸시 랭이 종북 세력이 되기도 한다. 새누리로 대표되는 보수는 이 짓을 참 잘한다. 선수'다. 불리하다 싶으면 노무현은 육체 강탈자'가 된다. 반지하 알전구 세력의 우두머리가 된다.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가장 명쾌한 해답은 우울증이다. 한국 사회는 우울증에 걸린 사회다. 우울증이란 자기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할 때 발생하게 되는 조용한 혈투'이다. 대한민국은 적을 내부에 두고 싸운다. 김수환 추기경이 " 내 탓이오 ! " 라는 운동을 전개했을 때 그는 사회를 읽는 눈이 형편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에게 모든 문제는 자기가 잘못한 결과라고 진단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그럴수록 집단적 우울증'은 깊어진다.
대한민국 사회가 건강을 되찾으려 한다면 " 내 탓이오 ! " 라는 마조흐적 태도가 아니라 " 네 탓이오 ! " 라는 사디즘적 태도가 필요하다. 타자를 향해 분노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타자는 대타자'다. 즉, 군사부일체'를 향한 퍽유'다. 경상도 사람들이 경상도 당을 지지하는 것은 계급 투표가 아니라 사이비 혈맹 투표이다. 새누리를 보수를 대표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제주도 땅 넓이가 태양 둘레보다 넓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