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앞두고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몇 권을 꼽아본다. 나로선 당장 연휴에 읽을 책들은 아니지만 한두 권 정도는 연휴에 구입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일주일에 평균 5-60권의 도서정보를 처리하고 그 중 최소 10여 권을 구입하거나 복사한다. 절반 정도는 전공이나 관심사와 관련된 원서들이고 나머지 절반쯤이 우리말 책들인데, '최근에 나온 책들'은 그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거나 한번쯤 관련서들을 뒤적거려보고 싶은 책들에 속한다. 이번 경우엔 <로맹 가리>나 <도구적 이성비판>이 특별히 그러한 종류에 해당된다. 먼저 <로맹 가리>부터 시작해보자.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문학동네, 2006)는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작가이자, 수수께끼 같은 작가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에 관한 전기로 198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전기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는 만큼 신뢰할 만한 평전이다(보나의 책으론 <세 예술가의 연인>도 출간된 바 있다). 요컨대 "<자기 앞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 소설을 발표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거장'과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이라는 두 페르소나를 연기했던 작가, 1980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치기까지 열정과 야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 로맹 가리의 66년 생애를 조명한다."

소개를 좀더 옮겨보면 "<로맹 가리>는 문학비평 기자이자 르노도 상 수상 작가인 도미니크 보나가, 저널리스트의 치밀함과 소설가의 감수성으로 쓴 평전이다.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들었던 '아자르 사건'을 포함하여, 로맹 가리의 내면세계와 모든 작품과 창작의 배경,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다.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한 가난한 소년의 열망이, 화려한 언변과 세련된 외모로 세계 외교 무대를 사로잡은 한 외교관의 카리스마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이, 창조적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고자 했던 한 작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실 내게 로맹 가리보다 더 친숙한 이름은 그의 가명이자 '또 다른 작가' 에밀 아자르이다. <자기 앞의 생>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의 여주인공도 내 기억에 로맹 가리의 광팬이었다). 

내가 책을 읽은 건 기억에 1990년 봄쯤이다. 나는 제대를 얼마 안 남겨두고 한 부대 관사의 당번병 방에서 뒹굴며 몇몇 소설들을 탐독했었는데,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 바로 <자기 앞의 생>이었다. 주인공 모모와 로자(로쟈가 아니다) 아줌마가 엮어가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 이후에 다시 읽은 적이 없으므로 작품에 대해 정확히 평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에밀 아자르란 이름을 기억하게 해주었고 이후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까지 관심이 이어지도록 했다. 비록 <유럽의 교육>(책세상, 2003)은 구입해두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으론 다소 의아하지만. 아무튼 이번에 나온 전기를 읽다 보면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란 한 작가(혹은 두 작가?)에 대해서 좀더 분명한 판단과 열정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두번째 책은 역시나 평전으로 '과학지식인의 탄생'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폴 화이트의 <토머스 헉슬리>(사이언스북스, 2006)인데, 실상은 지난번에 다루어져야 할 책이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이월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헉슬리'란 성이다. 조금 견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 '허슬리'가 여럿 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주로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잘 알려져 있는데, 헉슬리 가문을 일으켜세운 토머스 헉슬리(1825-1895)가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조부이다. 토마스의 또다른 손자인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 경은 올더스의 형이고, 그들의 배다른 동생 앤드류 헉슬리는 노벨상 수상 과학자이다.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불독'으로 불렸을 만큼 진화론의 강력한 옹호자로 유명한데, 이 '불독' 집안이 가히 지성의 명가인 것이다.

저자 화이트는 책에서 "19세기 과학계의 발전사와 '과학 지식인' 토머스 헉슬리의 삶을 다뤘다. 헉슬리가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과 부인 및 동료들과 나눈 서한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학 및 과학자의 정체성을 확립시킨 토머스 헉슬리를 재조명한다. 좁게 정의되는 과학이 아닌, 다른 문화 영역들과 연결되는 실천방식으로서의 과학을 추구한 그의 삶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책은 과학의 실천, 대중화, 변호 과정에서 헉슬리에 관련된 여러 자료를 통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한 사람의 '과학 지식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 과학 및 과학자들의 사회.문화적 위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세밀하게 밝힌다."

해서 '과학 지식인의 탄생'이란 부제가 공으로 붙여진 것은 아닌 셈인데, 헉슬리 가문과 과학 지신의 자기정체성이 모두 토머스에게서 기원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 '대단한' 위인의 생애에 한번 눈길을 주어볼 만하다.  

 

 

 
 
 
 
세번째 책은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작가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주제 사라마구(1922- )의 신작 <도플갱어>(해냄, 2006). 제목 그대로 자신과 똑같은 대상을 마주하게 되는 '도플갱어'의 모티브를 차용한 소설이라는데,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과 함께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조건' 3부작으로 불린다고 한다(영역본의 제목은 ' The Double').
 


"인구 500만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학교 역사교사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 어느 날 그는 동료교사의 추천으로 비디오 한 편을 빌려보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신의 5년 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영화에 나오고 있었던 것. 막시모는 집요한 추적을 시작, 배우의 본명과 거주지를 알아낸다. 그리고 배우와 그 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배우를 발견하면서 그가 가졌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이제 배우 부부에게까지 전염되고, 거울 앞에 선 것처럼 몸에 난 상처까지 똑같은 두 남자는 누가 원본이고 누가 복사본인지를 따지며 존재의 불안감을 떨치려 한다..."
 

 

 

 

 

나는 아직 사라마구의 책을 읽어본 바 없지만 노벨상 수상작인 <수도원의 비망록>(문학세계사, 1998)을 읽어본 지인의 호평은 기억하고 있다(드라마들도 번역되지 않았나?). 그럼에도 다소 낯설다는 느낌은 주지만, 이번에 출간된 '도플갱어'는 상당히 낯익은 테마의 작품이다. 도플갱어, 혹은 분신을 다룬 문학작품들이 적지는 않기 때문이다(만화와 영화에도 두루 걸쳐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에서 최수철의 <분신들>에 이르기까지.

사실 자신과 똑같은 또다른 존재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좀 섬뜩한 이야기를 함축하는 것이어서 공포영화에서도 즐겨다루어지는데, 가령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플갱어> 같은 게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대표적인 경우이다. 아무튼 이러한 배경하에 놓이는 작품이기에 사라마구의 <도플갱어> 읽기도 다소 수월할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도플갱어'란 테마가 정신분석을 자극하고 요청하는 테마인데, 네번째 책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연구서 박찬부 교수의 <라캉: 재현과 그 불만>(문학과지성사, 2006)이다. 모처럼 국내 필자의 저작이어서 반가운데(국내에서는 홍준기, 권택영 교수 등이 라캉 관련 저작을 갖고 있는 정도이다), 저자는 이미 10년전에 <현대정신분석비평>(민음사, 1996)을 상자한 바 있고(알라딘의 저자 소개에는 역서로 돼 있지만 저서이다), 프로이트 전집의 <쾌락원칙을 넘어서>(열린책들, 1997)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재현과 그 불만'이란 표제 자체는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의 영어 제목인 '문명과 그 불만'에서 따온 것인데, 라캉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저자의 길잡이가 되는 듯하다. 소개에 따르면, "이 표현은 프로이트의 '문명과 그 불만'에서 유래한 것. 프로이트가 인간 발달의 동인으로 문명화의 필연성을 강조하면서도 '죽음 본능'으로 대변되는 '그 불만'을 주요 논제로 다루었듯, 상징적 재현의 불가피성을 인간 주체의 '강요된 선택'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언제든지 불만 세력인 실재계에 의해 전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라캉의 '상상질서'에서 시작되어 '실재계' 쪽으로 옮겨졌던 관심사를 그대로 되짚어 살핀다. 지나치게 어렵거나 해체적인 서술을 지양해, 라캉의 이론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죽음본능' 혹은 '죽음충동'을 화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라캉-지젝 라인의 사고방식과 겹치는 듯하지만 저자는 지젝과 같은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라캉 담론의 탈근대적 유산'이란 서론의 제목이 이미 이를 암시해준다. 지젝이 방어/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라캉의 '근대적' 유산이기에). 방점이 '정신분석'보다는 '비평'에 두어져 있던 <현대정신분석비평>에서 저자가 사숙한 스승으로 거명한 이는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비평가 노만 홀란드였다. 독자반응이론가로도 분류되는 홀란드의 대표작은 <문학적 반응의 역학(The Dynamics of Literary Response)>(1968)이다. 말하자면 '미국화된 라캉'의 한 사례를 <라캉>에서 읽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끝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었던 독일의 사회학자 호르크하이머(1895-1973)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인 <도구적 이성비판>(문예출판사, 2006)이 거의 40년만에 출간됐다. 아도르노와의 공저인 <계몽의 변증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리고 아도르노의 그늘에 가려 사실 덜 주목받는 편이긴 하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멤버들을 그린 한 캐리커쳐가 말해주듯이(이 흔한 이미지가 잘 검색되지 않는군) 대학의 사회문제연구소장이었던 호르크하이머는 학파의 대부이자 좌장이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책에서 "부정의 철학을 지향하며, 자연과 인간을 도구화하고 파멸로 이끄는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에 대해 고발한다. 오늘날 이성은 이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비이성적 태도를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고발은 이성의 전면적 해체가 아니라, 오직 이성의 자기 비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론적 염세주의자이면서 실천적 낙관주의자가 되자.'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파시즘의 출현을 인식하는 비관주의와 보편적인 인간의 유대를 꿈꾸는 낙관주의를 가진 호르크하이머의 사상을 느낄 수 있다."

호르크하이머의 책이 이번에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다. 예전에 <철학의 사회적 기능>(전예원, 1983)이란 책이 출간된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판된 책이지만 이 참에 새로 때깔을 입혀도 좋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황재우(시인 황지우) 등이 공역한 마틴 제이의 <변증법적 상상력: 프랑크프르트 학파의 역사와 이론, 1923-50 >(돌베개, 1981)도 다시 손을 봐서 재출간하는 건 어떨까?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근간으로 한 책은 지상사적 시각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탄생과 이론적 진화과정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는 저작이다...

06. 09.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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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9-29 23:11   좋아요 0 | URL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 있었군요.좋아하죠..전.

로쟈 2006-09-29 23:55   좋아요 0 | URL
'무척' 좋아하시나 봅니다.^^

다크아이즈 2006-09-30 09:34   좋아요 0 | URL
뽑아 먹기 좋은 막대사탕(그 안에 든 쓴 약까지), 날로 먹으려니 송구스럽고 감사하네요. 한데, 로쟈님 목소리와 따온 목소리를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도록 색깔처리 해주심 안 될까요? 어떤 님의 요청에 색칠하는 것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따온 글을 색깔처리하면 로쟈님 글이 되려 보호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은데... 날로 먹는 주제에 독자를 배려해달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로쟈 2006-09-30 09:50   좋아요 0 | URL
따온 글들은 모두 인용부호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약간 불편하실 수 있지만 헷갈리실 정도는 아닐 겁니다. 칼라풀한 글자들이 제 경우엔 오히려 독해에 방해가 되는지라...

깽돌이 2006-09-30 12:35   좋아요 0 | URL
진중권씨가 비트겐슈타인의 '청갈색책' 옮겼던데 이에 대한 리뷰도 부탁^^

로쟈 2006-09-30 16:39   좋아요 0 | URL
청갈색책은 저도 책은 갖고 있는데, 책세상에서 나오는 전집들과 연관해서 나중에 다루려고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을 좀 들춰볼 여력이 현재는 없기도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