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중순에 모스크바 통신에 올렸던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수잔 벅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몇몇 대목을 읽고 정리한 것이다. 벤야민에 대해서는 이후에 몇 번 더 다룬 적이 있다. 물론 아직도 정리해야 할 대목들은 차고 넘치지만 말이다.

요즘 서울에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모양이지만(*2005년 1월의 얘기이다), 모스크바의 날씨는 영상 3-4도이다. 기온이 좀 떨어져야 영하 1-2도(어제오늘은 제법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이지만). 이래가지고서야 모스크바의 체면이 좀 무색하다(집에 전화를 걸어 그런 얘기를 하면, “거기 모스크바 맞아?”란 소리를 듣는다). 방마다 창문 아래벽에 설치돼 있는 스티머에서 스팀이 ‘빵빵하게’ 나오기 때문에 방안에서는 반팔, 반바지가 기본 복장이고 이불을 안 덮고도 잘 만하다(그젯밤에는 창문을 좀 열어놓고 잘까도 했다). 지난봄 모스크바에 올 때 들고 온 짐의 대부분이 겨울옷들이었지만, 그 90%는 한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도로 들고가야 할 판이다. 이 또한 관념과 현실 간의 차이이리라. ‘모스크바’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실제 모스크바의 현실 간의 차이(“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가 없다!”).

 

 

 



우리가 관념의 지배, 혹은 판타지를 얼마간 걷어내는 길은 현실과 직접 맞부닥치는 것, 직접 가보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1892-1940) 역시 그랬다. “1926년 말에서 1927년 초까지 벤야민은 모스크바로 여행을 떠났다. 러시아어를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벤야민은 러시아 혁명의 현존을 눈으로 ‘보려’ 했다.”(<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동네, 2004, 48쪽.) 수잔 벅 모스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파사젠베르크)를 재구성하면서, 그의 이 여행이 모종의 구조/구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한편,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와 함께 읽어볼 만한 것은 한국작가 이태준의 <소련기행>이다. 나는 책을 사놓고 미처 읽지 못했는데, 돌아가면 한번 읽어볼 참이다.)

“어떤 장소를 알려면 가능한 한 많은 차원에서 경험해보아야 한다. 어떤 장소를 이해하려면 동서남북에서 다가가 보아야 하며, 동서남북으로 떠나가 보야야 한다.”(<모스크바 일기>)라는 벤야민의 말을 그녀는 그대로 그의 프로젝트에 적용하는바, “서쪽의 파리는 정치적-혁명적 의미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기원이며, 동쪽의 모스크바는 동일한 의미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종말이다. 남쪽의 나폴리는 지중해의 기원으로서, 신화로 둘러싸인 서구 문명의 어린시절이며, 북쪽의 베를린은 신화로 둘러싸인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이다.”(45쪽) 그리고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개념상 두 축의 교점에 위치한다.”

물론 벤야민이 방문했을 때의 모스크바는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기의 러시아였으므로 “시골과 도시가 숨바꼭질하는 이행기의 도시”였다(신경제정책, 즉 NEP가 한시적으로 도입됐던 건 사회주의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러시아에 아직 본격적인 사회주의의 ‘물적 토대’가 마련되지는 않았었기 때문이다. 해서 혁명정부는 한시적으로 부르주아 경제체제를 허용하는바, 그것이 NEP였다. 이 NEP 시기에 대한 신랄한 풍자극이 마야코프스키의 <빈대>(1929)이다. 이 작품 역시 메이에르홀드가 연출했고, 음악은 젊은 쇼스타코비치가 담당했다). “모스크바의 이행성은 ‘모든 생활, 모든 나날, 모든 생각’을 실험대에 올린다.”(49쪽)

그럴 만하지 않은가? 인류 역사상 ‘사회주의 혁명’에 처음 성공한 만큼, ‘사회주의로의 이행’ 또한 ‘첫경험’이었으니까(이런 걸 ‘한 졸렬한 시도’였다고 비판하는 것은 비판으로서 심히 졸렬하다). 어쨌든 “두달 동안(12월 6일-2월 1일) 벤야민은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으로 모스크바의 호텔에 머물며 소비에트의 문화생활을 관찰했다.”(52쪽)

Cover: Moscow Diary

지난번에 “벤야민과 관련해서는 그의 <모스크바 일기>(1926-7)를 구해보고 싶지만, 러시아어로는 번역돼 있는 것 같지 않다(영역은 돼 있을까?).”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의외의 우리말 번역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고(<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각주를 보니까 영역본 'Moscow Diary'는 1987년에 나왔다), 어제 인터넷에 부분적으로 올라온 걸 대충 읽어볼 수 있었다(역자에 의하면 곧 출간예정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이미 출간됐다. 나는 이 페이퍼가 계기가 되어 약간의 교정일을 거들 수 있었다).

“벤야민은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으로 모스크바의 호텔에 머물며 소비에트의 문화생활을 관찰했다.”에 붙은 미주를 보면, “그는 연극, 영화 – ‘평균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다’ – 박물관, 문학논쟁 등을 참관했으며, 수집벽에 이끌려 매우 자주 쇼핑을 다녔다.”(482쪽)고 돼 있는데(아마도 내가 서점들을 돌아다니는 것만큼), 번역된 일기를 읽어보니까 “평균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은 연극의 목록에는 메이에르홀드가 연출한 <검찰관>(1926년) 초연도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이 메이에르홀드 버전의 <검찰관> 초연은 러시아의 연극공연사에서 기념비적인 공연에 속한다(‘초연’이란 건 ‘첫회’ 공연이 아니라 ‘첫 공연된 시즌 전체’를 뜻한다. 그러니까 메이에르홀드의 <검찰관> ‘초연’은 아마도 1926년 가을부터 1927년 봄까지를 카바한다). 1920년대에 <검찰관>은 메이에르홀드 버전(1926년)과 테렌치예프 버전(1927년)으로 새롭게 공연되었는데(고골이 이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린 건 1836년이다). 특히, 메이에르홀드의 공연은 러시아 연극사상 가장 훌륭한 공연으로 평가되고 있으며(J. L. 스타이안, <표현주의 연극과 서사극>, 현암사, 90쪽), 다닐 하름스가 속한 오베리우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하름스와 그의 동료들은 '오베리우 선언서'(1927)에서 테렌치예프의 공연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사실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여러 보고에 따르면, 메이어르홀드가 연출한 <검찰관>의 연기와 무대장치는 모두 파격적이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마치 희극적인 오페라에서와 같이 호화로운 의상을 입었다는 점이다(자세한 것은 스타이안, 같은 책, 90-2쪽 참조). 이런 유니크한 공연까지를 포함해서 “평균적으로 좋지 않(았)다”면, 공연에 대한 벤야민의 안목이나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나도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가 러시아어 대사들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므로 공연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나도 사정이 더 나은 건 아니다. ‘관광객’이 보기에 가장 좋은 공연은 발레와 서커스이다).

참고로, 모스크바에서 2004년의 최고 공연으로 지목되는 건 고골의 <외투>인데(소설을 각색해서 무대에 올린 것인데, 주인공 아카키 역을 유명한 여배우가 분장해서 연기한다), 12월에 보겠다는 당초 바람과는 달리 나는 그 공연을 볼 수 없었다. 표가 워낙에 빨리 매진된 탓에. 아무래도 ‘초연’ 관람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다시 벤야민으로 돌아오면, 모스크바에서 그가 한 일이란 주로 연극/영화 관람, 박물관(그도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방문했다) 구경과 문학논쟁 참관, 그리고 쇼핑이었다. 물론 가장 큰 비중은 쇼핑에 두어졌을 법하다. “그는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나날을 러시아 인형을 수집하기 위해 쇼핑을 하면서 보냈다.”(54쪽, 여기서 ‘러시아 인형’이란 건 ‘마트료슈카’를 말하는데, 인형 속에 같은 인형이 10개 정도씩 들어있는 대표적인 러시아 기념품이다.)

하지만, 그의 관찰과 쇼핑의 이면에 놓여 있던 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었다(표면적으론 마르틴 부버가 <피조물>이란 잡지에 싣고자 청탁한 글을 작성하기 위한 모양이었던 듯하다. ‘모스크바’란 제목. 한편 벤야민은 <소비에트 백과사전>의 ‘괴테’ 항목을 모스크바 체류 이전부터 준비하여 집필하지만, 1928년 가을에 완성된 그 글은 당시의 교육부장관 루나차르스키에 의해 ‘부적절하다’고 거부당한다. “최종적으로 <소비에트 백과사전>에 실린 괴테편은 벤야민이 처음 쓴 원고의 12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483쪽, 주44).

무엇이 그의 ‘진정한’ 목적이었나? “벤야민은 아샤 라시스에, 그리고 공산당에 투신할 생각으로 러시아에 왔다.”(52쪽) 아샤 라시스는 누구인가? 그녀는 1924년 벤야민이 <파사젠베르크>의 기원을 마련했던 아주 중요한 시기에 영감을 주었던 ‘뮤즈’였다(수잔 벅 모스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기원’이 1924년 이탈리아에서 마련됐다고 본다). “그녀는 라트비아 출신의 볼셰비키였고, 혁명 이후 소비에트 문화계에서 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두마 혁명 이후에는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걸출한 공산주의자’였고, ‘내가 만난 가장 걸출한 여자’였다.”(25쪽) 그녀의 이름이 바로 아샤 라시스(*라치스)였으며, “(그해) 6월부터 벤야민이 카프리에서 숄렘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호한 암시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숄렘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벤야민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26쪽)

아샤 라시스가 회고하는 벤야민과의 첫만남은 이렇다. 그녀가 아몬드를 사려고 가게에 들렀는데, 아몬드를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난처해하고 있을 때 벤야민이 통역을 해주었다. 다음번에 벤야민은 광장에서 그녀에게 다가와 부르주아의 예의범절을 깍듯하게 지키면서 자기소개를 하고는 짐을 들어주겠다고 자청했다: “작은 스포트라이트처럼 빛을 반사하는 안경알, 뻣뻣한 검은 머리, 좁은 코, 서툰 손놀림 - 그는 짐꾸러미를 놓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서, 진짜 지식인. 유복한 배경을 가진 지식인. 그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고, 작별인사를 하면서 찾아봬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다음날 찾아왔다.(…) 그는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말했다. ‘두 주 동안 당신을 지켜보았습니다.’”(26쪽) 러시아는 그 아샤의 조국이었다.

하지만, “여행중의 일기가 증거하는 것처럼 두 가지 기대는 모두 좌절되었다.” 물론 벤야민에겐 (나중에 이혼하게 되는) 아내 도라가 있었고(여덟 살난 아들과 함께), 그의 모스크바 체류 기간에 라시스는 적군(赤軍) 장교와 연애중이었다(그녀는 나중에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베른하르트 라이히와 결혼한다). 아마도 아샤 라시스와 도라 벤야민이 벤야민 인생의 두 여자였던 듯한데,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36쪽에는 두 여자의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으며, 1928년 베를린에서 동시에 출간한 그의 책 <일방통행로>와 <독일 비극의 기원>은 각각 이 두 여자에게 바쳐졌다(“모든 범죄의 이면에는 여자가 있다”는 속설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모든 책의 이면에는 여자가 있다!”).

 

 

 



사실, 친구인 게르숌 숄렘과 달리 (유태인이었던) 벤야민이 팔레스타인행을 포기한 데에는(그는 숄렘의 권유로 팔레스타인행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히브리어를 배우기까지 했다) 라시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1924년 카프리에서 벤야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똑바른 정신으로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모스크바로 가야 합니다.”(38쪽) 팔레스타인행과 관련하여 벤야민은 라시스와 ‘날카로운 언쟁’을 나누지만, 결국 그는 그녀의 충고에 따라 모스크바로 가게 되며, 그것이 1926년 겨울의 일인 것이다(요즘은 어떤 정신의 사람들이 모스크바에 오는가?).



이에 대한 수잔 벅 모스의 촌평: “연정과 정치가 한데 묶여 깨달음을 줄 때 얼마나 창조성이 생기는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일과 사랑이 삶의 분리된 국면이 아니라 하나로 강렬히 융합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들(*라시스와 벤야민) 관계의 결정적 중요성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39쪽) 그러니 그대, 프로젝트를 꿈꾸는가, 먼저 사랑에 빠질 일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벤야민은 아샤 라시스에, 그리고 공산당에 투신할 생각으로 러시아에 왔다.”(52쪽) 하지만, 상황은 벤야민의 편이 아니었다. “벤야민의 (모스크바) 체류기간에 라시스는 (라이히의 아파트로 옮겨갈 때까지) 요양소에서 ‘신경쇠약’을 치료하고 있었으며, 주간에는 외출하여 벤야민을 만날 수 있었지만 둘만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세 사람 – 라시스, 라이히, 벤야민 –은 누구와도 일부일처 관계가 아니었다. 벤야민의 간결한 설명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일기를 읽어보면 벤야민이 당시의 상황에서 겪었던 감정적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 벤야민은 체류 초기에 라시스에게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 소극적이 되었고 때로는 라시스보다도 소극적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편안하지 못했다. 말다툼은 격렬했으며, 애정표현은 조심스러웠다. 벤야민은 논문으로 감정을 전했고, 라시스는 정치적 의견을 표함으로써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했다.”(53쪽)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읽는 독자는 (그 당시 라시스가 느꼈을) 답답함을 느낀다. 그는 왜 사랑에도 정치에도 투신하지 못하는가? 그는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나날을 러시아 인형을 수집하기 위해 쇼핑을 하면서 보냈다. 라시스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 전의 모든 만남이 그랬듯이 불확실한 것이었다. 일기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그녀는 걸어가면서 돌아보는 것 같았는데, 잠시 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안고 어두워지는 거리를 지나 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눈물을 흘렸다.’”(53-4쪽, 강조는 나의 것)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는 그렇게 끝나는 모양이다. 거기에 붙이고 있는 수잔 벅 모스의 촌평, “그의 무능은 유치했을까 아니면 현명했을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현명함’이란 ‘살아남은 유치함’의 다른 이름이니까(때문에 ‘현명함’은 언제나 사후에 소급 적용된다. ‘현재의 현명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벤야민의 무능이란 사랑에도 정치에도 자신의 모든 걸 걸고 투신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모스크바의 이별 장면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무능을 담보로 하여 벤야민이 챙긴 것은 아마도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을 논문 자료들과 쇼핑한 물건들일 것이다. 벤야민의 그런 모습에 대해서는 라시스나 수잔 벅 모스가 답답해 하는 만큼 우리도 답답하다. 하지만, 벤야민의 비밀은 그 ‘무능(=답답함)’에 있는 듯하다. 그걸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함’,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함’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말이다(“정신 좀 차려라, 벤야민!”).

<파사젠베르크>의 부제는 ‘변증법적 동화’이며, 흥미롭게도 벤야민에게서 이 동화의 모델은 언제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 그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도시에 대한 초현주의자들의 태도였는바, “벤야민의 회상에 따르면 <파사젠베르크>의 구상은 파리 아케이드가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루이 아라공의 초현실주의 소설 <파리의 농부>에서 영감을 받았다.”(55쪽) 이후에 그는 <파사젠베르크>를 구성하게 될 최초의 메모들을 작성해가는데, “이들 목록은 도시 현상에 매혹됐던 초현실주의자들의 태도를 암시한다. 초현실주의자는 도시 현상(urban phenomena)’을 객관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동시에 꿈으로 경험했다.”(이에 영향을 받은 벤야민은 1927년 초현실주의에 대한 논문을 쓴다.)



그리고, “초현실주의가 현실을 꿈으로 인식했다면, <파사젠베르크>는 독자를 꿈에서 깨우기 위해 역사를 환기한다(*독자를 깨우자면, 독자는 자고 있어야 한다. 혹은 아이들 버전으로 말하자면, “내가 깨워줄 테니까 자고 있어, 알았지?”). 초기 단계였던 당시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제목이 ‘변증법적 동화’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벤야민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준다.”(56쪽) 다시 한번 들려준다는 건 이전에 벤야민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 얘기를 이전에 두 번 더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독일비극의 기원> 서문에서였는바, 그는 이 서문을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잠자는 미녀가 나오는 동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고 싶다. 그녀는 가시덤불 속에서 잠을 잤고,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깨어났다. 그러나 행운의 왕자님의 키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를 깨운 것은 주방장이었다. 주방장이 어린 요리사의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궁전 전체에 울려퍼졌다. 오랜 세월 막혀 있던 에너지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아름다운 아이가 가시울타리 뒤에서 자고 있다. 한껏 현란한 지식으로 장식한 행운의 왕자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 결혼의 키스를 하면 아이가 왕자에게 달려들 테니까. 작가가 아이를 깨우는 것이 훨씬 낫다. 작가가 주방장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따귀를 때릴 때가 한참이나 지나갔다. 따귀의 날카로운 울림은 지식의 방들에 울려퍼질 것이다. 그러면, ‘고물’ 물레에 손가락을 찔렸던 이 가련한 진리도 깨어날 것이다. 이 진리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물레에 걸린 채 교수의 가운으로 짜여 들어갈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40쪽)



이에 대한 수잔 벅 모스의 촌평: “학계는 ‘고물’이 되었다. 작가 벤야민은 자기가 오랫동안 잠들었던 형이상학의 진리를 깨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진리는 교수복을 입고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었다. 좀더 적당한 옷을 쇼핑몰에서 찾은 것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일까?”(벤야민 자신도 <일방통행로>에 대한 에른스트 블로흐의 서평, “이곳에 철학이 개점했다. 쇼윈도에는 형이상학의 봄 신상품이 진열된다.”에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아무튼 여기서 ‘진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이며, 벤야민(=작가)는 (왕자는 아니더라도) 이 미녀(=진리)를 깨우는 ‘주방장’이고자 한다(요즘 버전으론 ‘슈렉’). 나는 동화의 이러한 ‘비틀기’가 벤야민 자신의 독창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흥미로운 건 이 이야기에서 대별되고 있는, ‘깨우기’의 두 가지 방식이다. 첫번째는, 전통적인 방식인바, ‘왕자의 키스’. 이건 직접적이며 무매개적인 방식이다(슈렉은 입냄새로 깨우던가?). 그리고 두번째는 ‘주방장의 따귀’. 어린 요리사를 따귀 때리는 소리에 공주가 깨어났다고 하니까. 이건 간접적이며 매개적인 방식이다. 벤야민이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왕자의 키스’가 아니라 ‘주방장의 따귀’이다.

‘따귀 때리기’가 얼핏 강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식이고 매개적인 방식이며, 직접적인/무매개적인 방식으로 진리/미녀를 깨우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가림막이다. 동일한 결과를 산출하지만(혹은 그럴 걸로 기대되지만), 진정한 액션이 아니라 이른바 유사-액션인 것이다. 가령, 모스크바 체류 초기에 “벤야민은 라시스에게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따귀’를 때린 것. 하지만, 그게 전부이며, 그는 결정적으로 ‘키스’를 하지 않았다.

그는 따귀를 때린 것 정도로 모든 결과가 산출되기를 기대했지만, 라시스(=공주)는 깨어나지 않았다(아마도 기지개 정도를 켜다 말았으리라). “그러나 곧 소극적이 되었고 때로는 라시스보다도 소극적이었다.” 따라서, “그는 왜 사랑에도 정치에도 투신하지 못하는가?”란 물음을 이렇게 비틀어볼 수 있다(정치에서도 그는 ‘재야 좌익’ 정도를 자신의 몫으로 생각한다). “그는 왜 사랑에서도 정치에서도 ‘키스’하지 못하는가?”(왜 엉뚱한 아이의 따귀나 걷어붙이는가? 무슨 프로젝트 ‘준비’만으로 생애를 다 보내는가?)

그리고 또 한번. 1908년, 16세의 벤야민은 학생잡지 <데어 앙팡(der Anfang)>의 재판에서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잠자는 미녀다. 왕자가 자기를 깨우러 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자고 있다. 젊은이가 깨어나기 위해서, 젊은이가 자기를 둘러싼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것을 위해서 우리 잡지는 힘을 보태기를 원한다.”(484쪽, 주58)

여기서도 ‘젊은이(=미녀)’를 깨우러 오는 것은 ‘왕자’인데, 문맥상 ‘우리(=우리 잡지)’는 ‘왕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젊은이가 깨어나기 위해서 힘을 보태기를 원한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란 여기서도 ‘따귀’나 때리는 것이다(창작에 비해서 2차적인 비평 자체가 이미 ‘따귀 때리기’일까? 1930년 파리 체류중에 솔렘에게 보낸 편지에서 벤야민은 자신의 목표가 “(현대) 독일 문학 최고의 비평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59쪽)이라고 밝혔다. 더 물고 늘어지자면, 그는 여기서도 ‘최고의 비평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비평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최고의 비평가라고 평가/인정해줄 ‘왕자’를 기다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

요컨대, 벤야민에게서 일생에 걸쳐 반복되는 ‘모티브’(혹은 ‘반복강박’)는 '잠자고 있다-깨워야 한다'이며, 그 깨우는 방식은 독특하게도 간접적/매개적인 것이었다(그에게 ‘역사’는 ‘역사의 천사’였다). 그에게 ‘변증법’은 무엇보다도 잠/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의미했는바, 애초에 ‘변증법적 동화’로 구상되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 자체가 “상품 환등상이라는 집단 꿈에서 ‘깨어남’과 관련하여” “<잠자는 미녀> 이야기의 마르크스적 다시 쓰기이다.”(349쪽)

그러한 다시 쓰기의 전제조건은 ‘잠자고 있기’이다. “벤야민의 목표는 ‘초현실주의의 유산’ 속에서 깨어남의 충격과 기억하는 훈련을 연결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역사적 대상물을 동력화(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지난 세기의 키치를 ‘깨우는’ 자명종 시계를 만든다 –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간지(奸智)와 함께 작동한다.”(351쪽) 들뢰즈의 상용구를 동원하자면, 벤야민의 꿈은 ‘자명종-되기’였던 것이다(<모스크바 일기>에서 그는 모스크바의 ‘너무 많은’ 시계점들에 대한 관찰을 기록하고 있다. 왜 너무 많을까? 유독 시계점들에 주목했기 때문 아닐까?).



그런 벤야민에게, 혹은 그의 프로그램에 강력한 도전장을 던진 것이 히틀러의 나치즘이었다. “독일이여 깨어나라!”가 나치의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라디오라는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벤야민의 작업과는 상반되는 정치문화를 배양했다. 파시즘은 현실을 무대에 올리는 아방가르드적 실천을 역전시켜 정치적 스펙터클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 자체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현실’ 자체를 연극으로 만들었다(*이런 게 ‘예술의 정치화’에 대응하는 ‘정치의 예술화’이다). 게다가 이러한 좌파문화운동의 전체주의적 역전은 좌파가 해내지 못했던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이와 유사하게 스탈린주의를 ‘정치적 아방가르드’로 이해하는 관점은 보리스 그로이스, <아방가르드와 현대성> 참조).

‘자기반성’을 심리학적 의미가 아닌 ‘역사철학적’ 의미로 이해한 벤야민에게 이러한 상황은 개인적 위기로 경험되었다.”(59쪽) 비유컨대, ‘자명종-벤야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확성기-히틀러’이며(사실 이건 그 ‘직접성’에서 경쟁 자체가 안된다! 그는 나치즘에 쫓겨 미국 망명까지 시도하지만 결국은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하고 만다), 때문에 “파시즘이라는 배경막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현재를 탈신화화할 역사를 현시한다는 <파사젠베르크>의 교육적 기획은 더욱더 절박한 것이 되었다.” 교육적 기획? 아이의 따귀를 때리는 것 말이다!

게다가 그를 둘러싼 주변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1931년 여름과 1932년에 벤야민은 자살을 생각했다. 1930년에 아샤 라시스가 모스크바로 돌아갔고, 모친이 사망했으며, 자신의 이혼이 결정되었다. 그는 이후의 고독 - 2,000권의 장서를 보유한 서재가 딸린 베를린 아파트의 고독 혹은 여름 별장의 고독 -과 화해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제적인 ‘생존투쟁’에는 지치고 말았다. 파시즘의 확산과 함께 재정문제는 점점 더 힘겨워졌다.”(60쪽)

그를 얼마간 더 지탱시켜준 힘은 자신의 프로젝트(‘커다란 여행가방’)에 대한 애착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통째로 관류하고 있는 건 '잠자고 있다-깨워야 한다'이다. 거기서 ‘잠’을 근대 자본주의의 환상으로 대치하게 되면, 벤야민은 곧바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 이때의 마르크시즘은 유년기의 깨어남을 모델로 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걸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고 싶다(‘성년의 마르크스주의’가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이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몇 마디 덧붙이고 싶지만, 그건 내가 당장에 실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대신에 몇 개의 인용문만을 나열하면서 이 글은 일단 끝마치기로 한다.

A Barricade of the Paris Commune

“유년기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생물학적 과제는 집단적/사회적 깨어남의 모델이 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한 세대는 집단적 경험에서 두 가지 깨어남을 수렴한다. 한 세대가 의식에 이르는 순간은 정치적으로 힘을 받는 순간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독특한 순간에 새로운 세대는 부모의 세계에 반항함으로써 깨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졸고 있는 시대의 유토피아적 잠재력을 깨울 수도 있다.”(354쪽)

“우리가 줄곧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이 그 객관적 이미지의 일부이다. 이 세대를 스스로에게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꿈-연결 속에서 목적론적 계기를 찾는다. 이 순간은 기다림의 순간이다. 꿈은 은밀하게 깨기를 기다린다. 잠자는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부를 때까지만 자신을 죽음에 맡긴다. 그는 간지를 통해 포로 상태에서 풀려날 순간을 기다린다. 꿈꾸는 집단도 마찬가지다. 꿈꾸는 집단의 아이들은 집단이 깨어나는 다행스러운 계기가 된다.”(354쪽)

“유물론적 역사는 새 자연을 탈주술화하여 자본주의의 주문에서 풀어주지만, 사회변혁을 위한 힘은 구해낸다.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가 벤야민이 바라는 동화의 목표였다. 집단의 역사적 깨어남의 수간에 동화는 ‘나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아이의 사회역사적 질문에 대해 정치적 폭발력을 담고 있는 대답을 제공할 것이다. 근대적 존재, 좀더 정확히 말해서 근대적 꿈나라의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그러한 꿈나라의 미학적 표현인 초현실주의를 언급하면서 벤야민은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는 다다였고 어머니는 아케이드였다’고 말했다.”(354쪽) “(아케이드에서) 우리는 꿈속에서처럼 부모와 조부모의 삶을 다시 산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아가 동물의 삶을 다시 살듯이 말이다.” “누가 아버지의 집에서 살 것인가?”(이상 357쪽)

05.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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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판타스마고리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11 09:28 
    일반인 교양강좌 준비로 들뢰즈와 벤야민의 책들을 한두 권씩 가까운 서가로 옮겨놓고 있는데, 마침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리라이팅'한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트 프로젝트>(그린비, 2009)가 출간됐다. 저자는 <계몽의 변증법>을 리라이팅했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그린비, 2003)의 저자 권용선 씨. 수유너머에서 강의한 내용을 이번에도 책으로 펴낸 듯싶다. 참고문헌으로 챙
 
 
Forgettable. 2009-12-1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얼마 전 [모스크바 일기]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페이퍼가 더 재미있네요^^
오래전 글인데 먼댓글 따라와서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ㅠ_ㅠ
 

재작년 8월말에 모스크바 통신문에 올려놓았던 '번역의 속도에 대하여'에서 후반부를 옮겨놓는다. <선악의 저편>의 한 대목 읽기였다. 발단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그 문체의 속도이다.”란 니체의 말이었고(<선악의 저편>, 단장 28). 이 번역은 책세상판 니체전집 14권,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2004, 초판 3쇄)의 55쪽에 나온다. 그 단장  28을 읽어보기로 한다. 니체는 이 단장에서 번역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바에 대해서 시사하고 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그 문체의 속도이다: 문체의 속도라는 것은 종족의 성격에,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그 종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하게 그 뜻을 담고 있는 번역도, 본의 아니게 원전의 격조를 더럽힘으로써, 거의 위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은 오로지 사물과 언어 속에 내재된 모든 위험한 것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전의 대담하고 경쾌한 속도가 함께 번역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번역은 원전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 (경쾌한) 속도까지도 옮겨놓아야 하며, 옮겨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가는 김에 덧붙이자면, 나는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의 니체를 사랑한다. 내가 아는 니체가 거기에 있다("안녕, 프리드리히!").

 

 

 



-독일인은 자신의 언어에서 빠른 템포(프레스토)를 거의 다룰 수 없다: 우리가 정당하게 추론할 수 있듯이, 자유로운, 자유정신적 사상의 가장 유쾌하고 대담한 많은 뉘앙스도 낼 수 없다. 독일인에게는 육체적으로나 양심적으로 부포(Buffo)와 사티로스가 낯선 것처럼, 그들에게는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와 페트로니우스(Petronius)는 번역을 잘해내기 힘든 것이다. 독일인에게는 장중한 것, 용해하기 힘든 것, 엄숙하고 둔중한 모든 것, 느리고 지루한 종류의 온갖 문체가 엄청나게 풍부하고 다양하게 발달했다. 괴테의 산문마저도 딱딱함과 우아함이 혼합되어 있는데,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이는 그의 산문이 속하는 ‘옛날 좋은 시절’의 반영이며, ‘독일적인 취미’가 아직도 존재했던 시대에 독일적 취미의 표현이며, 양식과 기교 면에서 볼 때 로코코 취미였다.

(*)아리스토파네스와 페트로니우스는 각각 그리스와 로마의 (희극)작가이다. 니체는 독일어의 느리고 지루함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고 있는데, 나의 짐작에는 오직 니체에 이르러 독일어가 자신의 빠른 템포(=프레스토)에 다다른 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니체는 유쾌하고 경쾌하다.

 

 

 



-레싱(Lessing)은 많은 것을 이해했고, 많은 것을 잘 아는 배우적 천성 때문에 예외가 되었다. 그가 베일(Bayle)의 번역자였다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으며, 기꺼이 디드로(Diderot)와 볼테르 곁으로, 오히려 로마의 희곡작가들 틈으로 피신하고자 했다. (문체의) 속도에서도 레싱은 자유정신을 사랑했고, 독일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독일어는 어떻게 레싱의 산문에서조차도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속도를 모방할 수 있었던 것인가.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군주론>에서 플로렌스의 건조하고 맑은 공기를 포함하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제어할 수 없는 쾌속조(allegrissimo)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 어떤 대립을 감행하고자 하는 심술궂은 예술가의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그 사상은 지루하고 무겁고 딱딱하고 위험하며, 말처럼 질주하는 속도와 최고의 오만한 기분 속에 있는 것이다.

 

 

 

 

(*)니체는 레싱 정도를 예외로 쳐주는데(지난주에 러시아어 레싱 선집을 샀다. 절판된 그의 책<현자 나탄>이 다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때문에 18세기 프랑스 철학자인 베일을 번역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베일도 상당히 경쾌한 문체를 구사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레싱조차도 마키아벨리의 속도(=알레그리시모)를 따라가는 건 역부족이라는 얘기. 여기서, 마지막 두 문장은 좀 미흡해 보인다. ‘어떤 대립’보다는 ‘어떤 대조’가 맞는데, 그 대조의 내용이 번역문에는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과 무엇의 대조인가? “지루하고 무겁고 딱딱하고 위험한 사상”과 그 문체가 갖는 “말처럼 질주하는 듯한, 너무나도 쾌활한 기분의 속도” 사이의 대조이다. 그러니까,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지루하고 무겁지만, 그 문체는 경쾌하고 아주 활달하다는 것.

(*)한가지, 편집/교정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자면, 이런 문단 같은 경우 인명에 대한 외국어 표기들이 일관성 있게 병기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 생각에 미주에서 처리하고 있는 인명들은 굳이 본문에서도 외국어 표기를 병기해줄 필요가 없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익히 알려진 인명의 경우에는 더더구나 그렇다. 볼테르는 낯익기 때문에 그냥 놔두고 디드로는 낯설기 때문에(?) ‘Diderot’라고 병기해준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하긴 ‘디데로’라고 옮기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에, 그건 좀 이상한 ‘노파심’이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마키아벨리에다가 ‘Machiavelli’를 나란히 표기한 것처럼.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우리에겐 ‘사티로스’가 ‘마키아벨리’보다는 친숙한 이름이어야 한다. 풍자(Satire)란 말의 어원이 되는 이 ‘사티로스(Satyr)’가 과연 그런지?.. 나는 완벽한 책, 적어도 최선을 다한 책을 읽고 싶다.

-결국 그 누가 지금까지의 어느 위대한 음악가보다 훌륭한 창의와 발상, 말에 있어서 빠른 속도의 장인이었던 페트로니우스를 감히 독일어로 번역할 수 있겠는가: - 우리가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내닫게 하면서 모든 것을 건강하게 만드는 바람의 걸음걸이를, 들이마시고 호흡하는 바람을, 바람의 자유로운 조롱을 지니고 있다면, 병들고 사악한 세계의 수렁이나 ‘고대 세계’의 수렁이 결국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저 신성하게 변용시키면서 보완하는 정신 아리스토파네스에 관해 말하자면, 그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그리스 세계 전체를 용서하게 된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에 용서와 변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슴 깊이 이해했다고 전제한다면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니체는 페트로니우스와 아리스토파네스에 대한 경탄으로 이 단장을 마루리하게 된다. 어쨌든 독일어로는 페트로니우스를 번역할 수 없다는 것. 그는 너무도 빠른 속도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의 대표적인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에 대한 경탄. “저 신성하게 변용시키면서 보완하는 정신 아리스토파네스”라고 옮겨져 있는데, 희극에서 세상이 ‘신성하게 변용’된다는 건 약간 어색하다(내가 아직 아리스토파테스를 읽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어 번역에는 ‘밝게 하다’란 동사가 쓰이고 있다. 즉 빛이 들게 하는 것이다. 용서의 대상이 되는 ‘그리스 세계’란 어두운 세계인바, 그것을 ‘희극적으로’ 재현/묘사함으로써 용서해줄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얘기인 듯싶다(웃음은 세상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아리스토파테스는 “저 밝게 비춰주면서 보완해주는 천재”인 것.

-그렇기 때문에 저 다행스럽게도 보존되어온 소품(petit fait)보다 더 내가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스핑크스의 본성에 대해 꿈꾸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즉 우리가 그의 임종의 베개 밑에서 발견한 것은 <성서>도, 이집트의 책도, 피타고라스의 책도, 플라톤의 책도 아닌, -아리스토파네스의 책이다. 플라톤 또한 –그가 부정했던 그리스적인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말이다!-

(*)원문은 문단이 나뉘어져 있지 않지만, 내가 임의로 분할한 마지막 문단이다. 니체의 경쾌한 속도를 그런대로 따라온 우리말 번역은 이 대목에서 헛걸음을 하고 있다. “저 다행스럽게도 보존되어온 소품”이란 게 무슨 뜻인지? ‘소품’은 보통 작은 단편/작품을 말하는 것이지만, 병기된 불어 ‘petit fait’는 ‘작은 사실’(little fact)이란 뜻 아닌가? 역자는 ‘보존되어온’이란 말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사실’을 ‘소품’으로 옮긴 듯하다. 우리말이 어색하다면 번역에서 약간의 변형이 필요하지만, 여기선 방향이 잘못됐다. ‘보존되어온’에 맞출 게 아니라 ‘작은 사실’에 맞추었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전해져 내려온 사소한 사실 하나’라고 하면 어떨까? 그리고,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스핑크스의 본성”은 분리돼 있는 게 아니다.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그 스핑크스적(=수수께끼적) 성격”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니체로 하여금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그 수수께끼적 성격”에 대해서 공상해보게 만든 ‘사소한 사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플라톤이 임종한 베개 밑에 있던 책이 아리스토파네스였다는 사실이다. <성서>(<구약>을 뜻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종류의 경전?)도, 이집트의 책도, 피타고라스의 책도, 그리고 플라톤 자신의 책도 아닌,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들 말이다. 해서, “플라톤 또한 삶을, 자신이 부정했던 그리스적인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아리스토파네스라도 없었다면 말이다!”(책들, 이 책들이 아니라면, 나는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2004. 08.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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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니체와 문체의 속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7 23:37 
    이번주 교수신문에 실은 서평위원 칼럼을 옮겨놓는다. 예전에 '니체와 번역의 속도'란 페이퍼에서 니체의 번역론, 정확하게는 문체의 속도 번역론을 소개하고 나대로 풀이한 적이 있는데, 최근 <번역이론>(동인, 2009)이란 책에서 다시금 그 대목이 번역돼 있는 걸 보고 그 속도의 문제를 한번 더 생각해본 글이다. 당시엔 번역돼 있지 않았던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공존, 2008)이 그 사이에 소개된 것이 
 
 
 

재작년 8월말에 '번역의 속도에 대하여'란 모스크바 통신문에서 다루었던 내용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놓는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 읽기에 앞서서 몇 마디 주절거린 것인데, 내용상 독립적이기에 아예 따로 떼놓으면서 제목을 따로 붙여둔다. '늙어가는 느릅나무들'은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자작시의 제목이다.

“신은 죽었다!”란 선언이 니체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지만, 알다시피 그때의 ‘신’이 뜻하는 것은 어떤 인격체가 아니라 초월적 의미(=기의)인바 우리에게 주어진 것, 즉 ‘이 삶’을 넘어서는, 혹은 ‘이 삶’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신은 죽었다!”라는 그 선언에는 함축돼 있다(“이게 다예요!”). 아무것도 없는 대신에 도대체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힘에의 의지’인바, 생물학 교과서적인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Eat, Survive, Reproduce”(먹고 살아남아서 자손을 퍼뜨리는 일) 외에는 따로 일이 없는 존재들이다(우리는 교량일 뿐이다). 그 ESR이 우리의 존재근거이자 원리이다. 너무도 단순하지만, 너무도 이해되고 있지 않은!



“자연은 잔인하기보다는 단지 무자비하고 냉담할 뿐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내용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선의도 악의도 없고, 잔인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으며, 단지 냉담할 뿐인 어떤 사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사람의 뇌 속에는 목적이 가득 들어있다. 어떤 사물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또는 그것을 만든 동기나 이면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목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병적인 상태로 발전하면 그것을 편집증이라 부른다. 즉 실제로는 우연한 불운일 뿐인데도 그 속에 어떤 악의가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다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힌 존재이기 때문이다.”(R. 도킨스, <에덴 밖의 강>, *<에덴의 강>으로 재출간됨)

하여간에 나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결코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겠다. 우리의 몰이해 또한 ‘냉담한 무관심’의 결과라고 믿기 때문이다(진실 혹은 냉담!).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니체의 철학을 ‘아줌마 철학’이라고 부른바 있다(아줌마는 가족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가족 바깥은 없다!”). 니체는 자신을 경계로 하여, 철학사를 니체 이전과 니체 이후로 구분했는데, 그러한 구분을 조금 비틀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아줌마 철학을 경계로, 아줌마 철학을 문턱으로 하여 양분된다고. 아줌마 철학은 무엇과 경쟁하며, 무엇을 부정하고 거부하는가? 그건 형이상학으로서의 ‘이데아 철학’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이데아 철학은 (유클리드)기하학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리고 기하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우리 주변에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들이다.

가령, 점이란 무엇인가? 가장 단순한 도형으로서 점은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이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표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관념 속에만 있다. 우리가 종이나 칠판에 찍는 점은 모두 그러한 가상(=이데아)의 유사물이고 복사물일 뿐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한 점이 연속적으로 움직여 이루어진 자취”가 선인바, 그것은 “길이와 위치는 있으나 넓이와 두께는 없”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런 선을 우리가 도대체 어디에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현실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데아적 선의 (넓이와 두께를 갖는) 유사물, 복사물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모든 도형이 본질상 가상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이데아를 본질로서, 실재로서 전제할 때, 현실은 그 복사물이고, 복사물의 복사물이다.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일은 이러한 복사물 내지는 복사물의 복사물을 진본(=오리지널)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동굴의 우화’는 바로 그러한 착각에 대한 우화이다.

 

 

 



진정한 어떤 것이, 현실 너머에 있다는 관념. 진정한 삶은 지상의 삶 이후에 온다는 관념. 그것이 바로 형이상학(=메타피지카)적 사유의 요체인바, 모든 것은 메타(meta), 즉 이것 ‘너머에’ 있고, 이것 ‘다음에’ 있다. “이게 다가 아니야!” 그것이 이데아 철학의 구호이다. 하지만, 다시 반복하자면, 아줌마 철학은 “이게 다예요!”라고 말하는 철학이다(그것이 여전히 철학이라면). 어째서 이게 다인가? ‘메타’라는 건 가상이고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즉, ‘메타’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캉 버전으로는 “메타언어란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필요하지도 않다. 이미 현실은 그 자체만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메타란 것은 (모자라는) 현실에다가 무엇을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않지만 충만한 현실을 대패로 깎아내서 판판하게(그래서 모자라게) 만드는 것이다. 곱슬머리를 다리미로 펴듯이.

 

 

 



칸트의 ‘보편 철학’과 니체의 ‘가치 철학’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칸트적 보편성은 차이를 지우고 개별성을 깎아냄으로써 얻어진다. 그에겐 남성과 여성이 철학적 주체로서 아무런 차이를 갖지 않는다. 실상 시계에 맞춘 듯이 똑같이 반복되던 그의 하루하루가 아무런 차이를 갖지 않는 ‘보편성’이었다. 하지만, 니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세상엔 고급하고 고귀한 존재들이 있는 반면에 저급하고 저속한 존재들이 있다고. 이 ‘적대적’ 차이는 결코 극복되거나 지양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성이란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일 따름이다. 존재하는 건 고르지 않은 차이들(=시점들)이고, 각각에 충만한 현실뿐이다.

니체 철학의 핵심은 철학에 ‘의미(Sens)’와 ‘가치’를 도입한 데 있다고 들뢰즈가 규정할 때, ‘도입’이란 말은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편)철학이 삶에서 깎아낸 의미와 가치를 다시 회복시킨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시점의 변경 혹은 도약이 있다.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다. 가령, 현대 물리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칸트 대 니체'는 '뉴턴 대 아인슈타인'이다. 즉 철학에 의미와 가치를 도입한다는 것은 뉴턴의 절대적 시/공간 대신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적 시공간(=크로노토프)을 도입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유클리드 기하학적 공간에 곡률을 도입함으로써 유클리드적 공간을 상대화함과 동시에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하는 것, 그것에 견줄 수 있는 것이 니체 철학이 칸트 철학에 대해서 수행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때도 ‘도입’이란 것은 어떤 편의성 때문에 직선으로 간주(=계산)되었던 세상의 곡률이 회복되는 것이지,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적어도 상대성 이론이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면).

요컨대, 현실은 이미 의미-담지적이며, 세상은 이미 곡률-의존적이다(유클리드적-평면적 세계란 보편성의 세계가 아니라, 곡률=0인 특수성의 세계이다). 그러한 사정에 대해서 우리가 의미를 도입하고, 곡률을 도입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편의상의 이유에서일 뿐이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 자체로 전부인 현실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명체가 자연이 갖고 있는 유전자 모두를 성공한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기 때문에 성공적인 유전자를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장차 조상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조상이 된다는 것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생물들이 훌륭하게 설계된 기계를 만드는 유전자를 물려받는 경향이 있는 이유이다. 그것은 바로 새는 왜 잘 나는가, 물고기는 왜 헤엄을 잘 치는가, 원숭이는 왜 나무를 잘 타는가, 바이러스는 왜 잘 번식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그것이 바로 왜 우리가 삶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며 아이를 사랑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이 세상은 장차 조상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다위니즘(Darwinism)이다.”(R. 도킨스, <에덴 밖의 강>)

 

 



 

반복하자면, 우리는 “Eat, Survive, Reproduce”(먹고 살아남아서 자손을 퍼뜨리는 일) 외에는 따로 일이 없는 존재들이다(우리는 교량일 뿐이다). 그 ESR이 우리의 존재근거이자 원리이다. 인간이 ‘의미의 질병’을 앓는 동물인 것은, 그러한 ESR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는 이걸 우리의 대뇌가 급속하게/불완전하게 진화한 결과로 본다(보다 근본적인 건 언어 때문이다. 언어는 ‘의미의 질병’을 낳는 산파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그건 상당히 덩치가 큰 문제이기 때문에).

니체의 표현대로, 우리의 위장을 닮은 대뇌가 해야 할 일은 위장과 마찬가지로 ‘소화작용’일 뿐이며, 그러한 작용으로써 우리를 생존하게 하고 기운 나게 하는 것뿐이지만, 이 대뇌는 언제부턴가 자신이 소화해낼 수 없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는바, 그것은 “What’s it all about?”(이게 다 무슨 수작일까? 혹은,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에의 물음이다.

알다시피 형이상학의 표준적인 물음은 “What is it?”, “그것은 무엇인가?”이다(WIT라고 부르자). 그 물음은 ‘무엇을 넘어선 무엇’에 대한 물음이다. 이것은 달리 목구멍에 걸리는 물음(=뼈다귀)인바, 이 물음을 떠안게 되면서부터, 혹은 이 물음(=뼈다귀) 자체로부터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병든 인간’이다. 즉 그 물음으로부터 인간은 쇠약해지기 시작했다(인간은 ‘무엇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무엇을 넘어선 무엇들의 세계’에 살게 된 것. 즉 그는 양다리를 걸치기 시작한 것이다. “삶은 다른 여자에게 있다!”).



생각건대, 모두가 ESR에 몰두할 때, 어느 날 문득 이 물음을 처음으로 던진 인간은 위트 있는 인간이었음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병적인 인간이었다. 문제는 이 WIT가 상당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는 것(역시 언어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일본의 ‘이모 원숭이’가 모래 섞인 모이를 바닷물에 던져서 모이만을 골라내는 방법을 ‘발견’한 이후에 이것이 원숭이 사회에 ‘문화’로 전파되었던 것처럼. 한 ‘위트 있는 이모’가 발견했을 이 물음은 인간의 문화를 병든 문화, 병적인 문화로 변모시켰다(종교사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역사이면서 동시에 병리학사 아닌가? 모든 종교의 전제는 삶=질병이라는 것이니까.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하다는).

 

 

 



그리하여 ‘병든 인간’은 ‘병든 인간들’이 되었고, 언젠가부터 인간 자체가 돼 버렸고, 인간 자체의 존재방식이 돼 버렸다. 해서, 원래의 병들지 않은 인간, 위트에 물들지 않은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에 붙여진 이름이 초인(=위버멘쉬)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인간은 인간을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호모 로쿠엔스가 극복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건 오직 언어를 통해서일 것이다!), 이젠. 초인(=위버멘쉬)에 대한 구구한 설들이 있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의 초인은 병들지 않은 인간, 건강한 인간, 그래서 ‘현재의 이 삶’을, ‘이 모양’을 긍정하는 인간이다. 즉 그에게 다른 삶은 없다(“삶은 다른 곳에 없다.”). 모든 남자는 ‘이 남자’이고, 모든 여자는 ‘이 여자’이다(해서 “세상에 옛 애인이란 없어요!”).

헤겔의 말을 비틀면, 초인, 그는 “현실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이며, 긍정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현실에 대한 아무런 부정도, 비판도 않는 니체는 보수적인가? 결코 아니다. 역시 헤겔의 예를 따라서, 니체 우파가 “현실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고집한다면(이들의 구호는 “이대로!”이다), 니체 좌파는 “긍정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즉,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현실이 아니며, 현실은 긍정적인 것일 때 비로소 ‘현실’이다)이라고 주장한다. 니체는 현실에 맞서는 어떠한 가상(illusion)도 거부하는바, 진정한 빛은 현실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발하는 빛이다.

요컨대, 인간과 초인, 혹은 병들고 나약한 인간과 씩씩하고 건강한 인간이 있다. 전자가 중언부언하면서 수사적으로 말한다면, 후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동어반복적으로 말한다. “나는 나야!”라고. 먹는 건 먹는 거고, 싸는 건 싸는 거고, 싸지르는 건 싸지르는 거라고.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자들은 부득이 위트를 섞어서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우리 사는 날들이 전부는 아닐 거라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당신은 어느 쪽인가, ESR의 편인가, WIT의 편인가?(혹은 생각 없는 편인가, 생각만 많은 편인가?)



두서없는 말이 많았는데, 요점은 니체 철학의 의의이며 니체를 읽을 필요성이다. 니체를 읽는 재미는 정신의 스트립 쇼를 보는 재미이다. 그는 고상한 체하는 우리의 정신을 발가벗긴다. 그리고 말한다. “이거예요, 이게 다예요!” 그런 점에서 니체는 유머러스하다고 말하고 싶다(이때의 유머는 형이상학의 ‘위트’와 대조되는 것이다). 이 유머는 니힐리즘의 유머이다. 니힐리즘에서 니힐(nihil), 즉 무(無)가 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더는 없는 것’이다. 어떠한 가치나 권위도 니힐리즘은 부정하는바, 그것은 그러한 가치/권위가 부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존재 혹은 사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그러니까 어떤 존재가 고귀해지는 것이 아니라(고귀한 의미를 부여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고귀한 존재가 있는 것이다. 어떤 존재가 저속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속한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건 당신이 머리를 싸맬 일이 아닌 것. 그냥, 멍게가 있고 해삼이 있듯이(멍게적인 해삼과 해삼적인 멍게가 있는 게 아니라), 쏘가리가 있고 왜가리가 있듯이(거기에는 물론 매운탕도 있다), 제법 있는 것들이 있고, 또 없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찬 것들이 있고, 빈 것들이 있는 것이다(“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중요한 건, 그걸 당신이 긍정하느냐 마느냐이다(기독교 버전으로는, 보기에 좋으냐 싫으냐). 긍정? 그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정도의 긍정을 말한다(다시 태어나도 이 남자/이 여자를?!). 그러니까 그럭저럭 보기에 괜찮은 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나다!”라는 동어반복에 이르는 여정(“높다란 학교길”)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닌 것이다(그런 생각만 하면 나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어쨌든 그런 확정/판결(“나는 나다!”)을 통해서, 우리는 제 자리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간다. 인간이란 가면을 벗어 던지고, 혹은 양의 탈을 벗어 던지고, 늑대에서부터 성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같은 놈’이란 딱지를 떼고서 정말로 무엇임을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그레고르 잠자처럼 말이다). 나-말미잘, 나-촌닭, 나-너구리를 거쳐서, 나-거머리, 나-하이에나, 나-청소부, 나-나폴레옹, 나-아저씨, 나-아줌마, 나-세컨드, 나-어리버리에 이르기까지. 왜 동물성뿐이겠는가? 나-콩알, 나-잡초, 나-호박, 나-해바라기, 나-물망초, 나-도깨비풀, 나-옥수수, 나-고목나무, 나-가여운 풀벌레 등등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이들의 쟁투이고 합창이다(“우산 셋이 나란히, 티격태격 걸어갑니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인식’을 나는 예전에 몇 편의 시들로 옮긴 적이 있다. '늙어가는 느릅나무들'은 그 중 하나이다.

 

 

 



느릅나무는 다형질적이다, 다형질적 조합이다.
여럿이 나란히 도열한 느릅나무들, 은
제각각 나이를 먹는다, 나눠먹지 않는다. 어릴 적
느릅나무는 무얼 모르는 느릅나무, 물정에
눈을 부릅뜨면서 느릅나무 뿌리가 조금씩 굵어지면서
느릅나무는 다혈질적이다, 다혈질적 조합이다.
여럿이 나란히 도열한 느릅나무들, 은
제각각 느릅나무를 꿈꾼다, 꿈으로 무장한다.
극좌와 극우의 곁가지들을 모두 가지치기한
중도적인 느릅나무, 중도좌파적인, 중도우파적인
느릅나무, 옆에 다소곳이 신파적인 느릅나무,
신좌파적인, 신우파적인 느릅나무, 들
저마다 한 그루의 느릅나무 이상을 꿈꾼다.
느릅나무의 극복을 꿈꾼다. 꿈꾸며
아, 이 겸손한 느릅나무들! 물길을 찾고
햇빛을 쬐고 탄산가스를 마시며 부지런히
동화작용한다, 작용하며 늙어간다. 어릴 적
여럿이 나란히 뿌리내린 그 자리들에서
제각각 비틀리고 말라가며 쪼그라진다.
곧 느릅나무 조합에서 제명된다.

느릅나무는 다형질적이다, 다형질적 조합이다.
여럿이 나란히 제각각 살아남는 느릅나무들-

다시 반복하자면, “모든 생명체가 자연이 갖고 있는 유전자 모두를 성공한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기 때문에 성공적인 유전자를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쩔 건가요?” 우리가 목적이 아니라 교량이고, 과정이며 몰락이라는데(도킨스 버전으로는 ‘유전자 운반체’), 어쩔 건가요? “어쩌긴요, 더없이 유머러스한 일인 걸요! 어쩜 그럴 수가!..”

06.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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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그 2006-06-0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시는 (몇 편 안 읽긴 했지만) 항상 어렵군요! 어쨌든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06-06-08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계인'들의 시를 안 읽어보셨군요. 이 정도는 어려운 시의 축에도 못들어갑니다!..

2020-06-08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8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마이뉴스(06. 06. 05)에서 서평 하나를 옮겨온다. 데이비드 던컨의 <내 DNA를 갖고 대체 뭘 하려는 거지?>(황금부엉이, 2006)에 대한 것이다. 사실은 오늘까지 서평을 쓰기로 하고 받은 책인데, 좀 늦게 배송되었다는 핑계로 서평을 미뤄두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바쁘기도 하지만). 그래도 좀 찔리는 마음이 없지 않은 탓에 이거라도 일단 옮겨놓는다. 아직 한 챕터도 다 읽지 못했지만 미리 윤곽이라도 잡아두기 위해서. 필자는 최향기 기자이고, 제목은 '생명과학자들의 열정, 그리고 갈등'이다.

 

 

 

 

-저널리스트가 보는 과학자들의 모습은 어떨까? <내 DNA를 가지고 대체 뭘 하려는 거지?>를 단지 과학자들의 연구와 그 결과를 다루는 책이라는 면에서 흥미를 가지고 접한다면 실망을 금치 못할지 모른다. 이 책은 연구의 성과도 다루지만 그보다는 '과학자'에 대한 인터뷰와 그들이 평소 가지고 있는 생명과학에 대한 철학을 조명하고 있다.(*그나마 내가 읽은 책 중에서는 물리학자들을 다룬 <아인슈타인 방의 사람들>과 유사한 성격의 책이란 느낌이 든다. 물론 이 생물학자들은 방을 다 제각각으로 쓰고 있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는 미국의 생명과학자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이는 제임스 왓슨이다. 바로 그가 젊은 시절 DNA의 구조가 이중나선 모형임을 밝혀 프란시스 크릭과 함께 노벨상을 공동수상해 언론에 크게 부각된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E. 던컨은 이런 문제에 대해 과학저널리스트로서 이렇게 짚고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논란이 많은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이런 과학자들의 이름은 분자생물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모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언론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언론은 단백질 유전정보학, 유전자 변형 생물체, 리보핵산(RNA), 유전형질 전환 동물, 줄기세포처럼 복잡한 용어를 설명하는 데만 열중하거나 벤처기업의 동향, 주식시장의 상황,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이런 과학자들을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물음과는 달리 해답을 주거나 어느 과학자에게 도발적으로 질문을 던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연구 성과를 둘러싼 현존 생명과학자들의 암투와 갈등을 가감 없이 소개하며 모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이 책에 나오는 콜린스 박사와 벤터 박사의 갈등은 인간 게놈 지도 분석을 둘러싸고 국가주도의 연구냐 민간주도의 연구냐는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런 갈등 속에서 대중들은 대체 저들이 그것으로 어떤 이익을 얻을 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민간주도의 연구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악마'로 비난받는 벤터 박사는 국가주도의 연구도 다를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연구가 처음에는 배척 받아 밀려 났고 나중에는 도용이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반대쪽에 있는 콜린스 박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노벨상 수상자로 명성이 드높은 왓슨 박사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존경보다는 그의 태도를 비판하는 쪽으로 기운다. 70대에 접어든 왓슨 박사를 찾아간 저자는 그런 왓슨 박사에게서 변하지 않은 연구의 열정만 볼 뿐이다. 이렇듯 세간의 평가와 자신의 만남을 교차시키며 이 책은 과학자들에 대한 얘기를 병렬식으로 나열하며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본질은 '과연 이들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대중적인 일깨움에 있다.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멜튼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가 두렵다는 이유로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면 정말 못 견딜 것이다. 위험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한다. 왜 그런 실험을 하면 안 되는지를 말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것에 대해 생물학적 재앙이 일어날 수 있지도 않겠냐는 저자의 직접적인 질문에 분자생물학자인 브레너 박사는 완고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과학이 그런 일을 하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운을 남긴다. "내가 한 말을 다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나는 틀린 말을 자주 한답니다."

-이렇듯 저자가 보는 생명공학은 아직 가치판단을 하기에 어려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과학자들을 프로메테우스, 이브, 바울, 파우스트, 제우스, 모세와 같은 실험적이고 때로는 무모한 행동을 하는 종교, 신화, 소설속의 인물들에게 비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건 무조건적인 재앙이나 무조건적인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06.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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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모스크바 통신문에 올렸던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북매거진 <텍스트>의 청탁을 받고 씌어진 글인데, 분량상 이 글의 축약본이 <텍스트>에는 실렸었다. 안톤 체홉(체호프)의 작품을 읽으면서 '세계문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글이다.

 

 

모스크바 체류 6개월째(*이 글은 2004년 9월 중순에 씌어졌다). 이런저런 ‘현지사정’으로 그동안 단 한편의 글도 기고하지 못했는데, <텍스트>는 새로운 기획의 한 꼭지를 내게 맡겼다. 편집진에서 내게 요구한 것은 “체홉을 읽는다는 것, 혹은 러시아 문학을 읽는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순수문학, 아니 그보다는 ‘진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의 유의미성에 대한 소고”이다. 러시아 작가들 가운데 유독 안톤 체홉(1860-1904)이 거명된 것은 올해가 그의 사망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그가 사망한 달인 지난 6월에 이미 관련행사들이 개최된바 있으며, 한국에서도 최근 이를 기념한 작품집 두 권, <벚꽃동산>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4)이 출간되었다(*물론 이후에 5권짜리 선집을 포함해서 더 많은 책들이 나왔다. 가장 최근에 (재)출간된 건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이다). 새로 번역돼 나온 책들에 대한 리뷰를 겸하면서 ‘체홉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텍스트>의 성격에 부합하는 작업일 듯하지만, ‘현지사정상’ 내가 참조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어 문고본 체홉과 (후배에게 며칠 빌린) 한국어본 작품집 <귀여운 여인>(혜원출판사, 2000)뿐이다(이하에서의 체홉 인용 쪽수는 이 작품집의 것이며, 번역은 일부 수정됐다).

<텍스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나는 체홉의 단편들 중 <6호실>(1892)과 <상자 속의 사나이>(1898)를 다시 읽었고, 거기에 최근에 번역/소개된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도서출판b, 2004)을 겹쳐 읽었다. 고진의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은 “세계종교에 대하여”인데, 나는 ‘세계종교’에 대한 고진의 사유를 ‘세계문학’에 대한 것으로 고쳐 읽어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해서, 이 글의 골격이 짜여진바, 나는 체홉의 두 단편 읽기를 통해서, ‘진짜 문학’, 곧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리고 그것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따져보고자 한다(이러한 주제가 다소 주제넘은 것으로 보인다면, 그건 이런 걸 주문한 <텍스트>의 탓이다).

체홉의 전기나 연보를 유심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것이 1890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서른에 감행한 사할린 여행이다. 알다시피, 체홉은 순전히 생계의 방편으로 모스크바대학 의학부 학생시절에 유머 단편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이 시기에는 ‘체혼테’ 등의 필명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어느덧 10년, 체홉은 자신의 삶과 작가생활에 있어서 어떤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를 타개/돌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 사할린 여행이었다.

 

시베리아 철도가 개설되기 이전이라 사할린 섬으로의 여행은 마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체홉은 1890년 4월에 길을 떠나 7월에 사할린 섬에 도착하고 3개월간 체류하면서 당시 유형지였던 사할린 섬의 실태를 조사하고 주민들 혹은 죄수들과 일일이 만나 면접카드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이때 작성한 카드만 8,000장 이상이었다). 그리고는 바닷길을 통해 다시 모스크바에 돌아온 것이 그해 12월이었다. 이 여행 이후에 그는 <시베리아 여행>(1890)이란 기행문과 <사할린 섬>(1895)이라는 아주 ‘객관적인’ 보고서를 발표하며, 문학사가들은 이 여행을 통해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보다 넓어지고 깊어진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사할린 여행 이후의 체홉을 ‘중기 체홉’으로 분류해도 좋으며(‘후기 체홉’은 <갈매기> 이후 드라마 작가로서의 체홉이다), 이 중기의 체홉은 ‘코믹’과 ‘우수’의 작가 ‘체혼테’와는 연속적이면서도 좀 다른 체홉이다. 즉, 그의 코믹과 우수는 저울추를 단 것처럼 다소 무거워진 코믹과 우수가 되었다(그걸 비극과 비애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한 시골 자선병원의 의사가 자신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차에 정신병동에서 유일하게 총명한 청년을 만나 자주 대화를 나누다가 미친 걸로 간주되어 감금되고 결국은 맞아 죽은 이야기를 그린 <6호실>과 자신을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보호/방어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허무한 죽음을 맞은 시골학교 교사를 그린 <상자 속의 사나이>는 이러한 중기 체홉의 대표작들이다.

 

<6호실>의 주인공인 의사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시골 자선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하여 아주 불결하고 암담함 병원상태를 둘러보고는 “이 시설이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거주자의 건강에도 매우 해롭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현재로서 가장 현명한 조치는 환자를 퇴원시키고 병원을 폐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320-1쪽). 그러니까 문제는 환자가 아니라 병원 자체였던 셈. 하지만, 그는 곧 그러한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며 또한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는 지성과 성실(=정직)을 사랑했지만, “박력(=의지)과 자기 권리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주변의 무지와 불성실(=부정직)을 그대로 방치하고 만다.

물론 안드레이 에피므이치도 처음엔 사명감을 가지고 매우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의 단조로움과 무익함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322쪽) 그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시골 읍의 사망률은 전연 줄지 않았고 환자의 발걸음도 도무지 그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는 결국 체념하게 되며 자신의 체념을 죽음과 고통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서 정당화한다(체념과 나태는 철학의 어머니이다!).

가령, “푸슈킨은 죽음에 임하여 무서운 고통을 맛보았고(참고로, 푸슈킨은 결투에서 복부관통상을 입고 반나절 이상을 신음하다가 죽었다), 불쌍한 하이네는 여러 해를 중풍으로 병석에 누워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개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나 마트료나 사비쉬나 따위가 고통을 맛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그들의 생활은 무미 건조하기 짝이 없어서 만약에 고통마저 없다면 아주 공허하게 되어 아메바의 생활과 다를 바가 없게 될 텐데 말이다.”(322쪽) 그는 이런 논리, 즉 우리가 아메바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고통은 필요하다는 ‘고통의 철학’에 압도당해서 아예 병원에 가는 일조차 그만두고 만다.

 

작가 체홉은 삶의 문제에 대한 ‘철학화’, 혹은 삶에 대한 철학의 (과잉)결정에 언제나 회의적이었다(때문에 그는 톨스토이즘과도 결별한다).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의 ‘고통의 철학’(=고통의 일반화) 또한 그 자체의 논리로는 완벽하지만, 거기에는 고통의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고진의 표현을 빌자면, 거기엔 ‘이 나’의 고통, 즉 고통의 단독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안드레이 예피므이치 라긴’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막연하게 존재했다. 즉 존재했던 것은 ‘안드레이 예피므이치 라긴’이란 단독자가 아닌 그의 유령이자 그림자였던 것이다.

“내가 왜 죽어야 하나?”가 아니라 “아아, 어째서 인간은 죽어야 하나?”와 같은 철학적 상념에 빠져서 책읽기에만 몰두하던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그러던 차에 어느 봄날 정신병동인 6호실을 방문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유일한 대화상대가 될 만큼 사색적이고 총명한 청년을 만난다. 피해망상증 환자로 분류돼 6호실에 수용된/감금된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였다(사람들은 그를 애칭인 ‘바냐’로 불렀는바, 그는 ‘바냐 총각’이다).

“일반 사람들은 행복이나 불행을 외부에서 구합니다. 즉, 마차(=여행)나 서재(=독서)에서 구합니다만 사색적인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습니다.”(341쪽)란 의사 안드레이의 ‘철학’에, 환자 이반은 “그런 철학은 오렌지꽃이 피는 따스한 그리스에 가서나 설교하시죠. 여기선 기후가 맞지 않으니까요.”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의사가 늘어놓는 ‘스토아 철학’ 예찬에 대해서 환자는 성난 표정으로 말한다. “외적인 것, 내적인 것… 미안합니다만 내게는 이해가 안됩니다. 내가 아는 건 신이 나를 따뜻한 피와 신경으로 창조했다는 한 가지 사실뿐입니다! 유기적 조직은 생활능력이 있는 경우에 모든 자극에 대해 반드시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난 반응을 하는 거죠! 고통에 대해서 나는 비명과 눈물로 대답하고 비열성에 대해서는 분개로, 추행에 대해서는 혐오로 대답하는 겁니다. 유기체가 저급이면 저급일수록 감수성이 둔하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약하며, 반대로 고급일수록 현실에 대해 한층 더 민감하게 정열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런 것을 어째서 모르십니까? 의사이면서도 이런 시시한 것도 모르다니!”(342쪽)

다소 길게 인용된 이 대목에서(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안드레이와 이반, 즉 의사-환자의 관계는 전도된다. 이것은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수행한 ‘가치의 전도’를 연상시키는데(사실 저급한 존재와 고급한 존재의 구별은 바로 니체의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가 따라서 ‘정신병자’ 바냐의 레슨이라는 형식을 띠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는 이렇게 말했다”가 되는 것이다(그의 성 ‘그로모프’의 어근인 러시아어 ‘그롬’은 ‘번개’ ‘벼락’이란 뜻이다).

이반이 무엇보다도 문제삼는 것은 인간의 평안과 만족이 자기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간주하는 현자적, 혹은 철학자적 태도이다. 그는 의사 안드레이에게 “당신은 인생을 깨닫느니 고통에 대한 멸시니 하는 문제를 꺼낼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즉, “당신은 예전에 괴로워한 적이 있나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나요? 당신은 어릴 때 회초리로 맞은 적이 있습니까?”(344쪽) 이에 대해서, 안드레이는 자신의 양친이 육체적 형벌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고 답하지만(즉, 그는 한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 이반 왈 “하지만 난 아버지한테 사정없이 맞았죠.”(작가 체홉 또한 식료품 가게 주인이었던 아버지한테 어린시절 사정없이 맞았다.)

그러니 이반이 보기에 안드레이가 고통을 경멸하고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그가 생활(=삶)이란 걸 전혀 모르며 이론적으로만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에 대한 구분이나, 생활과 고통, 죽음에 대한 경멸 따위는 모두 러시아 놈팡이들의 철학에 불과하다(놈팡이들이 부유하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한 놈팡이 철학의 궁극적인 귀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같은 6호실에 감금돼 있는, 멍청한 얼굴에 뚱뚱하게 비계살이 찐 농부인바,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하거나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몸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먹기만 하는 불결한 동물이었다.”(317쪽)

병동의 수위 니키타가 그의 시중을 들 때마다 자기 주먹이 아픈 것도 아랑곳없이 힘껏 때려 패지만, “무서운 것은, 그가 얻어맞은 사실이 아니라, 이 무감각한 동물이 구타에 대해서 비명이나 몸을 피하거나 눈을 부라리는 따위의 반응조차 나타내지 않고, 묵직한 통처럼 약간 흔들릴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무감각한 동물’ 혹은 ‘묵직한 통’은 현실을 초월해 있으며,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철학적인’ 통은 ‘디오게네스의 통’이라 할 만하다.

요컨대, 고통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이 농부야말로 철학자연하면서 고통을 무시하는 의사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의 짝패이자 이면이다(안드레이 왈 “디오게네스는 통속에서 살았습니다만 지상의 모든 국왕보다도 행복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이반의 결론은 이렇다. “당신은 고통을 무시하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 역시 손가락이 문에 찌이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댈 겁니다!”(345쪽)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이러한 이반 드미트리치와의 대화에 감명을 받아서 이후에 6호실에 자주 드나들게 되며 그로 인해서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사서 면직되며 결국은 ‘치료’를 위해서 강제적으로 6호실에 감금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그는 자신의 일상생활과 현실의 ‘바깥’이었던 이 정신병동에서야 비로소 생활이 무엇인지, 현실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된다. 즉,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한밤중에 산책을 나가겠다고 수위인 니키타를 윽박지르다가 난생처음 구타라는 걸 당하게 되는바, “갑자기 니키타가 문을 홱 열더니 두 손과 무릎으로 난폭하게 예피므이치를 밀어젖혀 놓고 주먹을 들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는 파도 위로 떠오르려고 하는 것처럼 양팔을 휘젓기 시작하다가 누구의 침대인지 붙잡았다. 그때 니키타가 두 번 등을 후려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공포심을 가지고 또 한번 얻어맞을 것을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369-70쪽)

안드레이는 자신이 20년 이상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고통’에 대해서 몰랐을 뿐 아니라,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에겐 비로소 “양심이, 니키타처럼 완고하고 난폭한 양심이, 그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오싹 소름이 끼치게 하는 분노로 몰아세웠다.”(370쪽) 하지만, 그건 좀 뒤늦은 분노였다. 그는 바로 다음날 저녁 무렵에 뇌일혈로 사망했으니 말이다.

다소간 어이없는 주인공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상자 속의 사나이>는 <6호실>을 닮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상징적 공간은 ‘6호실’에서 ‘상자’로 더 축소되었다(덕분에 그 상징성은 더 확대된다). 6호실에는 적어도 대여섯 명의 환자가 함께 감금돼 있었지만, 시골학교의 그리스어 교사 벨리코프의 ‘상자’는 오로지 그만의 것이다. 그가 왜 ‘상자 속의 사나이’인가? 그는 “날씨가 매우 좋은 때에도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드는 데다가 반드시 솜이 든 방한 외투를 입고 외출”했기 때문이다.

화자인 동료 교사 부르킨에 의하면, “어쩌면 그것은 격세유전의 한 현상으로 인류의 조상이 아직 사회적인 동물이 되지 못하고 각자가 자기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건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저 인간의 다양한 성격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243쪽) 어쨌든 벨리코프가 자신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격리시켜 방어하려는 ‘상자들’로 자기를 감쌀수록 그에게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자질, 즉 사회성은 배제/결여되게 된다. 이 벨리코프가 찬양한 것은 과거의 세계, 그리스어의 세계뿐이었으며, 그에게 인간은 “듣기 좋고 아름다운 말” 그리스어의 ‘안트로포스’에 의해서 지시될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꽤나 똑똑한 동료교사들을 포함해서 학교 전체가 꼬박 15년 동안 “언제나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들고 다닌 이 사나이”,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던 이 소심한 사나이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러시아 연구자들은 알렉산드르 3세(1881-1894)와 벨리코프의 친연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나이가 마흔이 넘은 이 노총각 벨리코프를 타지에서 온 동료교사의 누이인 서른 살의 바렌카와 결혼시키려던 일이 어떻게 실패로 돌아갔는가에 대한 것이다. “아무 일도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란 말(이 또한 그의 ‘상자’이다)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이 사나이에게 결혼이란 ‘일’만큼 어울리지 않는 것도 드물어 보이지만, 하여간에 그는 주변의 모의 덕분에 거의 결혼할 뻔한다. 하지만, 결혼 뒤에 어떤 일이 생길는지 확실할 수 없었던 벨리코프는 바렌카에 대한 청혼을 주저하며,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만다.

사건이란 건 언제나 활달하며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바렌카가 어느 일요일에 동생 코발렌코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걸 벨리코프가 목격하게 된 것을 말한다. 너무도 날씨가 좋아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활기차게 재잘거리고 지나간 바렌카와는 대조적으로 벨리코프는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로선 부인네나 처녀가 자전거를 탄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요컨대 ‘상자 속의 사나이’가 견딜 수 없었던 건 ‘살아있는 삶’이었다). 게다가 그건 공고로써 ‘허가’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충격을 받은 벨리코프는 다음날 학교도 결근한 채 저녁 무렵 여름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역시나 두꺼운 옷을 껴입고 주의를 당부하러 코발렌코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봉변만을 당하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바렌카는 예의 또 ‘하하하’ 하는 웃음을 터뜨리고, 결국은 ‘무슨 일이 터져버린’ 벨리코프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앓아 눕게 되며 한달 뒤에 죽고 만다.

벨리코프 이야기의 결말은 이렇다. “관 속에 든 그의 표정은 조용하고 편안해 보였으며 명랑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흡사 드디어 상자 속에 들어가게 해 주어서 이제 두 번 다시 그곳에서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기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렇죠, 그는 글자 그대로 자기의 이상에 도달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경의를 나타내려는 듯 장례식 날은 잔뜩 흐려서 비가 올 듯한 날씨였으므로 우리들은 모두 덧신을 신도 우산을 들고 있었습니다.”(255-6쪽)

 

 

요컨대, ‘상자 속의 사나이’의 삶은 상자(관) 속에 들어감으로써 완성된 것인데, 그러한 사실이 암시하는 것은 그의 ‘상자-속의-삶’이란 것 자체가 이미 절반은 죽은 삶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죽음(=상자)이란 외피를 두름으로써만 연명할 수 있었던 삶, 살아있지만-죽어있는 삶을 살았던 것. 그렇다면, 이 작품 또한 ‘살아있는 삶’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인바, 이 주제는 성 바울의 주제(“너희는 너희가 살아있는 줄 아느냐?”)이면서 동시에 러시아문학의 고유한/유구한 주제이기도 한다(특히 도스토예프스키 계보의 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체홉은 러시아 문학의 전통 바깥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주제를 제기만 할 뿐,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구별된다.

사실 <상자 속의 사나이>는 벨리코프의 죽음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벨리코프의 죽음으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제는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생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이 고지식하고 걱정스럽고 무의미한 생활,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도 않은 생활, 요컨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벨리코프는 무덤에 묻혔지만 그런 ‘상자 속의 사나이’는 많이 있으며 앞으로 또 나올 것이었다.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것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니콜라이 2세(1894-1917)의 치세에 견주지만,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꾼” 치세가 러시아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화자 부르킨은 헛간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에겐) 어둠의 적막 속에서 여러 가지 고통이나 괴로움이나 슬픔에서 벗어나 밤의 그늘에 감싸여 왠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슬프고 아름다워지고 어쩐지 하늘의 별들도 정다운 감동을 지닌 눈길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지상에는 이제 악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원만하게 수습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257쪽) 벨리코프의 ‘코믹’한 삶에 덧붙여진 것은 이렇듯 지상의 악에 ‘무심한 자연’이 낳는 ‘우수’이다(‘무심한 자연’은 투르게네프의 주제이다).

체홉과 동시대의 러시아 작가 레스코프는 “사방이 다 6호실이다. 이것이 러시아다”라고 말했고, 한 여성 작가는 “저에겐 전 러시아가 상자 속 같이 느껴진답니다”라고 체홉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진단을 더 확장하여 “세계는 6호실이다” 혹은 “세계는 상자 속이다”, “우리 모두는 상자 속의 인간”이라고 일반화시켜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예 ‘상자성’이라는 일반 개념까지 만들어서 말이다. 그럴 경우, 체홉의 문학은 러시아 문학을 거쳐서 문학 일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이 갖는 ‘개별성(부분)-일반성(전체)’의 구도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언어와 비극>의 한 장 “단독성과 개별성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옛날 논리학으로는 결코 ‘이 나’와 같은 것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근대소설에서는 확실히 일반적이지 않은 ‘이 나’가 쓰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별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일반적인 것입니다. 근대소설은 오히려 개별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는 장치입니다… 따라서 단독성은 문학이 아니라 반대로 논리학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356-7쪽)

고진에 따르면, 문학(특히 근대소설)은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논리학이 다루는 ‘단독성-보편성’의 구도와는 무관하다. 즉 “마담 보바리는 나다, 곧 우리는 마담 보바리이다”라거나 “안나 카레니나는 나다, 곧 우리는 안나 카레니나이다”와 같은 개별성의 일반화, 혹은 상징화가 근대소설이 가진 특장이었는바, 그것은 진정한 단독성/보편성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인용한 대목이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하지만, 고진 자신이 주장하듯이 단독성의 문제는 “고유명의 문제로 귀착”(449쪽)되며, 문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고유명의 세계인데, 문학에서는 단독성이 발견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잉)일반화로 보인다.

“우리는 마담 보바리이다”라거나 “우리는 안나 카레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마담 보바리’나 ‘안나 카레리나’라는 개별성이 ‘우리’라는 일반성으로 곧장 환원된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가 고유명인가 그러지 않는가는 개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455쪽)다는 고진의 주장을 그대로 되돌려주자면, 문학(이라는 고유명사적 세계)에서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를 보는가, 단독성-보편성의 구도를 보는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간) 결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근대소설은 근대소설 자체를 넘어선다는 고진의 주장을 역시 그에게 되돌려주자면, (진정한)근대소설은 “근대소설은 오히려 개별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는 장치”라는 규정을 넘어선다.

하지만, 고진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에도, 체홉의 문학은 근대소설에 못 미치거나 그것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에서 개별적인 것(고유명사)은 언제나 일반적인 것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체홉의 문학은 ‘개별성-일반성’의 구도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고진은 그러한 구도를 넘어서는 일이 ‘단독성에 집착하는 작가’ 카프카처럼 오히려 알레고리를 선택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언급하는데, (체홉의 경우를 보건대) 알레고리가 아닌 다른 방식 역시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것은 알레르기의 방식이다.

가령 <상자 속의 사나이>의 결말에서, 부르킨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수의사 이반 이바느이치가 “우리가 숨막히는 좁은 동네에 살면서 필요도 없는 서류를 쓰거나 카드놀이를 하는 것, 그것도 역시 상자와 다름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게으름뱅이나 궤변가나 주책없는 경박한 여자들과 일생을 보내고 여러 가지 어리석은 말들을 주고받는 것, 그것도 일종의 상자가 아닐까요?”(257쪽)라고 동의를 구하면서 “이제는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없어요!”라고 결론을 내리자, 부르킨은 이렇게 대꾸할 따름이다. “또 얘기가 빗나갔군요. 이반 이바느이치. 아무튼, 오늘은 잠이나 잡시다.”(258쪽)

 

후기 톨스토이식의 ‘(도덕적) 교화로서의 문학’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체홉은 우리의 삶이 그렇게 한 순간에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언제나 거창한 이념이 아닌, 삶의 ‘부스러기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한 그가 모든 종류의 일반화, 곧 철학화에 알레르기를 보였던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알레르기를 선택함으로써, 체홉의 문학은 고진이 말하는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를 넘어서 ‘단독성-보편성’의 구도로 진입한다.

‘개별성/일반성’과 ‘단독성/보편성’을 구별하는 고진의 사유가 가장 빛을 발하는 대목은 (내 생각에) 세계종교론에서이다. 고진의 ‘세계종교’와 대별하고 있는 것은 ‘공동체의 종교’인바, 이것은 “인간이 집단이나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 강제되는 다양한 구조/시스템”(241쪽)이다(고진이 이렇듯 종교를 광의의 의미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문화와 등가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공동체 종교의 대전제는 안(=내부)과 바깥(=외부)의 구분이다. 반면에 이러한 공동체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출현한 세계종교는 더 이상의 외부가 없는 세계, 즉 ‘외부가 없는 세계’로서의 ‘무한한 세계’를 제시하는 종교이다. 이 세계종교의 구호는 두 가지인바, “신을 두려워하라”와 “타자를 사랑하라”가 그것이다.

고진은 이러한 관점을 유대교에 적용함으로써 유대교에 내재해 있는 (모순적인) 두 가지 계기를 ‘모세의 신’과 ‘야훼의 신’으로 구별/분리해낸다(이러한 구별/분리를 매우 힘겨워하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지젝과 대조된다). 그에 따르면 야훼의 신은 유대 공동체의 신이며, 반면에 공동체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모세의 신은 세계종교의 신이다. 이 모세의 신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에서 나가라’라고 이른바 ‘사막에 머물라’고 고한다(259쪽). 그리고 이때의 ‘사막’은 꼭 물리적인 사막이란 의미가 아니며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라는 의미이다.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상업적 공간이고 교통공간이다(고진은 사회를 그러한 교통공간으로 규정한다). 독백이 아닌 대화가 가능한 것은 그러한 (교통)공간, 즉 ‘사막’에서일 뿐이다.

 

 

 

 



 

 

 

세계종교가 ‘사막의 종교’란 의미에서 세계문학 또한 ‘사막의 문학’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은 모든 공동체를 거부하는 공동체 ‘바깥의 문학’이며,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문학’이다. 거꾸로 공동체의 존속과 안녕을 위한 문학은 어떠한 경우에도 세계문학이란 이름에 값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문학은 세계문학이 아니며, 세계문학은 민족문학이 아니다. (올바른)민족문학이 곧 세계문학이 된다고 믿는 것은 우리의 공동체적 편견에 불과하다. 세계문학이란 야훼의 신이 아닌 모세의 신을 섬기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문학의 대척점에서 공동체의 문학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야훼의 신이 번창하듯이 공동체의 문학 또한 번성해왔고 번성해갈 것이다. 이것을 나는 ‘상자 속의 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상자 속의 문학’은 공동체문학의 다른 이름이고 민족문학의 다른 이름이며, 상업주의 문학의 다른 이름이다(상업주의는 고진이 말하는 ‘상업적 공간’과 무관하다). 이 ‘상자 속의 문학’은 모든 외부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종족과 재산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든다. “항상 색안경을 끼고 털 스웨터를 입은 데다가 귀를 솜을 싸고, 합승마차를 타면 반드시 포장을 치게 한다.” <상자 속의 사나이>에서 벨리코프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상자 속의 문학’이 가장 편하게 들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상자(관) 속이다.

앞에서 나는 체홉의 전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1890년의 사할린 여행이라고 적었다. 고진의 표현을 빌자면, 사할린이야말로 체홉에게서 공동체의 바깥, 즉 ‘사막’이 아니었을까? 그가 ‘(재능 있는) 생계형 작가’에서 진정한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나는 그 ‘사막의 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진에 따르면, 이 ‘사막의 발견’은 데카르트에게서 의심하는 주체, 즉 ‘코기토의 발견’에 맞먹는 것이다. 코기토란 것은 상이한 다수의 공동체의 차이를 지각하는 것이고, 자기가 사는 공동체의 임의성/우연성을 아는 것이다(265쪽).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인류학적’ 코기토이며, 체홉이 사할린 섬에서 수행했던 작업 역시 (우연찮게도) 인류학적 현지조사였다.

 



<6호실>에서 6호 병동이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에게 뜻하는바 또한 ‘사막’에 다름 아닌데, 그곳에서 자신과 전혀 생각이 다른 타자, 즉 다른 언어로 말을 하는 이반 드미트리치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즉 6호실은 그의 삶에서 유일한 교통공간이자 사막이며, 거꾸로 소도시 사람들에게는 ‘공동체’를 위해서 배제되어야 하는 ‘외부’ 공간이다. 병동 수위 니키타의 물리적 폭력은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구분하는 비가시적 폭력의 가시적 대응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방이 다 6호실이다. 이것이 러시아다”라고 한 레스코프의 말은 <6호실>에 대한 부적절한 일반화이다. 러시아에는 ‘6호실’이 넘쳐나는 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우리에게 6호실을 달라!”고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해서 겉보기와는 달리, 교통공간으로서의 ‘6호실’은 ‘상자’와는 전혀 다른 의미연관을 갖는다. <상자 속의 사나이>에서 ‘6호실’에 대응하는 것은 (가능할 뻔했던) ‘바렌카와의 결혼’이다. 그것이 공간으로 표시될 수 있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바렌카는 소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온 타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러시아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큰소리로 ‘하하하’ 웃는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벨리코프 또한 그녀의 그러한 모습에 반하지만, 그에겐 자신의 ‘상자’를 벗어 던지고 진정 타자를 사랑할 용기가 결여되어 있었다. 때문에, 갑자기 ‘돌발적인 사건’(kolossalischeSkandal)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그는 만들어내기라도 했을 텐데), “그도 결국은 청혼해서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결혼이 성립되었을 것”(250쪽)이라는 부르킨의 예상은 부정확해 보인다. 그가 말하는 ‘돌발적인 사건’이란 벨리코프에게서 ‘진정한 사건’을 가로막는 버팀목으로서의 유사-사건이기 때문이다. 벨리코프의 삶에서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자세하게 읽어본 체홉의 두 작품 <6호실>과 <상자 속의 사나이>는 각각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이반 드미트리치’, ‘벨리코프-바렌카’란 고유명 쌍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만남은 (외부적) 편견에 의해서, 그리고 (내부적) 의지 결핍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하지만, 고유명이 관여한다고 해서 어떤 이야기가 막바로 보편성의 차원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고진이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문학의 보편성이란 건 그것이 (고진의 용어로) ‘공동체’가 아닌, 교통공간으로서의 ‘사회’를 문제삼을 때 얻어진다. 내가 체홉의 문학을 공동체의 문학이 아닌 세계문학의 범주에서 읽고자 하는 것은 그에게서 그러한 ‘사회에의 관심’을 읽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대략적이나마 ‘진짜 문학’으로서의 ‘세계문학’이 무엇인지는 밝혀졌으리라고 본다. 이제 그것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따져볼 차례이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며 이미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한 문학은 우리게 (우물이 아니라) ‘사막’을 보여주는 문학이며 ‘사막’을 체험하게 하는 문학이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인류학적 여정을 가능하게 문학이다. 해서,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임의성/우연성을 자각하게 함과 동시에 세상은 넓다는 건 교육하는 문학이다. 고진이 인용하고 있는 ‘non-Jewish Jew’(비유대적 유대인)이란 표현을 비틀면, 우리로 하여금 ‘non-Korean Korean’(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한국)문학이 가져야 할 몫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문학을 갖고 있는가?

04.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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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7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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