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두어 차례 다녀간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매트릭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 )의 책들은 나는 부지런히 사들였었지만 언제부턴가 자제하고 있다. 번역서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역본과 같이 읽지 않을 경우엔 읽는 게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마도 기억엔 7년전 <예술의 음모>(백의, 2000)가 출간된 이후에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이게 된 듯하다. 책을 읽을 수 없었으니까.

 

 

 

 

사실 <예술의 음모>는 출간당시 얇은 분량에 너무 고가이기도 했다. 내 재정형편을 고려하면 더더욱. 보드리야르의 예술론 6편과 보드리야르론 5편을 묶은 이 책을 나는 어제서야 다시 대출했는데(책은 이미 품절됐다), 그건 지난주에 책의 영역본을 구했기 때문이다(지난 2005년에 나온 영역본을 나는 작년에 도서관에 구입신청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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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본 또한 제목은 '예술의 음모'라고 돼 있지만 보드리야르의 짤막한 예술론들을 모아놓은 책의 제목이 국역본과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 왜냐하면 국역본이나 영역본 모두 불어본 원저를 번역한 게 아니고(불어본은 없다!) 각각 두 편(역)자가 잡지 등에 실린 보드리야르의 예술론들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목이 같은 것은 '예술의 음모'란 표제의 글이 그의 예술론을 집약해서 보여주기 때문인 듯하다.

겨우 6편의 글을 모아놓은 국역본과는 달리 영역본은 보다 본격적이어서 인터뷰를 포함해 전부 21편의 글을 싣고 있다. 분량으론 2-3배 차이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얼마나 읽을 수 있느냐이지만. 예컨대, 표제글인 '예술의 음모'(1996)의 첫문단은 이렇다.

만약 욕망의 환상이 주위의 포르노그라피에 몰입했다면, 환상의 욕망은 현대 예술에 몰입했을 것이다. 포르노는 더 이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모든 욕망의 대향연과 해방 후에, 우리는 성의 투명성의 의미에서 성전환으로 옮겨갔으며, 또한 성의 모든 비밀과 모호함을 없애버리는 기호와 이미지로 옮겨갔다. 즉 성이 욕망의 환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이미지의 하이퍼리얼리티와 관련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성전환으로 옮겨간 것이다.(7쪽)

지극히 '보드리야르스러운' 문장들인가? '지적 사기'라는 비아냥의 표적이 되기도 했을 만큼 보드리야르의 후기 저작들은 난삽하고 현란하다. 새로운 개념들을 마구 쏟아내는 것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면서 독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한데, 그런 거 다 고려하더라도 인용문은 해독이 잘 안된다(나의 한국어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가?). 독자의 무능인가? 영역본은 어떤가?

The illusion of desire has been lost in the ambient pornography and contemporary art has lost the desire of illusion. In porn, nothing is left to desire. After the orgies and the liberation of all desires, we have moved into the transsexual, the trasparency of sex, with signs and images erasing all its secrets and ambiguity. Transsexual, in the sense that it now has nothing to do with the illusion of desire, only with the hyperreality of the image.(25쪽)

내가 영역본을 갖다놓고 불어나 독어 번역의 오역을 지적할 때면 그게 아무래도 '중역'과 같은 것이어서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바라는 건 그분들이 갖는 관심이나 걱정만큼 이런 일에 동참해주시는 거다(나도 이런 수고를 좀 덜고 싶다). 옮겨적은 영역본이 국역본과 갖는 차이점이라면 적어도 무슨 말인지는 이해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그리고 보드리야르의 생각이 재밌다는 것도 알겠고). 그럼 한 문장씩 대조해보기로 하자.

만약 욕망의 환상이 주위의 포르노그라피에 몰입했다면, 환상의 욕망은 현대 예술에 몰입했을 것이다. The illusion of desire has been lost in the ambient pornography and contemporary art has lost the desire of illusion.

먼저 'ambient' 같은 단어는 사전을 찾을 만한데, '주위의'란 뜻이고 'ambient air'하면 '주변 공기'를 말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니까 그만큼 널려있다는 것이겠다. 구문상 병치되고 있는 것은 '욕망의 환상'과 현대예술이 갖고 있는 '환상에의 욕망'이다. 이때 '환상(illusion)'이란 말은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이란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라고 할 때의 '환영으로서의 예술' 말이다. 영역본의 문장은 내 식으로 다시 옮기면, "욕망에 대한 환영이 주변의 포르노에 푹 빠져있다면 현대예술은 환영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렸다."

포르노는 더 이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In porn, nothing is left to desire.

불어 원문이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다. 영역본으로 보자면, "포르노는 욕망에 더이상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는다." 즉, 욕망을 다 탕진시킨다, 정도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말이 되는 것 아닌가? 욕망이란 원래 금지의 베일 때문에 작동하는 것인데, 포르노는 모든 베일을 벗겨내는 것이니 욕망이 남아나질 않는 것이다. 해서 더이상 욕망할 게 없다!

모든 욕망의 대향연과 해방 후에, 우리는 성의 투명성의 의미에서 성전환으로 옮겨갔으며, 또한 성의 모든 비밀과 모호함을 없애버리는 기호와 이미지로 옮겨갔다. After the orgies and the liberation of all desires, we have moved into the transsexual, the trasparency of sex, with signs and images erasing all its secrets and ambiguity.

국역본에 아무런 강조 표시가 돼 있지 않지만, 영역본에 따르면 여기서 'transsexual'은 보드리야르가 '신조어'로 도입하고 있는 말이다. 적어도 그는 이 단어를 다시 정의한다. 한데 웬 '성전환'? 바로 다음 문단에 나오지만 보드리야르는 현대예술이 환영에 대한 욕망을 상실했으며 따라서 '초미적'(transaesthetic)이게 되었다고 말한다(국역본은 이 단어의 불어를 'transthetique'라고 오기했다). 그러니까 그가 오늘날의 예술적 상황을 지시하기 위해서 도입하고 있는 용어가 transaesthetic'이며 이것은 'transsexual'와 병렬적 관계에 놓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transsexual'은 '성전환'과 무관하며 '성을 넘어선', 곧 '초성적인'이란 뜻이다. 발가벗은 성, 아무런 비밀/베일이 없는 성, 방탕 혹은 난교파티 이후에 도달하게 되는 '투명한 성'을 가리키는 말이 보드리야르에게선 '트랜스섹슈얼'인 것이다. 이성(들)의 육체와 성기를 봐도 '무심한' 상태 말이다. 그런 맥락으로 다시 옮기면, "모든 방탕과 욕망의 해방 이후에 우리는 성에서 모든 비밀과 모호함을 다 제거해버린 기호와 이미지 들과 함께 '초성적인' 상태, 성의 투명성에 도달했다."

즉 성이 욕망의 환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이미지의 하이퍼리얼리티와 관련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성전환으로 옮겨간 것이다. Transsexual, in the sense that it now has nothing to do with the illusion of desire, only with the hyperreality of the image.

"이제 욕망의 환영과는 무관하고 단지 이미지의 하이퍼리얼리티하고만 연관된다는 의미에서 '초성적인' 상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현대)예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 보드리야르식 통찰이다: "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술 역시 모든 것을 미적 평범한 것에 이르게 하기 위해 환상의 욕망을 없애버렸으며, 따라서 초미적인 것이 되었다."(8쪽) The same is true for art, which has also lost the desire for illusion, and instead raises everything to aesthetic banality, becoming transaesthetic.

 

 

 

 

'평범한 것의 미적 변용'은 미국의 철학자 아서 단토의 연구서 표제이기도 하다(이 책은 국역본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 계열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가들이 마르셸 뒤샹이나 앤드 워홀 이후의 팝아티스트들이다. 단토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와 함께 예술이 종언을 고한 것으로 보았는데(<예술의 종말 이후>), 보드리야르의 입장도 대동소이하다. 그런 걸 기점으로 해서 미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초미적인' 상태에 우리가 도달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옮기면,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 또한 환영에 대한 욕망을 상실하고 대신에 모든 것을 미적인 평범함(범속함)으로 끌어올리면서 '미를 넘어선 것', '초미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 주변엔 포르노만큼이나 예술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예술이 범람하게 되었다. 보드리야르가 얘기하는 '예술의 죽음'이란 그러한 과잉과 범람을 가리킨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됨으로써 예술이란 말의 의미 자체가 실종돼 버리는 현상, 그리고 그런 시대.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가? 혹은 그런 시대로 진입해들어가고 있는가?..

07.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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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1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보드리야르를 읽고 있는데 이해가 잘되지 않는게 제 머리탓만은 아니군요.ㅎㅎ

로쟈 2007-02-1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육을 받고도 읽을 수 없는 책의 80%는 번역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고난도여서 어려운 책은 세상에 20% 미만일 테니까요...

yoonta 2007-02-1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esire for illsuion--->desire for illusion ^^
정말 그런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독어본을 해석했다는 책들이 영어본보다도 읽기 힘든 경우. 영어본을 해석한 중역본이 더 읽기가 좋은 경우..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물론 영어본 자체에도 번역상의 오류가 빈발한다고는 합니다만..

로쟈 2007-02-1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했습니다(yoonta님도 꼼꼼히 읽으시는군요^^). 영역본이건 독역본이건 오역이야 다들 있겠죠. 하지만 우리만큼 날림으로야 하겠습니까? 중국번역의 현황을 잘 모르고 제가 '중국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번역서들이 최소한의 기본과 성의를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이번주 '씨네21'을 아침에 사들었다. '필름2.0'을 사고서도 '씨네21'마저 집어든 것은 '설합본 특대호'였기 때문이다. 이런 거 일년에 두어 번밖에 안 나온다. 추석과 설 연휴가 낄 때 말이다. 게다가 '별책부록'이란 말에 혹해서 바로 가판대 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했는데, 달랑 잡지만 내준다. 잠시 머뭇거리다, '부록 없나요?' '없어요.' 이런 응답이 세번쯤 오고갔다. 그제서야 나는 이 '별책부록'이 '정기구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인지상정으로 얼마간 낭패감이 들었는데, 그래도 제일 먼저 펼쳐 읽기 시작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겨울영화 산책'이 그 낭패감을 100% 만회해주었다. 이 '아줌마'의 영화에 대한 수다는 갈수록 주체불능인 듯하다. 여하튼 재미있다. 나는 다 읽지 않고 좀 아껴두었는데, 다 읽고 나면 나중에 '정성일 아줌마와 자크 랑시에르'란 페이퍼를 쓸 예정이다.  

그럼 이건 뭐냐? 산책 혹은 수다의 말미에서 장이모의 <황후花>에 대한 소감을 적어놓다가 그가 내리는 결론: "항상하는 이야기.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허접한 영화들만 보러 다니면 된다. 여기에 이제 한마디 더 하고 싶다. 그런 영화들만 보러 다니면 점점 허접하게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그걸 오늘의 경구로 새겨두도록 하겠다.

왜 영화뿐이겠는가? 널리고 널린 게 또한 허접한 책들이다. 문득 그런 책들만을 읽어제끼다 죽음을 맞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란 생각이 들었다. 낭패다. 한데, 문제는 그런 책들만 읽다 보면 또 그게 그다지 허접한 책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것. 이보다 더 큰 낭패가 있을까? 그런 낭비에서 벗어나는 길은 물론 경이로운 영화들을 보고 경이로운 책들을 읽는 것이다. 정말로 허접하지 않은. 그럼 세상이 좀 달라보인다. 좀 멋있어 보이고 좀 진지해보인다. 눈물난다. 삶은 길지 않다...

07. 02. 12-13.

P.S. 몇 줄 쓰는 동안에 날짜가 바뀌어 이틀걸이가 돼 버렸다. 시간은 화살과 같다. 인생도 삼세번이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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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2-1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화장실에서 비슷한 생각 했는데, 허접한 책들 1+1행사에, 쿠폰에 이벤트에 사두고, 허접한거 아니깐, 빨리 읽어서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막상 진지하고 두번 읽을 책들은 자꾸 뒤로 미뤄지고, 바보가 따로 없구나. 싶었어요. 말대로 저 위의 '영화'를 '책'으로 바꾸어도 꼭 맞는군요. 반성.

로쟈 2007-02-1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서를 살짝 바꾸시면 되겠네요.^^

비공개 2007-02-1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말씀에 저도 200% 공감이네요.. ^^; 인생을 알차게 살긴 참 힘든데 낭비하기는 왜 이리 쉬운지. 정말이지 우리의 삶이 단 한 번뿐이라는 건 비극이죠?

노부후사 2007-02-1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후화는 인생 낭비한 인간들이 자기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영화더군요. 그런데 정성일 씨가 '아줌마'였나요?

로쟈 2007-02-1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아줌마'인지는 칼럼을 읽어보시면 압니다. 술어논리에 의한 것인데, 아줌마는 수다스럽고 잘 삐친다. 정성일은 수다스럽고 잘 삐친다. 고로 정성일은 아줌마다, 대략 그런 논리에서 누군가 정성일씨는 '아줌마'라 평했다는군요...

노부후사 2007-02-1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집에 가다가 서점 들러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moonnight 2007-02-1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저도 요즘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허접한 책들에 길들여지다보니 훌륭하나 읽기 힘든 책들은 자꾸만 뒤로 -_-;;;; 삶은 길지 않다. 뜨끔;;

2007-02-13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1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예, 저도 좀 수다스럽죠?^^ 언젠가 페이퍼로 올려놓은 게 있습니다. 아줌마적 이성과 기하학적 이성에 대해서...
 

일본에서 한국근대문학 번역총서인  '조선근대문학 시리즈'가 출간된다고 한다. 1차분으로 세 권은 이미 나왔고, 전 16권이 2009년말 완간예정이라고. 우리의 경우에도 사실 일본근대문학 작품들이 체계적으로 소개된 것 아니기에 이웃나라의 '뒤늦은' 관심을 그렇게 타박할 필요는 없겠다. 기획자들의 지적대로, 한국어 정본 확정 작업도 다 마무리하지 못한 형국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 참에 우리 근대문학에 대한 텍스트비평 작업도 활발히 진행시키면서, 외국에서의 한국문학 소개현황에 대한 관심도 좀 가질 필요가 있겠다. 가장 가까운 나라의 형편이 이러하므로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안봐도 훤한 것 아닐까. 더불어, 국외의 한국문학 연구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책도 마련했으면 좋겠다. 문학도 그렇지만 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한겨레(07. 02. 13) “한국어 배우는 학생 많은데… 제대로 번역된 소설 없어 나섰어요”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작들을 일본어로 옮기는 체계적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오무라 마쓰오 와세다대 명예교수와 호테이 도시히로 와세다대 교수(국제교양학부)가 기획·편집을 맡은 ‘조선근대문학선집’ 시리즈가 그것이다. 오무라 교수는 중국 연변의 윤동주 묘를 처음으로 확인한 이로, 일본 내 한국문학 연구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호테이 교수는 김윤식 교수의 방대한 저작 목록을 최초로 완벽하게 정리함으로써 국내 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일화로 유명한 이다. 이달 하순 서울대 졸업식에서 <초기 북한 문단 성립 과정에 대한 연구 ­ 김사량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지난 2002년 호테이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조선근대문학선집 시리즈에는 두 사람의 기획자를 포함해 일본 내 한국 현대문학 전공자 대다수가 참여한데다 일본 굴지의 출판사인 헤이본샤를 출판 파트너로 삼음으로써 명실공히 일어판 한국 문학 선집의 결정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5년 11월 이광수의 <무정>(하타노 세츠코 니가타단기대학 교수 옮김)이 첫권으로 나온 데 이어 강경애의 <인간문제>(오무라 마쓰오 옮김)가 지난해 5월에, 그리고 합동 소설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시라가와 유타카 규슈산업대 교수 등 옮김)이 9월에 나왔다. 호테이 교수가 번역을 맡은 채만식의 <태평천하>가 올해 5월에 나올 예정이며, 염상섭의 <삼대>, 이기영의 <고향>, 두 권으로 축약한 홍명희의 <임꺽정>, 그리고 김동인 단편집과 시선집 등을 포함해 모두 16권으로 2009년 말 완간될 예정이다.

“그동안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작품은 주로 단편소설들이었습니다. 그나마 비전공자들이거나 일본어에 서툰 한국인들이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중역도 많았죠. 이광수의 <무정>조차 제대로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희는 장편소설들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일본어판 결정본을 만든다는 각오로 번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도쿄에서 만난 두 기획자의 말에서는 학자로서의 사명감과 아울러 자부심도 넘쳐났다. “꼭 한국문학 전공자는 아니더라도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한국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데 소설 읽기는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그동안은 제대로 된 일본어 텍스트가 많지 않아 애를 먹었지요. 이번 선집 발간은 학교에서 쓸 교재를 저희 스스로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즈음 한국에서 일본 소설들이 이상 열기를 띠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극히 미미하다. 해방 이전 작품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사정을 반영하듯 이번 선집 출간은 번역자들 쪽에서 한 권당 200만엔씩의 제작비를 출판사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성사되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어느 일본 여성이 상당액을 희사해서 우선은 작업에 착수했지만, 16권이 모두 차질 없이 발행되기 위해서는 한국 쪽의 지원이 절실한 형편이다. 두 사람은 이에 따라 다음달께 한국문학번역원에 지원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가 근무하는 와세다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모두 1700명이 넘는데 전임 교수는 달랑 저 한 사람입니다. 2년 임기인 한국인 객원교수가 두 사람 있고, 나머지는 시간강사들이죠. 한국 정부나 기업 쪽에서 교수 충원이나 한국문학과 개설을 위한 지원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이들은 한국 쪽 연구자들과 출판사들이 한국문학의 정본 확정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가령 윤동주의 시집이 그동안 수십 수백 종이 나왔을 텐데 그 가운데 윤동주 자신이 남긴 육필 원고와 일일이 대조를 하고 낸 게 몇 권이나 될지 의심스럽습니다. 윤동주만이 아니죠. 번역을 걱정하기에 앞서 한국어로 된 정본을 확정하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겠습니까.”(도쿄/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2. 12-13.

 

 

 

 

P.S. 말미에 한국문학 '정전' 확정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사실 그간에 우리의 연구 역량에 비해서 관심이 소홀했던 게 아닌가도 싶다. <바로 잡은 무정>(문학동네, 2003)이 나온 게 불과 몇 년전, 또 원전 비평에 근거한 <윤동주 전집>(문학과지성사, 2004)이 나온 게 또 불과 몇년 전이기 때문이다. '조선근대문학 시리즈'가 어떤 텍스트들을 번역대본으로 작업하는지 모르겠지만 '텍스트 확정' 문제마저 외국의 연구자들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연구용이 아닌 보다 대중적인 차원의 정본 확정도 중요하다. 문학과지성사의 한국문학전집 같은 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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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13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 한국문학 전공자로서,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네요. 현실적으로 '우리'가 돈을 대야지 번역이나 국문과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 그렇고,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한국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민족주의적인 감상이라기 보다는, 파워 차이와 약소국이라는 권력관계가 문화관계에도 정확히 반영된다는 것. 다시금 확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 전쟁의 가해자 중 하나인 우리 작가들이 베트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심이 증폭되고 반성되기를 바랍니다.

로쟈 2007-02-1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이 나쁘더라도 당연한 현실이죠. 문학도 국력에 비례하니까요. 지난 연말에 한 학회에 가보니까 (재일교포나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일본어로 쓴 한국문학사는 한권도 없다더군요. 거기에 비하면 러시아에서는 지난 60년대말에 이미 <한국문학사>가 나오고 2004년에 개정판이 나왔었습니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이 맞는 거 같습니다...

기인 2007-02-1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력과 같은 파워 문제가 아니라,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국문학에 대한 관심 또는 윤리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으로 제 생각이 나아간 것이고요 ^^; 일종의 '인간'이라면 그래야 한다, 혹은 '인문학'의 의무 같은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일본의 인문학도가, 조선 식민지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면, 한국문학 전공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너무' 피해가는 것이 '인류' 차원에서 답답하다는 의미입니다.

로쟈 2007-02-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는 모호하며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도 '식민주의'의 연장선으로 보시는 건가요?). 이게 관심을 '가져준다' 같은 시혜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닐 테니까요. 더구나 그게 비단 베트남 문제에 국한되는 게 아니며, 소위 '내부 식민지'로서의 전라도 문제부터 성차화된 식민지로서의 '여성' 등 안 걸리는 게 없는 문제인 듯싶어요...

기인 2007-02-1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 안 걸리는게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을 '가져주는'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언명령에 의해서!)
 

헨리 무어와 함께 20세기 구상조작을 대표한다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의 대규모 전시회가 개최된다고 한다. 나로선 생소한 작가인데, 실상 조각과 관련한 책들 들춰본 게 하도 오래전이니 나의 무지에 핑계가 없는 건 아니다. 관련기사와 함께 몇 작품을 미리 감상해본다.

한국일보(07. 02. 12) 구상조각 거장 마리니, 그가 왔다

전후 세계의 불안과 비극을 표현한 기마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1901~1980)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국내 첫 전시가 덕수궁미술관과 선화랑에서 나란히 시작한다. 마리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헨리 무어와 함께 20세기 구상조각을 대표하는 작가. 두 전시는 조각 뿐 아니라 미술작가로서 그의 출발점이었던 그림도 함께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4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여는 <마리노 마리니-기적을 기다리며> 전은 조각과 회화 105점으로 그의 예술 생애 전반을 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크게 세 가지 주제, 기마상과 포모나, 초상조각으로 분류해 시기별로 전시를 구성했다.

고대 그리스ㆍ로마 작품에서 착안한 마리니의 기마상은 비극적 시대의 표상이다. 1930년대 후반의 초기 기마상에서 보이던 말과 자연의 조화로운 결합은 2차 대전을 지나면서 불안한 긴장감을 띠고 1950, 60년대로 갈수록 격렬하게 요동친다. 말은 난폭하게 몸부림치고 기수는 통제력을 잃은 채 간신히 매달려 있거나 땅으로 처박힌다. 60년대에 들어서면 말과 기수는 형체조차 무너져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그라져 가는 비극의 절정에 이른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거대한, 59년 네덜란드의 헤이그 광장에 설치한 높이 6m의 청동 기마상에는 말굽들 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우리는 건설하며 우리는 파괴한다. 이 세계에는 절망적인 노래만 남아 맴돈다.”



비극적 시대를 구원할 기적을 기다리는 마음은 풍만한 육체의 여성 누드, 포모나 시리즈로 표현됐다. 포모나는 고대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 문화에 등장하는 과일나무와 풍요의 여신이다. 마리니 자신의 발언에 따르면 포모나는 “비극적인 전쟁으로 망가진 행복의 시기를 의미한다.” 둥글게 부풀어오른 배와 커다란 가슴을 지닌 마리니의 포모나에서 풍기는 풍요와 관능은 대지의 치유력을 상징한다.



마리니의 조각은 특히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사진), 화가 샤갈 등 예술가의 초상으로 유명하다. 예술가의 예민한 기질과 내면을 포착한 걸작들이 이번 전시에 나온다. 색채에 매혹된 추상화가로서 마리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강렬한 원색의 그림도 볼 수 있다.

22일 시작하는 선화랑의 마리노 마리니 전은 40여 점을 선보인다. 조각도 있지만, 그가 조각의 거장이 되기까지 작품의 바탕이 되었던 회화와 드로잉, 판화를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덕수궁미술관 전시는 4월 22일까지, 선화랑 전시는 3월 21일까지 한다.(오미환기자)

07. 02. 12.

P.S. 마리니의 작품들을 검색해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조각보다 더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원색의 회화 작품들이다. 그리고 기수가 말안장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조각상이 아니라 목을 아주 길게 뺀 말 조각상. 마음에 드는 몇 작품의 이미지를 더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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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가 무료해서 잠시 아침신문들을 훑어보니 외신면 톱기사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관한 것이다. 국제회의석상에서 작심하고 미국에 한방 먹였다는 것이고, 다시금 신냉전체제로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테러시대에서 신냉전시대로?). 미국 단일패권주의에 그간에 환멸스러웠다면 미-러 양극체제는 그보다 나을까. 이런 거 분석/전망해주는 책도 조만간 나왔으면 싶다. 기사는 참고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7. 02. 12) 푸틴 ‘미 일극체제 더는 못 참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 작심한듯, 탈냉전 이후 ‘미국의 일극적 세계질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신냉전 선언’을 방불케 하는 고강도의 대미 비판연설이다. 다음날 연설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냉전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과 러시아, 이란 정상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정책회의에서 “국제회의이기에 논쟁적 발언을 하겠다”고 말문을 연 뒤 32분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을 조목조목 비난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단상 앞줄에 앉은 소련 연구자 출신의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서방 쪽 참석자들은 매우 놀라는 모습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지배하는 단극체제는 권력과 힘, 의사결정의 중심이 하나이고, 지배자와 주권도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내부로부터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의 군사행동을 두고 “일국적”, “불법적”이란 말을 쓰면서 “전세계 전쟁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느 나라도 국제법 뒤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없으므로 어느 나라도 더는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며 “이로 말미암아 군비경쟁이 촉진되고 핵무기를 가지려는 생각이 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 확장은 동맹 현대화나 유럽 안보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상호 신뢰를 잠식하는 심각한 요인”이라고 말해 러시아의 불만을 드러냈다. 또 미국은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가르치려 하면서 스스로는 민주주의를 배우려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공박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이 반대하지만 이란에 무기 판매를 계속할 것이며, 세르비아가 반대하는 코소보의 독립을 저지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은 ‘옛소련의 영광 재현’을 목표로 삼은 자신의 정책이 완결단계에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로 보인다. 또 그가 후견인이 될 ‘포스트 푸틴 러시아’가 녹록지 않은 상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어 연설에 나선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러시아는 신뢰할 만하고 예측 가능한 상대라는 느낌을 받아왔다. 서로 솔직하게 대화할 필요가 있고, 문제를 카펫 밑으로 쓸어넣을 필요는 없다”며 푸틴 대통령의 대립적 정세관을 넌지시 비판했다.

11일 연설에 나선 게이츠 장관은 “냉전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에너지 자원을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 쓰려는 시도 등, 러시아의 일부 정책들은 국제사회 안정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반박했다.(류재훈 기자) 

경향신문(07. 02. 12) 푸틴 “美 MD가 군비경쟁 조장” 직격탄

탈 냉전 이후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지켜오던 군사력 균형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최근 노후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저격하는 실험을 통해 ‘스타워스’ 우려를 상기시킨 데 이어 에너지 수출로 경화를 여퉈둔 ‘푸틴의 러시아’가 미국 주도 단극화 세계질서에 공개 도전장을 냈다. 냉전식 군비경쟁시대가 재도래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개막한 43차 국제안보회의 연설에서 미국의 군사전략을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것이라면서 미국이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미국의 대 러시아 견제의 증거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진과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거론하면서 “러시아 국경 인근에 군사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왜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미국의 MD 시스템이 냉전시절 상호확증파괴의 공포에서 이뤄진 냉전시절 군사력의 균형을 완벽하게 뒤집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폴 M’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신형 탄도미사일은 미국의 MD에 맞서기 위한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라크전에서처럼 미국의 초대군사력 행사가 또 다른 분쟁을 유발하는 불안정과 위험만 증폭시킬 뿐이라며 미국의 아픈 부분에 소금을 뿌렸다. 구소련 국가들의 선거에 감시단을 파견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한 나라의 외교적 이해를 보장하기 위한 ‘야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은 또 러시아내 반정부 단체를 은밀히 지원, 체제붕괴를 노리고 있다면서 집권 7년 동안 진행된 미국의 교묘한 대러 포위전략을 공개 비난했다. “베를린 장벽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새로운 분할 선과 규칙들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도 미국의 MD시스템 구축을 공개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담 뒤 회견에서 “체코와 폴란드의 MD시설이 북한과 이란 미사일 위협 때문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당장 학생들이 보는 지구본을 보라”고 지적했다. 이란은 고작 최대사거니 1700㎞의 중거리 미사일을 갖고 있을 뿐인데 이를 빌미로 동유럽에 MD를 확장하는 것은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체코·폴란드와 북한의 지리적인 위치를 지적하기도 했다. 또 “누군가 러시아와 다시 군비경쟁을 벌이자고 해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바노프 장관은 새로운 세대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핵잠수함, 항공모함,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 등이 포함된 야심찬 군비 현대화 계획을 공표했다. 구소련 군대의 전투대응력을 능가하는 것을 목표로 향후 8년간 1890억달러를 투입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바노프 장관은 최근 러시아 두마(하원) 연설에서 최근 매년 4기씩만 늘리던 탄도미사일을 올해는 17기 확보하고 34기의 신형 토폴 M 미사일도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까지 토폴 M 미사일을 추가로 50기 배치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러시아의 군사예산은 올해 310억달러로 2001년에 비해 4배가 늘었다.

물론 러시아가 미국과 본격 군비경쟁에 나서겠다는 선언으로 보기는 힘들다. 올해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쟁비용을 포함해 6246억달러로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다. 하지만 최소한 미국의 MD 확충만큼은 더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군사전문지 에어포스타임스 10일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북한 미사일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올해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에 3번째 MD 발사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내년 말까지 포트 그릴리와 캘리포니아 반데버그 공군기지에 모두 30기의 MD용 요격미사일을 배치한다. 미국은 또 지난 7일 체코 정부와 MD용 레이더기지 건설에 합의하는 한편 폴란드 군기지에 10기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키로 했다.

국제안보회의에 참석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과 유럽 지도자들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졌다고 외신은 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든 존드로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실망했다”면서 “그의 지적은 잘못된 것”이라고 응수했다.(워싱턴|김진호특파원)

07.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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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12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러한 변화가. 안 그래도 체코 갔을 때, 체코신문(물론 영문;;;; )보니까 1면이 미국 레이다 기지를 체코에 건설하는 것에 대한 반대여서, '흡족'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러시아 친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면서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 변화이기는 하군요. MD에 대해서 러시아가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미국에게 받는 것이 꽤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세계 정세변화에 따라서 안티-미국을 결집시키려는 행동일런지, 그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된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것인지 흥미롭습니다. 그래도 다시 '양극'이라 하기에는 많이 힘든 것은 사실일터인데, 다윗 수십명이 돌 던지면 골리앗도 난감하기는 하겠지요;; 퍼갑니다. ^^

나비80 2007-02-1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 수십명이 돌을 던지는 것 보다 자기 편 몇이 돌아서는 게 더 큰 타격일텐데 아직 그런 징후까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블레어나 메르켈, 하워드 같은 총리들이 나서서 힘을 실은 연설이었다면 파장이 더 컸겠지요.
그리고 러시아의 자신감 운운하는데 정말 그만한 수준인지도 의문이고요. 중국 쪽과 모종의 의사교환이 있었을 것 같은 추정이 들기도 합니다. 미국의 단일패권은 눈꼴십니다. 그러나 얕은 생각이지만 현실적으로 수년 내에 주목할만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2-1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사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다 계산된 외교적 언사일 테고, 한번쯤 과시/경고하는 것이죠. '나 물로 보지 마!'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