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잉 인사이드 메피스토(Mephisto) 15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장호연 옮김 / 책세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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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에게 무언가 있다가 사라지면 화를 낸다. 그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끊임없이 왜? 를 되풀이하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법은 없다고 따지게 된다. 누구나 모두 마찬가지다. 빼앗기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데이비드 셀리그는 초능력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능력을 타고 났다. 누군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생각을 읽는 능력으로 그는 세월을 보냈지만 그 능력 때문에 행복하지도 않았고 그 능력을 자기에게 맞게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그에게 저주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다 늙어 마흔이 넘은 그에게 그가 가진 단 하나의 남과 다른 능력이 사라지려 한다. 왜 하필이면 이제야? 그는 혼란스럽고 그래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신을 돌아본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절망감. 나이가 들어 점점 죽음을 향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상실한 젊음에 대한 느낌일 수도 있고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해 보통의 삶조차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도 있고 이상이 망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오는 자괴감일 수도 있다. 그러니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사는 거다. 거기에 더할 말은 필요 없다. 왜 나만? 이라는 질문보다 더 멍청한 질문은 없으니까. 그럼 너 아닌 다른 사람의 상실은 있어도 상관없다는 얘기잖아. 그거 잔인한 생각이다. 위험한 발상이고.

 

그런데 셀리그, 누구나 겪는 일을 개똥철학 펼치듯 한가득 풀어놓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 그렇게 살아. 누구는 그렇게 안사냐고. 저자가 참 마음에 안 든다. SF로 봐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다. 셀리그가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 빼면 SF적인 것은 거의 없다. 이래도 되는 거냐고...

 

다잉 인사이드... 다잉 아웃사이드는 없고?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가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고 그 주변부, 내면이든 외면이든 그것은 각자 알아서 생각하고 만들어 나가면 그뿐이 아닐까 싶다. 너무 냉소적인가? 마지막의 침묵 속에 살아가겠다니 그건 기특한 일이다. 하긴 나이나 지적인 능력 같은 것이 인격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니까.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홍학을 봤다. 홍학이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하더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한 거구나. 홍학, 우리는 솔직히 말하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 태초부터 얼마나 많은 종이 멸종하고 지금도 멸종하고 있는 지 알 수는 없지만 홍학을 본 순간 홍학은 저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중 얼마를 먹는데 할애하고 기타 등등 어쩌구저쩌구를 떠나 그냥 저 붉은 무리가 이 지구에 있다는 사실이 멋있었다.

 

홍학도 그러하니 쓸데없는 지구에서 바퀴벌레만도 못한 인간일망정 그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 거 아닐까. 아시겠습니까? 셀리그씨? 실버버그씨? 이 몸은 그리 생각합니다요. 그리고 사회적인 면은 지금의 미국을 보면 그다지 논하고 싶은 생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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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3-2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만? 에서...나에게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런 진리를 이성으로만 깨우치고 감성으로는 늘...헤매게 되긴 하지만요...
전 늘 님의 리뷰 볼 때...별 숫자부터 헤어봐요,,ㅎㅎㅎ

물만두 2007-03-2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전 늘 누군가 제 옆에서 그럴때마다 그건 너무 뻔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자신이 편해지잖아요^^
별점은 늘 4개 아님 5갠데요^^ㅋㅋㅋ

모딘 2007-03-2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오해도 없고 그로인해 서로 상처주는 일도 없지 않을까하는. 셀리그는 왜 좀더 현명할 수 없었을까요?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위치였을텐데.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할 수 도 있을테고, 그가 원하는 행동을 더 앞서나가 할 수 도 있었을텐데. 상대방의 생각을 그대로 알 수 있다는 것 역시 저주인가 봅니다. 셀리그의 내부로부터 죽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죽어가는 자신의 능력인가, 더이상 타인과의 소통을 포기한 자신의 마음인가하는 점이 말입니다.

늘 물만두님을 스토킹하다 오늘에서야 글을 남기네요. 거의 매일 읽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고요. 건강조심하세요. 날씨가 변덕이 심하네요.

물만두 2007-03-22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님 그게 초능력을 가진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요? 더 가져 더 좋아진다면 불공평한 세상이 더 불공평하잖아요. 셀리그는 어쩌면 작가의 그런 의도를 반영한 인물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밖에 안나가서 날씨는 상관없는데 님은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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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코노라는 멋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독특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단편집이면서 하나로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성의 작품이다.


모두 열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커다란 서랍>이 맨 처음 시작을 장식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작게나마 담아내고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라는 입질이다. 하루타의 일가는 도코노의 역사를 기억하고 자신들만의 서랍에 담고 있는 이들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담고 있는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 하루타는 여행 작가로 위장해서 각지에 흩어지게 된 도코노 일족들을 찾아 모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도코노라는 사실을 잊은 이들에게 기억을 되찾아주고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에 맨 처음을 장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작가가 나중에 하루타 일가만의 이야기를 했어도 좋았겠다고 했지만 그거야 나중에 다시 쓰면 될 일이고. 아니 미리 하루타 일가가 도코노 일족을 찾아다니며 한 명 한 명 찾아내는 작품이 먼저 나왔다면 이 연작은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두 개의 찻종>이 뜬금없이 왜 등장했나 하고 읽으며 의아해했다. 이것도 포석이다. 도코노 일가가 다음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 준비하려고 하는 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내용인데 과연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다. 진흙바닥을 함께 구를 결심을 하다니 도코노 일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면 작가가 현실에 대한, 정치에 대한 불만을 가진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루마 산으로 가는 길>은 <편지>와 함께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은 도코노 일족을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그들이 문헌에, 사람들의 생각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루마 산은 또한 도코노 일족의 근거지, 신성시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셀로 게임>은 이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 내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도코노들은 무조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발휘하는 인간을 초월하는 종족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도 거대한 힘에 당할 수가 있고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늘 방어태세를 갖추고 살아야 한다. 그들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원치 않는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가를 공감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다. 또한 연작의 세 번째 작품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니 더욱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빛의 제국>은 두루미 선생님이라는 도코노 일족의 수장 같은 할아버지를 등장시켜 그들이 전쟁 중에 어떤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2차 세계 대전 때 러시아나 독일에서 초능력자들에 대한 실험을 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일본도 생체 실험을 했으니 아마도 이런 일족이 있었다면 능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빛의 제국은 그런 전쟁 없는 평화로운 제국, 도코노 일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제국이리라.

 

<역사의 시간>은 <검은 탑>과 맨 앞의 <커다란 서랍>, <두 개의 찻종>과 함께 봐야 한다. 아니 <빛의 제국>이 그 시작이 아닐까 싶다. 도코노 일족이 아닌 자에게 맡겨진 아이는 능력이 봉인되고 스스로 기억하기 전까지는 그대로 둔다. 하루타 일가의 장녀는 그 봉인된 기억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이코라는 인물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가 주목된다. <검은 탑>에서 그는 기억을 되찾고 도코노 일족으로서의 능력을 되찾고 정치가가 된 이에게 운명적 계시를 받는데 어디까지 이어질지 도코노 일족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단편들이다.

 

<잡초 뽑기>는 그야말로 그들이 생각하는 나쁜 기운이랄까 악이랄까 하는 것들을 잡초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을 보면 잘라내고 있다. 그것들은 어디에서도 자란다. 물론 인간에게서도 자라고. 잡초가 자라는 것보다 뽑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잡초가 없다면 뽑는 사람 또한 있을 수 없었을 테니 어쩌면 그들의 싸움은 영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묵묵히 한 가지 일만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아직까지 있다는 건 희망의 증거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국도를 벗어나>에서 이 작품, 도코노 이야기 첫 번째 에피소드는 막을 내린다. 그들은 모인다. 집결해서 축제를 벌인다. 그 뒤 그들의 앞에 어떤 것이 또 펼쳐질지 끝을 보니 다음 작품을 빨리 읽고 싶어진다.

 

저 푸른 초원이 우리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우거진 산림과 조용한 냇물 소리, 바람 소리, 해 맑은 사람들 웃음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도코노 일족이 아니더라도 귀 기울여 누군가의 고통을 들어주려는 귀와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하고자 하는 눈과 작은 이야기라도 소중히 담아 간직하려는 마음과 이들을 조용히 이끌어 주려는 스승과 따르려는 제자와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지키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은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도코노 일족이 찾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도코노 일족을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스텔지어의 여왕은 결코 과거의 향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미래의 노스텔지어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꿈꾸고 나아가서 가꾸어야할 미래, 그것이 도코노 이야기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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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2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의 노스텔지어라는 말부터 예사롭지 않은 리뷰입니다. ^^

물만두 2007-02-2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이 작가가 노스텔지어의 마법사라고 칭송받는것은 아마도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노스텔지어를 과거와 공유하기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드림 버스터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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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니 뭣이냐? 끝이 아닌 다음 3권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헉... 몰랐다. SF 시리즈는 이래서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계속 다음 권을 읽고 기다려야 하니까.

 

지구의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일지도 모르는 어느 별이 과학 실험의 결과로 지구와 시간이 겹치는 구멍이 뚫리고 만다. 그곳으로 실험을 하던 범죄자 50명이 지구로 탈출을 한다. 그들에게 육체는 없다. 단지 의식만이 있을 뿐. 그래서 그들은 지구인의 무의식인 꿈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몸을 탈취하려 한다. 그리고 그들을 잡기 위해 일명 D. B로 불리는 현상금사냥꾼이 지구로 내려온다.

 

미야베 미유키는 인간의 다양한 꿈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테-라에서 살인 사건을 간단하게나마 넣어서 추리 작가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SF는 환타지처럼 보이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처럼 느껴진다. 내가 일반적으로 접하던 SF작품들과 달라서인지 아니면 작가를 추리소설가로만 인식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후자가 크리라 생각되는데 내 느낌은 낯설다는 것이다.

 

뭐, 센이 범죄자로 도망 다니는 악명 높던 엄마를 어떻게 만날지가 궁금한 건 사실이다. 또한 2권 말미에 반대 운동이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과 다른 또 다른 뭔가가 있는 듯한 테-라의 운명도 궁금하다.

 

그래도 내 바람은 미미여사는 추리소설만 쓰셨음 하는 마음이다. 추리소설도 잘 쓰고 SF소설도 잘 쓰고 환타지도 잘 쓰고 싶은 작가의 욕심과 다양한 장르를 보고 싶은 독자의 바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미미여사! 이건 아니라고 봐요. 작품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추리소설이 더 보고 싶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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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아빠 2007-01-2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으로만 끝나도 다행이게요?? 아직도 안 잡힌 사형수들이 너무 많잖아요..지금 흐름으로 봐서는 3권으로 끝날 것 같지 않고,못나와도 5권이상 될 듯하여요...괜히 발 담갔다가 수렁에 빠지는 기분임다...

짱구아빠 2007-01-2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혹시 미미여사의 <브레이브 스토리>와 <브레이브 스토리 신설>이 뭔 관계인지 아시나여?? 둘이 완전히 별개의 작품인가요?아님 소설을 만화로 만든건가요??

물만두 2007-01-26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구아빠님 그래도 브레이브스토리는 4권으로 끝났잖아요^^ 근데 이게 조금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직 다 못봐서 일까요^^;;;
브레이브 스토리 신설은 브레이브스토리를 만화로 만든겁니다. 이게 소설, 게임, 만화가 있답니다.

Kitty 2007-01-26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여사가 누군가 했어요~ ^^
미야베 미유키였군요! ^^

물만두 2007-01-26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락방 2007-01-2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말이죠 사람들이 극찬을 하는 미미여사의 작품을 딱 한권 읽어봤거든요. [마술은 속삭인다] 로요. 근데 별로 호감이 안가더라구요. 혹시 이 작품이 다른작품들에 비해 좀 쳐지는건가요? 그래서 제가 호감을 못가지는걸까요?

물만두 2007-01-2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마술은 속삭인다>가 미미여사의 최고작은 아닙니다. 하지만 안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으니 님의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읍니다만 <이유>나 <화차>, <모방범>을 한번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한권으로 평가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모1 2007-01-2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겉표지가 상당히 독특하네요. 전형적인 일본환타지같은 느낌??

물만두 2007-01-2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 그렇다고 봐야겠죠^^
 
브레이브 스토리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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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이고 어른이고 자신에게 시련이 닥치고 불행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것이 있음에도 보지 못한다. 주변에 많이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이 그렇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어려울 것 없었던 아이라면 그것은 더욱 힘들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아이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소재로 쓴 SF 소설이나 환타지 소설이라고 하기는 좀 뭐한 현실과 가상세계인 게임 비전을 오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미미여사의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하지만 이런 외도는 싫어하는 지라 망설였는데 한 아이의 고통이 나를 붙잡았다.

 

세상은 사악하다. 어른들은 더 사악하다. 한 아이가 고통 속에 아직까지 몸부림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 아이만의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고통에 소금을 뿌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일을 우리는 좋아한다. 부모를 잃고 여동생을 잃고 불행한 사건과 함께 남게 된 소년은 친척집을 전전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그 아이를 따라다니는 그 사건을 사람들은 모른 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 나쁜 아이, 그 아이 자체만으로도 나쁜 아이가 버젓이 있는데 그런 아이는 나쁜 아이로 남을 괴롭히건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치건 못 본 척 외면하고 아무도 막아줄 방패 없는 아이만을 공격한다. 이것은 미야베 미유키가 언제나 사회를 직시하고 있기에 어느 곳에나 드러나는 병폐다. 우리에게도 이런 점은 있다. 그 문제를 우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쓰루의 그런 고통과는 달리 와타루의 고통은 와타루가 아이가 아니고 좀 더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면 주변에 자신이 지금 겪는 고통을 이미 겪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미쓰루가 한 말도 알아듣지 못한 전형적인 철부지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와타루는 게임 속에서 자신의 비전을 키우고 성장한다.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다. 그의 친구 중에 재혼한 부모와 이복동생과 사는 친구도 있다. 또 부모가 술집을 하지만 늘 밝고 긍정적인 친구도 있다. 자신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그것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와타루가 마지막에 깨달은 것은 그것이다. 비전에서의 일을 겪으면서 말이다.

 

사실 그곳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어야 할 아이는 미쓰루였다. 하지만 작품은 미쓰루의 바람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려준다. 원망하고 탓하지 말라고. 복수심을 버리고 미움도 버리라고. 너무 어려운 과제를 준다. 자기 안의 그런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보라니 어쩌면 그래서 와타루보다 미쓰루가 더 좋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미쓰루의 모험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왜 그 아이에게는 비전을 남기지 않은 건지. 아마도 그 아이에게 세상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라 생각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주인공은 미쓰루였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미련이 남는다. 에고, 비전에서 나는 역시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구나...

 

누가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누구도 온전히 행복하고 기쁘고 좋기만 할 수 없다. 또한 누구도 온전히 불행하고 슬프고 나쁠 수만도 없다.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만약 자신이 불행하고 슬프고 절박하게 나쁜 일만 생긴다면 그것을 행복으로 기쁨으로 좋은 일로 바꿀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다. 타인의 행복은 내 행복이 아니지만 타인의 불행은 내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행복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게 놔두고 불행한 자의 불행을 서로 나눠지고 무찌르는 용사가 되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 내가 불행하게 될 때 내 불행을 나눠지려 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와타루의 현실이 새롭지 않게 떠났던 그대로에서부터 다시 펼쳐지는 것은 그런 이유다. 와타루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비전은 그 위에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라 동전처럼 뒤집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뒤집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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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5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1-2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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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꿈과, 환상이 얽힌 기묘한 이야기! 정말 이 말이 잘 어울리는 두 편의 단편을 읽었다. 몽환적이고 아지랑이가 살랑거리는 기시감을 느끼는 것 같으면서 가슴 한 쪽에서 둔한 통증이 울리는 먹먹함이 있는 이 세계인 것 같으면서 또 다른 세계인 것 같은 이야기.

 

<바람의 도시>는 우리의 인생 이야기다. 사노라면 언제나 우리는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그것은 하나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온전히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누구의 몫이 아닌 완전한 내 몫인 것이 인생의 선택이다.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만남에서 이별까지. 운명이라거나 인연이라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그런 선택의 일부분인 것이고 어쩜 우리 인생도 하나의 선택으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길을 걷는 내내 그 길에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길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들이 이 책을 읽는 것도 선택이었음을.

 

아이들은 길을 잃을 수 있다. 어릴 적 호기심에 늘 가보지 않던 길로 다니기를 좋아하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혼자 가길 좋아했던 나는 어른이 되어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호기심이었는지를 깨닫고 그때 아무 일 없이 그 길을 온전히 추억 속에 담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 길 중 어떤 길은 내가 다니면 안 되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서 무사히 제대로 내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살지 못하는 세상 중 어떤 세상이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렌이 사는 세상은 또 하나의 세상일뿐이다. 우리도 가지 못하는 세상이 있고 그도 가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 공존은 하지만 두 곳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 그게 공평한 일이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그것이 가장 큰 공포가 아닐까.

 

이 작품이 공포물인 것은 그 이면에 있는 공포의 막을 책을 다 읽은 뒤 알게 된다는 것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의 공포가 여백을 채우고 있다. 바람의 도시에서는 누군가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밖의 도시에서도 누군가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울음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하나의 선택, 우연을 가장한 호기심이 비극적 공포가 되는 것은 찰나의 일이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잊는다.

 

<야시>는 또 다른 선택의 이야기다.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바람에는 대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얻고자 하면 반드시 잃는 게 있고 지나고 나면 그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소중했음을 깨닫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린 모른다. 이곳에 가서 어떤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지. 아니 이곳이 아니더라도 우린 지금 충분히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살고 있다. 대가가 무엇인지 잃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마저 잊은 채. 무서운 건 오히려 이것이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된다는 사실... 망각보다 무서운 늪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무엇을 팔겠냐고 물었을 때 슬퍼하지 않을 약을 사고 내 생명의 반을 내놓았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슬픔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고 내 생명은 내 몫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그리고 슬픔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고 지우려 하는 것 또한 자만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기억하는데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가족을 그래도 그리워하는 이유와 지워져 가는 기억과 자신의 어리석은 잘못을 후회하고 돌리려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잘못된 선택은 용서를 받은 것이라고. 공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 작품은 소품 정도의 짧은 단편 두 편을 담고 있지만 그 단편들 모두 탄탄하다. 공포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무서움과 공포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섭지 않은 공포가, 자극적이지 않은 공포가 살아가면서 더 두려워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임을 말해주는 이 작품은 공포물을 읽기 싫어하는 편협한 나를 정신 차리게 해주었다. 인생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공포를 알고 깨닫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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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6-10-2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좋아하는 '몽환'적인 작품인가 봅니다.
게다가 탄탄한 '단편'이라... 잠깐씩 짬을 내서 읽을만 하겠군요. ^_^

물만두 2006-10-29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책은 작지만 내용은 알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