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써볼까, 저렇게 써볼까,
잠깐의 근황을 써보려는데 이게 뭐라고?
글쓰기 기능이 퇴화되어 짤막한 글도 써지질 않네요.
아마도 시간이 자꾸 흘러 어색함이 쌓여가는 탓도 있겠죠?
아버지의 상주 보호자로 자처한지 석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뇌종양 선고를 받으시고 작년 12월 중순 뇌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올 1월 초에 퇴원하셔서 삼 주간 집에서 조리를 좀 하시다가 1월 말경 다시 입원하여 현재 항암치료 중이십니다. 덕분에 전 줄곧 아버지 곁에서 상주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이행 중이구요.
전문 지식이 없어 그냥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간병을 해드리고 있는데 한 번씩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회의감이 들기도 하구요. 때론 끝이 없어 보이는 막막함이 들 때면 나의 50대를 이렇게 시작할 순 없는데? 솔직히 그런 초조함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병실에서 멍 때리기 일쑤구요. 또 그러다 어느새 잠 자고 있는 저를 발견해버리죠. 병원에서의 하루는 정말 금방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재활치료까지 신청하여 아버지의 치료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더 바쁜 듯 하구요. 까무룩 잠이 든 아빠를 깨워 약 먹을 시간이다, 운동하러 갈 시간이다, 등등 깨우면 번쩍 눈을 뜨긴 하시지만 떡실신이 된 듯한 표정으로 ˝참말로 바빠 죽겠네.˝ 그러시구요. 속으로 아빠를 넘 타이트하게 움직이게 만드나? 뜨끔하지만, 모른 척 하면서 손을 이끌고 나가곤 합니다. 전 상주 보호자니까요.
상주 보호자도 보호자지만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아버지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해야겠다는 맏딸로서의 도에 지나친? 의무감에 사로잡혀 아빠한테 줄곧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합니다.
많이 드셔야 한다.
운동해야 한다.
요즘은 요 두 가지를 입에 달고 살고 있습니다.
‘많이 먹고 운동하기‘ 과제 앞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아빠를 보면서 아, 내가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버려 그동안 많이 안 먹고(입이 짧고), 운동도 하기 싫었던 거구나!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했죠.
항암치료를 받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뇌 쪽의 방사선 치료 때문에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느낌을 받는 아빠는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단어나 문장이 퍼뜩 떠오르지 않아 말이 꼬이고, 발음도 어눌해져 아빠는 계속 두뇌가 퇴화되어가는 당신 모습에 허탈하셔서 말수가 줄어들고 있구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서점에 달려가 실버 뇌훈련 트레이닝 문제집과 실버용 색칠공부 책과 아이들용 퍼즐놀이를 사와서 하루에 조금씩 같이 문제를 풀고, 화투 그림과 과일 그림 색칠하기도 꼬박 꼬박 하고 있어요.
그럼 시간도 잘 갑니다.
처음엔 하기 싫어서 자꾸 머리 아프다고 내팽겨쳐서 애나 어른이나 공부하는 건 정말 싫은 것중 하나인가 보다. 어쩌면 공부하기 싫어 맨날 미루는 것도 내가 아빠를 닮았구나! 또 수긍할 무렵 아빠는 병원 생활이 지겨우셨는지 조금씩 문제를 풀기 시작하여 지금은 거의 다 풀어갑니다.
˝오! 아빠 잘하네요.˝ 계속 칭찬했더니 아빠는 ˝아빠가 이런 건 잘하지.˝.....애나 어른이나 칭찬은 자신감의 원동력이네요.
국민학교 1학년 때 주말엔 늘 아빠 곁에 앉아 교과서를 읽어주시는 걸 듣고, 뒷장의 문제를 함께 풀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젠 제가 아빠의 문제 풀이를 돕고 있습니다. 아빠에게 수업 받던 딸은 중년이 되어 아빠에게 수업을 가르치게 되었네요.
세월 참.....알쏭달쏭하죠?
요즘은 아빠가 주무실 땐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도 조금 생겼습니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새도 없이 하는 것 없이 바빴었죠. 아빠도 곁에서 지켜보면서 왜 그렇게 혼자서 바쁘냐고 좀 쉬라고 늘 얘기하시더군요. 아빠가 조금 기력이 돌아오셨구나! 이젠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구나! 싶어 딸을 생각하는 말 한 마디가 조금 감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의 현시점에 대해 잠깐 생각하며 멍때렸구요.
여자라서 가족들을 돌봄하고 있는 현실은 좀 억울하단 생각이 무지하게 드는 겁니다. 올 해가 지나면 자식들 돌봄이 어느 정도 끝나갈 것 같아 얏호!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돌봄이 다시 시작된 거죠. 끝이 없는 돌봄의 굴레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는 집 안에서 쉼없이 바쁜 제가 조금 안타까웠나 봅니다. 그래서 주절주절 하소연을 했더니 다 듣고 나서는 그래도 자식들 어긋나지 않게 잘 키우지 않았냐고, 지금 네 덕택에 내가 살아있고, 세 가족(두 동생네 가족 포함)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위로해 주시는데 글쎄요? 그닥 큰 위로는 되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래도 딸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알 것 같더군요.
요즘 전공의들의 사직으로 인해 의료진들의 파업 소식 때문에 병실 복도를 걸으면 마음이 무겁고 심란합니다. 정말 급한 환자를 제외하곤 입원 환자를 받질 않으니 비어 있는 병실이 많습니다. 북적하던 병실과 쉼터엔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닥 보이지 않습니다. 3인실에 입원해 있는지라 옆 침대에도 그렇게 입퇴원이 잦아 밤잠을 설치곤 했었는데 지금은 3인실을 1인실처럼 쓰고 있네요. 그래서 조용하게 책을 읽을 시간이 확보되기도 했습니다만, 정작 아파서 병원을 오지 못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 소식을 접할 때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하기도 하구요. 그나마 아빠는 12월에 수술을 받으신 게 다행스런 일이란 생각도 하구요.
빨리 원만하게 모든 게 잘 풀렸으면 싶네요.
요즘은 모든 마음을 다 내려놓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그저 ‘하루‘를 삽니다. 아빠의 병은 완쾌가 어려운 병 중의 하나라 이것 저것 생각하다 보면 답은 없고 마음만 심란해지는터라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자.
그게 요즘 삶의 목표가 되었달까요?
병원에서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오는 걸 지켜보았고 이젠 테라스에 심겨진 매화 나무에 핀 매화꽃을 보고서 봄이 온 걸 깨닫습니다. 올 봄 매화꽃의 개화시기가 열흘인가? 앞당겨졌다고 하더니 병원 안의 매화꽃은 그것보다 훨씬 더 빨리 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다 졌구요.
이젠 병원 내 산책로에 심겨진 벚나무의 꽃이 언제 필지? 기다리게 되네요. 올 해 벚꽃도 2주 정도 일찍 개화할 거라고 하던데.....병원이라도 봄소식은 많이 설레며 기다려집니다.
오랜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는 걸까요?
병원에서도 책 읽기 전 인증샷 찍기 놀이는 계속 하게 되네요.
몇 달 전에 비한다면 지금은 제가 정신을 많이 차렸단 뜻이겠죠? 그땐 아빠랑 둘이서 손 잡고 울기 바빴었는데 지금은 하루 하루 병원생활 지겹다, 병원 밥 지겹다...그러고 있네요.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또 얼마나 바빠질지 그 걱정은 뒤로한 채 현재의 병원에서의 지겨움을 쏟아냅니다.
다음 주 드디어 퇴원한다. 기뻐하고 있었는데 아까 물어보니 아직 일주일은 더 있어야 된다는군요.
장기입원 환자인 아빠는 VIP 환자라고 유난히 애교가 많고 눈이 예쁜 간호사가 농담을 던지고 갔네요.
그래서 책 읽기 전 인증샷 한 번 또 찍고 아빠 주무시는동안 책을 읽습니다. 진도는 빨리 안나가지만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단 생각이 드네요.
오늘 비가 오고 난 후 또 추워진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