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전쟁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1
조 홀드먼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바람이 이렇게 금방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완전판이라니 예전 것과 어떤 점이 차이가 있는 지를 생각하고 보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긴가 민가 싶은 장면도 있었는데 역자 후기가 있으니 아, 그거구나 싶었다. 물론 마지막의 <분리된 전쟁>은 처음 실린 하나의 단편이지만 말이다.

또 한 번 본 이 책은 세세한 점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언짢게 만들었다. 우선 남자 50명, 여자 50명으로 구성된 엘리트 징집법에 의해 징집당한 병사들을 언뜻 보면 남녀평등이란 문제가 확실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의 묘사나 메리게이의 회상 장면을 보면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측면이 있다. 물론 쓰여 진 시기가 70년대고 작가의 생각도 있고 완전한 평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마치 남녀가 자유롭고 평등한 것처럼 묘사하면서 그런 묘한 여운을 준다는 것이 여성을 여전히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또한 여기에서 간과한 완전한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가 있다면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까가 없다. 엘리트 징집법은 이성애자여야 한다는 면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나중의 변화와의 대비를 위해 일부러 작가가 안 썼을 수도 있지만 그 시대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사람들을 은연중에 터부시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잽에서 스트레이트를 날린 셈이다. 문화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넣은 <분리된 전쟁>은 보는 것은 좋지만 차라리 넣지 않았거나 부록처럼 나눴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완벽한 한 작품에 속하는 챕터의 형식이 아니라. 왜냐하면 이 작품의 관점은 끝까지 만델라에게 주어진다. 그 관점이 만델라와 메리게이가 헤어지게 되면서 나중에 메리게이의 관점에서, 아니 메리게이는 어떻게 만델라 없는 동안 지냈나 하는 면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비슷한 시기에 다른 전투에 나선 메리게이의 관점에서 한 단편을 부여한 것이다. 한 작품에서 화자가 처음부터 정해졌는데 무리하게 단편을 작품 안에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독자를 위한 서비스라는 측면에서라면 독립된 부록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말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누구나 한번쯤 읽기를 바라는 작품이고 지금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 중인데 그 상공에 이 책을 뿌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작품을 읽었음에도 여전히 전쟁을 한다는 건 역시 전쟁은 돈이기 때문이다. 그거 이외의 어떤 것은 없다. 아마 어쩌면 우린 전쟁을 막기 위해 마지막에는 이 작품의 결론을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물론 지금도 파괴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고 이해의 결여가 언제나 사라질 수 없는 거라면 동일한 사람들, 즉 클론으로 지구를 채우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바보 같은 전쟁으로 계속 일관할 거라면 말이다. 지구 안에서일 지라도. 그런데 인간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학습한 문화와 생활의 패턴을 바꾸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만델라와 메리게이의 유토피아를 보면...

처음 읽었을 때는 무척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작품인데 다시 한 번 읽으니 조금은 시니컬해진다. 그건 어쩌면 지금이나 이 작품이 쓰여 진 때나, 만델라가 살았던 곳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씁쓸함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희망이란 존재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마리화나가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암담함은 지구의 지금이 어쩌면 미래의 디스토피아의 전조로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ng 2005-12-10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웅....저도 읽으려고 사둔 책인데
어떨까 모르겠어요 ^^

물만두 2005-12-1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작품입니다. 제가 두번을 읽어서 서평을 제대로 못쓴 겁니다 ㅠ.ㅠ;;;

Mephistopheles 2006-01-1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핀 문고에서 나왔을 때 정말 재미있고 심각하게 봤던 작품이였습니다.
스타쉽트루퍼스와 나란히 읽었기 때문에 극과 극을 함께 경험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물만두 2006-01-1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리폰으로 읽고 또 읽었지요. 스타쉽트루퍼스도 읽고요. 그런데 나이와 상황이 책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만들더군요.

가넷 2006-01-2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의미에서 극과 극을 달리는지 궁금하네요... 사놓기는 했는데 아직 읽지는 못해서..-ㅁ-;; 어서 읽어야 될텐데;;

물만두 2006-01-2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로님 함께 읽으시면 알 수 있습니다^^
 
로캐넌의 세계 환상문학전집 5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은 바람의 열두 방향에 등장하는 <샘레이의 목걸이>에서 시작한다. 그때 샘레이가 목걸이를 찾으러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샘레이를 만난 로캐넌이 샘레이의 손자가 영주로 있는 미지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탐사를 간다.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을 받아 그는 혼자만 살아남아 고립되고 그런 이유로 적의 기지를 찾아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영주와 떠난다.
나는 항상 르 귄의 헤인 시리즈는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보여준다고 생각을 했다.
<어둠의 왼손>에서는 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측면을 보여주면 페미니즘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지만 그것보다는 성을 구분하는 것과 구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반된 측면으로 그 책을 읽었다.
<빼앗긴 자들>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측면에서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항상 르 귄은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가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르 귄이 말하고자한 두 가지는 무엇인가하고... 그것은 소통과 단절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라는 종과 인간이 아닌 종... 또는 말을 하는 종과 말하지 않는 종... 나와 비슷한 종과 나와 다른 종... 그들이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 종에서 갈라졌음을 알 수 있는데 소통하는 길이 아닌 단절을 택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사이좋게 지내지도 않는 관계... 로캐넌의 세계는 그런 이들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로캐넌의 세계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다는 것은 소통을 의미하고 다르다는 건 단절을 의미할까. 그건 아니다. 다름에서의 소통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며 그것을 터부시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공존하는 것. 그것이 평화와 함께 멸망하지 않는 길이다.
진흙족이나 피아, 할란 등이 터부만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것만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 세계는 외부에서의 공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바깥 세계를 알건 모르건 간에 말이다.
그건 프롤로그에서 샘레이가 목걸이가 주는 화려함만을 믿고 떠나 자신은 늙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어린 딸이 자신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과 같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행하기 어려운 법인 모양이다. 우리 모두도 멸망의 벼랑 끝에서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책을 백번을 보면 무얼 하나 싶다. 소통하지 못하는 단 한 명으로 인해 단절은 비롯되는 것인 것을...
아쉬움이 있다면 역자가 서문에서 헤인 시리즈의 읽기에 대해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왕 헤인 시리즈를 번역할 생각이었다면 좀 더 공을 들여 <빼앗긴 자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바람의 열 두 방향>, <로캐넌의 세계>, <유배 행성>, <환영 도시>, <어둠의 왼 손> 순으로 번역되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따로 따로 읽어도 좋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역자는 이 작품을 유배와 고립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로캐넌의 입장이 유배와 고립인 것은 맞지만 그것보다는 소통과 단절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곳의 모든 종족이 유배와 고립을 택한 것일까... 그것은 선택되는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처하게 된 상황일 뿐인데 로캐넌 한 인물에 대해서만 치중한다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운명이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지만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 모두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캐넌만이 아닌... 아무리 제목이 로캐넌의 세계일지라도 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키틀즈사우어 2005-07-1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다 샀는데, 바람의 열두방향을 먼저 읽고 읽는 것이 좋은가요?

물만두 2005-07-1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열두 방향 중 헤인 시리즈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들이 이 작품보다 앞이라고 하네요. 특히 이 작품 프롤로그에도 나오지만 샘레이의 목걸이를 장편으로 만든 것이 이 작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바람의 열두방향을 안 사셨다면 그다지 연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리즈라고 해도 워낙 시간 차이가 크거든요. 이건 제 개인적인 바람이라서요. 출판사에 건의사항같은 거구요. 그냥 읽으셔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연결되는 점이 그다지 크지 않거든요.

돌바람 2005-07-13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막히네요. 아무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로캐넌의 세계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물만두 2005-07-13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록~

진주 2005-07-1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세상엔 또 다른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로케넌의 세계>의 만두님 리뷰를 읽은 족속과 안 읽은 족속.
거기엔 또 다시 리뷰를 읽고도 추천을 누른 족속과 안 누른 족속이 있어요 ㅋㅎㅎㅎ
저는 읽고 추천까지하는 人^^

물만두 2005-07-14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 언니 만쉐!!!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SF 작품은 처음 읽는다. 철학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것이 상업적 SF 작품의 창조자와 비상업적 SF 작품의 창조자의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상업적이라는 말은 자본주의적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동구권 출신이기 때문이다. 유물론을 배척하는 환경에서 자라고 배운 작가의 내면적 생각이 SF 작품에도 다분히 담겨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작품이 오히려 영어권 작가의 작품보다 신선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나의 거대한 바다가 생명체인 작은 행성, 그 외의 어떤 생명체도 없는 이상한 행성을 인간은 정복하려 하고 단 하나의 생명체이자 그 행성의 주인인 바다는 저항을 시작한다. 바다는 인간의 생각을 읽고 그들을 향수에 걸리게 만들어 돌아가게 만들려 한다. 아니 처치하려 한다.

솔라리스라고 명명된 우주의 어느 행성. 인간이 보기에 생명체는 없어 보이고 바다만이 생명체로 인식되는데. 그 바다를 과연 인간과 같은 생명체라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과 다른 어떤 존재로 명해야 하는가. 그 바다 같은 것은 인간의 적인가, 동지인가. 그는 파괴적 존재인가, 아니면 우주의 은둔자와 같은 침묵의 존재인가. 인간적이지 않은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우주를 탐험하려 한다. 그리고 무언가 발견하려 한다. 그것을 인간이 규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려고 한다. 인간이 규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아무 것도 아니다. 과연 그럴까... 작가는 우주에 과연 인간만이 대단한 존재로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묻는 듯 하다.

자신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가 미지의 어떤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지금까지 읽어본 SF 작품 중 가장 인간과 우주를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 짧은 머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인간이란 동물은 어떤 것이든 제 것이어야 하는 탐욕 그 자체인가... 이 작품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다. 바다가 전부인 행성을 탐사해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바닷물이라도 쓰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논리도 우습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유용하고 가치 있는 행성은 정복해도 된다는 것인가. 도대체 이웃집을 터는 것과 남의 나라, 남의 행성을 터는 것이 어떻게 다른 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라크에 석유가 없었다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했을까. 우리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지 않았다면 그들이 우리의 독립에 신경이나 썼을까. 그들은 평화와 이라크인들을 독재자의 손에서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했지만 아무 것도 없지만 도움이 절실했던 아프가니스탄은 외면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석유만 있었다면 미국은 즉각 그들 땅을 밟았을 텐데.

우리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영화로도 만든 미국인들이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다니 그들의 아둔함이 지구를 황폐화시키는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그들을 삼켜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바람 2005-07-13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고작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창백한 파란 별로 보인다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만두 2005-07-1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하나도 몰라요...
 
오버 더 호라이즌 환상문학전집 15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환타지 작품은 처음 접한다. 이영도라는 작가는 인지도가 있는 작가라 기대가 컸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는 그나마 환타지 장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 소설에 비한다면 말이다.

이 작품에는 보안관 조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버 더 시리즈 세편과 마법사와 그의 조수가 등장하는 단편 몇 편이 수록되어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 오버 더 네뷸러, 오버 더 미스트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악기 파괴자에게서 악기를 지키는 보안관 조수, 마법사의 마법 전수를 저지하는 보안관 조수, 고양이와 개의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체를 정치적 목적에서 보호하는 보안관 조수 티르와 이파리 보안관이 등장한다.

<반지 전쟁>에서처럼 여러 종족이 등장하고 그들이 어울려 사는 시골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자신의 무술 실력을 숨긴 채 티르는 작은 일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위급한 순간 그의 실력은 발휘되고 마을은 평화로워 진다.

반지 전쟁만큼은 아니었지만 내 머리에 쥐나기에는 충분한 작품이었다. 차라리 내게는 뒤에 나오는 짧은 단편 속의 엉뚱한 마법사와 그의 조수, 그리고 영리한 어린 공주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묵직한 책을 읽다 덮었다, 다시 끝까지 읽어낸 내가 그래도 대견하다.

다른 나라 작가보다 우리나라 작가라서 서평이 더 조심스럽다. 좋아하는 사람은 더 많이 보고 아닌 사람은 이런 책도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티르가 등장하는 작품들만으로 구성을 했더라면 더 깔끔하거나 아님 뒤의 단편들을 따로 단편집으로 묶는 것이 나았겠다 싶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2005-05-3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타지작품은 머리에 쥐날 일 없이 물결치는 대로 상상에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물만두 2005-05-3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타지도 다양하니까요^^

panda78 2005-05-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티르가 등장하는 작품들만 있는 책이었다고 하더군요. 뒤에 단편이 더 추가된 거라고.. 아무래도 뒤의 단편만으로 묶기엔 양이 너무 적다보니, 추가해서 펴 낸 듯 합니다. ^^

물만두 2005-05-3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티르만으로도 책은 충분했는데요^^

마냐 2005-06-0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머리에 쥐난다는게 마음에 드신건지, 아닌지...흐흐.

물만두 2005-06-0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진. 2005-06-0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게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책입니다요.
^^

물만두 2005-06-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파괴된 사나이 - 새번역판 그리폰 북스 6
알프레드 베스터 지음, 김선형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무척 흥미롭다. SF 장르 작품이면서도 추리적 요소도 가미한 독특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래 경찰은 이런 초능력을 가져야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과연 그것이 좋은 일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빅 브라더가 좋지 않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죄를 지은 사람의 기억을 지어 새로운 사람, 그 사람이 지닌 좋은 능력을 사장시키지 않으려는 점은 지금도 배울 만 하다고 느껴진다.
파괴된 사나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가 자신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 태아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다른 인권 침해적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죄수가 형량이나 벌을 선택한다는 것 또한 우스운 일 아닐까... 그런 것은 죄를 짓기 전에 생각했어야 할 문제이리라... 자칫 간과하고 지나칠 수 있었던 작품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미래의 경찰이 초능력자들로 구성된 것도 그렇지만 범죄자를 다루는 방법도 기발하다. 그의 기억을 뇌에서 지워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문제는 있다. 초능력자는 초능력자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인간의 가치관이 더 편협한 쪽으로 기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래가 더 관대하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더 답답해질 수 도 있다. 그것을 <마이너리티리포트>에서도 강조하고 있고 다른 많은 SF 작품에서도 암울하게 그리고 있다.
우리는 모른다. 미래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어떤 미래를 만들게 될지... 하지만 그 미래가 지금보다는 더 합리적이고 좋은 쪽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발을 하면 텔레파시를 하는 초능력은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적 탐구>에서의 결말과 이 작품의 결말이 어떻게 다른지는 좀 더 생각해 보고 싶다. 범죄자를 잠재우는 방법과 범죄자의 기억 모두를 지워버리는 것, 어느 것이 더 잔인한 일일지... 하지만 역시 미래에도 부모와 자식에 대한 정의와 가치관은 변하지 않길 바란다. 아니 더 좋게 발전하길 바란다. 파괴된 사나이의 종말도 어쩌면 그것에 연유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깍두기 2005-05-2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괴된 사나이....저도 언젠간 리뷰를 쓸 겁니다. 언젠간......^^
속도감이 대단하죠? 정말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어요.

물만두 2005-05-2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 재미있죠^^ 근데 타이거 타이거는 조금 실망했어요 ㅠ.ㅠ;;;

돌바람 2005-07-13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8세 때부터 가족이 해체되기를 바랐는데. 가족이 해체되면 가족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저 무서운 애지요.

물만두 2005-07-1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요. 그 나이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가족이 나쁜 쪽으로 비춰지는 건 사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