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 에 부쳐 :
언니가 돌아왔다
언니가 돌아왔다, 4년 만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 우국 >> 을 표절한 << 무국 >> 으로 문단을 초고추장化시킨 신경숙이 돌아온 것이다. 시~ 원한 소고기 무국, 한 뚝배기 하실래예 ?
신경숙은 출판사 창비를 통해 중편 <<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 를 발표하며 "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중략)...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사과했다. 또한 그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며 제 누추해진 책상을 지킬 것 " 이라며 "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차근차근 글을 쓰고 또 써서 과분한 기대와 관심, 많은 실망과 염려에 대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겠다 " 고 작품 활동 재개를 알렸다. 소설의 모티브는 작년 10월에 병환으로 사망한 허수경 시인'이 모델로 보인다.
소설 속 여성 주인공 < 나 > 는 타국에서 사망한 친구를 추억하며 독일로 떠나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라고 한다. 문득, 궁금한 것 두 가지. 왜 하필 허수경 추모작인가, 왜 하필 소설 속 주인공은 소설가인가 ? 신경숙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이 작품은 소설을 빙자한 입장문'이다. 그러니까 장황하게 나열한 중편 분량의 입장문인 셈이다. 허수경 시인을 모델로 했다는 것은 문단에 애도를 표현함으로써 문단과의 화해를 도모한 것처럼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표절을 애써 "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 " 라고 표현한 대목'이다. 실수라는 것은 고의는 없었으나 본의 아니게 표절이 되어 문단에 폐를 끼쳤다는 소리이다.
어디서 많이 본 애티튜드'이다. 어디서...... 봤더라 ?! 그렇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변명이랍시고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심신 미약을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서 신경숙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 마나 한 심신 미약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어쩌나..... 지금까지 이런 사과는 없었다. 이것은 사과인가, 배인가, 바나나인가 ? 문학을 자신의 변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소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경숙은 꽤나 정치적이다. 신경숙 문학이 이명박근혜 정권 때 화룡점정과 화양연화를 동시에 꽃 피우며 한국문학 원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으나 대충 짐작하자면 : 애들아, 나 그동안 마음고생 졸라 심했어, 엉엉. 뭐, 이런 것이 아닐까 ? 징징거린다고 독자가 당신에게 연민을 느낄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 작품에 대한 남진우의 날카로운 비평이 기대된다. 당신의 소설 제목을 빗대어 조롱하자면 " 창비에 실린 것을 독자는 알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