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근대문학 번역총서인  '조선근대문학 시리즈'가 출간된다고 한다. 1차분으로 세 권은 이미 나왔고, 전 16권이 2009년말 완간예정이라고. 우리의 경우에도 사실 일본근대문학 작품들이 체계적으로 소개된 것 아니기에 이웃나라의 '뒤늦은' 관심을 그렇게 타박할 필요는 없겠다. 기획자들의 지적대로, 한국어 정본 확정 작업도 다 마무리하지 못한 형국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 참에 우리 근대문학에 대한 텍스트비평 작업도 활발히 진행시키면서, 외국에서의 한국문학 소개현황에 대한 관심도 좀 가질 필요가 있겠다. 가장 가까운 나라의 형편이 이러하므로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안봐도 훤한 것 아닐까. 더불어, 국외의 한국문학 연구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책도 마련했으면 좋겠다. 문학도 그렇지만 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한겨레(07. 02. 13) “한국어 배우는 학생 많은데… 제대로 번역된 소설 없어 나섰어요”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작들을 일본어로 옮기는 체계적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오무라 마쓰오 와세다대 명예교수와 호테이 도시히로 와세다대 교수(국제교양학부)가 기획·편집을 맡은 ‘조선근대문학선집’ 시리즈가 그것이다. 오무라 교수는 중국 연변의 윤동주 묘를 처음으로 확인한 이로, 일본 내 한국문학 연구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호테이 교수는 김윤식 교수의 방대한 저작 목록을 최초로 완벽하게 정리함으로써 국내 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일화로 유명한 이다. 이달 하순 서울대 졸업식에서 <초기 북한 문단 성립 과정에 대한 연구 ­ 김사량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지난 2002년 호테이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조선근대문학선집 시리즈에는 두 사람의 기획자를 포함해 일본 내 한국 현대문학 전공자 대다수가 참여한데다 일본 굴지의 출판사인 헤이본샤를 출판 파트너로 삼음으로써 명실공히 일어판 한국 문학 선집의 결정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5년 11월 이광수의 <무정>(하타노 세츠코 니가타단기대학 교수 옮김)이 첫권으로 나온 데 이어 강경애의 <인간문제>(오무라 마쓰오 옮김)가 지난해 5월에, 그리고 합동 소설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시라가와 유타카 규슈산업대 교수 등 옮김)이 9월에 나왔다. 호테이 교수가 번역을 맡은 채만식의 <태평천하>가 올해 5월에 나올 예정이며, 염상섭의 <삼대>, 이기영의 <고향>, 두 권으로 축약한 홍명희의 <임꺽정>, 그리고 김동인 단편집과 시선집 등을 포함해 모두 16권으로 2009년 말 완간될 예정이다.

“그동안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작품은 주로 단편소설들이었습니다. 그나마 비전공자들이거나 일본어에 서툰 한국인들이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중역도 많았죠. 이광수의 <무정>조차 제대로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희는 장편소설들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일본어판 결정본을 만든다는 각오로 번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도쿄에서 만난 두 기획자의 말에서는 학자로서의 사명감과 아울러 자부심도 넘쳐났다. “꼭 한국문학 전공자는 아니더라도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한국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데 소설 읽기는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그동안은 제대로 된 일본어 텍스트가 많지 않아 애를 먹었지요. 이번 선집 발간은 학교에서 쓸 교재를 저희 스스로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즈음 한국에서 일본 소설들이 이상 열기를 띠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극히 미미하다. 해방 이전 작품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사정을 반영하듯 이번 선집 출간은 번역자들 쪽에서 한 권당 200만엔씩의 제작비를 출판사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성사되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어느 일본 여성이 상당액을 희사해서 우선은 작업에 착수했지만, 16권이 모두 차질 없이 발행되기 위해서는 한국 쪽의 지원이 절실한 형편이다. 두 사람은 이에 따라 다음달께 한국문학번역원에 지원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가 근무하는 와세다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모두 1700명이 넘는데 전임 교수는 달랑 저 한 사람입니다. 2년 임기인 한국인 객원교수가 두 사람 있고, 나머지는 시간강사들이죠. 한국 정부나 기업 쪽에서 교수 충원이나 한국문학과 개설을 위한 지원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이들은 한국 쪽 연구자들과 출판사들이 한국문학의 정본 확정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가령 윤동주의 시집이 그동안 수십 수백 종이 나왔을 텐데 그 가운데 윤동주 자신이 남긴 육필 원고와 일일이 대조를 하고 낸 게 몇 권이나 될지 의심스럽습니다. 윤동주만이 아니죠. 번역을 걱정하기에 앞서 한국어로 된 정본을 확정하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겠습니까.”(도쿄/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2. 12-13.

 

 

 

 

P.S. 말미에 한국문학 '정전' 확정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사실 그간에 우리의 연구 역량에 비해서 관심이 소홀했던 게 아닌가도 싶다. <바로 잡은 무정>(문학동네, 2003)이 나온 게 불과 몇 년전, 또 원전 비평에 근거한 <윤동주 전집>(문학과지성사, 2004)이 나온 게 또 불과 몇년 전이기 때문이다. '조선근대문학 시리즈'가 어떤 텍스트들을 번역대본으로 작업하는지 모르겠지만 '텍스트 확정' 문제마저 외국의 연구자들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연구용이 아닌 보다 대중적인 차원의 정본 확정도 중요하다. 문학과지성사의 한국문학전집 같은 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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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13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 한국문학 전공자로서,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네요. 현실적으로 '우리'가 돈을 대야지 번역이나 국문과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 그렇고,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한국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민족주의적인 감상이라기 보다는, 파워 차이와 약소국이라는 권력관계가 문화관계에도 정확히 반영된다는 것. 다시금 확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 전쟁의 가해자 중 하나인 우리 작가들이 베트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심이 증폭되고 반성되기를 바랍니다.

로쟈 2007-02-1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이 나쁘더라도 당연한 현실이죠. 문학도 국력에 비례하니까요. 지난 연말에 한 학회에 가보니까 (재일교포나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일본어로 쓴 한국문학사는 한권도 없다더군요. 거기에 비하면 러시아에서는 지난 60년대말에 이미 <한국문학사>가 나오고 2004년에 개정판이 나왔었습니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이 맞는 거 같습니다...

기인 2007-02-1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력과 같은 파워 문제가 아니라,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국문학에 대한 관심 또는 윤리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으로 제 생각이 나아간 것이고요 ^^; 일종의 '인간'이라면 그래야 한다, 혹은 '인문학'의 의무 같은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일본의 인문학도가, 조선 식민지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면, 한국문학 전공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너무' 피해가는 것이 '인류' 차원에서 답답하다는 의미입니다.

로쟈 2007-02-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는 모호하며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도 '식민주의'의 연장선으로 보시는 건가요?). 이게 관심을 '가져준다' 같은 시혜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닐 테니까요. 더구나 그게 비단 베트남 문제에 국한되는 게 아니며, 소위 '내부 식민지'로서의 전라도 문제부터 성차화된 식민지로서의 '여성' 등 안 걸리는 게 없는 문제인 듯싶어요...

기인 2007-02-1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 안 걸리는게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을 '가져주는'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언명령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