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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 신경숙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9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 다 리 짝 짝 꿍 :
저녁(밥)이 있는 풍경
우리 집 곁방에 세 든 총각 아저씨는 젊은 문학도'였다. 우편함에는 정기적으로 그에게 발송되는 우편물이 있었는데 하나는 발신처'가 한국문인협회였고 다른 하나는 명문대 동문 회보'였다.
그 우편물로 미루어 볼 때 : 나는 그가 등단은 했으나 책은 아직 출판하지 못한 미생의 작가'가 아니었을까 추측했지만, 그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명문대 출신으로 알랑 드롱 뺨치게 잘생긴 사람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알랑들롱을 알랑가몰랑, 됐고 ! ). 그래서 어머니는 곁방 총각에게 항상 넉넉한 음식을 제공했다. 나는 문단의 최신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음식을 싸 들고 곁방 문을 자주 두드렸고 그는 답례로 언제든지 와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빌려 가라고 권했다. 먹거리와 책거리를 교환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곳에서 한국 문학의 최신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 집 곁방에 세 든 알랑 드롱은 장정일, 공지영, 신경숙이 문단의 스타로 우뚝 발기하기 전부터 그네 - 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장정일의 청년작과 공지영의 처녀작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알랑 드롱 덕분이었다. 신경숙의 << 풍금이 있던 자리 >> 가 수록된 단편 소설집도 알랑 드롱이 추천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내 첫경험은 " 쇼크 " 였다. 그동안 실천 문학이니 참여 문학이니 하며 딱딱한 문장과 서사만 읽다가 ASMR 에 가까운 작게 소곤거리는 예쁜 문장을 접하다 보니 귀르가즘이라는 신천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소녀 감성 충만한 할리퀸의 문학 버전 ?! 하지만 그것은 < 새것 > 이 주는 잠시 즐거운 아우라'였을 뿐 문학적 완성도'에서 오는 웅숭깊은 즐거움은 아니었다.
신경숙의 " 뽀록 " 은 오래가지 못했다. 쉼표( , ) 와 말줄임표 ( ...... ) 를 남발하는 문장을 보면서 점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신경숙 특유의 < 스타일 > 로 발전하지 못하고 < 웅엥웅 > 으로 몰락한 느낌을 받았다. 음향과 녹음 상태가 형편없어서 자막 없이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80년대 싸구려 국내 방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 웅 ~~~~~ 엥 ~~~~~~~~~~ 웅 ~~~~~~~~~~~~~~ 신경숙 소설에서 여성이 스스로 말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기저(基底)는 남성 억압에 의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남성 체제에 쥐새끼처럼 순응한 결과처럼 보여서 신경숙이 창조하시었던 보수적이며 수동적인 여성-들에게 삭힌 홍어로 그네 목구멍을 뻥 뚫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소리 질러 , 시바.
예를 들면 소설 << 외딴 방 >> 에는 전경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친오빠가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한 1인칭 화자인 < 나 > 는 " 나는 정치 같은 건 몰라, 그냥 오빠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는 행복만을 느끼고 싶어 ! " 라고 혼자 독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조선시대 여인네 같은 말투에 크게 당황했다. 국가 폭력 앞에서 갑자기 앞치마 두른 새색시가 되어 뜬금없이 밥 타령을 말하니 어리둥절했다. 그대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오빠의 저녁상을 차리는 것도 모자라 그 행위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 이 소설은 매우 퇴행적인데 민중을 배부르게 먹여만 준다면 독재 따위는 눈 감아 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 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신경숙, 『외딴방』, 245쪽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국가 독재와 국가 폭력에 대한 증오보다 "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를 꽝꽝 얼어버려자기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ㅡ " 과 "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안 그러고 얼어 나오지 않 ㅡ " 는 것이 더 싫다고 고백하는 이 철딱서니 없는 < 퇴행적 고백 > 에 대하여 평론가들은 왜 < 포스트모던 > 하다고 평가했던 것일까 ? 퇴행적 증후와 포스트모던은 정반대의 애티튜드가 아닐까 ? 이 탈정치적 선언 고백은 신경숙 문학의 핵심이다. " 정치의 백치(성) " 야말로 신경숙 문학의 정체성이다. 그녀는 80년대 구로공단 노동 현장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