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쥴리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가 소환한 사람은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였습니다. 그는 왜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신념은 순진한 착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언어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 추구가 아니라 프레임 구성으로 보았습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 제가 요며칠 이름이 햄버거인지 셀렌버거인지 하는 사람이 쓴 <<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이라는 책에 대하여 쌍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아이 다섯 명 중 한 명은 기후 위기에 대한 악몽을 꾼 적이 있다는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환경론자들이 기후 위기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 설문 조사'를 가지고 다른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80%의 아이들은 극단적 환경론자의 협박에도 존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
즉, 보는 관점(프레임)에 따라서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겁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_ 라고 말하는 순간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 A가 B에게 뜬금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 그리고는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 이 커다란 냉장고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 " B는 제일 먼저 코끼리를 생각하죠.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을 정교하게 구성한 영화가 바로 << 유주얼 서스펙트 >> 입니다. 전설적인 지하 범죄 조직의 두목 카이저 소제는 일종의 코끼리인 셈입니다. 카이저 소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의 머릿속에는 온통 카이저 소제뿐이죠.
그러다 보니 사건의 핵심 용의자라 할 수 있는 5인의 유주얼 서스펙트(사건 용의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은 영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입니다. 다섯 명의 유주얼 서스펙트 중 한 명이 범인이니까요. 하지만 관객은 오로지 카이저 소제'라는 인물이 누구인가 _ 라는 질문에 골몰합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반전 영화의 걸작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안철수가 말했습니다. "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 " 그 순간, 유권자의 머릿속에 안철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 MB 아바타 " 였습니다. 프로이트는 말했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말입니다.
뭐, 어려운 말이 아니에요. 한국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조지 레이코프는 중도층이란 말은 허구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중도층을 " 이중개념주의 소유자(biconceptualism) " 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보수이지만 중도인 척하거나 진보이지만 중도인 척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진보 정치인이 중도 확장을 위해서 오른쪽으로 가는 것은 필패라고 보았습니다.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만약에 안철수가 이 책을 읽었다면 MB아바타라는 둥 극중주의라는 둥, 정신나간 헛소리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정치인이라면 이 책은 필수입니다.
어제 윤석열 부인 김건희(김명신)가 인터뷰에서 " 나는 쥴리가 아니다 " 라고 말했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이었습니다. 닉슨은 티븨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 " 그 순간, 사람들은 닉슨 하면 사기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마찬가지로 김건희가 " 나는 쥴리가 아닙니다 ! " 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김건희 하면 쥴리 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쥴리가 누구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텐프로의 전설적 인물인지 반대 진영에서 만들어낸 허구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쥴리라는 이름은 정치 언어로 둔갑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로 대중에게 소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건희의 쥴리 발언으로 인하여 이제는 저잣거리에서는 떠돌던 이야기가 지상파 방송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민망한 텐프로 서사가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노출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안철수가 MB아바타 발언으로 인생을 종쳤듯이 윤석열은 아내의 쥴리 발언으로 쭁났습니다. 그가 노무현을 흉내 내며 " 제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 " 라고 외쳐도 이미 버스는 떠났습니다. 윤나땡(윤석열 나오면 땡큐)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책 한 권 읽지 않고 등장한 것을 보면 그는 정치판을 장기판으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졸인 거죠. 하지만 여의도 정치인 중에서 자신을 졸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라는 책은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그에게 칼 슈미트, 한나 아렌트, 조르조 아감벤의 정치 철학을 공부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도리도리잼잼 엉덩이 총장 윤석열 씨, 이제 집에서 개나 키우십시오. 소는 제가 키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