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책들과 씨름했다. 이때 '씨름'은 물론 비유적인 의미에서 쓴 것이지만 비유만은 아닌 게 책을 읽고 이해하느라 고투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책장의 있는 책들을 모두 빼서 다시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의미에서의 '씨름'이기 때문이다(그 결과 삭신이 쑤신다). 딸아이의 방을 만들어주려고 몇 주전부터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로서 3단 책장 6개와 5단 책장 3개에 꽂혀 있던 책들을 모두 거실(혹은 베란다)로 빼내고 그걸 기화로 아예 서재의 책들까지도 전부 재배열했다. 전쟁터 같은 집안 풍경이 다소나마 정리된 게 어젯밤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칠하느니 마느니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딸아이의 방에 칠할 '친환경' 페인트를 구했고 그 사이에 날은 저물었다. 어젯밤과 오늘 오전에 본 비디오를 반납하러 나갔다가 편의점에서 조간신문을 사들고 온 게 조금 전이다. 읽은 시간상으론 '석간'이라 해야 할 그 신문이 수요일자 한국일보이고 내가 읽은 건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이다. 특별히 오늘은 '文靑 사로잡은 비평의 신화' 김현을 다루고 있기에 여기에 옮겨놓도록 한다. 김현, 김윤식이란 이름은 내 청춘의 10년을 사로잡았던 '신화'이기도 했었기에(사실 고종석이 '말들의 풍경'이란 제명 자체를 빌어온 김현에 대해서는 연재의 말미에서나 다루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칼럼의 서두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이 불세출의 비평가가 세상을 뜬 지도 열여섯 해가 되었다. 그의 부고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어떤 막연한 의무감에 영안실이 안치돼 있다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던 기억마저 나는 갖고 있다(짧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만 되뇌었던가). 책장 정리를 다시 하면서 가장 가까운 서가에 그의 책 대여섯 권을 아직 꽂아둔 것도 그런 '인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책이 <말들의 풍경>(문학과지성사, 1993 5쇄본)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1990년 12월에 나온 초판이 아닌 것은 내가 어떤 사정으로 이 책을 한번 더 샀기 때문이다(초판은 내가 군복무시절에 산 책이어서 지방에 놓아둔 것으로 기억된다).

사후적인 회고가 되겠지만, 언제부턴가 지난 90년대 문학을 '김현 이후의 문학'으로 나는 기억/규정한다. 마땅한 당대의 비평가를 갖지 못한 문학의 허전함을 나는 지우지도 채우지도 못하겠다. 칼럼의 중간에 나오는 고종석의 말을 미리 빌자면 "사실 김현은 문학평론을 그 자체로 읽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의 첫 비평가고,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목소리 큰 비평은 많고 그보다 예민한 비평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비평도 '문학'이라는 걸 확증시켜준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였고, 그래서 그의 부재는 아쉽고 유감스럽다. 최근 '근대문학의 종언론'에 기대어 비평의 종언을 시비하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만약 비평에 종언이 있(었)다면 그건 지난 199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4.19 세대가 소위 한국사의 '근대' 혹은 '근대 시민정신'과 '학생운동의 정신'을 웅변하는 세대였다면 김현이야말로 4.19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비평가였고, 지난 1990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이니까.   

한국일보(06. 10. 04) [말들의 풍경]<31>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문학비평가 김현(1942~1990)이 돌아간 지 16년이 되었다. 16년이면 한 사람의 생애와 정신의 궤적을 감정의 동요 없이 되돌아보기에 꽤 넉넉한 시간적 거리다. 그에 대한 친구들의 사랑도, 적들의 미움도 그 격렬함이 많이 잦아들었을 테다. 그가 작고하고 세 해 뒤에 16권으로 완간된 ‘김현문학전집’의 종이빛깔도 제법 누렇게 되었다.

김현 이후 16년 세월은 이른바 ‘문지 동아리’ 안에서 김현 신화가 더욱 굳건해진 세월이기도 했고, 그 동아리 바깥에서 김현 신화가 사뭇 바랜 세월이기도 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치달은 이 세월의 힘 가운데, 더 큰 것은 뒤쪽이었던 듯하다. 그것은 생전의 김현이 누린 권위가 워낙 컸던 탓이기도 하다. 정점에 이른 자에겐 또 다른 상승의 가능성보다 추락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아닌게아니라, 그 16년 세월은 김현 글의 모자람을 드문드문 드러낸 세월이었다.

그 모자람은 김현 둘레 사람들의 글과 견주어서도 더러 드러난다. 김현 이후 16년은 김현의 제자나 후배 비평가들의 나이를 김현보다 더 먹게 만들었다. 그가 아끼던 후배 김인환과 황현산은 이제 그들의 선배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고, 그가 아끼던 제자 정과리는 스승이 도달했던 마지막 나이에 이르렀다. 그 제자와 후배들의 글들 옆에 나란히 놓일 때, 김현의 글은 어쩔 수 없이 낡아 보인다. 사실 이런 ‘낡음’은 이미 김현 생전에도 기미를 드러냈다. 김현의 어떤 글은 정치함에서 김인환만 못해 보이고, 자상함에서 황현산만 못해 보이며, 화사함에서 정과리만 못해 보인다.

생전에 낸 마지막 평론집 ‘분석과 해석’의 서문에서 김현은 청년기부터 그 때까지 자신의 변하지 않은 모습 가운데 하나로 ‘거친 문장에 대한 혐오’를 거론했으나, 그 혐오를 철두철미하게 실천한 것 같지는 않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는, 청년 정과리의 글에선 찾기 어려운 유치함과 허세 같은 것도 읽힌다. 현학은 ‘배운 청년’이 흔히 앓는 병이지만, 청년 김현은 그 병을 좀 심하게 앓았던 듯하다. 물론 김현은 이내 그 병에서 회복되었다.

그러나 김현의 글은, 이 모든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이 후배와 제자들의 글보다 훨씬 더 맛있게 읽힌다. 그의 윗세대나 동세대 평론가들의 글과 견주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김현은 문학평론을 그 자체로 읽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의 첫 비평가고,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김현이, 적어도 30대 이후의 김현이, 비평이란 수필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드문 비평가였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을 테다.

그에게 비평은 논리와 지식의 전시장이 아니라 직관과 감수성의 연회였다. 김현은 비평을 제 앎을 드러내는 자리로 사용하지 않고, 마음(의 파닥거림)을 주고받는 자리로 사용했다. 작품론이나 작가론에서, 김현은 (초기 글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불문학 교양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김현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이, 모든 뛰어난 비평가에게 그렇듯, 오래 축적된 문학 교양과 어찌 관련이 없으랴?

김현이 자신의 직관과 감수성으로 작품에서 길어낸 의미가 늘 옳았던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 한 작품이 김현의 손길을 통해 늘 제 비밀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말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 작품에는 고정된 의미(들)만 있다는 속 좁은 문학관이 그 속에 웅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생전의 김현이 결코 동의하지 않았던 견해다. 그러니 이 말을 이렇게 바꾸자. 김현이 작품에서 길어낸 의미가 늘 표준적이었던 것 같진 않다고. 사실은 그 반대다. 김현의 말 읽기, 마음 그리기는 거의 언제나 독창적이었고, 바로 그 독창적인 의미화를 통해 한 작품을, 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두텁게 만들었다. 모든 독창적 해석이 누군가에게는 오해로 받아들여진다면, 김현은 오해의 대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김현은 한 작품을 그 안으로부터만 읽어내지 않았다. 그는 한 작품을 그 작가의 다른 작품 전부와의 맥락 속에서 읽을 줄 알았고, 무엇보다도 한 세대 내 또는 세대간 영향(의 불안)이라는 커다란 맥락 속에서 읽을 줄 알았다. 그것은 유년기 이래 평생 이어진 그의 글 허기증 덕분이었다. 김현은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글을 훨씬 많이 썼지만, 진짜 잊어서는 안 될 점은 그가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글을 훨씬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다.

설령 그가 이런저런 작품들에 매긴 자리(생전의 김현은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싫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자리매김이란 관계맺기, 관계짓기보다 훨씬 고착적이어서, 한 번 자리가 매겨지면 변경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상자 기사의 ‘말들의 풍경’ 서문은 그의 이런 생각을 매혹적인 한국어로 펼쳐 보이고 있다)가 늘 공정하게 보이진 않았다 할지라도,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넘나들며 작품과 작가에게 그럴듯한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김현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후에 출간된 독서일기에서, 김현은 자신의 글을 괴팍하다고 평한 어느 소설가의 말을 거론한 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라고 적고 있다. 김현의 이 자부심은 온전히 정당하다.

김현의 글은 어느 순서로 읽어도 술술 읽힐 만큼 자기완결적이지만, 시간축을 따라 읽을 때 그 저자의 ‘인간적 매력’을 한결 또렷이 드러낸다. 그 ‘인간적 매력’이란 지적 정서적 윤리적 성숙의 여정이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 설핏설핏 보였던 문장의 어설픔, 현학 취미와 자기애는 만년 글에서 거의 말끔히 걷혀지고, 단정하되 윤기 있는 문체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겸양이 독자를 맞는다. (물론 그는 자신의 ‘앎’에 대해서는 겸손했으나 자신의 ‘감식안’에 대해선 끝내 겸손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감식안을 감식하지 못하는 한국 문단을 슬그머니 타박하기도 했다.) 기분 좋은 일이다.

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나이가 늘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이와 함께 푹 익은 인격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 분야의 세속적 정점에 이른 이의 인격일 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생전의 마지막 평론집 ‘분석과 해석’과 유고 평론집 ‘말들의 풍경’에 묶인 글들은 한국어 산문이 도달한 아름다움과 섬세함의 꼭대기를 보여준다.

 

 

 



김현은 문학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정치적 문인이었지만, 그의 문학평론은, 특히 만년에 이르러,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의 고갱이를 건드리곤 했다.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1987)와 그 즈음의 몇몇 평문에서 그가 탐색한 폭력의 의미는, 깊숙한 수준에서, 1980년 봄과 관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현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과, 역시 깊숙한 수준에서, 무관치 않았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라도 지식인들이 흔히 그렇듯, 김현도 ‘억눌린 자’와 ‘억누르는 자’ 사이에서, 아니 보편(적 지식인 됨)과 특수(한 소속감)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제임스 쿤의 ‘눌린 자의 하나님’을 읽고 쓴 1986년 5월27일치 일기의 한 대목은 이렇다.

“나는 전라도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 숙고했다. 때로는 혐오하면서, 때로는 연민을 갖고서,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도피의 마음으로.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하숙을 거절당한 것, 사투리 때문에 놀림받은 것, 전라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80년 이후에도 조용하다는 것…… 등의 것들이 뭉쳐져 내 가슴에 밀려들어왔다. 쿤의 책은 내 경험세계의 신학적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나는 억눌린 자인가? 아니다. 억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완전히 지배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문학장’ 속에서 권력을 효과적으로 획득하고 합리적으로 행사하는 방법을 알았다는 점에서 김현은 매우 정치적이기도 했다. 대학시절의 ‘산문시대’에서 ‘사계’와 ‘68문학’을 거쳐 ‘문학과지성’으로 이어지는 그의 동아리 운동에는 세대 전쟁과 세계관 전쟁이 버무려져 있었고, 김현은 늘 제 캠프의 우두머리 노릇을 했다. 그가 문학의 고유성과 (은밀한) 위엄을 그리도 강조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이 ‘문학’이었기 때문이리라.

서가에 꽂혀 있는 김현 전집 가운데서 아무 거나 뽑아 들어 띄엄띄엄 읽노라면 문득 가슴이 울렁거린다. 거기에 내 글의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나 그 눈길을 담아내는 문체에서나 내 글은 김현의 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고 격조와 깊이에서 도저히 김현의 글과 견줄 수 없지만, 그 근원은, 행복해라, 김현의 글이었다.(고종석 객원논설위원)

● '말들의 풍경' 서문 (앞부분)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들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것 자체가 마치 기름 물감의 계속적인 덧칠처럼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로 덧칠되며, 그 풍경을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빛의 움직임에 따라 물의 색깔이 변하듯 변한다. 풍경은 수직적인 의미의 중첩이며, 수평적인 의미의 이동이다.

그 중첩과 이동을 낳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다. 욕망은 언제나 왜곡되게 자신을 표현하며, 그 왜곡을 낳는 것은 억압된 충동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본능적인 충동이 모든 변화를 낳는다. 본질은 없고, 있는 것은 변화하는 본질이다. 아니 변화가 본질이다. 팽창하고 수축하는 우주가 바로 우주의 본질이듯이. 내 밖의 풍경은 내 충동의 굴절된 모습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 안의 풍경이다. 밖의 풍경은 안의 풍경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안과 밖은 하나이다.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의 참뜻은 바로 그것이다...

06. 10. 04.

P.S. 이 칼럼/페이퍼를 '곁다리텍스트'로 분류해놓는 것은 이전에 옮겨놓은,김윤식의 서문집에 대한 고종석의 칼럼('나는 '쓰다'의 주어다')과 짝을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지극히 정당하게도) 칼럼 말미에 인용돼 있는 <말들의 풍경> 서문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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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05 00:48   좋아요 0 | URL
어머 그 많은 책정리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정말 책과의 씨름이었네요. 김현의 말들의 풍경 서문도 잘 보고 갑니다. 이 페이퍼 담아갈게요. 로쟈님, 감사합니다.^^

페일레스 2006-10-05 18:5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로쟈님이 풀어내는 '책들의 풍경'을 흥미롭게 읽다 가곤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조각글(혹은 곁다리-텍스트)이 아니라 잘 정돈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로쟈님의 '말들의 풍경'을 손 안에 쥐고 싶다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가져봅니다...

로쟈 2006-10-06 00:39   좋아요 0 | URL
배혜경님/ 자업자득이니까 저로선 유구무언입니다. 할말이 많은 사람들은 주변의 가족들이지요(^^;)...
페일레스님/ 곁다리텍스트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한권의 책'이 채 되지 못하는...
 

몇 주전 마종기 시인의 신작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문학과지성사, 2006)가 출간됐었다. 시집의 펴낸 날을 보니 '2006년 8월 31일'로 돼 있다('그 여름의 끝'에 나온 시집이다!). 시집을 손에 들기 전에 먼저 두 편의 시를 한 지인의 블로그에서 읽었는데, 타이핑된 시는 아래와 같다.

아주 작은 날벌레가 어디서 날아와 읽던 책장에 앉
았다. 나는 책을 잽싸게 닫아 날벌레를 죽였다. 읽기
를 계속하려고 다시 책을 여니 벌레는 죽어서 검은
점 한 개가 되어 있었다.뜯어낼 건더기도 없었다. 날
벌레의 날개도 부서지고 눈알도 다리도 심장도 다 함
께 뭉개져서 작은 점 하나가 되어 있었다.

책장을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으스러진 벌레의 본
래 모습을 그려본다. 이 날벌레도 이름은 있었겠지.
하루살이보다 더 짧은 이름. 입김이 시신을 다칠까 봐
조심스레 한마디 했다. 미안하다. 나에게 이 날벌레는
너무 작고 나는 조팝나무 꽃보다 너무 작다. 작고 큰
것은 어차피 비교하기 나름이다. 미안하다. ......

세상에는 팔팔하던 몸이 죽어 겨우 검은 점 하나로
남는 생명이 많다. 나도 그럴까. 그러니 함부로 슬퍼
하지도 울지도 말 것. 눈물 한 방울에 시신이 완전히
씻길 수도 있다. 한 슬픈 감정이 남을 씻어 없애기도
한다. 저 함부로 내뱉는 슬픔의 잔인성, 저 함부로 내
뱉는 외로움의 음흉스러움, 저 함부로 내뱉는.......

 

 

 

 

내게 인상적이었던 시 '검은 점의 장례'의 전문인데, 처음에 이 시가 인상적이었던 건 물론 내용도 좋긴 하지만, 특유의 행갈이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가령, '앉았다'를 1행과 2행에 걸쳐서 '앉/ 았다'라고 행갈이를 하는 게 시인의 생물학적 나이와 무관한(시인은 1939년생이다) '문학적 젊음'의 표식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러한 행갈이가 이 시에서 그려지고 있는 삶과 죽음의 팽팽한 긴장을 더욱 고조시켜주는 것으로 읽었다. 뜯어낼 건더기도 없이 부서지고 뭉개진 날벌레 한마리의 모습을 '읽기/ 를' '날/ 벌레' '함/ 께'라는 식의 행갈이가 도상적으로 보여준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첫인상이었다.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며칠이 지난 다음이었다. 시인의 자의적인 행가름이 아니라 그냥 타이핑의 문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즈음에 구한 시집에서 확인해보니까 역시나 원시는 따로 행가름이 돼 있지 않은, 다만 3개 연으로만 구획된 산문시였다. 아마도 타이핑된 시 또한 양쪽 맞춤을 했더라면 애초에 내가 가졌던 오해/오독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벼운 해프닝이었던 셈인데, 한편으론 그런 '전위적인' 행가름의 가능성이 무산된 듯해 다소 아쉬웠다. 산문과 달리 시에서 의미를 발생/증폭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식이 바로 행가름/연가름인데(가령 통사적인 한 문장이 두 연에 걸쳐 이어지는 앙장브망 같은 시행을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의 시들에서는 너무 무시되는 듯하기도 하고.

칼리그람시(그림시)였다면, "날벌레의 날개도 부서지고 눈알도 다리도 심장도 다 함께 뭉개져서 작은 점 하나가 되어 있었다"란 내용을 크기도 제각각인 산개된 글자들이 널브러져 있으면서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 가는 과정을 표현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시각적 효과를 배제한다면 시는 시각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청각에 호소하게 된다. 낭송용 잠언들. 말 그대로, 그건 검은 점으로 수축된 '글자들의 장례'이기도 하다. 청각영상으로서의 시니피앙(기표)에 자신의 자리를 내준 말 그대로의 글자들(letters). 나는 그 글자들이 좀더 활개치는 시들이 보고 싶다...

06.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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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6-11-0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던 거군요. 재미있네요.

맑음 2006-12-21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말 이럴 때 쓰는 거 맞죠? 로쟈님 이 글도 담아가겠습니다.^ㅅ^
 

경향신문의 고전읽기에서 일본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탐구>(새물결)가 다루어지고 있길래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나는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민음사)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그 영역본을 타대학 도서관에 대출신청했다(내가 갖고 있는 국역본은 '고아원'에 가 있다). 올 문단의 큰 논쟁거리를 가져온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 그 '기원'에 관한 이야기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자연스레 생각했기 때문이다(고진 스스로가 문제삼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내용정리를 마저 끝내는 일도 아직 미뤄둔 숙제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가라타니 고진에 관한 페이퍼들을 자주 올렸다고 생각되는데, 내가 제일 처음 읽은 책도 <탐구1>이었다. 그의 '비평'은 '고진식 비평'이라고 따로 분류해도 좋을 만큼(적어도 국내에서는 그런 종류의 비평을 접하기 어려웠던 거 아닌가? 철학과 문학을 횡단하는 쪽으로는 김우창 교수의 비평 정도가 예외적이었을 뿐) 독특하고 흥미로웠는데, 게다가 '읽히는' 비평이었다(아래의 기사를 보니 <탐구>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고진급의 비평가가 흔한 건 아니라는 데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읽은 게 <은유로서의 건축>이었던 듯하며 나는 이 책을 영역본과 나란히 놓고 읽었다.

 

 

 

 

영역본을 위한 이 선집이 <탐구>에서 더 나아간 것처럼 여겨지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후에 나는 고진의 애독자가 되었다. 당연히 이후에 출간된 고진의 모든 책을 사들였으며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정도를 빼고는 다 읽어본 듯하다. 그리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몇몇 저작(가령 <의미라는 질병> 같은 비평집)을 은근히 고대하고 있다. 혹 당신이 아직 이 거물급 비평가를 만나본/읽어본 적이 없다면 (뚜쟁이로서 말하건대) 한번쯤 시간을 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대충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되면 당장 비평을 써보시라. '고진을 넘어선 비평'이 탄생하는 흔하지 않을 장면을 나는 목도하고 싶다...

경향신문(06. 09. 30) ‘타자’와 ‘윤리’에 대한 치열한 성찰

한 권의 책이 생각하는 감각을 바꾼다고 할 때, 이는 날카로운 칼에 베는 일과 같다. 한 번 벤 자리는 아물어도 예전 같지 않다. 벨 때의 고통은 떠나겠으나 몸은 이미 전과 다르며, 미열이 가시지 않는 혼미함 속에서도 정신은 각성되어 있다. ‘탐구’를 읽고 나서는 전처럼 생각하기 힘들다.

저자인 가라타니 고진(1941~) 자신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탐구’를 ‘전환’이라 일컫는다. ‘탐구’의 글들은 1985년에서 88년까지 잡지 ‘군조우(群像)’에 연재됐는데, 그 2년은 첨예한 논쟁의 연속이었다. 고진이 ‘기존 철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진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대결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 이후 고진은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는 이 시기 자신의 사상적 고투를 ‘패배한 전쟁’이라 일컫는다. 그의 싸움은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나 자신을 ‘안’에 묶어 두려고 했다. …나는 바깥을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되지 않도록 하였는데, 바깥이란 일단 그렇게 파악되면 이미 안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내성과 소행’)

그는 형이상학과의 지난한 싸움에 나섰다. 경제학, 문학, 철학의 영역으로 전략적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형이상학과 맞섰다. 자리를 옮겼을지언정 고진은 한 번도 쉽사리 자신을 형이상학 밖에 있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형이상학의 내부로, 사유되지 않은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종국에는 형이상학을 안으로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철저한 논리적 작업을 거쳤다. 그 결과가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1983)이다.

그러나 그는 패배했다. 초월적인 의미를 제거하기 위해 전투에 나섰으나, 그 전투가 자신에게 남긴 것은 메마른 감각과 갑갑한 논리였다. 거기에서 빠져 있는 것은 ‘타자’라는 생명력이었고, ‘윤리’로서의 소통이었다. 이제 고진은 형이상학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을 사유하기 시작한다. “내가 ‘탐구’를 연재하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이’ 혹은 ‘외부’에서 살기 위한 조건과 근거였다고 할 것이다.”(‘탐구’ 후기)

‘탐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타자(他者)’이다. ‘타자’라는 말은 그 함의와는 달리 결코 낯설지 않다. 빈번히 사용되는 이 개념은 낯선 존재를 범박하게 처리하는 상투어가 되고 만다. 그 까닭은 타자라는 말이 자기 확장의 의미를 띠고 사용되기 때문이다. 고진은 이러한 용법을 가장 경계한다. 그에게 타자는 주체의 ‘바깥’이지만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바깥’이다. 만약 그 ‘알 수 없는 거리’가 빠져있다면 타자는 그저 주체 ‘안’의 존재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서 상정되는 신은 자기의 확장일 따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의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소리이다. 자신의 말을 마치 누군가의 말인 양 듣는다. 그때 타자와의 ‘거리’는 발생하지 않는다. 신이 전지전능하게 나를 꿰뚫고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내가 안다는 사실과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가장 잘 아시는 신의 상정, ‘기복 신앙’은 자기독백이다.

여기에서 빠져 있는 것은 ‘비대칭적 관계’이다. 타자는 내가 품는 의미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존재이다. 이쪽에서 자명하다고 저쪽에서도 자명하지는 않다. 이때 고진이 ‘타자’로 문제 삼으려는 것은 ‘독아론(獨我論)’이다. 독아론은 나에게 타당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타당하다는 사고방식이다. 독아론에서 남은 나와 동일한 주체로서, 동일한 규칙을 소유하는 사람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이들은 내면화된 존재일 따름이다.

고진은 플라톤 이래의 서구 형이상학은 바로 이러한 독아론의 소산이었다고 지적한다. 거기에서 배제된 존재들은, 광인(푸코, ‘광기의 역사’)처럼 규칙을 공유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실제의 삶이란 무수한 존재들간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들을 뛰어넘는 ‘가늠할 수 없는’ 도약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를 성찰하는 일은 ‘윤리’적이다. ‘윤리’란 타자와의 ‘비대칭성’을 품으면서도 관계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탐구’는 이렇듯 ‘타자’와 ‘윤리’에 관한 책이다.

일본의 사상지 ‘유레카’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탐구’를 선정했다. 80년대 후반의 저작이 90년대 최고의 책으로 꼽힌 것은 ‘탐구’가 90년대의 맥락에서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소위 동구권의 몰락 이후 ‘역사의 종언’이 고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서구이성 혹은 자본주의의 독백일 따름이다. 문제는 그에 맞서는 해체주의가 90년대에 이르러서 파괴력을 잃고, 지적 유희의 경향을 걸었다는 점이다. 그 때 빠져있는 것 역시 ‘타자’와 ‘윤리’였다. ‘탐구’는 역사에 대한 목적론을 부정하면서도 그 반편향으로 어려운 지적 수사에 이르지도 않았다. 다만 실제의 삶에 대해 말한다. 이제 고진이 ‘탐구’에서 자주 인용하는 비트겐슈타인의 한 구절을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안에 신비는 없다.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신비이다.”(윤여일|‘수유+너머’ 연구원)

06.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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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02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0-02 16:40   좋아요 0 | URL
**님/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아닙니다.^^ 저도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었는데, 별로 애로사항이 없다고 답했지요. 워낙에 가족이 단촐해서...
**님/ '고아원'이 좀 다른 뜻인데요(^^;). 제가 책을 보관해두고 있는 곳을 '고아원'이라고 부릅니다. 시화공단에 있습니다. 그리고 맞춤법은 제 잘못이 아니라 원고 필자의 잘못입니다요(^^;)...

2006-10-02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0-02 22:04   좋아요 0 | URL
**님/ 좀 헷갈리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전엔 '-' 표시라도 앞에 달았었는데, 요즘은 그냥 전후 문맥에 맡겨놓고 있습니다. 특별히 퍼오는 글들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요...
 

연휴를 앞두고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몇 권을 꼽아본다. 나로선 당장 연휴에 읽을 책들은 아니지만 한두 권 정도는 연휴에 구입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일주일에 평균 5-60권의 도서정보를 처리하고 그 중 최소 10여 권을 구입하거나 복사한다. 절반 정도는 전공이나 관심사와 관련된 원서들이고 나머지 절반쯤이 우리말 책들인데, '최근에 나온 책들'은 그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거나 한번쯤 관련서들을 뒤적거려보고 싶은 책들에 속한다. 이번 경우엔 <로맹 가리>나 <도구적 이성비판>이 특별히 그러한 종류에 해당된다. 먼저 <로맹 가리>부터 시작해보자.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문학동네, 2006)는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작가이자, 수수께끼 같은 작가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에 관한 전기로 198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전기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는 만큼 신뢰할 만한 평전이다(보나의 책으론 <세 예술가의 연인>도 출간된 바 있다). 요컨대 "<자기 앞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 소설을 발표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거장'과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이라는 두 페르소나를 연기했던 작가, 1980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치기까지 열정과 야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 로맹 가리의 66년 생애를 조명한다."

소개를 좀더 옮겨보면 "<로맹 가리>는 문학비평 기자이자 르노도 상 수상 작가인 도미니크 보나가, 저널리스트의 치밀함과 소설가의 감수성으로 쓴 평전이다.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들었던 '아자르 사건'을 포함하여, 로맹 가리의 내면세계와 모든 작품과 창작의 배경,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다.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한 가난한 소년의 열망이, 화려한 언변과 세련된 외모로 세계 외교 무대를 사로잡은 한 외교관의 카리스마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이, 창조적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고자 했던 한 작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실 내게 로맹 가리보다 더 친숙한 이름은 그의 가명이자 '또 다른 작가' 에밀 아자르이다. <자기 앞의 생>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의 여주인공도 내 기억에 로맹 가리의 광팬이었다). 

내가 책을 읽은 건 기억에 1990년 봄쯤이다. 나는 제대를 얼마 안 남겨두고 한 부대 관사의 당번병 방에서 뒹굴며 몇몇 소설들을 탐독했었는데,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 바로 <자기 앞의 생>이었다. 주인공 모모와 로자(로쟈가 아니다) 아줌마가 엮어가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 이후에 다시 읽은 적이 없으므로 작품에 대해 정확히 평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에밀 아자르란 이름을 기억하게 해주었고 이후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까지 관심이 이어지도록 했다. 비록 <유럽의 교육>(책세상, 2003)은 구입해두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으론 다소 의아하지만. 아무튼 이번에 나온 전기를 읽다 보면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란 한 작가(혹은 두 작가?)에 대해서 좀더 분명한 판단과 열정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두번째 책은 역시나 평전으로 '과학지식인의 탄생'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폴 화이트의 <토머스 헉슬리>(사이언스북스, 2006)인데, 실상은 지난번에 다루어져야 할 책이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이월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헉슬리'란 성이다. 조금 견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 '허슬리'가 여럿 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주로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잘 알려져 있는데, 헉슬리 가문을 일으켜세운 토머스 헉슬리(1825-1895)가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조부이다. 토마스의 또다른 손자인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 경은 올더스의 형이고, 그들의 배다른 동생 앤드류 헉슬리는 노벨상 수상 과학자이다.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불독'으로 불렸을 만큼 진화론의 강력한 옹호자로 유명한데, 이 '불독' 집안이 가히 지성의 명가인 것이다.

저자 화이트는 책에서 "19세기 과학계의 발전사와 '과학 지식인' 토머스 헉슬리의 삶을 다뤘다. 헉슬리가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과 부인 및 동료들과 나눈 서한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학 및 과학자의 정체성을 확립시킨 토머스 헉슬리를 재조명한다. 좁게 정의되는 과학이 아닌, 다른 문화 영역들과 연결되는 실천방식으로서의 과학을 추구한 그의 삶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책은 과학의 실천, 대중화, 변호 과정에서 헉슬리에 관련된 여러 자료를 통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한 사람의 '과학 지식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 과학 및 과학자들의 사회.문화적 위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세밀하게 밝힌다."

해서 '과학 지식인의 탄생'이란 부제가 공으로 붙여진 것은 아닌 셈인데, 헉슬리 가문과 과학 지신의 자기정체성이 모두 토머스에게서 기원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 '대단한' 위인의 생애에 한번 눈길을 주어볼 만하다.  

 

 

 
 
 
 
세번째 책은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작가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주제 사라마구(1922- )의 신작 <도플갱어>(해냄, 2006). 제목 그대로 자신과 똑같은 대상을 마주하게 되는 '도플갱어'의 모티브를 차용한 소설이라는데,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과 함께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조건' 3부작으로 불린다고 한다(영역본의 제목은 ' The Double').
 


"인구 500만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학교 역사교사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 어느 날 그는 동료교사의 추천으로 비디오 한 편을 빌려보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신의 5년 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영화에 나오고 있었던 것. 막시모는 집요한 추적을 시작, 배우의 본명과 거주지를 알아낸다. 그리고 배우와 그 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배우를 발견하면서 그가 가졌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이제 배우 부부에게까지 전염되고, 거울 앞에 선 것처럼 몸에 난 상처까지 똑같은 두 남자는 누가 원본이고 누가 복사본인지를 따지며 존재의 불안감을 떨치려 한다..."
 

 

 

 

 

나는 아직 사라마구의 책을 읽어본 바 없지만 노벨상 수상작인 <수도원의 비망록>(문학세계사, 1998)을 읽어본 지인의 호평은 기억하고 있다(드라마들도 번역되지 않았나?). 그럼에도 다소 낯설다는 느낌은 주지만, 이번에 출간된 '도플갱어'는 상당히 낯익은 테마의 작품이다. 도플갱어, 혹은 분신을 다룬 문학작품들이 적지는 않기 때문이다(만화와 영화에도 두루 걸쳐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에서 최수철의 <분신들>에 이르기까지.

사실 자신과 똑같은 또다른 존재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좀 섬뜩한 이야기를 함축하는 것이어서 공포영화에서도 즐겨다루어지는데, 가령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플갱어> 같은 게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대표적인 경우이다. 아무튼 이러한 배경하에 놓이는 작품이기에 사라마구의 <도플갱어> 읽기도 다소 수월할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도플갱어'란 테마가 정신분석을 자극하고 요청하는 테마인데, 네번째 책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연구서 박찬부 교수의 <라캉: 재현과 그 불만>(문학과지성사, 2006)이다. 모처럼 국내 필자의 저작이어서 반가운데(국내에서는 홍준기, 권택영 교수 등이 라캉 관련 저작을 갖고 있는 정도이다), 저자는 이미 10년전에 <현대정신분석비평>(민음사, 1996)을 상자한 바 있고(알라딘의 저자 소개에는 역서로 돼 있지만 저서이다), 프로이트 전집의 <쾌락원칙을 넘어서>(열린책들, 1997)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재현과 그 불만'이란 표제 자체는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의 영어 제목인 '문명과 그 불만'에서 따온 것인데, 라캉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저자의 길잡이가 되는 듯하다. 소개에 따르면, "이 표현은 프로이트의 '문명과 그 불만'에서 유래한 것. 프로이트가 인간 발달의 동인으로 문명화의 필연성을 강조하면서도 '죽음 본능'으로 대변되는 '그 불만'을 주요 논제로 다루었듯, 상징적 재현의 불가피성을 인간 주체의 '강요된 선택'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언제든지 불만 세력인 실재계에 의해 전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라캉의 '상상질서'에서 시작되어 '실재계' 쪽으로 옮겨졌던 관심사를 그대로 되짚어 살핀다. 지나치게 어렵거나 해체적인 서술을 지양해, 라캉의 이론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죽음본능' 혹은 '죽음충동'을 화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라캉-지젝 라인의 사고방식과 겹치는 듯하지만 저자는 지젝과 같은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라캉 담론의 탈근대적 유산'이란 서론의 제목이 이미 이를 암시해준다. 지젝이 방어/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라캉의 '근대적' 유산이기에). 방점이 '정신분석'보다는 '비평'에 두어져 있던 <현대정신분석비평>에서 저자가 사숙한 스승으로 거명한 이는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비평가 노만 홀란드였다. 독자반응이론가로도 분류되는 홀란드의 대표작은 <문학적 반응의 역학(The Dynamics of Literary Response)>(1968)이다. 말하자면 '미국화된 라캉'의 한 사례를 <라캉>에서 읽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끝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었던 독일의 사회학자 호르크하이머(1895-1973)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인 <도구적 이성비판>(문예출판사, 2006)이 거의 40년만에 출간됐다. 아도르노와의 공저인 <계몽의 변증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리고 아도르노의 그늘에 가려 사실 덜 주목받는 편이긴 하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멤버들을 그린 한 캐리커쳐가 말해주듯이(이 흔한 이미지가 잘 검색되지 않는군) 대학의 사회문제연구소장이었던 호르크하이머는 학파의 대부이자 좌장이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책에서 "부정의 철학을 지향하며, 자연과 인간을 도구화하고 파멸로 이끄는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에 대해 고발한다. 오늘날 이성은 이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비이성적 태도를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고발은 이성의 전면적 해체가 아니라, 오직 이성의 자기 비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론적 염세주의자이면서 실천적 낙관주의자가 되자.'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파시즘의 출현을 인식하는 비관주의와 보편적인 인간의 유대를 꿈꾸는 낙관주의를 가진 호르크하이머의 사상을 느낄 수 있다."

호르크하이머의 책이 이번에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다. 예전에 <철학의 사회적 기능>(전예원, 1983)이란 책이 출간된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판된 책이지만 이 참에 새로 때깔을 입혀도 좋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황재우(시인 황지우) 등이 공역한 마틴 제이의 <변증법적 상상력: 프랑크프르트 학파의 역사와 이론, 1923-50 >(돌베개, 1981)도 다시 손을 봐서 재출간하는 건 어떨까?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근간으로 한 책은 지상사적 시각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탄생과 이론적 진화과정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는 저작이다...

06. 09.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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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9-29 23:11   좋아요 0 | URL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 있었군요.좋아하죠..전.

로쟈 2006-09-29 23:55   좋아요 0 | URL
'무척' 좋아하시나 봅니다.^^

다크아이즈 2006-09-30 09:34   좋아요 0 | URL
뽑아 먹기 좋은 막대사탕(그 안에 든 쓴 약까지), 날로 먹으려니 송구스럽고 감사하네요. 한데, 로쟈님 목소리와 따온 목소리를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도록 색깔처리 해주심 안 될까요? 어떤 님의 요청에 색칠하는 것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따온 글을 색깔처리하면 로쟈님 글이 되려 보호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은데... 날로 먹는 주제에 독자를 배려해달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로쟈 2006-09-30 09:50   좋아요 0 | URL
따온 글들은 모두 인용부호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약간 불편하실 수 있지만 헷갈리실 정도는 아닐 겁니다. 칼라풀한 글자들이 제 경우엔 오히려 독해에 방해가 되는지라...

깽돌이 2006-09-30 12:35   좋아요 0 | URL
진중권씨가 비트겐슈타인의 '청갈색책' 옮겼던데 이에 대한 리뷰도 부탁^^

로쟈 2006-09-30 16:39   좋아요 0 | URL
청갈색책은 저도 책은 갖고 있는데, 책세상에서 나오는 전집들과 연관해서 나중에 다루려고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을 좀 들춰볼 여력이 현재는 없기도 해서요(^^;)...
 

교수신문에서 며칠전 기사를 읽었다. '나의 학문적 우상은 무엇이었나'란 기획기사인데, 내용이 흥미로워서 옮겨놓는다. 더불어, 잠시 '나의 학문적 우상'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최장순 기자의 기획의 변은 이렇다: "偶像. 보통,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사람이나 대상을 우리는 우상이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초년병 시절 우상을 만들어내고, 그 우상을 좇아 자기와 동일화하는 과정을 겪게 마련. 우리시대의 학자들은 어떤 우상화의 과정을 겪어왔을까. 그리고 학문적 우상은 어떻게 학자의 내면을 장악했다가 결국 쓸쓸히 떠나고 마는 것일까. 그 내밀한 풍경을 살펴보았다." 당신들의 우상은 안녕하신가?..

교수신문(06. 09. 23) 기획취재_나의 학문적 偶像은 무엇이었나

“나는 그 분의 지대한 영향을 입은 사람이다. 1980년대 초반엔 내 논문을 지도해주시기도 해,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영국사)가 에릭 홉스봄을 떠올리며 남긴 말이다. 박 교수의 회상은 이어진다. “그 분의 영향을 받아 노동사 공부도 했다. 나도 언젠가 이런 글을 써야지 하는 걸 느끼게 한 유일한 분이었다. 나에게 우상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홉스봄에 대한 박 교수의 마음이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홉스봄에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은 세계 정치지형의 변화 속에서 홉스봄의 문제점을 조금씩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홉스봄과 거리를 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2003년 발간된 ‘Interesting Times: A Twentieth-Century Life’였다. 이 책에서 홉스봄은 젊은 시절의 행동에 대한 자기변명을 일삼으며 총체적 시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박 교수는 “가령 스탈린이 행한 악행을 두둔하려는 홉스봄의 태도는 못참겠다”며 “80세 넘게 살았으면 자기 삶과 20세기를 연관지어 당시 현장에 좀 더 거리를 두고 써도 될 것을… 그런 걸 발견하지 못해 많이 실망했다”고 전했다(*박정희를 두둔하려는 태도와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홉스봄에 대한 진한 애정에서 나오는 진심어린 충고다. 조승래 청주대 교수는 “동구권이 몰락하는 등 세계의 정치적 판도가 변화하자 영국 좌파 연구자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많이 사라져갔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역시 토마스 쿤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았다. 쿤의 두 제자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홍 교수는 자연스럽게 토마스 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쿤의 방법론은 “텍스트 이해에는 도움이 되지만 과학의 내용을 넘어 사회 문화적인 측면을 보는 데 한계가 있”어 현재 홍 교수는 “쿤의 방법론을 버리고 있는 중”이다.

특정 지식인에 대한 학문적 우상화는 학자라면 누구나 거치는 관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대현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박사논문을 쓰는 동안에는 학문적 우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학위를 받고 나서 지식인으로 바로 서야 할 때는 곤란하다”라고 말했다(*학위논문을 쓰면 자립/분가해야 하는 것인가). 우상을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실행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 특정 대가들을 뛰어넘는 걸출한 학자가 드문 게 사실. 누군가를 넘어서려면 ‘부단한 노력’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연구자들은 입을 모은다.

누군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다른 대상들을 향해 미끄러지는 작업을 동반한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서양사)는 90년대 폴란드 문제와 시름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스탈린을 좇다가 문제가 생기면 레닌으로 돌아가고, 그게 또 문제면 볼셰비키로, 그리고 다시 청년 맑스로 돌아가면 된다는 게 하나의 흐름”이었다고 전했다. “우상이란 결국 신화화 작업을 동반하므로, 다채로운 프리즘을 갖고 대상에 접근해야 한다”는 말도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적 우상에 대한 모방은 필수적인 과정인데, 그것이 자기 자유를 신장하기 위한 것이 아닌 권위에 기댄 기계적 모방이 되면 교조주의나 근본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너무 당연한 말씀들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지적 탐구 대상을 우상화하는 일. 그 내부에 어떤 심적 기제가 작동하는 것일까. 이창재 프로이드정신분석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정신을 안정시키며 동시에 확장시켜주는 이상적 대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소장은 “특히 연구를 하려고 하는 사람의 경우엔 연구 욕구를 유지시켜주기에 일정한 지식활동의 모델이 긍정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정 인물 및 그 연구작업과의 동일시를 통해 연구활동을 지속할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그는 특정 인물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과도하게 진행되더라도, 처음에는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동일시가 한 사람에게만 고정되다 보면 발전이 정체”되기에 “주체적으로 새로운 대상을 선택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이 소장은 학자 일반의 정신을 분석하면서 “학계에 남는 사람들의 경우 학문의 목적이 자기 고양이나, 개발, 개성 실현에 있는 게 아니라, 대상 결핍 때문에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에게 평생 보호자가 될 사람이 필요하기에 ‘정신의 아버지상’이 있는 학계에 남게 된다는 설명인데 흥미로운 주장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손종업 선문대 교수(국문학)는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탕진하고 싶은데 그 대상의 거짓 내지는 오류를 발견했음에도, 그에 대한 열정을 철회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전했다.

가령, ‘황우석’을 믿었던 사람들은 ‘황우석’의 일정한 문제점이 발견되었기에, 그에 대한 열정을 접어야 하는데, 오히려 합리화하기 위해 사태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이게 학자들의 케이스인가?). 그런데 손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요즘 젊은 학자들이 점점 더 현실주의화해가고 있다”며 “더이상 그럴 듯한 것도 없고 모든 존재가 점점 더 왜소해지고 냉소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오히려 적절한 우상을 갖는 일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진정한 우상이 없는 시대”라는 것(*내가 동의하는 바이다. 학문에서 자신의 우상을 절대화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지만, 우상을 갖지 못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학문적 우상에 관한 취재를 한다고 하자 “특정 학자나 학문에 대한 단순한 개인적 열정 보다 패거리 안에서 확대, 재생산, 조직화되는 열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최장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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