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마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ㅡ 허은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
허은실 시인의 < 이마 > 라는 시를 읽다가 문득 빈집에서 나홀로 나흘을 앓다가 서러워서 한 소금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일을, 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고열을 동반한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나흘을 앓았(던 적이 있)다. 혼자 끙끙 앓다가 독거사로 죽는, 그런 사회면 기사가 떠올랐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감기 따위로 죽지 않을 자신감과 감기 따위로 죽어도 아깝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으니까. 그냥...... 끙끙 앓았다. 무료했던, 어느 삼경 즈음. 라디오에서 심야 방송 디제이가 시청자가 보낸 사연을 소개했는데 이민자의 악전고투를 담은 내용이었다. 그녀도 나처럼 머나먼 타관(라디오 속 사연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었다)살이에 지쳐 있었다고. 결혼은 실패하고 사업도 망했으니 부모 볼 면목이 없던 그녀. 빈 방에서 심한 감기로 누워 있었는데...... 죽기로 결심했던 터라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고 그저 우주보다 캄캄한 방에서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다고. 그때였다고 한다, 캄캄한 천장이 스크린이 되어 한국에서 즐겨 먹던 순댓국이 북위 37도 전갈자리 전방 19도에 위치한 sk인공위성 불빛처럼 선연하게 떠올랐던 순간. 죽기로 결심했던 여자는 눅눅한 비린내에 말캉거리는 비계를 떠올리니 침이 고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날, 그녀는 아픈 몸을 추스리고 통장에 남아 있는 잔고를 금성 탈수기처럼 탈탈 털어서 택시를 타고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고. 그리고 따순 국밥 위에 씨뻘건 김치를 얹어 입에 넣는 순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녀에게 인생 음식은 순댓국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몸을 추스리면 순댓국을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1). 오소리감투 듬뿍 넣어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녀처럼 누에고치처럼 둘둘 말던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순댓국을 먹었다. 감기따위로 죽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비로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허기'가 아니라 차갑고 텅빈 마음을 따스하게 녹일, 단순한 온기'였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로 그녀처럼 나 또한 몸이 아프면 순댓국 생각이 난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것은 식욕을 돋우는 음식이 아니라 단순한 온기'였다. < 이마 > 라는 시를 관통하는 서정도 " 단순한 온기 " 다. 앓는 이의 이마를 짚는 행위는 그의 체온을 체크하기 위한 행동이지만 반대로 앓는 이가 타인의 손바닥 온기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레이몬드 카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픈 사람의 이마를 짚는 것은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1)이 된 " 다. 앓는 이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갓 구워서 따스한 빵과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 환대하는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 시인은 마음이 "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 ㅡ " 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어느 " 세밑의 흰 밤 " 을 떠올린다. "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 벙어리처럼 울었 " 던 기억. 타자의 환대도 없이.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캄캄한 밤. 빈집에서 홀로 펄펄 끓는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었던, 춥고 쓸쓸해서 설웁던 그 밤.
1)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몬드 카버 :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는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A Small, Good Thing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은 위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단편소설에는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날 뺑소니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생일이 지나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고객 맞춤 주문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아서 화가 난 빵집 주인이 등장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소한 약속(생일 케이크)을 챙기기에는 아들의 죽음은 거대한 불행이었고, 그 속사정을 알 턱이 없는 빵집 주인은 생일이 지났는데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손님이 미워서 수시로 재촉 전화를 했을 뿐이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한다. " 이제는 스카티(아들 이름)를 잊어버린 모양이군 ! " 한쪽은 아이의 죽음 때문에 혼이 나간 상태이고 한쪽은 상한 케이크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이다. 이 불협화음은 어두컴컴한 터널처럼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빵집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울부짖는 젊은 부부 앞에서 늙은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일단, 사과의 말은 건네지만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며 울고 있는 부부를 어떻게 위로할지는 모른다, 사과와 위로는 다른 말이니까. 그는 부부 앞에 철제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앉게 한 후 따듯한 커피와 갓 구운 롤빵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어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됩니다. 더 있어요. 다 드세요. 먹고 싶은 만큼 드세요.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 있으니...... " 극심한 고통 때문에 며칠 동안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던 부부는 비로소 롤빵을 먹기 시작한다. 달콤하고 따스한 빵이다. 아내는 롤빵을 세 조각이나 먹는다. 부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고 거짓 감정도 없이 진심을 다해 사과를 전하는, 위로의 말 없이도 위로를 전하는 빵집 주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소설은 새벽 동 트는 창밖의 풍경을 묘사하며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