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의 르네 마그리트전이 열린다. 오늘(12.20)부터 내년 4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얼마전부터 관련기사들을 읽어볼 수 있었는데, 전시회 개막일을 맞아 기사들이 정점을 이루고 있다. 두 가지 기사를 옮겨놓고 새삼 전시회의 의의를 환기해두고자 한다. 방학때는 시간을 낼 수 있지 않을까도 싶고.

경향신문(06. 12. 20) '르네 마그리트’전, 상식을 비트는 ‘이미지의 배반’

“우리는 우리 밖의 세상을 보지만,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있다.”

액자 속 그림 안에 또 하나의 그림을 즐겨 그려 넣던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갖고 있는 한계를 종종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파리가 된 새, 나무가 된 여인, 구두가 된 발, 낮과 밤 등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거리. 그의 그림에는 기이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분위기, 상식을 깨는 묘한 매력이 서려 있다.

시뮬라크르, 기호와 상징 등 현대미학의 여러 주제를 설명할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우리나라에 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벨기에 왕립미술관 및 르네 마그리트 재단과 공동으로 ‘르네 마그리트’전을 20일부터 내년 4월1일까지 연다. 초기부터 말기까지 마그리트의 작품세계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전시로 회화와 드로잉, 판화 등 120여점과 사진 및 영상자료 150여점 등 총 270여점이 선보인다. 작품 중 초기작인 ‘보이지 않는 선수’는 1백20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으로 벨기에인들이 국보처럼 여기는 작품이다.

작품들은 대부분 마그리트가 즐겨 그리던 캔버스 속의 캔버스 구도를 차용해 액자 형태의 파티션 위에 설치됐다. 전시실을 훑어보다 보면 대부분 작가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도가 높고 한 주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비해 마그리트는 20, 30대 시절 묘사했던 소재와 주제를 끊임없이 변형하고 자기복제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달리나 미로 등 여타 초현실주의 화가의 작품에 비해 논리정연한 질서에 기반하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오랜 목표이던 실물의 재현에서 벗어나려한 근대 화가들이 추상회화로 나아갔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정교하고 세밀한 구상회화를 그리되 실물의 재현이기를 거부했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써놓은 ‘이미지의 배반’ 같은 작품이 바로 마그리트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갖고 있는 통념, 상식을 끊임없이 분석해 이를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표현한 마그리트는 사실 화가라기보다는 철학자에 가깝다. 실물과 언어, 이미지의 관계, 현실과 가상, 꿈과 무의식 등 현대미술의 주요 주제를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적용해 표현하곤 했다. 데페이즈망은 친숙한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를 한 화면에 늘어놓거나 혹은 전혀 엉뚱한 맥락에 위치시켜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법. 또한 마그리트는 정교하게 그린 그림과는 전혀 호응하지 않는 텍스트를 화면 안에 써넣거나 제목을 달았다.

회화 사이사이에 설치된 작은 크기의 사진들은 마그리트의 독특한 상상력을 더욱 잘 보여준다. 주로 친지와 지인들을 마그리트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오늘날 디카족들이 장난치듯 만들어낸 이미지와 비슷하다. 한 전시실에는 사진가 듀안 마이클이 찍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상 사진과 영화에 관심이 많던 마그리트가 훗날 소형 영사기로 직접 찍은 영화도 상영된다.(윤민용 기자)

동아일보(06. 12. 11)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르네 마그리트 전시회"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뭔가 생각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낯익은 형상들을 결합한 그림인데도 이미지나 느낌은 낯설다. 그림과 관객의 역동적 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작가는 철학자 미셀 푸코에게 보낸 편지에서 “닮음과 비슷함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세계와 우리 자신들이 전혀 새롭게 존재하는 광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바로,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1898∼1967)다. 그는 20세기 초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빛의 제국’ 연작 등으로 관습적으로 각인되어 온 사물의 존재 방식을 깨는 그림들을 제시했다. 철학적 사유의 화가로 통하는 그는 “그리기의 예술은 사유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 마그리트가 한국에 온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함께 19일∼내년 4월 1일 ‘르네 마그리트’전을 마련한다. 마그리트 전시회가 아시아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갤러리 현대의 도형태 대표는 “마그리트 작품들은 개인 소장품이 많아 모으기 어렵다”며 “마그리트 전시회는 전시 기획의 끝이라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빛의 제국’ ‘회귀’ ‘신뢰’를 비롯한 유화 대표작 70여 점과 드로잉 판화 등 120여 점. 작가의 사진이나 친필 서신도 함께 선보인다.

마그리트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무의식 꿈 판타지 등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드러난 몰인간성에 기겁한 일단의 예술가가 인간의 이성을 부정하고 무의미를 추구한 다다이즘의 뒤를 이어서 초현실주의가 나타난 것. 마그리트는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추구해 온 다른 초현실주의자와 달리, 사과 돌 새 벨 등 낯익은 대상을 엉뚱한 환경에 배치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으로 충격과 함께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다. 사물을 엉뚱한 곳에 갖다 놓는 ‘고립’, 이질적 사물을 결합하는 ‘사물의 잡종화’,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을 한 그림에 넣은 ‘패러독스’ 등이 그의 기법이었다.

전시작은 마그리트 작품 중 정말 수수께끼 같은 ‘보이지 않는 선수’, 날아가는 새와 알의 둥지를 대비한 ‘회귀’, 신사의 초상에 파이프를 갖다 둔 ‘신뢰’, 평야에 직육면체의 거대한 돌덩이 구조물을 그린 ‘대화의 기술’ 등이다. ‘고문당하는 여사제’ ‘신은 성자가 아니다’ ‘두려움의 동반자’ ‘곤충들의 삶’도 선보인다. 문제작 중 하나로 기존 언어와 그림문법에 대한 반성을 호소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9년)는 해외 다른 곳에서 전시되고 있어 오지 않는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언어(문자)로 진술되거나 형상을 통한 이성의 사고를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했으며 이 시도는 결국 신비와 환상과 미스터리를 자아냈다. 광고 디자이너로 일한 적이 있어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영화와 소설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가상 현실을 다룬 영화 ‘매트릭스’도 그중 하나였다. 아이러니 중 하나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종래 언어 관습이나 형상을 부정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사유의 출발점은 문자로 된 제목이라는 점이다.(허엽 기자)

06. 12. 20.

 

 

 

 

P.S. 마그리트의 세계에 관한 가장 요긴한 안내서는 아직까지는 수지 개블릭의 <르네 마그리트>(시공사, 2000)인 듯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예전에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밖에 예경에서 나온 화집 정도가 내가 갖고 있는 마그리트의 전부인 듯하다. 이 '철학자' 마그리트를 다룬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민음사, 1995)는 현재 절판 중이다. 그밖에 <노성두-이주헌의 명화읽기>(한길아트, 2006)나 서지형의 <속마음을 들킨 예술가들>(시공사, 2006) 등에서 '마그리트 읽기'를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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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6-12-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립미술관이죠? 곧 방학이 시작되니 다녀와야겠군요.

로쟈 2006-12-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죠.^^

비로그인 2006-12-2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적 관점에서 마그리트의 화법은 다소 유치하고 만화적이지요.
그가 그림에 담아내는 이야기는 독특합니다.


로쟈 2006-12-2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으로도 썼지만 '철학자 마그리트'에게 화법은 중요하지 않았을 듯합니다...

이네파벨 2006-12-2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전시 소개...감사드립니다...
마그리트...저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전시회네요...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달리의 "기억의 고집"인가...(흐물흐물한 시계)를 보고 난 후 초현실주의에 매료되어..한동안 들이팠었죠...

마그리트는 흥미롭고 나름대로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낸 화가이지만...딱 제 타입ㅇㄴ 아니지요...^^
너무 머리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어서요...
머리..특히 좌뇌로요...

전 초현실주의 화가 중에서 단연 달리..그리고..에른스트의일부 그림...그리고...몇 점 안남겼지만(아니 기억에 남는거 정말 한두 점이지만) 키리코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머리(이성, 사유, 논리, 좌뇌적 사고)로 닿을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표현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