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젊은 작가들의 좌담이 실려 눈길을 끄는데, 컬처뉴스에서 리뷰기사를 옮겨온다. 한국문학의 위기 담론을 엄살로 치부하는 태도에서 '젊은 작가들'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객관적 사태와 주관적 결단의 문제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컬처뉴스(07. 06. 05) 한국문학 위기? 엄살 떨지 마세요

한국문학은 ‘위기’만 수년째다. 도대체 위기의 끝은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그 끝이 오기는 올 것인지 위기설은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위기’와 ‘종언’의 한 복판에서 작가로 태어난 이들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여름호 『문학동네』(통권51호) 의 좌담 ‘젊은 작가들이 말하는 우리시대의 문학’에 초청된 작가(이기호, 정이현, 박민규, 김애란)들은 이러한 ‘문학의 위기설’에 대해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히려 “한국문학은 번성한 적도 없었고, 이제 진화해나가는 단계”(박민규)이니 “엄살떨지 마세요”(이기호)라고 말한다.

좌담의 사회자로 나선 신형철 평론가가 첫 번째 질문으로 소위 ‘한국소설의 최첨단’(『문학동네』인용)이라 할 만한 네 명의 작가에게 “시장의 위기를 포함해 여러 층위에서 한국소설의 위기가 제기되고 있는데, 도대체 위기라는 것을 실감하고 계시기는 합니까?”라고 위기설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이기호 작가는 “보기에 따라서는 작가들의 엄살인 것 같아요. 뻔히 알고 들어왔고, 누가 작가가 돼서 우리 생계를 책임져라 하면서 등 떠미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뻔히 알고 들어온 건데 우리가 뭐……다들 살 만하던데……”라며 “근데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 가요?”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박민규 작가는 “‘한국소설의 위기’하니까 마치 ‘로마제국의 위기’ 같은 느낌인데요. 개폼 잡지 마세요”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반만년 역사 하면서 마치 반만년 동안 소설을 써온 것처럼 위기 하는데 실은 이제 우리 고작 육십년 쓴 거예요. 우리 백년은 더 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문학과 관련해 “지금 일본소설이 그만큼 많이 팔리는 이유는 일본문학이 그만큼 앞서 있기 때문”이라며 “민족의 우수성 그딴 걸 논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들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화에 이 정도 출혈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면 차라리 돌고래에게 문단을 맡기세요”라고 말한다.  

정이현 작가는 “문학의 위기를 진달할 때 다양성의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지금 우리 문학이 다양하지 않거나 작가들이 다들 똑같은 얘기만 쓰고 있다면 분명 위기라고 해도 되지만 지금 우리 문단은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여러 작가들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발하게 작업을 하고 있고,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모색을 하고 있어요”라며 오히려 ‘한국문학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김애란 작가도 일본문학과 관련해 “일본문학은 이상하게 한국이라는 대상의 앞면에 생기는 그림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걸 비추는 태양이 근대든 아니든, 어쨌든 우리가 밟고 있는 역사적인 과정을 반 박자, 한 박자 먼저 겪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가 어떤 감수성을 요구할 때, 그것을 먼저 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단순한 한일 구분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이 있고, 한국에서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위기라는 말에 상품성도 큰 기준이 되는 것 같은데 다른 태도까지 혐의를 둔다면 적어도 진정성에 대해서는 동료, 선배 작가들이 떳떳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한국문학의 위기’에서 ‘근대문학의 위기’를 넘어 자연스럽게 ‘2000년대 문학’으로 이어졌다. 신형철 평론가는 “근대문학의 종언과 관련해 주로 법정에 끌려나오는 것은 소위 ‘2000년대 문학’인데, 2000년대 문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박민규는 “앞서 ‘한국문학’이란 허상에 대해 얘기했던 것처럼 ‘2000년대 문학’ 역시 하나의 허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논쟁은 좋은 것이고, 발전하는 것이고, 또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이 평론가이고, 아주 중요한 거라 생각하지만 창작자로서 전혀 관심 없다”고 말하며 “평론과 창작은 전혀 다른 분야, 다른 세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이현은 “지금 젊은 작가들이란 고작 책 두어 권 냈을 뿐이며 아직도 계속 변화하고 있고 자기 세계를 찾아가는 길 위에 있는 이들”이라며 “논쟁 자체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해 조금만 더 선입견 없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0년대 작가군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애란은 “그런 말(세대구분)들이 작가에게 특징을 부여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정짓게 만들기도 한다”며 “개인적인 자질보다 환경 자체가 난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작가들의 논의에 대해 신형철 평론가는 “아까 박민규 씨가 말한 것처럼 작가의 일이 있고 비평가의 일이 있는 건데, 비평가들은 동일하게 꾸준히 지속되는 어떤 것보다는 작지만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야 새로운 담론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의제가 생산된다”고 말했다.

또 평론가들의 문단의 ‘지도(地圖) 그리기’와 관련해 “어떤 것을 배제하기 위해서 지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판을 전체적으로 봐야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물론 전체를 보는 눈과 개별 작가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눈을 함께 떠야 하는 건데 후자는 생략하고 전자에만 몰두하니 더러 작가들의 비판을 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좌담에는 딱히 결론이랄 것이 없었다. 평단에서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한국문학’의 ‘지금’에 대해 작가들은 오히려 ‘긍정’하고 있었고, 자신들을 포함해 그 가능성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박민규는 그 기대를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역사를 길게 본다면 결국 문학은 언젠가 사라질 거예요. 인간은 분명 어떤 필요에 의해 글자를 만들고 문학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문학이 인간에게 있어 진화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문학이 사라진다는 건, 그건 어마어마하게 황홀한 일이죠. 왜? 그건 문학이 필요 없어진 거니깐……. 문학은 차차 풍성해지고 그럼으로써 차차 간편해지고, 흡수될 것입니다. 인간에게, 말이죠.” (위지혜 기자) 

07. 06. 06.

P.S. 좌담 내용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으로 알려진 작가 박민규씨가 '오늘의 토크왕'이 될 만한 멘트들을 날린 듯하다. '상품'으로 재작년 <카스테라> 출간 즈음에 나온 인물 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딱 이맘때 나온 기사이군.

한겨레(05. 06. 09) 박민규 전복적 상상력의 문제작가

박민규는 ‘문제 작가’다. 그의 장편소설 <핑퐁>을 연재하기 시작한 계간지 <창작과 비평> 여름호의 광고는 그를 그렇게 규정한다. 광고인 만큼 별도의 설명은 없었지만, 이즈음의 한국 소설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라면 그런 규정에 특별히 토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문제 작가’이기 때문이다.

등장부터가 문제적이었다. 2003년 여름, 그는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에 경장편 <지구영웅전설>이, 한겨레문학상에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한꺼번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등단했다. 미국 대중문화의 영웅들이 대거 출현하는 <지구영웅전설>이나, ‘패배의 화신’과도 같았던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가 회고되는 <…마지막 팬클럽>이나 발칙한 발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대번에 21세기를 여는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았다.

소설과는 무관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긴 생머리에 검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의 외양 역시 눈길을 끌었다. 90년대 중반 귀고리를 한 차림으로 문단에 ‘충격’을 주었던 김영하의 경우를 떠오르게도 했다. 게다가 그는 밴드의 로커로 활동하는 한편 이종격투기와 프로레슬링 따위를 즐긴다고도 알려졌다.

2004년 여름호 계간 <대산문화>에 그는 <좃까라 마이싱이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에세이였다. 같은 잡지 봄호에서 선배 문인들이 그 또래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우려 섞인 조언을 했던 데 대한 ‘대답’이었다. 도무지 선배에 대한 예의라고는 모르는 듯 무엄한 제목부터가 작지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본문 역시 결코 예의바르다고는 하기 어려웠으니, 가령 이러했다. 잡지 편집자가 제시한 네 개의 질문 중 뒤의 두 질문에 대해 답한 부분이다.

“③독자나 평론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오해, 오독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답: 누구에게나, 꼴린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④자신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배 문인들의 평가(<대산문화> 2004년 봄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답: 수고하셨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도, 열심히 하겠다.”

박민규의 이런 거침없는 발언은 작가로서 나름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터이다. 같은 글에서 그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시간이, 없다”고도 밝혔다. 아닌 게 아니라 등단 이후 그는 부지런히 쓰고 또 썼다. 일단의 소설가와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조사에서는 그의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가 지난해의 최고 소설로 뽑히기도 했다. 소설집 <카스테라>(문학동네)는 2년 전의 화려한 등단 이후 박민규가 내놓는 첫 책이다.

책에는 10개의 단편이 묶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데뷔 앨범 <너 해봤니?(Are You Experienced?)>와 같은 열 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었노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박민규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백수거나 ‘알바’거나 인턴 사원이거나 대학생처럼 유예된 신분의 사람들이다. 유예되었다는 건 다른 말로 경계선상에 놓였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들은 그러니까 순수와 미경험의 세계에서 경험과 타락의 세계로 옮겨 가는 도정에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편의점 점원과 지하철 푸시맨 같은 아르바이트에 종사해야 하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고교생, 아버지의 부도 여파로 열악한 고시원에 기거하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대학생, 학교 근처 원룸에서 요란한 소음을 내는 냉장고와 ‘동거’해야 했던 <카스테라>의 대학생, 전문대를 졸업한 뒤 일흔세 곳에 이력서를 넣었어도 끝내 취직에 실패한 뒤 한적한 유원지를 임시 직장으로 택한 <아, 하세요 펠리컨>의 주인공, ‘인턴’ 사원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라면 동성인 직장 상사의 성 노리개 노릇도 마다 않는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의 주인공 등이 한결같이 그러하다.

안정된 직장과 충분한 보수를 확보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젊은이들의 면모는 ‘청년실업’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당대 현실의 정직한 반영으로 볼 수 있겠다. 그들이 순수의 세계에서 경험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은 세계의 냉혹성과 자신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쓰라린 확인을 수반한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72쪽)이라는 ‘아버지의 산수’를 확인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주인공은 “이상하게 그날 이후(…)조용한 소년이 되어버렸다.”(72쪽) 비슷한 상황에서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대학생 역시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이었고, 왠지 이 세계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281쪽)

그들이 알게 된 세계란 어떤 것이었나. 한마디로 “세상은 엉망이다.”(47쪽) “인간이 너구리로 변하는 세상”(52쪽)이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너구리로 변하다니? 이런 말이다: 너구리가 주인공인 게임이 있다. ‘스테이지 23’까지는 문제 없이 나아간다. 바로 그곳, 스테이지 23에서 막힌다. 대부분의 우리에게 그곳에서 더 이상 나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스테이지 23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자들은 죄다 너구리가 되어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 ‘스테이지 23’이야말로 “이 세상의 실제 이름”(49쪽)이라는 말이다. 스테이지 23으로서의 세상의 본질을 알게 된 인턴 사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사회란 무서운 것이구나.”(54쪽) 푸시맨 소년은 같은 상황을 이렇게도 표현한다: “세상은 하나의 열차다. 한 량의 정원은 180명, 그러나 실은 400명이 타야만 한다”(84쪽).

순수에서 경험의 문턱을 넘어선 입사자들은 비로소 세상의 무서운 속성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곳에서…왜 고작 이 따위로 사는 걸까”(87쪽) 또는 “왜, 이 열차는/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91쪽)와 같은 회의와 반성의 순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모종의 적극적 실천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는 데에 박민규 소설의 문제적 성격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그것은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아니었으며, 누구를 원망할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72쪽)고 짐짓 ‘쿨한’ 태도를 취하며, “열심히 사는 거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게 아닌가”(88쪽) 체념하고 물러 앉는다. 요는 “세계의 거대한 톱니”(177쪽)를 벗어난 ‘바깥’이란 없다는 것이다.

박민규 소설에 자주 출몰하는 외계인과 우주선, 괴물 같은 동물들의 환상은 그가 세계를 상대로 한 싸움을 주관적 회피와 위안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왕년의 ‘운동권’ 출신으로 지금은 농촌 공동체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코리언 스텐더즈>(‘스탠더즈’가 맞는 표기 아닐까?)의 주인공 ‘기하 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과 유에프오의 습격 때문에 농사를 망치며, <대왕오징어의 기습>에는 “모두가 무방비인 채 그들의 습격을 받아야 했다”(232쪽)는 표현이 나온다. 유에프오와 대왕오징어를 우리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것은 혹시 ‘패배주의’가 아닐까.

박민규 소설의 문제적 성격을 이렇게 내용의 측면에 국한해서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대부분의 좋은 소설들이 그러하듯 박민규의 소설에서도 형식적 특성이 내용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법적 갱신을 향한 모색과 시도는 박민규 소설에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다(*그것이 '성공적'인가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우선, 그는 문단별로 한 행씩을 띄우는 인터넷 글쓰기 방식을 일관되게 사용한다. 때로는 한 문장이나 구절, 하나의 단어가 독립적으로 하나의 ‘연(聯)’을 이루기도 한다. 실제로 박민규 소설의 어떤 대목은 내용에서나 형식에서나 1980년대 장정일의 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22쪽, 34~5쪽, 304쪽 등). 인터넷 카페의 ‘펌글’이나 잡다한 정보를 통째로 들어다 놓은 듯한 부분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런 형식적 특성은 가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컴퓨터 모니터 상의 글 읽기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에게 박민규 소설은 종이 텍스트라는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반면, 수시로 한 행씩을 띄우고 쉼표를 박아 넣는 과정에 작동하는 단절과 비약의 기제는 논리적이며 유기적인 서사를 불가능케 한다는 문제점을 낳는다. 박민규 소설의 주인공들이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환상 속으로 도피하곤 하는 버릇이 이런 형식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일자리보다 보수가 높은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소개 받은 소년이 “내 주변에 그런 고부가가치 산업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제의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갑자기 확 고도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느낌이었다”(71쪽)고 감격한다거나 유원지에서 하릴없는 청춘의 나날을 보내는 젊은이가 “간혹 외로운 밤이면, 심야전기처럼 저렴한 내 청춘이 흐린 전구처럼 못내 밤을 밝히기도 했다”(129쪽)고 토로할 때 박민규의 유머러스한 문장은 짙은 페이소스를 수반하며 독자의 가슴에 아련히 스며든다.

그러나 작가가 즐겨 구사하는 ‘곁가지의 글쓰기’와 몽상의 자가발전은 때로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면서 의미 없는 말의 유희로 떨어지기도 한다. ‘뭐랄까’라는 허두가 그의 구어투 글쓰기를 특징짓는 요소라면, ‘모쪼록’이라는 부사는 아무래도 문맥에 안 어울리게 쓰인 게 아닌가 싶다(69쪽, 184쪽, 263쪽, 287쪽 등). “그리고 이 년 전의 일이, 즉 LA의 8번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253쪽)거나 “뭔가 몸이 붕 뜬 느낌이었고, 나는 정신없이 매트를 향해 머리를 추락했다”(260쪽)와 같은 비문과 어색한 문장도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박민규 소설에 대한 기대 8, 불만 2의 이 글을 그가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수고하셨다. 그리고, 좃까라 마이싱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국문학의 현실에 대한 엄살과 푸념의 담론들에 대해서 '젊은' 작가들은 '좃까라 마이싱이다!'라고 한방 먹일 수 있다. 대체로 '백수들'에겐 그럴 권리가 충분하며 그마저 없다면 세상은 더 '좃같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톰 2007-06-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법적 갱신을 향한 모색과 시도는 박민규 소설에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다(*그것이 '성공적'인가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에서의 로쟈님의 구체적인 의견이 궁금합니다. 언젠가 페이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7-06-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 소설의 단점들은 많이들 지적하는 것이고(최재봉 기자도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고요) 제가 특출한 이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 결말도 그렇지만, "수시로 한 행씩을 띄우고 쉼표를 박아 넣는 과정에 작동하는 단절과 비약의 기제는 논리적이며 유기적인 서사를 불가능케 한다는 문제점" 등이 저도 거슬립니다. 백낙청 선생이 '시적'이란 얘기를 했는데(좋은 뉘앙스로), 저는 (부정적인 뉘상스로) 박민규 소설이 보다 시적이며 소설정신에는 좀 미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며칠 유예됐지만 이 서재 또한 다른 곳으로 이사할 즈음이라 '다른 곳'이란 어구에 눈길이 갔다. 니콜 라피에르의 <다른 곳을 사유하자>(푸른숲, 2007)을 엊저녁 서점에서 보고 바로 손에 든 이유이다. 저자는 "다문화연구에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프랑스의 여성 사회학자라고 한다. 하지만 책은 딱딱한 사회학과는 다소 무관해 보이며 내가 가끔씩 손에 드는 전형적인 '프랑스산 에세이'이다.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정의되는 우리식 '수필'보다는 훨씬 길고 무겁지만 동시에 활달한 사변을 자랑하는 장르로서의 에세이.

'길을 내며'란 서문에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항상 다른 곳을 사유한다"는 몽테뉴의 문장이다. <수상록>(이 책의 원제가 바로 '에세이'이다!)의 '기분전환에 대하여'란 장에 나온다고(국역본 <나는 무엇을 아는가>에 수록돼 있으며 발췌본 <수상록>에는 빠져 있다). 그 장의 요지는 이렇단다.

"슬픔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무모하고 괴로울 뿐 아니라 정작 슬픔을 덜어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비탄에 잠긴 마음을 살며시 다른 데로 돌리는 편이 낫다. 슬쩍 다른 화제를 꺼내 생각을 유도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1563년 절친한 친구 라 보에티가 사망한 후로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던 몽테뉴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학문과 여행에 더욱 몰두함으로써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기분전환을 '영혼의 병을 치료하는 가장 일반적인 처방'이요, 강박관념과 고정관념과 치명적인 열정에서 빠져나오는 데 특효라고 말한다."(9-10쪽)

그에 대한 저자 라피에르의 촌평. "몽테뉴는 불행에서 해방되기를 갈구하는 금욕적인 인물과는 딴판이다. 그에게서는 침울한 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그저 상황이 호전되기를 바라고, 살 사람은 어찌 됐든 살자는 주의다.(...) 몽테뉴는 사고와 감정의 유연성이 인간 조건에 있어서 일종의 행운이자 묘수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유연성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런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단지 그 행보를 그릴 뿐."

책은 그러한 몽테뉴적 정신으로 충전된 저자의 지식인 유람기처럼 보인다. 뒷표지에 실린 김용석 교수의 추천사에 따르면, "몸의 이동으로 '실천의 사유'와 '사유의 실천'이 가능했던 '학문적 떠돌이'들의 역사적 사례들을 세심하게 짚어간다." 표지를 보면 그런 '학문적 떠돌이'로 발터 벤야민도 다루어지는 모양이고(찾아보기를 보면 250명 이상의 지식인들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듯하다).

흔한 유행어로 하자면 '유목'이고 '탈주'고 하겠지만, 차이라면 이건 '앉아서 하는 유목'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면서 하는 사유'의 궤적이다. 그리고 '정주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사유'을 다루면서 그 모델/전거를 들뢰즈의 철학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몽테뉴의 에세이에서 찾는다는 것이 특징적이다(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오늘 생일을 맞은 러시아 작가 푸슈킨 또한 몽테뉴주의자였다).  

이 여름의 초입에, 호젓한 해변에 가보는 것은 아직 엄두도 못낼 형편이지만 '멀리 떠나자!'라는 유혹만은, 기분전환으로의 초대만큼은 거부하고 싶지 않다(그게 고작 '서재2.0'인가에 대해선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떠나야 할 필요가 있다. 사유는 언제나 다른 곳에서 시작한다... 

07. 06. 06. 

P.S. 책은 요즘 보기 드물게 가독성이 좋다. 우리말이 깔끔하고 안정감이 있다. 옥에 티라면 역자도 토로한 바대로 학술용어나 고유명사에 관련된 것들이다. "특히 이 책의 경우 옮긴이를 곤혹스럽게 한 부분은 학술 언어, 특히 학자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의 번역 문제였다.(...) 이 문제는 책이 출간된 이후에 독자들의 지적과 재번역의 가능성으로 열어두고자 한다."(316쪽)에 기대어 내가 읽은 서문에서 지적하자면, 22쪽에서 벤야민의 대작 <이행의 책 Passagen-Werks>은 음역해서 <파사젠-베르크>라고 하거나 국역본을 따라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라고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남편은 '하인리히 불뤼커 Heinrich Blucher'는 그녀의 전기들에서 '하인리히 블뤼허'라고 표기됐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승주나무 2007-06-06 12:19   좋아요 0 | URL
기분전환에 대해서 처음 들은 것은 '파스칼의 팡세'였는데, 환기를 통해서만 사람은 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다소 체념적이기까지 한 사고를 보여주었어요. 파스칼이 몽테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지만, 정작 몽테뉴는 읽어보지 못했네용~~

로쟈 2007-06-06 16:06   좋아요 0 | URL
몽테뉴의 <수상록>을 예전에 읽긴 했지만 대개 그렇듯이 발췌본이었고, 완역본은 나중에 구하게 됐지요. 기분전환이 자주 필요한 때인지라 가까이 두려고 합니다...

Joule 2007-06-07 01:01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를 읽고 저도 몽테뉴주의자 하기로 했어요. 인간을 그리지 않고 다만 그 궤적을 그릴 뿐이라는 말이 참 멋져요.

아, 그런데 '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저 출판사에서 나온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란 책을 들춰보신 적 있으세요? 음, 속에 편집이 어떻게 되어 있나 해서요. 서체가 12포인트 이상 된다거나 행간이 너무 넓직하다거나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둘러쳐져 있다거나('빈 서판'처럼) 그러지만 않으면 되거든요. 사실 제가 원하는 건 아무 디자인도 하지 말아달라는 건데 어쩌다보니 그게 까칠한 것처럼 되어 버렸어요.

로쟈 2007-06-07 01:40   좋아요 0 | URL
제가 갖고 있는 건 구판인 <몽테뉴 인생에세이>입니다. 제목이 왜 바뀐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책입니다. 한데, 전집을 원하신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유일한 완역본인지라...

작은앵초꽃 2007-06-07 02: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저 가운데에 있는 책이 유일한 '완역본'이라는 말씀이지요?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완역본 있는 줄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네요. ^^;;;

Poissondavril 2007-06-07 17:18   좋아요 0 | URL
<몽테뉴~>는 본문에 아무 디자인 없고 글씨는 시원시원하지만 너무 크지는 않습니다(판형 자체가 커서 그보다 글씨가 더 작으면 아마 현기증이 날걸요...).
그리고 로쟈님, <다른 곳을~>에서 들뢰즈와 푸코의 유령이 (이상하게) 대중과 영미권 학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됐다고 곤혹스러워하는 대목을 재미있어하실 것 같네요. ^^

로쟈 2007-06-07 17:49   좋아요 0 | URL
<다른 곳을>을 벌써 읽어보셨군요. 앞부분의 번역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아서 저도 예감은 좋습니다. 언제 읽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Joule 2007-06-09 03:14   좋아요 0 | URL
ghdh, tlsdltldu wjdprp ajswj dudrhkddmf wnthtj!

이거 해독하시는 분에게 제가 한 천 원쯤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한 고서에서 발견한 문구인데요. 사서는 라틴어라고 하더라구요. 무슨 말인지 너ㅡ무 궁금해서요.

전 히말라야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추측하는 중이에요.

로쟈 2007-06-09 13:32   좋아요 0 | URL
저는 음주 댓글로 추측하는 중입니다...

Joule 2007-06-09 16:1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안 그래도 오늘 일어나서 대략 10분 동안 부끄러워해주었답니다.



라벨이 너무 예쁘지 않나요.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오늘 배송된 책은 <옥스퍼드 세계영화사>(열린책들, 2006)이다. 작년봄에 보급판이 나오고 나서도 한참만에 구매한 것인데, 계기가 된 건 엊그제 시립도서관에서 이 책과 자매편이 되는 <세계영화연구>(현암사, 2004)를 잠시 들춰봤다는 것. 나중에 시간이 나면 적겠지만 후자는 번역, 특히 고유명사 표기가 역자의 공언과는 달리 엉망인 책이었다(물론 주로 러시아 관련 인명들을 확인해본 것이지만). 

거기에 비하면 <세계영화사>는 번역 또한 깔끔하고(읽어본 몇 대목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고유명사들의 표기도 비교적 정확하며 일관성이 있다. 분량 대비 가격도 최근에 나오는 책들에 비하건대 저렴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분량에 거품이 별로 없는 게 마음에 든다. 국역본이 996쪽이고, 원저는 824쪽. 2배 가까이 부풀려지는 요즘 추세에 비하면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러시아 영화와 관련한 대목들을 먼저 훑어보게 됐는데, 책을 받자마자 읽어본 건 저명한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이 작성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 항목(214-5쪽)이다. 박스로 처리된 이 소개글에서 몇 가지 교정사항을 '옥에 티'로 지적해둔다.  

먼저, 첫대목. "25세때, 에이젠슈테인은 소비에트 연극의 '무서운 아이'였다. 혁명 전 연극에서 최고의 실험작으로 인정받은 오스트로프스키의 고전 <어떤 현자도 실수는 있다>를 그는 불경스럽게도 서커스 양식으로 바꾸었다."(214쪽) 

여기서 '혁명 전 연극'은 'post-revolutionary stage'의 번역이므로 '혁명 이후 연극'이라고 옮겨야 한다. 물론 이때의 혁명은 1917년의 10월 혁명을 가리키며 에이젠슈테인 버전의 <현자>는 1923년에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이때만해도 그는 저명한 연극연출가 메이에르홀드(메이예르홀트)의 '수제자'였다. 그랬던 그가 프롤레트쿨트(Proletkult; '프롤레타리아 문화'란 뜻의 문화운동조직)의 제안으로 처음 만들게 된 영화가 데뷔작인 <파업>(1925)이었던 것.

그리고 '최고의 실험작으로 인정받은 오스트로프스키의 고전 <어떤 현자도 실수는 있다>"란 번역 또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최고의 실험작'은 19세기의 고전 드라마 작가인 알렉산드르 오스트로프스키(1823-1886)의 작품이 아니라 에이젠슈테인의 '연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연출 경험은 그의 영화제작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에이젠슈테인은 모든 작품에서 그의 연극 경험을 살렸다. 소비에트적 전형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가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발견한 탈심리학적인 인격화에 의한 것이었다."

 

"무성영화 시대에 걸쳐 에이젠슈테인은 그의 미학적 실험이 국가의 프로파간다와 조화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영화들은 레닌의 묘비명으로 시작한다. 각각의 영화는 승승장구하는 볼셰비키 신화의 결정적 순간을 묘사한다."

마야코프스키의 시와 함께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들은 혁명 직후 러시아 혁명의 정신을 가장 잘 체현하고 있는 사례로 기억됨 직하다. 그런데 그의 영화들이 '레닌의 묘비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묘비명'은 'epigraph'의 번역이며 사전적으로야 물론 '비명(碑銘)'이란 뜻도 갖지만 여기서는 작품의 첫머리에 놓이는 '제사(題辭)'를 가리킨다. 레닌의 인용구들로 영화를 시작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가장 대표적으로) "<전함 포템킨>의 세계적 성공은 체제에 대한 동화와 경외를 불러일으켰다. 오데사 계단에서 차르 군대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충격적인 묘사를 보고 동요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여기서 '동화와 경외'는 'sympathy and respect'이다. 그리고 '체제'는 물론 '소비에트 체제'를 가리킨다. 그 체제에 대한 '공감과 존경'을 전세계에 불러일으킬 만큼 그의 영화는 (레닌이 기대한) '프로파간다'로서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던 에이젠슈테인은 "1930년에 헐리우드에서 잠시 머물렀고 멕시코에서(1930-2) 독립영화의 제작을 시도한 뒤 소련으로 돌아온 에이젠슈테인은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소련으로 돌아온다." 교정이 덜된 대목인데, '소련으로 돌아온'이란 말이 중복되므로 앞의 것은 빼는 게 낫겠다.

이 귀환 이후에 에인젠슈테인은 국립영화아카데미에서 변화된 추세에 맞는 새로운 영화적 표현을 모색해보지만 이삭 바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베진초원>(1935-7)은 반대에 부딪쳐 실패로 돌아간다(영화는 분실되고 몇몇 프레임만이 남아 있다). 아래 사진은 영화를 찍던 1936년의 에이젠슈테인과 작가 바벨.

하지만 에이젠슈테인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Alexander Nevsky)>(1938)로 재기한다(국내에 '알렉산더 네브스키'로 출시돼 있다). 13세기 게르만의 튜튼 기사단과의 러시아군의 일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스탈린의 러시아 중심주의와 일치하고, 시의 적절하게도 독일 침공에 대항하는 프로파간다로 인식되었다. 에이젠슈테인은 레닌훈장을 받았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다. 짤막한 소개에는 생략돼 있지만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 독-소불가침 비밀협정이 체결된 이후에 이 대중적인 흥행작은 상영이 중단되었다가 1941년 독일이 협정을 깨고 소련으로 침공해들어오자 애국심 고취 차원에서 다시 개봉되었던 것. 참고로, (스틸사진 중앙에 보이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역의 니콜라이 체르카소프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적 '페르소나'로서 그의 마지막 걸작 <폭군 이반>(1,2부)에서는 이반 대제로 출연한다.

문제는 <폭군 이반>이었다. "<폭군 이반> 1부에서 에이젠슈테인은 주인공을 러시아의 통합을 위해 애쓰는 과감한 지배자로 묘사했는데, 스탈린이 어느 차르에 대한 '진보적' 해석이라 격려함으로써 그의 위상은 한층 강화되었다." 하지만 3부작중 2부는 (스탈린의 폭정을 암시하여) 정책 결정자들과 충돌하게 됐고 결국 상영이 금지되었다. "<이반> 2부에 대한 공격은 에이젠슈테인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그를 고립시켰다. 1948년, 10여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비판의 그늘 아래서 그는 죽었다."  

 

끝으로 참고문헌에서 필자인 보드웰은 자신의 책 <에이젠슈테인의 영화>(1993)을 가장 먼저 거명하고 있는데(물론 ABC순이긴 하다) 영어권에서 나온 연구서 몇 권이 더 추가될 수 있으며 프랑스에서 나온 책으론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자크 오몽의 <몽타주 에이젠슈테인>(영역본 1987)이 가장 유명하다. 러시아어 저자 블라디미르 니즈니(Nizhny, Vldimir)의 <에이젠슈테인의 영화강의(Lessons with Eisenstein)>(영역본 1962)도 매우 일찍 소개된 경우이지 싶다. 블라디미르(Vladimir)에 탈자가 있다...  

07. 06.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스메이커 727호(07. 06. 05) 소설가 김훈 “소설을 정치적으로 읽는 건 위험”

소설가 김훈(59)의 작업실은 일산 정발산역 부근에 있다. 10여 평 남짓 돼 보이는 작업실의 절반은 ㄱ자형의 넓은 책상이 차지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 대신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200자 원고지 뭉치가 놓여 있다. 김훈은 글을 쓸 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고지에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워가며 이야기를 만든다. 기자생활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수많은 글자가 원고지를 채울수록 그의 책상에는 지우개똥도 수북이 쌓일 것이다.

그가 늘 타고 다니는 자전거도 한쪽 벽면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김훈은 이 자전거로 작업실과 역시 일산에 있는 집을 오간다. 벽에는 예비용 자전거 바퀴 두 개가 걸려 있다. 소설 ‘남한산성’을 탈고한 후 김훈은 자주 이 자전거를 타고 선들선들 바람이 부는 한강가나 고요한 파주평야에 나가 논다.

지난 4월 12일 출간된 소설 ‘남한산성’은 출간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5월 25일 현재 이미 9만5000부나 팔렸다. 김훈은 “앞으로 한 1년간 생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행복감이 있다”며 “다만 내가 이루어내지 못한 게 많은 것이 걱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말한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란, 소설 ‘남한산성’에 다 담지 못한 병자호란 전후의 비극과 갈등이다.

소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삼전도 굴욕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다. 1636년 음력 12월,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진격해 왔다. 방비를 갖추지 못한 채 척화를 내세우던 조선 조정은 9년 전 정묘호란 때처럼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었다. 소설은 인조가 남한산성에 든 그해 12월 14일부터 이듬해 1월 30일까지 47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갈등과 좌절,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김훈은 왜 남한산성을 소재로 소설을 썼을까. “3년 전부터 남한산성에 자주 놀러갔어요. 이상한 충격을 받았죠. 구석구석에서 말할 수 없는 억눌림과 비통함, 세상의 더러움과 악을 느꼈고, 그에 맞서다 패배한 깊은 슬픔을 맛본 거예요. 난 무지 괴로웠어요. 눈이 가득 쌓이는 날엔 성 주변을 무작정 헤매며 돌아다녔죠. 이 통한의 역사를 소설로 쓰게 되겠구나 했어요.”

그로부터 2년간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데 매달렸다. 하지만 공식적 자료는 취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사(正史) 대접을 받지 않은 문건이나 전설이 도움이 됐다. 김훈은 정확하게 취재했을 때라야 글을 쓰기 쉽고 독자에게도 절실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뼈대 외에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완성했다. 김훈은 가장 중요한 자료는 ‘성벽’이었다고 말한다.

“성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옛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어요. 집필에 소요된 기간은 7개월이었죠. 그 기간 중에도 남한산성을 찾아가곤 했어요. 운전을 못 하니까 지하철을 타고 모란역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타고 갔지요.”

김훈은 책 서두에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고 전했다. 실제 소설 ‘남한산성’에는 신료들 사이의 ‘말’의 부딪침과 깨짐이 자주 표현된다.

“성에 갇혀 있으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말밖에 없잖아요. 침략자와 싸우자는 놈도 있고 성문을 열고 투항해 살길을 찾자는 놈도 있죠. 아무리 멋지고 간절한 말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무너지길 반복해요. 말은 그런 거예요. 말의 덧없음, 말의 아름다움, 말의 힘 이런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또 한 가지는 저마다 다른 말을 하지만 그들이 그 말을 하는 데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훼손하면 안 되요. 말이 부딪치는 것은 여러 사람의 정당성이 서로 충돌하는 것인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독자가 우리의 현실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어요. 내용이 뭐든 간에 자기 자신만 정당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걸 돌이켜보기를 바래요.”

김훈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칼의 노래’ 때와 마찬가지로 ‘남한산성’을 읽는 적잖은 독자가 이 소설을 당대와 연계해 해석한다. 세계열강 속에서 자주냐, 동맹이냐의 갈림길에 선 조국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시각부터 삶의 기로에 선 개인의 선택에 대한 갈등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이 주는 파장은 심상찮다. 얼마 전 체결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비유하는 이도 많다. 김훈은 “난 바라지 않는 일이지만 작가가 독자의 독법을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소설을 정치적으로 외연을 넓혀 읽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게 부담스럽다기보다는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는 얘기예요.”

김훈은 1973년 한국일보 입사를 시작으로 27년간 언론인으로 일했다. 누구 말대로 ‘웬만한 작가는 그에게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글 잘 쓰는 문학기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국민일보, 한겨레신문을 거쳤고 시사저널 편집국장도 했다. 그 사이 사표를 쓴 것만도 20번. 그는 “기자라는 것은 가혹한 질서 속에 사는 직업으로 살인적인 삶이었다”고 회고한다.

“매일 마감하는 삶이었죠. 내 기자생활은 실패예요. 나뿐 아니라 그 시대가 다 실패한 거예요. 억압과 경제지상주의적 정책이 빚은 결과죠. 그 시대에는 그래야 했다고 해도, 아무도 그 시대의 실패를 말하지 않아요. 그 시대가 실패했는데 개인이 성공한 삶을 살 순 없는 거죠.”

기자로서 저널리즘에 입각한 글쓰기의 경험은 작가로서 문학에 기반한 글쓰기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김훈은 “삶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데 기자시절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다”며 “문장을 압축해 요점만 쓰겠다는 글쓰기의 태도도 기자생활을 통해 정립한 좋은 습관”이라고 설명했다. 김훈은 많은 정보를 논리적으로 나열한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에는 생리대와 속옷, 머리핀과 같은 여성이 사용하는 온갖 것이 나오잖아요. 다른 직업의 사람에게는 쓰레기로 버릴 일상의 것들이 소설가에게는 언젠가 다 활용할 보석과 같은 소품들이죠. 세상의 모든 정보를 버리지 말고 수집해야 해요. 그 작품을 쓰기 위해 ‘코스모폴리탄’이나 ‘얼루어’와 같은 여성지 1년치를 한꺼번에 가져다놓고 공부했어요. 그런 잡지에 실린 광고를 통해 여성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품이 뭔지, 사용법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거든요. 홈쇼핑의 란제리광고도 도움이 되죠. 또 다른 단편소설 ‘화장’을 쓸 땐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을 살아가는 화장품회사 오 상무에 대한 묘사를 하기 위해 그와 유사한 일을 하는 친구를 찾아가 술을 사주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영업이나 광고를 어떻게 하는지를 그를 통해 알 수 있었죠. 화장품 회사도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다 기자시절을 겪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훈은 1990년대 중반, ‘풍경과 상처’(1994) ‘빗살무늬토기의 추억’(1995)을 잇따라 발표하며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2001년 첫 장편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2004년 단편 ‘화장(火葬)’으로 이상문학상을, 2005년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칼의 노래’는 그가 ‘시사저널’ 편집국장 시절 경쟁지 ‘한겨레21’과의 대담에서 한 발언(1980년대 5공 정권을 찬양한 글을 쓴 것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여성이 열등하다고 말한 것)이 시비가 돼 2000년 가을 언론계를 떠난 후 초야에 묻혀 쓴 작품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2년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천한 책이라 하여 더욱 화제가 됐다.

‘화장’은 나이 어린 동료 직원에게 연정을 품은 초로의 사내가 주인공이다.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남자다. 뇌종양인 아내의 병수발을 하는 동안에도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수줍게 흔들리는 중년남자의 심리와 병들고 시들어가는 인간의 몸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돋보인 작품이다. 또 ‘언니의 폐경’은 인생의 황혼기를 예민하지만 조용히 맞는 자매의 이야기를 잔잔하면서도 치밀한 묘사로 그려냈다.

“애초 난 소설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기자로 일하면서 그저 하루하루 생활인으로 살아갔을 뿐이었죠. 기자를 그만두고 나니까 내 속에 막연히 떠돌던 글에 대한 환상을 실현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문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문제 해결이고, 또 한 가지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에요. 괴롭죠. 무거운 짐을 지고 한없이 먼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과 같아요. 가다 거꾸러진다 해도 일으켜줄 사람은 없어요. 거꾸러지면 그냥 거꾸러지는 거예요.”

‘시사저널’ 편집국장 출신으로서 최근의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한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그는 “비통하다”고 표현하면서 그러나 “경영진에게는 기사에 관여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그 방향이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사저널’은 1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비록 작지만 독립된 기능을 가진 언론으로서 많은 것을 성취했어요. 이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하는데 지난 수개월간 한발짝의 진전도 없었다는 것은 심각한 무능을 보여주는 거예요. 타협할 수 없는 것을 타협하는 것이 타협이고, 파업의 목적은 파업을 끝내고 정상화하는 것이어야 해요. 기자들에게는 무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그게 쉬운 길이에요. 정상화 과정에서 어느 쪽이 더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은 일단 정상화부터 실현한 후 추후 하나씩 해결해나가면 되는 거예요. 또 사장은 편집국의 방향을 지휘할 수 있어요. 미국 ‘뉴욕타임스’도 사장이 편집권에 대해 강력히 관여하고 있죠. 만약 기자들이 경영진은 편집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에요.”

김훈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인정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사회의 비리와 모순, 억압에 맞서 싸우고 개선하려는 뜻은 높이 산다”며 “하지만 정권을 잡은 후 실제 사회를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고 오히려 부유층과 빈곤층의 대립과 양극화만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분배의 문제는 법치주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우리 사회의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의 힘이 있는데,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정치리더십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노 정권은 강남을 욕하며 부유층을 마치 악의 무리로 보는데 그런 시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요. 불신과 양극화만 깊어질 뿐이죠.”

김훈은 “노 정권의 최고 업적은 한·미 FTA 체결”이라고 말한다. “도덕과 이념의 문제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도덕과 이념보다 국가의 이익을 생각해야 해요. 국가가 이익 추구에 실패하는 건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것이므로 죄악이에요. 또 어떤 이는 한·미 FTA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자고 하는데, 거대한 세계무역질서 속에서 돌아가는 FTA를 국민에게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으며 설명한다 해도, 알아듣기 어려운 문제 아닌가요? 대체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왜 뽑고, 전문가는 왜 필요한 것인가요? 툭 하면 신문사설에서도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라고 써대는데 이거야말로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위한 세련되고 우아한 거짓말이에요. 무책임한 발언이죠. 이제 정부는 FTA 체결로 우리나라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또 그 이익이 한 계층에 치우치지 않고 고루 돌아가도록 정책을 잘 세워야 해요.”

김훈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한다. 뒤숭숭하고 불안하고 천둥벌거숭이 같은 시절을 이미 지나갔다는 게 다행이라고 말한다. 편하고 자유로워 늙은 게 좋다는 생각이다. 김훈은 “젊음이라는 게 누구나 지향하는 가치가 아닐뿐더러 젊음이 늙음보다 미학적·도덕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다”라며 “각자 자기가 처한 자리가 가장 편안하고 좋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람 소리,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 등 작은 소음도 싫어해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평생 본 영화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사람 붐비는 곳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 다섯 편이 안 되는 관람영화도 학창시절에 단체 관람한 것이다.(기계를 전혀 다룰 줄 몰라 비디오로도 영화를 본 적이 없단다). 김훈은 홀로 노을을, 새를, 강을, 산야를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그는 “앞으로 역사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대의 좌절과 실패, 성취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김·훈·은·일·산·에·있·다.(글·박주연 기자)

서울신문(07. 06. 04) '남한산성’ 한국소설 중흥 신호탄?

소설가 김훈씨의 역사장편소설 ‘남한산성’이 출간 한 달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벌써 1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단은 당연히 반색이다. 한국소설의 위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요즈음 ‘남한산성’이 한국소설 중흥의 단초를 제공하길 바라고 있다.

대형 작가들 신간·연재물 잇따라 분위기 ´고조´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대형작가들이 잇따라 신간을 발표하고 있는데다, 신문이나 문예지 연재물들도 많아 파도를 타듯 한국소설의 인기가 지속될 물적 토대는 갖춰져 있는 셈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란간 조선 왕조의 47일간의 치욕적인 기록을 담은 ‘남한산성’은 한때 한국소설을 떠났던 남성 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조를 사이에 두고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이 벌이는 논쟁, 그리고 이들의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는 영의정 김류의 좌고우면, 전쟁과는 무관하게 조정이 떠나기만을 바라는 궁안마을 백성들의 바람, 인조가 칸 앞에 무릎을 꿇은 삼전도의 치욕 등은 남성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그동안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치욕의 역사를 다룬 것도 독자들로서는 뜻밖이었다.

지난해 9월 이후 한국소설 첫 쾌거
그럼 과연 `남한산성´의 인기는 한국소설 중흥의 계기가 될 것인가. 한국소설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지난해 9월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 거의 9개월 만이다. 그동안 한국소설은 아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중간에 김원일씨의 ‘전갈’, 조정래씨의 `오 하느님´, 김영현씨의 ‘낯선 사람들’ 등 대형작가들의 장편들이 잇따라 나왔지만 독자들은 일본소설만 찾을 뿐 우리 소설을 외면해 왔다. 문학평론가인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하위계급의 남성 및 여성 독자와 상층계급의 남성 독자는 소설로부터 이탈했다.”면서 “남은 건 엽기·추리·무협 등 하위 서사장르를 소비하는 남성 중간계급 일부와 여성 중간계급뿐이다.”라고 이유를 분석했다. 우리 소설이 중간계급의 전유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떠났던 상위 계급 남성독자 발길 되돌려
헌데 그렇게 떠난 상층계급의 남성 독자들이 ‘남한산성’을 계기로 돌아왔다. 여기에 탄탄한 서사와 맛깔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형작가 신경숙씨가 최근 장편 ‘리진’을 발표했다. 조선말 프랑스 외교관을 따라 파리로 떠났다 돌아온 궁중무희의 사랑과 비극적인 삶을 소설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신문연재때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었다.

여기에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씨도 자신의 가족사를 다룬 ‘즐거운 우리집’을 일간신문에 연재하고 있는데다 ‘객주’의 작가 김주영씨도 새로운 장편 ‘붉은 단추-최근에 있었던 옛날 이야기’를 현대문학 6월호부터 연재하기 시작해 이들의 작품이 완성돼 나올 내년 초까지 한국소설 붐이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떠났던 독자들의 눈길을 되돌릴 수 있는 한국소설의 저력이 되살아날지 문단 안팎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주목하고 있다.(박홍환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마이뉴스에서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방한을 회고하는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13708&ar_seq=7). 그의 책들을 많이 출간한 한길사 김언호 사장의 회고인데(연재물인 '책의 탄생, 시대의 풍경'의 한 꼭지이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홉스봄은 20년전, 그러니까 지난 1987년 5월에 한국을 다녀갔다. 전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기 바빴던 모양이다(6월 항쟁 한달 전이니까 사실 '적응'이라는 말 자체가 사치스럽다. 적응해야 할 대학생활이라는 게 있었나?). 어쨌든 흘려보낸 시간의 이면을 들추는 듯해서 흥미롭다. 최근 그가 편집한 <만들어진 전통>(휴머니스트, 2004)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도 기사에 대한 흥미를 느낀 또 다른 이유이다. 방학때 그의 자서전(<미완의 시대>)이나 읽어볼까 싶다.

오마이뉴스(07. 05. 31) '열정의 역사가' 홉스봄을 만나다

1987년 5월 12일 화요일 오후 5시 영국의 세계적인 사회경제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 )이 안암동에 있는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참으로 귀한 손님이었다. 이런 석학을 모실 수 있다니 출판사·출판인으로서 대단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정현백·박지향 교수가 안내했다. 나는 홉스봄에게 한국사회에서 당시 힘차게 전개되고 있는 사회운동과 출판운동에 대해서 설명했다. 책과 권위주의적 권력이 갈등하고 있는 양상에 대해서도 말했다. 홉스봄은 어떤 책들이 판금되었는가를 저자 이름, 책 이름을 일일이 메모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진실을 추구하는 노학자의 정정한 모습이었다.

"한국사회는 지금 격동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간평등을 주창하는 젊은이들의 운동과 정신은 일련의 젊은 출판인들이 펼치는 출판운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으로 '독서'하고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젊은이들이 읽고 있는 책을 두려워하면서 그런 책들을 판매금지시키고 있지만, 독자들의 문제의식은 엄청나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금서정책'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문제의식과 행동은 정부의 금서조치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대석학은 나의 설명을 경청했다. 한국의 사회운동과 출판상황은 선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회사적 자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해 4월 28일 서울지검 공안2부는 '좌경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젊은 출판인 5명을 구속했다. 녹두출판사 김영호(27) 대표와 사계절출판사 김영종(32) 대표, 동녘출판사 이건복(33) 대표, 세계사 윤후덕(30) 대표, 거름 편집인 강경철(26)씨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괄호 속 나이는 1987년 당시 기준)

나의 방에서 나는 선생과 한 시간 정도 한국의 사회상황·출판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수많은 책들이 판금되거나 강제 수거되며, 때로는 구속되는 상황에서도 젊은 출판인들은 계속 책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런 대화를 홉스봄 선생과 나누던 그 80년대는 나에게 분명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홉스봄은 서울대 이인호 교수가 재직하던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초청하고 국제문화협회의 협찬을 받아 방한했다. 한길사와 서울대 서양사학과가 공동주최하는 '홉스봄 교수 초청 학술강연회'가 5월 9일 오후 동숭동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열렸다. 그날 '최초의 산업국가의 흥망 : 영국 1780~1980'을 주제로 한 강연회에서 홉스봄은 당대의 석학답게 신념에 찬 목소리로 열강 했다. 영국의 상황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조건도 비교해가면서 강연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그의 이론과 사상은 열려 있었다.

한길사는 일찍이 홉스봄의 <의적의 사회사>(Bandits, 1969)를 1978년 11월에 펴냈다. 공업화되기 이전의 농업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비적 내지 의적현상을 분석하는 책이다. 역사 연구의 주류에서는 이제까지 별로 연구되지 않은 사회적 반항, 또는 민중의 원망(願望)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저술이다. 로빈 후드에서 양산박(梁山泊)의 산적들, 멕시코 초원의 혁명아 판초 비야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뒤안에서, 그러나 역사의 원동력으로서, 민중과 더불어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나이들의 이야기다.



한길사는 다시 '오늘의 사상신서' 제71권으로 <자본의 시대>(The Age of Capital, 1975)를 1983년 12월에 펴냈다. 이어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colution, 1962)를 '오늘의 사상신서' 제74권으로 1984년 8월에 펴냈다. 그리고 <제국의 시대>(The Age of Empire, 1987)를 '한길그레이트북스' 제14권으로 1998년 10월에 펴냈다. 이 세 권의 책은 홉스봄의 대표적인 저술로 이른바 '자본주의 역사 3부작'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부터 1914년까지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세계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홉스봄의 이 3부작을 읽으면, 역사란 이렇게 흥미진진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당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생활상까지를 생생하게 재현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역사란 제도사(制度史)나 경제사만이 아닌 인간이 엮어내는 경이로운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필력을 홉스봄은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읽어서 재미있고 즐거운 책'이라는 격찬을 받은 저술이다.

홉스봄이 그려내는 역사라는 풍경화는 '역사서술이란 당초부터 탁월한 문학'이라는 명제를 일깨워준다. 나는 홉스봄의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대하소설 속에 들어서 있는 듯한 감흥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넓게 열려 있는 시야와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역사란 참으로 위대한 교훈이자 오락이라는 명제도 아울러 확인하게 된다.

한길사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행하고 있는 대형기획 '한길그레이트북스'의 제12·13·14권으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배치했다. 이 '자본주의 역사 3부작'은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되고 있지만, 홉스봄 선생의 고전이란 또 다른 문학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1987년 5월 12일, 나는 홉스봄과 우리가 펴낸 <혁명의 시대>와 <자본의 시대>를 들고 현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나는 세미나실을 보여드리면서 그때 우리가 펼치고 있는 한길역사강좌·한길역사기행·한길사회과학강좌 등을 설명했다. 나는 홉스봄에게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국가사회와 민족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홉스봄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은 '역사'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토가 분단되고 동족끼리 전쟁을 하는 참으로 비극적인 현대사의 아픈 체험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이 분단시대사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의 설명을 들은 홉스봄은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미래에 희망을 건다는 것입니다"라는 말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삶의 희망과 미래의 지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연구해보면, 역사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현대 역사학의 거장 홉스봄은 1980년대에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이 총체적으로 체험하던 민주화운동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안암동의 그 작은 세미나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책장에 꽂혀 있는 한길사의 책들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나는 홉스봄을 인사동으로 모시고 가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한국적인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국악을 연주해주는 '산촌'으로 갔다. 스님이 경영하는 음식점 산촌에서는 고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저녁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국악과 춤을 선생은 흥미롭게 보고 들었다. 홉스봄은 특히 국악기 아쟁의 소리가 좋았다는 코멘트를 했다. 재즈 전문가로서 재즈에 관한 책과 글들을 쓰고 있던 그에게 한국 음악에 대한 관찰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1986년 1월 6일자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발표한 글에서 홉스봄은 "1950년대 미국 대중음악에서는 존속살인이 일어났다. 록이 재즈를 살해한 것이다"라고 썼다. 이 같은 표현을 두고 <옵서버>지는 "재즈에 대해 쓸 때 그는 자신이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을 옹호하고자 사나운 채찍을 휘두른다"고 했다. 그러나 "홉스봄은 역사까지 이런 식으로 서술하지 않았다는데 안도감이 든다"고 했다.



이 전문가의 시대에 홉스봄 선생만큼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갖춘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세기의 노동운동, 아방가르드 운동예술과 사회주의와의 관계, 농민운동, 베트남전, 듀크 엘링턴과 빌리 홀리데이 같은 재즈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과 천착은 놀랍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보통 사람들이, 사실은 역사를 만들고 일으켜 세우는 역사의 주역이라고 말하는 홉스봄, 통상 평범한 사람들(Common People)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Uncommon People)이다. 이름 없는 이들이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이다. 홉스봄은 바로 '참으로 위대한 보통의 사람들'을 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라는 제목으로 영림카디널에서 2003년에 번역되어 나온 < Uncommon People >(1998)도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자본주의 역사 3부작'에 이어 1994년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s)를 저술한다. 이는 20세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극단의 시대>는 까치글방에 의해 1997년에 번역출간 되었다. 또 <역사론>(On History)을 1997년에 저술했다. 이 책은 2002년 민음사에서 번역출판 되었다. 2002년에는 자서전 <흥미로운 시대(Interesting Times)>를 저술한다. 이 책 역시 <미완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민음사에서 번역출판 했다.



홉스봄은 참으로 독특한 삶을 살아온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가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핵무기확산 반대 시위운동을 벌였고,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를 위해 통역을 해주었으며, 런던에서는 재즈에 심취했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해서 이스라엘에서는 왕따 당했다.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였지만 소련에서 그의 저서는 판금 당했다. 영국의 비타협 노동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사회정의를 위해 90살이 넘어서도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는 열정의 역사가다. 그는 그 정신과 사상이 살아 있는 20세기의 현자다. 역사의 힘, 역사의 지혜를 실증해보인 실천하는 현자!

홉스봄이 한국을 방문하던 1987년 5월 그 무렵 나의 '일기'에는 이른바 '판금도서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1982년부터의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1980년대에 창출된 책 또는 책의 정신과 사상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다. 70년대와 80년대는 '사회과학의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과학적 인식을 시대를 거쳐서 한국사회는 오늘 이만큼 성장했다.(김언호 기자)

07. 06. 04.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인 2007-06-04 22:29   좋아요 0 | URL
애인 귀국 후 맨 처음 하기로 한 세미나가, 홉스봄 선생 3부작 2주만에 읽기 세미나입니다 ㅋㅋ 추천하고 퍼갑니다. :) 내일부터 세미나 시작! ^^;

전자인간 2007-06-05 08:53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보니 당장 어디 산속에라도 들어가 아무 일도 안하고 <혁명의 시대> 부터 <극단의 시대>까지 한 번 더 통독하고 싶어집니다.

로쟈 2007-06-05 15:36   좋아요 0 | URL
기인님/ 애인분과 주로 세미나를 하시는군요.^^; 다른 할일도 많으실 텐데...
전자인간님/ '산속'에서 읽기엔 (근현대사인만큼) 좀 격렬한 책들인 듯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