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책들과 씨름했다. 이때 '씨름'은 물론 비유적인 의미에서 쓴 것이지만 비유만은 아닌 게 책을 읽고 이해하느라 고투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책장의 있는 책들을 모두 빼서 다시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의미에서의 '씨름'이기 때문이다(그 결과 삭신이 쑤신다). 딸아이의 방을 만들어주려고 몇 주전부터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로서 3단 책장 6개와 5단 책장 3개에 꽂혀 있던 책들을 모두 거실(혹은 베란다)로 빼내고 그걸 기화로 아예 서재의 책들까지도 전부 재배열했다. 전쟁터 같은 집안 풍경이 다소나마 정리된 게 어젯밤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칠하느니 마느니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딸아이의 방에 칠할 '친환경' 페인트를 구했고 그 사이에 날은 저물었다. 어젯밤과 오늘 오전에 본 비디오를 반납하러 나갔다가 편의점에서 조간신문을 사들고 온 게 조금 전이다. 읽은 시간상으론 '석간'이라 해야 할 그 신문이 수요일자 한국일보이고 내가 읽은 건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이다. 특별히 오늘은 '文靑 사로잡은 비평의 신화' 김현을 다루고 있기에 여기에 옮겨놓도록 한다. 김현, 김윤식이란 이름은 내 청춘의 10년을 사로잡았던 '신화'이기도 했었기에(사실 고종석이 '말들의 풍경'이란 제명 자체를 빌어온 김현에 대해서는 연재의 말미에서나 다루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칼럼의 서두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이 불세출의 비평가가 세상을 뜬 지도 열여섯 해가 되었다. 그의 부고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어떤 막연한 의무감에 영안실이 안치돼 있다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던 기억마저 나는 갖고 있다(짧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만 되뇌었던가). 책장 정리를 다시 하면서 가장 가까운 서가에 그의 책 대여섯 권을 아직 꽂아둔 것도 그런 '인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책이 <말들의 풍경>(문학과지성사, 1993 5쇄본)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1990년 12월에 나온 초판이 아닌 것은 내가 어떤 사정으로 이 책을 한번 더 샀기 때문이다(초판은 내가 군복무시절에 산 책이어서 지방에 놓아둔 것으로 기억된다).

사후적인 회고가 되겠지만, 언제부턴가 지난 90년대 문학을 '김현 이후의 문학'으로 나는 기억/규정한다. 마땅한 당대의 비평가를 갖지 못한 문학의 허전함을 나는 지우지도 채우지도 못하겠다. 칼럼의 중간에 나오는 고종석의 말을 미리 빌자면 "사실 김현은 문학평론을 그 자체로 읽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의 첫 비평가고,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목소리 큰 비평은 많고 그보다 예민한 비평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비평도 '문학'이라는 걸 확증시켜준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였고, 그래서 그의 부재는 아쉽고 유감스럽다. 최근 '근대문학의 종언론'에 기대어 비평의 종언을 시비하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만약 비평에 종언이 있(었)다면 그건 지난 199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4.19 세대가 소위 한국사의 '근대' 혹은 '근대 시민정신'과 '학생운동의 정신'을 웅변하는 세대였다면 김현이야말로 4.19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비평가였고, 지난 1990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이니까.   

한국일보(06. 10. 04) [말들의 풍경]<31>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문학비평가 김현(1942~1990)이 돌아간 지 16년이 되었다. 16년이면 한 사람의 생애와 정신의 궤적을 감정의 동요 없이 되돌아보기에 꽤 넉넉한 시간적 거리다. 그에 대한 친구들의 사랑도, 적들의 미움도 그 격렬함이 많이 잦아들었을 테다. 그가 작고하고 세 해 뒤에 16권으로 완간된 ‘김현문학전집’의 종이빛깔도 제법 누렇게 되었다.

김현 이후 16년 세월은 이른바 ‘문지 동아리’ 안에서 김현 신화가 더욱 굳건해진 세월이기도 했고, 그 동아리 바깥에서 김현 신화가 사뭇 바랜 세월이기도 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치달은 이 세월의 힘 가운데, 더 큰 것은 뒤쪽이었던 듯하다. 그것은 생전의 김현이 누린 권위가 워낙 컸던 탓이기도 하다. 정점에 이른 자에겐 또 다른 상승의 가능성보다 추락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아닌게아니라, 그 16년 세월은 김현 글의 모자람을 드문드문 드러낸 세월이었다.

그 모자람은 김현 둘레 사람들의 글과 견주어서도 더러 드러난다. 김현 이후 16년은 김현의 제자나 후배 비평가들의 나이를 김현보다 더 먹게 만들었다. 그가 아끼던 후배 김인환과 황현산은 이제 그들의 선배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고, 그가 아끼던 제자 정과리는 스승이 도달했던 마지막 나이에 이르렀다. 그 제자와 후배들의 글들 옆에 나란히 놓일 때, 김현의 글은 어쩔 수 없이 낡아 보인다. 사실 이런 ‘낡음’은 이미 김현 생전에도 기미를 드러냈다. 김현의 어떤 글은 정치함에서 김인환만 못해 보이고, 자상함에서 황현산만 못해 보이며, 화사함에서 정과리만 못해 보인다.

생전에 낸 마지막 평론집 ‘분석과 해석’의 서문에서 김현은 청년기부터 그 때까지 자신의 변하지 않은 모습 가운데 하나로 ‘거친 문장에 대한 혐오’를 거론했으나, 그 혐오를 철두철미하게 실천한 것 같지는 않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는, 청년 정과리의 글에선 찾기 어려운 유치함과 허세 같은 것도 읽힌다. 현학은 ‘배운 청년’이 흔히 앓는 병이지만, 청년 김현은 그 병을 좀 심하게 앓았던 듯하다. 물론 김현은 이내 그 병에서 회복되었다.

그러나 김현의 글은, 이 모든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이 후배와 제자들의 글보다 훨씬 더 맛있게 읽힌다. 그의 윗세대나 동세대 평론가들의 글과 견주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김현은 문학평론을 그 자체로 읽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의 첫 비평가고,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김현이, 적어도 30대 이후의 김현이, 비평이란 수필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드문 비평가였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을 테다.

그에게 비평은 논리와 지식의 전시장이 아니라 직관과 감수성의 연회였다. 김현은 비평을 제 앎을 드러내는 자리로 사용하지 않고, 마음(의 파닥거림)을 주고받는 자리로 사용했다. 작품론이나 작가론에서, 김현은 (초기 글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불문학 교양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김현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이, 모든 뛰어난 비평가에게 그렇듯, 오래 축적된 문학 교양과 어찌 관련이 없으랴?

김현이 자신의 직관과 감수성으로 작품에서 길어낸 의미가 늘 옳았던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 한 작품이 김현의 손길을 통해 늘 제 비밀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말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 작품에는 고정된 의미(들)만 있다는 속 좁은 문학관이 그 속에 웅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생전의 김현이 결코 동의하지 않았던 견해다. 그러니 이 말을 이렇게 바꾸자. 김현이 작품에서 길어낸 의미가 늘 표준적이었던 것 같진 않다고. 사실은 그 반대다. 김현의 말 읽기, 마음 그리기는 거의 언제나 독창적이었고, 바로 그 독창적인 의미화를 통해 한 작품을, 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두텁게 만들었다. 모든 독창적 해석이 누군가에게는 오해로 받아들여진다면, 김현은 오해의 대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김현은 한 작품을 그 안으로부터만 읽어내지 않았다. 그는 한 작품을 그 작가의 다른 작품 전부와의 맥락 속에서 읽을 줄 알았고, 무엇보다도 한 세대 내 또는 세대간 영향(의 불안)이라는 커다란 맥락 속에서 읽을 줄 알았다. 그것은 유년기 이래 평생 이어진 그의 글 허기증 덕분이었다. 김현은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글을 훨씬 많이 썼지만, 진짜 잊어서는 안 될 점은 그가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글을 훨씬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다.

설령 그가 이런저런 작품들에 매긴 자리(생전의 김현은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싫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자리매김이란 관계맺기, 관계짓기보다 훨씬 고착적이어서, 한 번 자리가 매겨지면 변경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상자 기사의 ‘말들의 풍경’ 서문은 그의 이런 생각을 매혹적인 한국어로 펼쳐 보이고 있다)가 늘 공정하게 보이진 않았다 할지라도,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넘나들며 작품과 작가에게 그럴듯한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김현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후에 출간된 독서일기에서, 김현은 자신의 글을 괴팍하다고 평한 어느 소설가의 말을 거론한 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라고 적고 있다. 김현의 이 자부심은 온전히 정당하다.

김현의 글은 어느 순서로 읽어도 술술 읽힐 만큼 자기완결적이지만, 시간축을 따라 읽을 때 그 저자의 ‘인간적 매력’을 한결 또렷이 드러낸다. 그 ‘인간적 매력’이란 지적 정서적 윤리적 성숙의 여정이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 설핏설핏 보였던 문장의 어설픔, 현학 취미와 자기애는 만년 글에서 거의 말끔히 걷혀지고, 단정하되 윤기 있는 문체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겸양이 독자를 맞는다. (물론 그는 자신의 ‘앎’에 대해서는 겸손했으나 자신의 ‘감식안’에 대해선 끝내 겸손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감식안을 감식하지 못하는 한국 문단을 슬그머니 타박하기도 했다.) 기분 좋은 일이다.

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나이가 늘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이와 함께 푹 익은 인격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 분야의 세속적 정점에 이른 이의 인격일 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생전의 마지막 평론집 ‘분석과 해석’과 유고 평론집 ‘말들의 풍경’에 묶인 글들은 한국어 산문이 도달한 아름다움과 섬세함의 꼭대기를 보여준다.

 

 

 



김현은 문학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정치적 문인이었지만, 그의 문학평론은, 특히 만년에 이르러,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의 고갱이를 건드리곤 했다.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1987)와 그 즈음의 몇몇 평문에서 그가 탐색한 폭력의 의미는, 깊숙한 수준에서, 1980년 봄과 관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현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과, 역시 깊숙한 수준에서, 무관치 않았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라도 지식인들이 흔히 그렇듯, 김현도 ‘억눌린 자’와 ‘억누르는 자’ 사이에서, 아니 보편(적 지식인 됨)과 특수(한 소속감)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제임스 쿤의 ‘눌린 자의 하나님’을 읽고 쓴 1986년 5월27일치 일기의 한 대목은 이렇다.

“나는 전라도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 숙고했다. 때로는 혐오하면서, 때로는 연민을 갖고서,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도피의 마음으로.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하숙을 거절당한 것, 사투리 때문에 놀림받은 것, 전라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80년 이후에도 조용하다는 것…… 등의 것들이 뭉쳐져 내 가슴에 밀려들어왔다. 쿤의 책은 내 경험세계의 신학적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나는 억눌린 자인가? 아니다. 억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완전히 지배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문학장’ 속에서 권력을 효과적으로 획득하고 합리적으로 행사하는 방법을 알았다는 점에서 김현은 매우 정치적이기도 했다. 대학시절의 ‘산문시대’에서 ‘사계’와 ‘68문학’을 거쳐 ‘문학과지성’으로 이어지는 그의 동아리 운동에는 세대 전쟁과 세계관 전쟁이 버무려져 있었고, 김현은 늘 제 캠프의 우두머리 노릇을 했다. 그가 문학의 고유성과 (은밀한) 위엄을 그리도 강조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이 ‘문학’이었기 때문이리라.

서가에 꽂혀 있는 김현 전집 가운데서 아무 거나 뽑아 들어 띄엄띄엄 읽노라면 문득 가슴이 울렁거린다. 거기에 내 글의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나 그 눈길을 담아내는 문체에서나 내 글은 김현의 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고 격조와 깊이에서 도저히 김현의 글과 견줄 수 없지만, 그 근원은, 행복해라, 김현의 글이었다.(고종석 객원논설위원)

● '말들의 풍경' 서문 (앞부분)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들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것 자체가 마치 기름 물감의 계속적인 덧칠처럼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로 덧칠되며, 그 풍경을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빛의 움직임에 따라 물의 색깔이 변하듯 변한다. 풍경은 수직적인 의미의 중첩이며, 수평적인 의미의 이동이다.

그 중첩과 이동을 낳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다. 욕망은 언제나 왜곡되게 자신을 표현하며, 그 왜곡을 낳는 것은 억압된 충동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본능적인 충동이 모든 변화를 낳는다. 본질은 없고, 있는 것은 변화하는 본질이다. 아니 변화가 본질이다. 팽창하고 수축하는 우주가 바로 우주의 본질이듯이. 내 밖의 풍경은 내 충동의 굴절된 모습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 안의 풍경이다. 밖의 풍경은 안의 풍경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안과 밖은 하나이다.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의 참뜻은 바로 그것이다...

06. 10. 04.

P.S. 이 칼럼/페이퍼를 '곁다리텍스트'로 분류해놓는 것은 이전에 옮겨놓은,김윤식의 서문집에 대한 고종석의 칼럼('나는 '쓰다'의 주어다')과 짝을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지극히 정당하게도) 칼럼 말미에 인용돼 있는 <말들의 풍경> 서문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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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05 00:48   좋아요 0 | URL
어머 그 많은 책정리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정말 책과의 씨름이었네요. 김현의 말들의 풍경 서문도 잘 보고 갑니다. 이 페이퍼 담아갈게요. 로쟈님, 감사합니다.^^

페일레스 2006-10-05 18:5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로쟈님이 풀어내는 '책들의 풍경'을 흥미롭게 읽다 가곤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조각글(혹은 곁다리-텍스트)이 아니라 잘 정돈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로쟈님의 '말들의 풍경'을 손 안에 쥐고 싶다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가져봅니다...

로쟈 2006-10-06 00:39   좋아요 0 | URL
배혜경님/ 자업자득이니까 저로선 유구무언입니다. 할말이 많은 사람들은 주변의 가족들이지요(^^;)...
페일레스님/ 곁다리텍스트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한권의 책'이 채 되지 못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