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에 대하여
형은 우리집의 맏아들이자 모범생이었다. 말이 좋아 모범생이었지 내가 평균 이하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경우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형은 학년마다 반장 / 부반장이라는 완장은 달고 다녔으니 부모 입장에서 보면 맏아들은 자랑할 만한 아들이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부모는 재화의 상당 부분을 맏아들에게 투자하였다.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별적 복지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은 개나 소나 신는 신발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 나이키 " 신발은 중산층이라는 계급 지표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형이 나이키 신발을 신고 다닐 때 나는 주로 나이킹, 나이킴, 나이스 따위의 짝퉁을 신고 다녔다. 옛 과거를 생각하니 아, 뭐야. 이런 신발 !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형 친구들은 주로 나이키, 아디다스, 프로스펙스, 퓨마, 아식스를 신고 다녔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시장 보세 신발을 신고 다니는 형 친구가 있었다. 나이킹은 나이킹을 알아보는 법. 그 형도 나와 같은 나이킹'이었다. 형 친구들이 대부분 모범생이었던 반면에 그 형은 어리숙하고 순박했으며 어눌했다. 부모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가정을 버리고 행방 불명이 되어서 집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던 형이었다. 형 친구들이 대부분 대기업에 취직하여 넥타이 직장인이 된 반면에 그 형은 중국집 배달 일을 했다. 그 형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몇 번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모두 다 악천후 때 발생한 사고였다. 속도를 늦출 수 없는 데에는 면이 불었다는 이유로 주문을 취소하거나 그 이유로 폭언과 폭력이 뒤따른다는 점. 그리고 배달 시간이 초과될 경우 벌금을 물어야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뇌수술 때문에 머리를 삭발한 형의 모습을 보자 생강처럼 마음이 아렸다1). 한국인은 한국의 배달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것이 플렛폼 배달 노동자의 목숨값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올해에만 택배 노동자 9명이 과로사로 사망했다. 그들은 주6일 하루 평균 16시간을 노동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비가 쏟아진 날은 내 기억에 없었다. 어쩌면 비에 집이 떠내려갈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낀 날이기도 했다. 걱정이 되어 창문을 열고 창밖을 보는데 폭우를 뚫고 오토바이 한 대가 내가 사는 빌라 현관문 앞에서 멈췄다. 얼마나 다급한 일이 있기에 살인 같이 퍼붓는 길을 뚫고 왔을까 ? 내 예상과는 달리 그가 오토바이 보관함에서 꺼낸 것은 치킨이었다. 내가 사는 빌라 입주민 중에 누군가가 음식 배달을 시킨 것이다. 뇌수술 때문에 머리를 삭발했던 형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자 내 입에서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잠시 후, 배달 노동자를 퍼붓는 비를 뚫고 사라졌다. 저렇게 퍼붓는 빗속에서 과연 앞이 보일까 ?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오도방 일을 하는 것은 눈을 감고 달리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던 그 형의 자조섞인 말이 생각났다. 악천후일수록 음식 배달 주문이 폭증한다고 한다. 살기 위해 먹는 일을 두고 욕설을 내뱉기는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그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소비자의 권리에 앞선 염치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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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가 뽑히는 날씨에 치킨을 배달해 먹는 인간이나, 코로나 때문에 잠시 내전을 중단하는 나라도 있는데 이 시국에 의료 파업을 하는 놈이나 그 파업을 지지하는 인간도 염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