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의 르네 마그리트전이 열린다. 오늘(12.20)부터 내년 4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얼마전부터 관련기사들을 읽어볼 수 있었는데, 전시회 개막일을 맞아 기사들이 정점을 이루고 있다. 두 가지 기사를 옮겨놓고 새삼 전시회의 의의를 환기해두고자 한다. 방학때는 시간을 낼 수 있지 않을까도 싶고.

경향신문(06. 12. 20) '르네 마그리트’전, 상식을 비트는 ‘이미지의 배반’

“우리는 우리 밖의 세상을 보지만,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있다.”

액자 속 그림 안에 또 하나의 그림을 즐겨 그려 넣던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갖고 있는 한계를 종종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파리가 된 새, 나무가 된 여인, 구두가 된 발, 낮과 밤 등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거리. 그의 그림에는 기이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분위기, 상식을 깨는 묘한 매력이 서려 있다.

시뮬라크르, 기호와 상징 등 현대미학의 여러 주제를 설명할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우리나라에 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벨기에 왕립미술관 및 르네 마그리트 재단과 공동으로 ‘르네 마그리트’전을 20일부터 내년 4월1일까지 연다. 초기부터 말기까지 마그리트의 작품세계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전시로 회화와 드로잉, 판화 등 120여점과 사진 및 영상자료 150여점 등 총 270여점이 선보인다. 작품 중 초기작인 ‘보이지 않는 선수’는 1백20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으로 벨기에인들이 국보처럼 여기는 작품이다.

작품들은 대부분 마그리트가 즐겨 그리던 캔버스 속의 캔버스 구도를 차용해 액자 형태의 파티션 위에 설치됐다. 전시실을 훑어보다 보면 대부분 작가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도가 높고 한 주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비해 마그리트는 20, 30대 시절 묘사했던 소재와 주제를 끊임없이 변형하고 자기복제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달리나 미로 등 여타 초현실주의 화가의 작품에 비해 논리정연한 질서에 기반하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오랜 목표이던 실물의 재현에서 벗어나려한 근대 화가들이 추상회화로 나아갔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정교하고 세밀한 구상회화를 그리되 실물의 재현이기를 거부했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써놓은 ‘이미지의 배반’ 같은 작품이 바로 마그리트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갖고 있는 통념, 상식을 끊임없이 분석해 이를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표현한 마그리트는 사실 화가라기보다는 철학자에 가깝다. 실물과 언어, 이미지의 관계, 현실과 가상, 꿈과 무의식 등 현대미술의 주요 주제를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적용해 표현하곤 했다. 데페이즈망은 친숙한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를 한 화면에 늘어놓거나 혹은 전혀 엉뚱한 맥락에 위치시켜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법. 또한 마그리트는 정교하게 그린 그림과는 전혀 호응하지 않는 텍스트를 화면 안에 써넣거나 제목을 달았다.

회화 사이사이에 설치된 작은 크기의 사진들은 마그리트의 독특한 상상력을 더욱 잘 보여준다. 주로 친지와 지인들을 마그리트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오늘날 디카족들이 장난치듯 만들어낸 이미지와 비슷하다. 한 전시실에는 사진가 듀안 마이클이 찍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상 사진과 영화에 관심이 많던 마그리트가 훗날 소형 영사기로 직접 찍은 영화도 상영된다.(윤민용 기자)

동아일보(06. 12. 11)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르네 마그리트 전시회"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뭔가 생각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낯익은 형상들을 결합한 그림인데도 이미지나 느낌은 낯설다. 그림과 관객의 역동적 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작가는 철학자 미셀 푸코에게 보낸 편지에서 “닮음과 비슷함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세계와 우리 자신들이 전혀 새롭게 존재하는 광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바로,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1898∼1967)다. 그는 20세기 초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빛의 제국’ 연작 등으로 관습적으로 각인되어 온 사물의 존재 방식을 깨는 그림들을 제시했다. 철학적 사유의 화가로 통하는 그는 “그리기의 예술은 사유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 마그리트가 한국에 온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함께 19일∼내년 4월 1일 ‘르네 마그리트’전을 마련한다. 마그리트 전시회가 아시아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갤러리 현대의 도형태 대표는 “마그리트 작품들은 개인 소장품이 많아 모으기 어렵다”며 “마그리트 전시회는 전시 기획의 끝이라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빛의 제국’ ‘회귀’ ‘신뢰’를 비롯한 유화 대표작 70여 점과 드로잉 판화 등 120여 점. 작가의 사진이나 친필 서신도 함께 선보인다.

마그리트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무의식 꿈 판타지 등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드러난 몰인간성에 기겁한 일단의 예술가가 인간의 이성을 부정하고 무의미를 추구한 다다이즘의 뒤를 이어서 초현실주의가 나타난 것. 마그리트는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추구해 온 다른 초현실주의자와 달리, 사과 돌 새 벨 등 낯익은 대상을 엉뚱한 환경에 배치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으로 충격과 함께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다. 사물을 엉뚱한 곳에 갖다 놓는 ‘고립’, 이질적 사물을 결합하는 ‘사물의 잡종화’,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을 한 그림에 넣은 ‘패러독스’ 등이 그의 기법이었다.

전시작은 마그리트 작품 중 정말 수수께끼 같은 ‘보이지 않는 선수’, 날아가는 새와 알의 둥지를 대비한 ‘회귀’, 신사의 초상에 파이프를 갖다 둔 ‘신뢰’, 평야에 직육면체의 거대한 돌덩이 구조물을 그린 ‘대화의 기술’ 등이다. ‘고문당하는 여사제’ ‘신은 성자가 아니다’ ‘두려움의 동반자’ ‘곤충들의 삶’도 선보인다. 문제작 중 하나로 기존 언어와 그림문법에 대한 반성을 호소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9년)는 해외 다른 곳에서 전시되고 있어 오지 않는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언어(문자)로 진술되거나 형상을 통한 이성의 사고를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했으며 이 시도는 결국 신비와 환상과 미스터리를 자아냈다. 광고 디자이너로 일한 적이 있어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영화와 소설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가상 현실을 다룬 영화 ‘매트릭스’도 그중 하나였다. 아이러니 중 하나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종래 언어 관습이나 형상을 부정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사유의 출발점은 문자로 된 제목이라는 점이다.(허엽 기자)

06. 12. 20.

 

 

 

 

P.S. 마그리트의 세계에 관한 가장 요긴한 안내서는 아직까지는 수지 개블릭의 <르네 마그리트>(시공사, 2000)인 듯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예전에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밖에 예경에서 나온 화집 정도가 내가 갖고 있는 마그리트의 전부인 듯하다. 이 '철학자' 마그리트를 다룬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민음사, 1995)는 현재 절판 중이다. 그밖에 <노성두-이주헌의 명화읽기>(한길아트, 2006)나 서지형의 <속마음을 들킨 예술가들>(시공사, 2006) 등에서 '마그리트 읽기'를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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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6-12-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립미술관이죠? 곧 방학이 시작되니 다녀와야겠군요.

로쟈 2006-12-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죠.^^

비로그인 2006-12-2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적 관점에서 마그리트의 화법은 다소 유치하고 만화적이지요.
그가 그림에 담아내는 이야기는 독특합니다.


로쟈 2006-12-2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으로도 썼지만 '철학자 마그리트'에게 화법은 중요하지 않았을 듯합니다...

이네파벨 2006-12-2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전시 소개...감사드립니다...
마그리트...저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전시회네요...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달리의 "기억의 고집"인가...(흐물흐물한 시계)를 보고 난 후 초현실주의에 매료되어..한동안 들이팠었죠...

마그리트는 흥미롭고 나름대로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낸 화가이지만...딱 제 타입ㅇㄴ 아니지요...^^
너무 머리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어서요...
머리..특히 좌뇌로요...

전 초현실주의 화가 중에서 단연 달리..그리고..에른스트의일부 그림...그리고...몇 점 안남겼지만(아니 기억에 남는거 정말 한두 점이지만) 키리코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머리(이성, 사유, 논리, 좌뇌적 사고)로 닿을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표현하기에...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다. '프리랜서' 강사에게 그런 날이 따로 지정돼 있는 건 아니고, 집에서 기말시험과 페이퍼 등의 채점을 하기로 그냥 혼자 정해놓은 날이다(거기에 집안일도 겹쳐 있고). 하지만, 모든 '근무'가 그렇듯이 '열심히' 하면 왠지 '손해'라는 느낌 때문에 적당히 (양심의) 눈치를 보면서 빈둥거리게 된다. '이걸 다 언제 한단 말인가!' 속으로 푸념하면서. 점심도 먹은 김에 막간을 이용해서 잠시 잡담을 늘어놓기로 한다. 푸념보다는 잡담이 그래도 '생산적'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잡담의 주제는 사랑에 관한 잡담들을 늘어놓은 책, 플라톤의 <향연>에서 서두에 나오는 아폴로도로스의 별명에 관한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관련 텍스트는 박희영 역의 <향연>(문학과지성사, 2003)과 이세진 역의 조안 스파르판 <향연>(문학동네, 2006), 그리고 옥스포드 문고본 클래식의 영역본과 러시아어본 등이다. 조안 스파르의 '낙서본' <향연>이 출간된 김에 사놓기만 했던 책들을 뒤적이게 됐는데, 여러 텍스트들을 같이 읽다 보니까 대동소이한 줄거리 외에, 당연한 일이지만 미묘한 차이점들도 눈에 들어온다. '아폴로도로스의 별명'은 그 차이점들 가운데 하나이다. 먼저, 관련대목은 이렇다(인용문의 강조는 나의 것이다).

친구: 아폴로도로스여! 자네는 언제나 똑같네 그려. 왜냐하면 자네는 항상 자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쁘게 이야기하니 말일세. 자네는 소크라테스님 이외의 자네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두 무조건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 그려. 그런데 자네가 어디에서 '나약한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 사실 자네는 일단 말하기 시작하면, 언제나 소크라테스님을 제외한 자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대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말일세!

아폴로도로스: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여! 나 자신뿐만 아니라 자네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판단력이 모자란 바보로 여겨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네! (박희병, 41쪽)

아폴로도로스의 친구: 아폴로도로스, 넌 여전하구나. 넌 말야, 항상 너 자신과 남들을 나쁘게 말해. 소크라테스님 외에는 세상 사람 모두가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네가 어쩌다 '투덜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는 그냥 넘어가자. 어쨌든 입만 열면 너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마구 화를 내는 버릇이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 소크라테스님에 대해서는 물론 예외지만.

아폴로도로스: 야, 그게 바로 명백한 증거 아냐?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정신 나간 투덜이라는 증거 아니냐고? (이세진, 15쪽)

박희영본은 그리스어 원전을 옮긴 것이고 이세진본은 불역본을 옮긴 것이다. 해서 내용의 정확성을 따지자면 박희영본이 더 유리해야 정상이지만, 고전 그리스어라는 게 '악마의 언어'라 불릴 만큼 난해하고 또 중의적이어서 '정확하게' 옮긴다는 것이 과연 어느 만큼 가능한지 모르겠다. 내가 들춰본 (원전을 옮긴!)두어 가지 영역본들도 국역본들만큼이나 서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번역에서의 차이'라는 원론적인 문제를 따져보려는 건 전혀 아니고, 여기서는 다만 '나약한 자라는 별명'과 '투덜이라는 별명'이 어떻게 해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할 따름이다. 참고로, 인터넷상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벤자민 조웻(Benjamin Jowett)의 영역은 아래와 같다.

Companion. I see, Apollodorus, that you are just the same-always speaking evil of yourself, and of others; and I do believe that you pity all mankind, with the exception of Socrates, yourself first of all, true in this to your old name, which, however deserved I know how you acquired, of Apollodorus the madman; for you are always raging against yourself and everybody but Socrates.

Apollodorus. Yes, friend, and the reason why I am said to be mad, and out of my wits, is just because I have these notions of myself and you; no other evidence is required.  

그러니까 조웻의 영역본에서는 '나약한 자'와 '투덜이' 대신에 '미치광이(madman)'가 아폴로도로스의 별명으로 칭해진다. 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본도 조웻의 영역과 가장 유사하다('미치광이'란 표현의 러시아어 'becnovatyj'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이미지는 히틀러이다!).그렇다면, 아폴로도로스는 나약한 자이면서, 투덜이면서 미치광이인 것인가?(여기서 먼저 지적해두자면 박희병본에서 '판단력이 모자란 바보'란 표현은 '나약한 자'라는 친구의 말을 다시 받는 것이기에 수정될 필요가 있다. '판단력이 모자란 바보'를 우리말에서 '나약한 자'라고 부르지는 않으니까.)

사태를 수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로빈 워터필드의(Robin Waterfield)의 옥스포드판 <향연>이다. 역자는 1952년생의 중견 학자인데(비록 원로급은 아니더라도), 옥스포드판의 <국가>를 영역하기도 했으므로 영어권에서는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전문가라고 해야겠다. 그는 이 대목을 이렇게 옮겼다.

Companion. You never change, Apollodorus: you put yourself and others down all the time. I get the impression that you regard literally everyone, from yourself onwards, as unhappy - except Socrates. I've no idea how on earth you came to get your nickname 'the softy', since your conversational tone is invariably the one your're displaying now, of impatience with yourself and everyone else - except Socrates.

Apollodorus. So if I think this way about myself  and about you, then I must be raving mad - is that it , my friednd?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나 'the softy'이다. 'softy'는 'soft person'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말로는 '바보, 멍청이, 유약한 사람, 감상적인 사람' 등의 뜻으로 옮겨진다. 축어적으로 옮기자면, '물렁한 사람', '물렁이'가 되겠다. 워터필드가 붙인 주석을 보면, 원텍스트에서 이 단어는 원래 'the fanatic'(미치광이)란 뜻을 갖는데, 역자는 아폴로도로스에 관한 다른 기록을 염두에 두고 보다 자연스러운 그리스어 표현, 곧 영어로는 'the softy'라 옮겼다고 한다. 그 다른 기록이란  아폴로도로스가 당시에 악명높은 동성애자였으며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엄청나게 울었다는 증언 등을 말한다. 박희영본에서 '나약한 자' 또한 이 'the softy'와 맥이 닿아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이세진본의 구어투에다 워터필드의 영역을 살짝 입혀서 옮기면 이렇게 될 것이다.

친구: 아폴로도로스, 넌 여전하구나. 넌 말야, 항상 너 자신과 남들을 나쁘게 말해. 소크라테스님을 빼고는 너를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불쌍해죽겠다는 식이지 뭐냐. 난 네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물렁이'란 별명을 얻었는지 상상이 안된다. 넌 입만 열면 언제나 지금처럼 너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참지 못하겠다는 식이니 말이다. 소크라테스님만 빼고.  

아폴로도로스: 그래서, 내가 이런 식으로 나 자신과 네놈들을 대하면 그게 내가 미치광이라는 뜻이라도 되는 거냐,  그런 거냐, 친구야?

조웻과 워터필드의 두 영역본의 차이는 이것이다. (1)조웻: 네 별명이 왜 '미치광이'인지 알겠다. 왜냐하면 넌 항상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잖아. (2)워터필드: 네 별명이 왜 '물렁이'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넌 항상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잖아. <향연>의 이본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폴로도로스의 별명을 어떻게 옮기느냐에 동사는 '알겠다'와 '모르겠다'를 왔다갔다한다. 문맥의 논리상 그렇다.

국역본의 경우, 박희영본은 워터필드 계열이다: "자네가 어디에서 '나약한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 반면에 이세진본은 조웻 계열이다. "네가 어째서 '투덜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알 만하다."(한데, 조안 스파르는 '알 만하다' 대신에 '그냥 넘어가자'라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런 구도라면, 박희영본에서 친구의 말을 이어받는 아폴로도로스의 대사는 어색해 보인다.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여! 나 자신뿐만 아니라 자네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판단력이 모자란 바보로 여겨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네!"라고 맞장구칠 때는 아니지 않은가? 그 다음 친구의 대사가 "아폴로도로스여, 그러한 문제를 놓고 우리가 지금 논쟁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이므로 이 장면에서 아폴로도로스는 친구의 말에 (동의가 아닌) 시비를 걸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세진본에서도 "야, 그게 바로 명백한 증거 아냐?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정신 나간 투덜이라는 증거 아니냐고?" 할 때도 친구의 말에 대한 동의가 아닌 시비의 어조(뉘앙스)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 그런 게 내가 정신 나간 투덜이라는 증거가 되는 거냐?"라는 식. 즉, 워터필드처럼 반문으로 옮기거나, 조웻처럼 긍정문으로 옮길 경우에는 '반어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로쟈, 넌 여전하구나. 넌 말야, 항상 너 자신과 남들을 나쁘게 말해.")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져서 뭐하겠어, 아폴로도로스, 자꾸 딴소리 말고 내가 물어본 거나 대답해줘. 그래, 어떤 연설이었는데?" 우리는 <향연>의 문턱에서 어정댈 게 아니라 <향연> 속으로 빨리 걸음을 내딛어야겠다...

06.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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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9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연은 굉장히 신경쓰며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오늘도 긴장하며 읽었거든요.
'투덜이'에서 긴장이 확 풀렸어요.
하지만 여전히 어렵긴 하네요.

로쟈 2006-12-1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읽기는 고전(苦戰)이기도 하지요...

열매 2006-12-20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연>의 문학과지성사판 번역자는 '박희병'이 아니라 '박희영'입니다. 외대에서 그리스철학을 가르치는 원로학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로쟈 2006-12-20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옆에 책을 두고서도 다른 분과 헷갈렸네요.^^;

Poissondavril 2007-05-17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유배(?)되어 있다가 이제야 이 페이퍼를 봤네요. 정말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물렁'한 역자지만 기회가 되는 대로 꼭 반영해서 수정하겠습니다.

로쟈 2007-05-1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번역서가 또 나오는가 보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노르웨이 작가 순 뢰에스에 관한 기사들을 읽다가 떠올린 작가는 재작년에 러시아의 한 서점에서 사인행사를 가졌던 작가 '에를렌드 루'이다(지금도 사인회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김기덕의 <빈집>을 다룬 모스크바 통신문 서두에 관련내용을 적어둔 바 있는데, 모스크바 통신을 비공개로 돌렸기 때문에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때의 일기를 다시 불러내 창고에 넣어두도록 한다.  2004년 12월초의 일기 한 대목이며, 뒷부분은 <빈집>에 대한 감상('환대의 윤리학과 유령의 존재론')으로 이어졌었다. 아래 사진은 사인회 장소였던 '모스크바 서점'.

오후에 서점엘 다녀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집과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소설 등을 사는 게 목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허탕이었다. 먼저 ‘류뱐카’역(이전에 KGB본부가 있었던 곳이다)에 있는 '비블리오 글로부스' 서점에 가서는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를 펭귄북으로 샀는데, 그 작품이 들어 있는 책으로 보아둔 러시아어본이 없었다. <셰익스피어 희극>이라는 다른 작품집들에는 <자에는 자로>가 빠져 있다(*셰익스피어 작품집은 나중에 구했다). 할 수 없이 발품을 좀 팔아서 '모스크바서점'까지 걸어갔다.

‘루뱐카’에서 이전 역인 ‘아흐트느이랴드’까지는 걸어서 10분쯤 걸린다. 그 정도 걸어가면 정면에 크레믈린이 보이고, 오른편에 볼쇼이극장이 나타난다(사진. 생각해 보니까 아직 한번도 볼쇼이 구경을 하지 않았다. 발레를 꼭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어쩌면 갈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하도를 건너가서 볼쇼이극장의 오른편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서는 다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서 계속 걸어갔다. 이전에 한번 가본 길이었다. 그렇게 한 블록을 더 걸어가서 길을 건너면 모스크바예술극장(=므하트)이 있는 거리이다. 거리의 끝무렵에 있는 체홉 동상을 지나면 트베르스카야 대로가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5분쯤 걸어가면 <모스크바 서점>이 있다(아마 이런 루트는 이전에 한번 소개한 듯하다).  

예정에 없이 들른 서점인데 우연찮게도 한 작가의 팬사인회가 진행중이었다. 작가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에를렌드 루(Erlend Loe). 최신작을 포함해서, 1969년생인 이 작가의 작품들 대부분이 러시아어로 번역돼 있고, 그의 두번째 작품(<나이브하게. 슈퍼>. ‘Super’가 작품에서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기에 그냥 그렇게 옮겨둔다) 같은 경우는 13개 국어로 번역되었다고 하니까 과히 지명도를 알 만하다(*에를렌 루의 <나이브? 슈퍼!>(문학동네, 2009)로 번역됐다!).

러시아의 아즈부카 출판사에서는 그의 작품들을 아예 문고본 클래식으로 출간하고 있는데(나도 오다가다 자주 보던 책이다), 나는 그 문고본들 중 두 권을 들고서(값이 다른 것들보다 싸서였는데, 권당 2,800원) 잠시 줄을 섰다가 ‘미래의 거장’에게서 사인을 받았다(지난번 뤽 베송 사인회만큼 붐비진 않아서 나는 5분 정도밖에 기다리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라>라는 책은 내 이름으로(For me), 그리고 그의 데뷔작인 <여자들의 권력 속에서>는 ‘마님’의 이름으로(For my wife). *아래는 당시 사인회의 빌미가 되었던 책 <쿠르트 이야기>의 러시아어판 표지.



현대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들이 국내에 직접 소개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루의 소설들이 언제 우리말로 번역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럽 다른 나라에 번역되는 걸로만 봐서는 그는 노르웨이의 가장 확실한 젊은 거장이다. 그리고 어쩌면 10-20년 후에 노벨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아주 오랜만에 노르웨이 작가에게 주어진다면). 그러면, 내가 받은 사인본들이 꽤나 값나가는 ‘유산’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런 건 일단 백일몽으로 접어두고, 머리를 빡빡 밀어서 뚝심 있는 신부님이나 선량한 조폭처럼 생긴 이 작가에 대해 약간 소개하면, 그는 노르웨이에서 인기 있는 작가이자 비평가이며 이미 여러 차례 국내외 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에 입문하기 전에 그는 많은 직업을 전전했는데(이건 작가로서 예외적인 건 아니다), 연극무대에 선 적도 있고, 단편영화들과 뮤직비디오 등도 찍었으며 정신병원에서도 일했고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서는 1993년, 그러니까 24살에 <여자들의 권력 속에서>로 ‘혜성같이’ 노르웨이 문단에 등장한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너무나 재미있으며 아주 능수능란하다”, “아주 강력하며 동시에 시대를 앞질러 간다. 이런 데뷔작은 노르웨이 문단에 오랫동안 없었다. 루는 모든 걸 뒤집어엎었다!” 등등으로 평했다. 그리고 낸 두번째 작품이 전유럽적인 베스트셀러가 됨과 동시에 그는 노르웨이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라>는 2001년작이며, 주인공은 저널리스트이고 핀란드에 관한 얘기라고(그러니까 제목이 가리키는 나라는 ‘핀란드’이다. 핀란드는 노키아의 나라이면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다지 두꺼운 책들은 아니지만(각각 224, 288쪽) 내가 언제쯤 이 책들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라>를 읽는 일은 그런 나라에서 사는 것보다는 빨리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그게 역설적이지만, ‘책읽기의 괴로움’이다).

하여간에, 그래서 루의 책을 두 권 샀다. 그런데, 정작 지난번에 봐둔 <셰익스피어 희극>은 여기서도 다 나가고 없었고(또 들어올 거라고는 하지만), 오스트롭스키의 책도 없었다. 나는 직원에게 분명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예상대로) 직원은 19세기 극작가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의 작품집을 보여주었다. 다시 한번 ‘니콜라이’라고 말하니까 그때서야 그의 책으론 나와 있는 것이 없으며 ‘고서 코너’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혹시나 싶어 아래층 고서 코너에 내려가봤지만, 역시 없었다). 이 역시 절반은 예상한 바이지만(지난번 고리키의 사례를 통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소설가 오스트롭스키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작가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를 말하며, 그의 작품은 아직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책이다(두 종의 번역서가 있었던가?). 하지만, 러시아에는 없다! 오스트롭스키만이 아니라 과거 수십 만부씩 찍어대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은 종적을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파제예프니 푸르마노프니 하는 작가들 말이다. 그나마 숄로호프 정도는 노벨상 수상 작가여서인지 간간이 눈에 띈다. 하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그마저도 중고등학교의 필독서 목록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고요한 돈강>이 빠진다면, 러시아 학생들이 가장 지겨워할 문학작품은 <전쟁과 평화>가 될 것이다(이건 가정이다). 그런 식으로 러시아의 ‘사회주의’는 서점에서도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다.

사실 나는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읽지 않았다(그는 보통 대학의 ‘20세기 러시아문학사’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몇 년 전 1920-30년대 러시아 문학장이란 걸 재구성하고자 기획하면서 그에게 한 꼭지를 할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기획이 엎어지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에 작가의 몇 주년인가를 기념하는 기사들이 <문학신문>에 게재되면서 그를 다시금 기억하게 됐는데, 다음주 수업시간에 그 작품에서 발췌한 몇 페이지를 읽게 돼서 이 참에 책을 구하려고 한 것이다.

러시아문학, 혹은 더 나아가 문학에서의 ‘레닌주의’를 이야기하거나 이해하고자 할 때, 반드시 참조해야 하는 소설들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고리키의 <어머니>, 그리고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3인조이다. 이들은 각각 당대에 가장 많이 읽혔던 작품들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섯 번이나 읽었고, 그의 정치 팜플렛에다 아예 <무엇을 할 것인가>란 제목을 붙였다(참고로 체르니셰프스키는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머니>와 <강철>의 주인공 이름은 둘 다 ‘파벨’이다(물론 오스트롭스키가 우연히 갖다 붙인 이름은 아닐 것이다).

지난 80년대에 한국에서는 이들 작품들이 ‘과대’평가됐었다. 물론 거기엔 시대적 필연성이란 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요즘엔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 그건 작가들의 조국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도 시대적 필연성인가? 과거에 나는 이 작품들의 과대평가에 동의하지 않았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과소평가에 동의하는 것도 않는다. 역사 속에서 작가/작품엔 제 몫의 역할과 운명이 주어진다. 아니, 작가/작품은 그런 걸 짊어진다. 문제는 그런 역할/운명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지 열광하거나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조금 다른 예로서,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대한 열광을 들 수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을 냉대했던 관객들이 갑작스레 ‘마니아’들로 둔갑한 것을 나는 신뢰할 수 없다. (러시아)미래파 선언문에서 인용하자면,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걷어붙이고 싶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에의 편승이 아니라 ‘반시대적 성찰’이다.

나는 사려던 책들 대신에 작년에 나온 니콜라이 1세(1825-1855)의 전기와 러시아시 각운사전을 사들고는 예의 피자전문점 스바로에 가서 이태리 피자와 맥주, 그리고 스파게티를 먹었다. 헛걸음한 걸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끼니를 때우고 되돌아가던 길에 플라톤의 <대화>나 사들고 갈까 하고 다시 서점에 들렀지만, 책은 없었다. 가장 두껍고 가장 저렴했던 플라톤 선집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나중에 구했다). 이래저래 되는 일이 없는 날이다. 루의 사인본마저 받지 못했더라면(15분 정도만 늦게 갔어도 사인회는 끝났을 터였다), 오늘은 말 그대로 공친 날이 될 뻔했다.  

서점을 나서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이 계산대에 홍보용으로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제목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해변의 카프카>였다(*아래는 러시아어판 표지).



아마도 하루키의 모든 책이 러시아어로 번역되는 듯한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하루키는 (스시를 제외한다면) 일본 최고의 문화상품이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거기에 대응하는 한국 최고의 문화상품은 김기덕이다. 나는 들어가보지 않았지만, 어제 <빈집>을 같이 본 후배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러시아 인터넷의 김기덕 사이트는 열광적인 숭배자들을 거느리고 있다고(그들은 전문가 수준의 비평들을 계속 올린다고 한다). 아래는 <빈집>의 러시아판 DVD 타이틀.

사실 후배가 엊저녁 8시에 상영하는 <빈집>을 보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열렬한 반응에 고무되어서였는데(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나는 이미 지난주에 <올드보이>보다 <빈집>을 보려고 했으므로 기꺼이 한번 더 동행하게 되었다(영화관에서 보는 김기덕은 <파란대문>에 이어서 두번째였다). 

영화관은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예술극장'이었고, 이번엔 <올드보이> 때와는 달리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이었다. 50석 규모였는데, 새로 만들어놓은 듯싶었다. 모든 시설이 새것이었기 때문에. 화면의 크기가 (당연히) 작다는 것 말고는 만족스러웠는데, 김기덕의 영화는 대형화면을 요구하는 스펙터클이 아니기 때문에 그게 굳이 흠이 될 것도 없었다. 8시가 되자 프랑스와 오종의 신작 예고편이 나오고 나서는 바로 “Happinet Pictures”란 로고가 떴다. 그리고 시작된 영화의 첫 장면은 골프 스윙 소리와 망이 출렁이는 모습. 영화는 더빙이 아니라 자막 처리돼 있는데, 사실 알다시피 <빈집>은 대사란 것 자체가 많지 않은 영화이다. 두 주인공에 국한하자면, 거의 ‘무성영화’이니까...

04. 12. 05./ 06.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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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2006-12-2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아주 특이한 청춘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로쟈 2006-12-2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이한' 관점이시네요.^^

Sati 2009-08-0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트로프스키를 찾을 수가 없으셨다는 말씀 들으니, 91년도에 '우데엔' 1층 화장실에 들렸다가, 창가쪽 한 구석으로 몇차 공산당 전당대회 연설집 이런 류의 브로셔들이 산처럼 쌓여서 회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많이 이상했던 기억이 나요.
 

아침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문학관련 기사는 노르웨이 작가 순 뢰에스의 소설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문학동네, 2006) 출간과 이에 맞춰 한국에 온 작가 순 뢰에스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만 소개하면 별 특이사항이 없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지선'이란 한국이름을 가진 입양아출신이다. 노르웨이의 저명한 문학상 수상작가가 되어 '금의환향'한(그녀는 자신의 '모국'을 남편과 함께 방문했다) 또다른 '성공담'이 관련기사들의 주조이다.

작가는 <올드보이>나 <빈집> 같은 한국영화들도 재미있게 보았다고 하는데,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입양아지만 괜찮아'쯤 될까? 실제로 이번에 출간된 소설은 정신질환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17세 소녀의 불안한 내면과 독백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이 정신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한 경험에 바탕을 둔 작품이기도 하다고. 이래저래 흥미를 끄는 작품이다(정군님은 벌써 리뷰를 쓰셨군!).

경향신문(06. 12. 19) 입양아출신 노르웨이 소설가 고국품에 ‘책’을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쌍둥이 오빠와 함께 노르웨이로 입양됐던 아기가 30년 만에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신진작가가 돼 고국땅을 밟았다. 18일 오후 6시 서울 성북동의 주한 노르웨이대사관에서는 한국계 작가 쉰네 순 뢰에스(31·한국명 지선)를 위한 특별한 만찬이 열렸다. 2002년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인 브라게상을 받은 장편소설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 한국판 출간(손화수 번역·문학동네 펴냄)에 맞춰 한국에 온 작가를 환영하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아직 앳된 얼굴의 작가 뢰에스는 “작가로서 한국을 방문하고 많은 환영을 받게 돼 기쁘다”면서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강하고 색다른 뉘앙스를 갖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소재의 작품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4년간 정신병동 간호사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 발표한 이 소설은 그해 노르웨이 도서상재단이 수여하는 브라게문학상 청소년 부문상을 수상했다. 1999년 발표한 ‘요코는 홀로’에 이어 두번째 작품이다.

뢰에스는 “책이 나왔던 해, 친부모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온 적이 있다”면서 “빨리 생각하고 빨리 말하고 빨리 걷는 편이어서 서울의 빠른 속도가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고 밝혔다. 또 “친부모를 만나는 게 긴장되고 즐거웠으나 그들은 죄의식 때문인지 나와 느낌이 많이 달라 당황스러웠다”면서 “이번에는 삼촌과 할머니도 만났다”고 말했다.

뢰에스는 쌍둥이 오빠 시그비엔과 함께 1976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노르웨이 외스트폴의 의사부부 집에 입양됐다. 그들을 낳은 스무살의 산모는 몸져누웠고 시그비엔은 심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있는 상태였다. 집 월세보증금마저 병원비로 나간 데다 아들의 병이 국내에서는 고치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자 친아버지는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두 아이를 입양시켰다. 양부모의 영향으로 오빠 시그비엔은 의사가 됐으며 뢰에스는 간호학을 전공했다.

이들이 친부모와 연락이 닿은 것은 2001년. 일본에서 일했던 오빠 시그비엔이 귀국길에 한국에 들렀다가 홀트아동복지회에 연락하면서 친부모와 상봉했다. 다음해 뢰에스도 한국에 왔다. 친아버지는 뢰에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는 “성장하면서 남들과 다른 얼굴 때문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컸지만 또래의 노르웨이 청소년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뢰에스의 출세작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는 정신질환의 문턱을 넘나들다 정상적인 삶을 되찾은 17세 소녀 미아가 경험한 세 계절 동안의 변화를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린 작품이다. 쇠락의 길로 빠져드는 가을, 주인공의 절망적 상황을 생생히 묘사한 겨울에 이어 마지막 봄 부분에서는 서서히 생의 의지를 찾아가는 미아의 심리상태를 표현했다. ‘주인공이 지닌 세상과 가족, 친구를 향한 비뚤어진 시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브라게상 심사위원들은 격찬했다.



이번 국내 출간은 한국에 사는 한살 아래 여동생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언니처럼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여동생은 브라게상 수상소식을 들은 뒤 출판사에 연락해 작품검토를 부탁했다. 오는 22일까지 한국에 머무는 뢰에스는 21일 오후 3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한윤정 기자)

06. 12. 19.

P.S. 순 뢰에스 부부를 그제 한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사진에 비해서 굉장히 작은 얼굴과 체구의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은 사진 그대로였지만...

06.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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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2-19 10:1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침에 이 기사 봤어요.1면에 배치되어 있더군요.^^
도저히 기를 능력이 안돼서 아이를 머나먼 이국으로 입양시켜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땟을까 싶어요.

로쟈 2006-12-19 13:53   좋아요 0 | URL
기본적으론 국내 입양이 안되기 때문이겠죠. 입양아 수출 1위국이라니까...

sommer 2006-12-19 16:56   좋아요 0 | URL
번역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아미 탄생만으로는 모자라고 번역의 우회를 거쳐야만 고국에 기입된다는 것...아직도 귀환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이름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네요. 이 나라에선 실재의 귀환과 동시에 상징이 잠시 그 가능성을 엿본다는 생각까지 함께...

로쟈 2006-12-19 21:52   좋아요 0 | URL
"번역의 우회를 거쳐야만 고국에 기입된다는 것"을 일반화시키고픈 유혹은 느끼게 되네요. 그것은 인류학적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인 어떤 절차...
 

오늘 아침신문들을 들춰본 이라면 온갖 신문들이 최근 <로마인 이야기>(전15권)를 완간한 일본의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 인터뷰로 도배돼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을 전철에서 읽었는데, 두 신문 모두 거의 전면이 그녀에게 할애돼 있다. 인터넷에서 다른 신문들을 검색해봐도 사정은 비슷한다. 과연, 어느 한국작가의 책이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아주 드문 경우 아닌가?).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평가는 일반 대중과 역사가들의 평이 사뭇 갈리지만 15년간 매년 한 권씩 출간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낸 저자의 의지와 노고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할 만하다. 비록 나로선 <로마인 이야기>를 집어들 엄두는 내지 못하고 고작 두어 권의 에세이를 읽는 데 그쳤지만 말이다. 내년/내달초에 마지막 15권이 번역돼 나올 거라고 하는데, 작가와 역자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고 잠시 '로마 제국'에 대해서 음미해본다.

경향신문(06. 12. 18) 시오노 나나미 “천년로마 비결은 공존의 지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69)는 1992년 ‘로마인 이야기’의 제1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출간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 책을 2006년까지 해마다 한 권씩 발표해 전 15권으로 완결짓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작가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제2권 ‘한니발 전쟁’을, 94년엔 제3권 ‘승자의 혼미’를 발표하는 등 매년 어김없이 약속을 지켰다. 1년의 절반은 자료를 읽고, 나머지 절반은 집필에 매달려온 산고(産苦)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제15권 ‘로마세계의 종언’을 내놓으면서 ‘로마 천년사’를 담은 방대한 저작의 마침표를 찍었다.



“민족, 생각, 습관, 종교 등이 다른 사람들이 공생하는 게 가능했던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쓰고자 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의 존재를 위협하고 인정하지 않는 비관용의 세계입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다른 생각을 갖고도 함께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책을 읽어줬으면 합니다.”

23일 도쿄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만난 시오노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15년분을 한꺼번에 인터뷰하느라 책을 끝낸 감회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면서도 “확실한 사실은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여름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고희(古稀)를 눈 앞에 둔 노작가는 국가경영, 리더십, 한·일 관계 등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로마인들이 왜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 ‘로마인 이야기’의 집필은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이같은 물음을 그 스스로 풀어가는 과정이었다. 시오노는 로마가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묻자 “로마인이 모두 해먹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민족이 더 뛰어나면 그 사람에게 충분히 맡겼다는 점”이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그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관련, “가장 나쁜 건 힘과 정신력이 있는데도 눈 앞의 이익을 보고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작은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큰 걸 놓치게 된다”면서 “일본인에겐 내셔널리즘이 이런 경우”라고도 했다. 그는 또 “조직의 성원 모두를 위해 자기 배를 채우지 않는 것”을 리더의 첫째 요건으로 들었다.

“인터뷰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라는 한·일 관계에 대해선 열띤 답변이 길게 이어졌다. 그는 “역사적인 사실은 공유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공유하기 힘들다”면서 “한국에선 독도, 일본에선 다케시마라 부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역사를 만들기보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책을 써서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적 열광과 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타협점을 찾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와 비교되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은 그럴 각오도, 의욕도 없다”는 것이다. 이어 ‘팍스 차이니즈’를 거론하면서 “팍스와 패권(헤게모니)은 다른데 중국이 패권을 잡고 나서 국제질서를 이루려는 의욕이 있을까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시오노는 “역사는 위대한 교훈이자 탁월한 오락”이라고 말해왔다. ‘로마인 이야기’는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면서 광범위한 독자층을 형성했다. 그는 “역사학자들은 역사가 재미있다고 말하면 자신의 권위가 떨어지니까 그같은 자세 자체를 거부한다”고 꼬집었다. “역사에 어둡다는 것은 인간에 어둡다는 뜻입니다. 역사란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니까 잘 읽으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인간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마지막권인 제15권은 로마 제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15일 일본 신초사(新潮社) 출판사에서 출간됐으며 국내에서는 한길사에서 내년 1~2월에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시오노는 “국가로서의 종말이 아니라 로마 문명의 종말을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로마 세계의 종말은 지중해의 수평선 위에 이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할 때, 다신교의 세계가 일신교의 세계가 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서로마가 멸망한 476년이 아니라 7세기를 마지막으로 잡은 이유입니다.”

향후 집필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힌 시오노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얌전한 남자를 그리고 싶다”며 미소지었다.(도쿄|김진우기자) 

◇“철저한 고증…빈틈은 상상으로 메워”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했다. 가쿠슈인(學習院)대를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로마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는 독학으로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를 탐구해갔다.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부터 시작해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신의 대리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여류문학상) ‘바다의 도시 이야기’(산토리 학예상)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 전쟁 3부작과 ‘주홍색의 베네치아’ 등 살인 3부작 등을 뽑아내며 굵직한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로마인 이야기’는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집필한 책으로 준비에만 20년, 시리즈 완간에만 15년이 걸렸다. 200자 원고지 2만1천장에 달한다. 책은 기원전 753년 전설의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때부터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천년이 넘는 역사를, 제1~5권의 ‘융성기’, 6~10권 ‘안정기’, 11~15권 ‘쇠퇴와 멸망’ 세 단계로 나눠 담아냈다. 국내에선 1995년 제1권과 2권이 동시에 첫 선을 보이면서 출판계에 인문·교양서 열풍을 일으켰다. 각 권당 10만부 이상이 팔렸고, 지금까지 2백만부 넘게 팔렸다(*한길사의 '곳간'이라 할 만한 책이다. 비록 역사의 '고전'이자 '그레이트북스'로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그레이트북스'를 먹여살린 책이다!).

시오노는 명쾌한 논리와 도전적인 역사 해석으로 독자들을 매혹시켜왔다. “철저한 고증과 사료에 바탕을 두었으되 역사적 기술로부터 벗어나 있고, 사료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했으되 픽션에 빠지지도 않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처럼 사료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상상’에 의존하는 그의 역사서술을 비판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또 힘(권력)과 제국주의를 깔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인터뷰에서 저자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는 점에서도 알 수 있지만, 로마(제국)과 미국(제국주의)를 구별하는 게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한국일보(06. 12. 18) 김석희 "'로마인 이야기'같은 책, 왜 우리는 아직 없을까"

“번역이 힘들면 그건 재미없는 책이에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전권을 번역해 온 김석희(54ㆍ소설가)씨는 “그와 함께 한 세월은 언제나 신났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로마인…>의 첫 독자였던 그에게, 저자와 책의 매력을 물었다. “그의 문체는 남성적인 활달함이 있어요. 로마의 도로처럼 거침없이 뻗어가는 힘과 표현의 묘(妙)가 독특한 흡입력을 발휘하지요. 알다시피 <로마사…>는 기본적으로 역사물이지만, ‘왜?’를 묻는 학문이 아니라 ‘어떻게?’를 묻고 답하는 책이잖아요. 상상력과 재해석이 필요하지요.”

‘사실(史實)+알파’의 그 ‘알파’ 속에 나나미적 글쓰기의 특징이 숨어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역사의 재해석이란 역사와 현실의 끊임없는 대화를 주선하는 과정이거든요. 로마인을 이야기하면서 시사적 관심을 유발하고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죠. 가령 이 책 1권 초판이 일본에서 출간된 1992년은 일본 경제 버블 10년이 구체화하던 시기였어요. 제대로 된 리더에 목마른 시민들 앞에 로마의 제왕들을 내세운 것이지요. <로마인…>의 흥망사 중심에는 리더십의 문제, 지도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잖아요.”

리더십은 우리 독자들이 느껴온 갈증이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 ‘세계화’라는 또 하나의 시대적 담론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구호에 <로마인…>이 호응한 측면이 있어요. 세계 경영, 포용력, 현지화 등 로마의 제국화 과정이 세계화 담론의 주요 단서들과 맞물렸던 거지요. 실제로 이 책 1~3권 번역본이 나왔던 초창기에는 일반 독자들보다는 재계 사람들과 공무원들이 많이 봤어요.”

지금 그는 “진행 중이던 작업들을 모두 매듭짓고, 마지막 권이 올 때까지 손목을 풀고 있다”고 했다. “하루 평균 원고지 100매 남짓씩 해서 18일 정도면 번역 원고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고 나면 정말 시원섭섭할 것 같다”고 했다. <로마인…>이 초대형 스테디셀러가 됐지만 그가 번 돈은 많지 않다. 인세 계약이 아니라 매절 계약(원고지 매수당 번역료를 받는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인세 계약을 하시지 그랬냐고 농담처럼 묻자 “그런 거 따지면 인생살이가 고달파진다”고, “그래도 출판사에서 섭섭치 않게 챙겨주더라”며 웃었다.

<로마인…>이 잘 나가자 일각에서는 전공 학자도, 학자도 아닌 아마추어가 쓴 책이라고 폄하하기도 했고, 일본 우익의 대동아공영권 부활 음모가 숨겨진 제국사라는 비난도 있었다. 그런 지적들에 대해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전문 학자의 역사 서술에 다른 차원이 있겠지만, 왜 우리에게는 <로마인…>과 같은 책이 없는지 반성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각광 뒤에 이 탁월하고 성실한 번역가가 있었다는 사실, 그의 문장이 있어 <로마인…>의 현지화ㆍ한국화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는 <로마인…>과 함께 한 세월이 행복했다고 말했지만, 저자 역시 그 같은 번역가를 만난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독자들도 이 두 비범한 저자와 역자를 만나 행복했다.(최윤필 기자)

06. 12. 18.

 

 

 

 

P.S.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이 대중적인 '역사 이야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내가 읽은 건 주경철 교수의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문학과지성사, 1999) 정도이다. 전15권이 완간된 만큼 총체적인 재평가와 함께 "왜 우리에게는 <로마인 이야기>와 같은 책이 없는지"에 대한 답변도 함께 제시되었으면 좋겠다. 눈에 띄는 로마사 관련서들 가운데, 국내 저자의 책은 (아동용을 제외하면) 한두 권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일차적인 건 역사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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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12-18 12:18   좋아요 0 | URL
시오노 나나미의 뚝심과 뛰어난 번역가 김석희의 재능이 만나 한국어판 [로마인 이야기]가 탄생한 것은 "행복"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겠지만, 역시 과대평가된 면이 많지 않나 싶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현상은 저 정도 수준의 대중 교양서를 펴내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반작용이기도 하겠지만요. 일본 책들을 훑어보면서 놀라는 건, 아무리 대중지향적인 책을 쓰더라도 철저한 자료조사와 꼼꼼한 논리가 뒷받침된다는 겁니다(물론 그만큼 쓰레기 같은 책도 엄청나게 많지만). 그게 일본 사회에 있어 일종의 '진통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게 좀 마음에 걸리지만요.

Mephistopheles 2006-12-18 12: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메피스토입니다.
전 한권도 읽은적이 없다보니 뭐라 평을 할수는 없지만..
작가의 노력만큼은 대단하다고 보고 싶습니다..^^

비로그인 2006-12-18 15:31   좋아요 0 | URL
저는 로마인 이야기를 '긍정'합니다. 한국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제도는 서구에서 비롯된 것이지요.(조선왕조로 부터 물려 받은 것이라고는 세글자의 성명표기와 제사 정도랄까요?ㅋ)하지만 한국사람들은 동양성에 대한 과잉집착이라고 할까요. 착각이라고 할까요.뭐 그런 것에 빠져있지요. 우리나라의 현 정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 정체의 원형(prototype)으로서 로마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인에게 최고의 영예인 시민관은 동료시민을 '구한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였지요.
시민적 연대를 로마공화국이 얼마나 중시 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면에서 최근 FTA시위에 대한 동료시민들의 '짜증'은 이 사회의 시민적 연대가 얼마나 파괴되어(어쩌면 없는 것일수도)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것은 '무지'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런면에서 로마인이야기는 더 많이 읽힐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로쟈 2006-12-18 17:19   좋아요 0 | URL
제가 긍정하는 건 일종의 '유인효과'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로마사를 전공하고 싶어할 청소년들도 있거든요. 그런 건 다른 '진지한' 역사서들이 해주지 못한 일이지요...

딸기 2006-12-19 11:13   좋아요 0 | URL
대중적이면서 꼼꼼한 역사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로마인이야기가 '틈새'(굉장히 컸던 틈새)를 제대로 파고들었다는 것은 분명해요. 참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의 초인 지향 세계관은 좀... '저자의 노고'를 치하해주는 것도 좋지만, '저자가 쓴 책의 내용과 역사관'에 대한 검증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비로그인 2006-12-19 12:14   좋아요 0 | URL
이분의 책, '남자 이야기'를 오래 전에 읽었습니다.
100m육상선수 칼 루이스에대한 예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분도 천상 '여인'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쓰신, 로마인 이야기는 다소 자의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더군요..


로쟈 2006-12-19 12:38   좋아요 0 | URL
초인지향적이고, 자의적이군요.^^ 일반론이긴 하나, 저는 그런 '고집'이나 '편견' 없이 어떻게 15년 동안 책을 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저자가 내놓고 말하듯이, 그 또한 마키아벨리스트 아닐까요?).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였다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의문이구요. 전문 역사학자들이 왜 이런 책을 쓸 수 없는지에 대한 해답을 나름대로 찾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정사(正史)'를 써야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