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방멸치와 20대 청춘 乙
멸치도 생선이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생선이 바로 멸치'다. 흔히 볶음용으로 요리하는 실멸치'를 국거리용 멸치'와 다른 종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멸치는 한 종'이다. 그러니깐 실멸치는 다 자란 멸치의 치어'다 ! 크기'가 다르다고 해서 종이 다른 것은 아니란 말이다. 사실 우리는 작고, 볼품없고, 흔해빠진, 이 값 싼 멸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멸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다음은 당신이 멸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오해했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멸치의 최대 수명은 20년 - 40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최대 2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에 의하면 통영 바닷가에서 잡힌 대형 멸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크기가 사람 키를 훌쩍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m50cm'라는 점을 감안해도 대형 사이즈'이다. 작고 볼품없는 乙의 대명사'인 멸치'에게 어울리지 않는 스토리다. 이 대형 멸치 떼'들이 종종 어선'을 공격하기도 한 모양이다. 영국의 해양학자 조지 S 스캇 박사'는 < 멸치의 습속 > 에서 멸치를 치어'일 때는 근해에서 살다가 성어가 되면 심해에서 생활하는 거대 심해 물고기'로 정의한다. 그러니깐 식탁에 오른 모든 멸치'는 모두 멸치 새끼들이다. 우리가 대형 멸치'를 볼 수 없는 이유는 2년생 미만인 치어'를 무분별하게 남획했기 때문이다. 멸치가 어른이 되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잡은 탓이다.
아 !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새롭게 알려진 멸치의 생태'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지식'이 상당히 부족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위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뻥'이기 때문이다. 수명이 40년이고, 길이가 2미터가 넘는 대형 멸치'가 이 세상에 어디 있나 ! 멸치가 어선을 공격해 ? 아이고, 차라리 늑대가 양을 낳았다는 거짓말을 믿어라. 멸치는 다 자라봐야 20센티미터'가 최대다. 아, 정말...... 당신의 습자지'보다 얇은 지식'이란 !
헤르만 헤세'는 < 데미안 > 에서 성장 코드를 < 알에서 나온 새 > 에 비유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고, 알은 세계라고,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헤르만 헤세 같은 대작가가 쓴 문장이니 멋있지, 이 문장을 저잣거리 말'로 번역하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가 될 것이다.
헤세'는 젊은 놈은 고생 직싸게 해도 된다는 말을 저렇게 아름다운 미문으로 환골탈퇴시킨 것이다. 아,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다. 이러한 논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다. 배 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 도 같은 말이요, 눈높이를 낮추고 공장에서 일하라는 각하의 쾌도난마도 초록이 동색이다. 김난도 교수가 쓴 < 아프니깐 청춘이다 > 와 <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도 알고 보면 < 데미안 > 짝퉁이다.
그런데 나는 이 신화'를 믿지 않는다. 청춘은 꼭 아파야 하나 ? 공부는 못해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라고 말하던 어른들이 갑자기 아파야 청춘이다, 라고 번복하면 혼란스럽다. 천 번을 흔들리면 어른이 되나 ? 아니다. 병든 사람이 된다. 서울대 나와서 교양 좀 있는 어른이 이런 식으로 뻥'을 치면 안 된다.
이런 설레발을 믿느니 차라리 대형 멸치說'을 믿는 것이 몸에 더 좋다. 고생은 사서도 해라, 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믿지 마라. 부모들이 귀족이어서 귀하게 자란 귀한 사람이 귀한 대접받는 시대다. 만약 저 철없는 말이 맞다면 고생 없이 귀하게 자란 아이들은 망나니'가 되어야 한다.
김선태 시집 < 살구꽃이 돌아왔다 > 에 수록된 < 독살 > 이라는 아름다운 시'가 있다. 여기서 독살은 원시시대 돌그물을 말하는데 물고기들이 밀물 때 들어와 썰물이 지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놀다가 돌그물에 갇히는 구조다. 이와 비슷한 구조가 바로 죽방림이다. 대나무 그물'이다. 바로 멸치들이 밀물 때 들어와서 신나게 하하호호 웃다가 갇히는 구조'다. 이 장치로 잡은 멸치를 " 죽방멸치 " 라고 한다. 이 죽방멸치'는 다른 방식으로 잡은 멸치'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에 팔린다. 이유는 간단하지 않은가 ? 맛이 좋기 때문이다. 맛만 좋은 것이 아니다. 때깔도 좋다. 좋은 죽방멸치는 주황색이 감돈다. 이 멸치는 머리 떼고 똥 떼고 먹을 필요도 없이 그냥 먹어도 맛있다. 그렇다면 왜 죽방림'에 갇힌 멸치가 일반 멸치'보다 맛이 좋을까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이 멍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선에서 던져진 그물에 잡힌 멸치는 몸이 찢겨지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배에 갇히는 동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길면 길수록 스트레스'는 쌓여간다. 그에 비해 죽방림'이라는 클럽에서 신나게 놀던 멸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짧다. 그물이 아닌 틀채로 살살 걷어올리니 몸에 상처가 없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적다. 비록 죽는 것은 같지만 그 방식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죽방멸치'는 맛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 파랗게 멍든 청춘에게 무릎도 까져 봐야 인생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일까 ? 그렇지 않다. 그물에 걸려 고생한 멸치보다 잡힌 줄도 모르고 놀다가 죽은 죽방 멸치'가 더 맛이 있듯, 고생 없이 자란 아이들의 미래는 더 밝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쌍끌이 그물에 걸려 올려진 멸치'와 같은 운명이다. 그물에 몸이 멍들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높은 파랑 때문에 컴컴한 배 밑바닥 저장고에서 천 번을 흔들린, 불안 때문에 속이 새카맣게 타버린, 그런 바짝 마른 멸치 같다. 천 번을 부대껴도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이나 멸치'나 흔들릴 수록 상한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나무 궤짝에서 천 번을 부대낀 과일은 물러서 썩는다. ( 예외가 있다면 복숭아'다. 양선희 시집 < 그 인연에 울다 > 에 수록된 < 신비하다 > 라는 시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성한 복숭아보다 상한 복숭아 맛이 더 좋고 / 덜 상한 복숭아보다 더 상한 복숭아한테서 / 더 진한 몸내가 난다 " )
이 세상 모든 멍'은 상처일 뿐, 치료제'가 아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꼰대의 황홀한 넋두리 ! 아픈 만큼 골병 든다. 부대끼면 무르고, 무르면 썩는다. 충고는 누구나 하는 법. 나 또한 김난도'에게 한 마디' 하련다. 멸치 똥'을 보라고 말이다. 죽방림에서 잡은 멸치똥은 주황색을 보이는 반면, 천 번을 부대낀 멸치는 속이 새카맣다고 ! 우리 그런 식으로 어린 청춘을 위로하지 말자. 지금 당신이 이 시대의 젊은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겸손한 자위가 아니라 아름답게 분노하는 방식이다. 당신은 하루키'가 아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