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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캐넌의 세계 ㅣ 환상문학전집 5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이 작품은 바람의 열두 방향에 등장하는 <샘레이의 목걸이>에서 시작한다. 그때 샘레이가 목걸이를 찾으러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샘레이를 만난 로캐넌이 샘레이의 손자가 영주로 있는 미지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탐사를 간다.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을 받아 그는 혼자만 살아남아 고립되고 그런 이유로 적의 기지를 찾아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영주와 떠난다.
나는 항상 르 귄의 헤인 시리즈는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보여준다고 생각을 했다.
<어둠의 왼손>에서는 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측면을 보여주면 페미니즘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지만 그것보다는 성을 구분하는 것과 구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반된 측면으로 그 책을 읽었다.
<빼앗긴 자들>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측면에서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항상 르 귄은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가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르 귄이 말하고자한 두 가지는 무엇인가하고... 그것은 소통과 단절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라는 종과 인간이 아닌 종... 또는 말을 하는 종과 말하지 않는 종... 나와 비슷한 종과 나와 다른 종... 그들이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 종에서 갈라졌음을 알 수 있는데 소통하는 길이 아닌 단절을 택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사이좋게 지내지도 않는 관계... 로캐넌의 세계는 그런 이들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로캐넌의 세계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다는 것은 소통을 의미하고 다르다는 건 단절을 의미할까. 그건 아니다. 다름에서의 소통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며 그것을 터부시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공존하는 것. 그것이 평화와 함께 멸망하지 않는 길이다.
진흙족이나 피아, 할란 등이 터부만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것만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 세계는 외부에서의 공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바깥 세계를 알건 모르건 간에 말이다.
그건 프롤로그에서 샘레이가 목걸이가 주는 화려함만을 믿고 떠나 자신은 늙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어린 딸이 자신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과 같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행하기 어려운 법인 모양이다. 우리 모두도 멸망의 벼랑 끝에서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책을 백번을 보면 무얼 하나 싶다. 소통하지 못하는 단 한 명으로 인해 단절은 비롯되는 것인 것을...
아쉬움이 있다면 역자가 서문에서 헤인 시리즈의 읽기에 대해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왕 헤인 시리즈를 번역할 생각이었다면 좀 더 공을 들여 <빼앗긴 자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바람의 열 두 방향>, <로캐넌의 세계>, <유배 행성>, <환영 도시>, <어둠의 왼 손> 순으로 번역되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따로 따로 읽어도 좋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역자는 이 작품을 유배와 고립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로캐넌의 입장이 유배와 고립인 것은 맞지만 그것보다는 소통과 단절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곳의 모든 종족이 유배와 고립을 택한 것일까... 그것은 선택되는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처하게 된 상황일 뿐인데 로캐넌 한 인물에 대해서만 치중한다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운명이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지만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 모두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캐넌만이 아닌... 아무리 제목이 로캐넌의 세계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