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인지라 월요일이란 느낌을 가질 수가 없는데, 밀린 일들이야 어찌됐던 그런 휴일을 좀 느끼게 해주는 칼럼이 있어서 옮겨온다. 이미 한국문학사 속에 편입된 소설가 김연수가 오늘자 한겨레에 기고한 것이다. 몇 가지 이미지를 보충해놓는다.    

한겨레(06. 07. 17) 칠순 소피아 로렌의 누드사진보다 세월 녹아든 오드리 헵번이 아름답다

-거리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24쪽 분량의 단편소설이 있다. 그게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려면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이란 노래를 들어봐야 한다. 그 노래를 지은 밥 딜런이 자기가 쓴 소설에서 가사를 따왔다니까.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이 노래를 들었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것은 1993년 동숭아트홀에서 영화 <백 비트>를 볼 때였다. 비틀스의 초기 역사를 다룬 영화인데, 독일 함부르크를 향해 떠나는 배 안에서 고작 스무 살 안팎이었던 비틀스 멤버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한번 구르는 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물씬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구르는 돌처럼’이 입구에서 삶을 바라보는 젊은이의 노래라면 비틀스의 ‘나 살아가는 동안’(In My Life)은 뒤돌아보면서 부르는 노래다. 당시 <백 비트>의 영화 팸플릿에는 주인공인 스튜어트 셔트클리프를 추억하기 위해 존 레넌이 만든 노래라고 적혀 있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비틀스의 초기 멤버였던 스튜어트는 함부르크에서 만난 사진작가 아스트리드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다가 21살의 나이로 숨진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감안해서 “어떤 사람들은 죽었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나 살아가는 동안 그들 모두를 사랑했네”라는 가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그렇긴 해도 존 레넌은 이 노래를 너무 빨리 불렀다. 지금쯤 이 노래를 불렀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나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해 오지 오스본이 이 노래를 불렀다. 오지 오즈번도 이제 환갑이 2년 앞이다. 한때 자타가 공인한 악마의 목소리로 느릿느릿 ‘나 살아가는 동안’을 부르고 있는 오지 오즈번을 보노라면, 인생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거지에게 적선하겠지만, 내일은 그 거지가 될 수도 있다던 ‘구르는 돌처럼’의 가사처럼 어제는 악마의 목소리, 오늘은 늙은이의 푸념. 이런 인생이 어찌 멋지지 않을까.

-오드리 헵번(1929-1993)의 탄생 70돌을 기념해서 만든 책 <오드리 헵번>에 실린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살아가는 동안 한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해가는지 깜짝 놀라게 된다. 오드리 헵번은 정말 아름답다. 젊은 시절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나이가 들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그건 보톡스의 힘도, 성형수술의 힘도 아니다. 나이 든 오드리 헵번의 얼굴은 자신을 거쳐 간 세월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람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그런 얼굴로 오드리 헵번은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아프리카로 갔다.

 

 

 

 

-그에 비하면 72살의 나이로 누드사진을 찍겠다고 나서 전 세계의 할머니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피아 로렌(1934- )의 얼굴은 좀 징그럽다. 변하지 않는 미모라는 건 정말 끔찍하다. 변하지 않는 인생처럼.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봤다면 생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생각이 어떻게 바뀌느냐는 점이다. ‘구르는 돌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져볼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도 바로 그 때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 순간 발휘된다. 젊은이들 못잖은 탱탱한 피부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때가 아니라.

-늘씬한 몸매가 보고 싶다면 젊음 여자 사진이 있는 달력을 사서 걸어놓으면 될 일이지, 굳이 소피아 로렌의 달력을 살 필요가 있을까. “내가 나이 들어 머리 다 빠지는 먼 훗날에도 밸런타인 카드와 와인 보내줄 거지?”(내가 64살이 되면)라고 폴 매카트니가 노래했다. 소피아 로렌에게도 와인이나 한 병 보내줘야겠다. 밸런타인 카드는 빼고.

06. 07. 17.

 

 

 

 

P.S. '나 살아가는 동안'의 가사를 옮겨놓는다.

 

 

 

 

 

Beatles - In My Life

There are places I'll remember
All my life, though some have changed
Some forever, not for better
Some have gone and some remain
All this places have their moments
With lovers and friends I still can recall
Some are dead and some are living
In my life, I've loved them all

But of all these friends and lovers
There is no one compares with you
And these memories lose their meaning
When I think of love as something new
Though I know I'll never lose affection
For people and things that went before
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In my life, I love you more

Though I know I'll never lose affection
For people and things that went before
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In my life, I love you more
In my life-- I love you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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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7-17 23:33   좋아요 0 | URL
가사를 보고 있으니 노래를 따라하게 되네요. ㅎㅎ

로쟈 2006-07-18 00:17   좋아요 0 | URL
다른 곡들에 비해 특별히 더 좋아했던 곡은 아니지만 저도 하도 듣던 곡이라 귓가에 맴돌긴 합니다.^^

푸른괭이 2006-07-18 03:29   좋아요 0 | URL
김연수는 소설도 잘 쓰지만 에세이도 참 잘 쓰는 듯해요. 여러 모로 공감.

로쟈 2006-07-18 07:42   좋아요 0 | URL
그게 같은 거라고 봅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나 결국엔 사유와 성찰의 깊이 + 문장력이니까요...

stella.K 2006-07-18 10:43   좋아요 0 | URL
김연수가 대세로군요. 오드리 헵번 좋아해요. 소피아 로렌 좀 심하군요. 팔뚝보니 나이는 속일 수 없는가 봅니다. 늙는 것이 추한 것마는 아닐텐데 외모지상주의가 걱정이군요. 물론 걱정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이놈의 사회분위기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퍼그 2006-07-19 00:43   좋아요 0 | URL
이 노래 가사가 이런 내용이었네요! (수십 번도 더 들었던 노래인데;;) 지나간 것들을 더 사랑한다니, 왠지 존을 더 사랑하고 싶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