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의 한 대목 읽기. 먼저 들뢰즈의 천재성: "들뢰즈의 천재성은 그의 초월적 경험론이라는 개념에 있다. 초월적인 것을 경험적 자료의 풍부한 흐름을 구조화하는 형식적 개념적 그물망으로 여기는 표준적인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들뢰즈의 '초월적인 것'은 현실보다 무하하게 '더 풍부하다.'(the Deleuzian 'transcendental' is infinitely RICHER than reality) 그것은 잠재성들의 무한 퍼텐셜(*포텐셜)인바, 이 장으로부터 현실이 현행화되어 나온다... 대립물들의 역설적 짝짓기(초월적+경험적)는 구성된 혹은 지각된 현실의 경험 너머(또는 차라리 아래)에 있는 경험의 장을 가리킨다."(19-20쪽)

 

 

 

 

그러니까 들뢰즈의 초월적인 것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형식적/개념적 그물망이 아니라 잠재성들의 무한 포텐셜이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아마도 잭슨 폴록(1912-1956)은 궁극적인 '들뢰즈적 화가'일 것이다. 그의 액션 페인팅은 이 순수 생성의 흐름, 비인격적-무의식적 삶의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가?.."

 

"폴록의 개성(술주정뱅이 미국인 마초)에 대한 숭배는 이러한 근본적인 특징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그이 작품은 그의 개성을 '표현'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양'하거나 말소한다." 그러니까 아래와 같은 그의 그림은 그의 개성과 무관한 탈주체적, 비인격적, 비인칭적 작품이라는 것.

 

거기에 붙은 각주: "그렇다면 폴록-로트코의 대립은 어떤가? 이는 들뢰즈 대 프로이트/라캉의 대립에, 즉 포텐셜들의 잠재적 장 대 최소 차이(배경과 형상의 간극)의 대립에 사응하지 않는가?"(21쪽) 로트코는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을 말한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화가인 그는 간단한 설명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감상적이고 과장된 추상표현주의 양식에 인간의 내면을 관조하는 명상적 성찰을 도입했다. 색채를 유일한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그의 표현방식은 이른바 '색면파'(Colour Field Painting)를 낳게 했다."

로스코가 왜 프로이트/라캉주의적 화가인지에 대해서는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듯하다. 그에 대한 소개를 좀더 따라가보면, "로스코가 초기에 채택한 사실주의 양식은 1930년대 말에 그린 <지하철 Subway> 연작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작품들은 단조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고독을 잘 보여준다. 1940년대초에 이르러 그의 사실주의 양식은 종교의식을 주제로 한 <세례 장면 Baptismal Scene>(1945,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처럼 거의 추상화된 생물 형태들로 이루어진 표현 형식으로 바뀌었고 1948년경에는 매우 개성있는 추상표현주의 양식에 도달했다."(*아래는 <지하철> 연작의 하나인 <지하철 입구>[1938]) 

"로스코는 대부분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격렬한 붓놀림이나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고 뿌리는 극적인 표현기법에는 결코 의존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 동작이 나타나 있지 않은 그의 그림들에는 서로 스며드는 듯한 커다란 색면들이 나란히 병치되어 있어, 마치 그것들이 몽롱한 공간 속에 그림 평면과 나란히 떠 있는 듯이 보인다. 로스코는 이 기본양식을 계속 단순화하여 세련되게 다듬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부드러운 윤곽을 가진 2~3개의 직사각형만으로 구성을 제한했고, 이 직사각형들은 마치 추상화된 기념비적 성상처럼 벽 크기의 수직 화폭을 거의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같은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부분적인 색채 간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보는 사람들에게 놀랄 만한 친밀감을 주었다." 그러니까 같은 추상 표현주의 회화를 개척했음에도 불구하고 폴록과는 달리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에서 임의성을 배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통제와 스타일이 갖는 의미는 로스코에 관한 책들을 참조해야겠다.

 

"1958~66년에 그는 14개의 거대한 화폭(가장 큰 것은 가로가 3m, 세로가 5m나 되었음)에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들은 결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예배당에 걸렸는데, 특정 종파와 관계가 없는 이 예배당은 그가 죽은 뒤 로스코 예배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그림들은 신비스럽게 빛나는 갈색·적갈색 및 빨간색·검은색으로 그린 모노크롬이었다. 그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로스코가 말년에 신비주의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말년에 그는 그의 그림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예술가들이 그를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고, 건강마저 나빠지자 자살했다."
 
해서, 로스코와 폴록, 혹은 추상 표현주의에 있어서 프로이트-라캉주의 화가와 들뢰즈주의 화가. (배경과 형상 사이의) 최소한의 차이 대 포텐셜들의 잠재적 장...
 
06. 07. 18. 
 
P.S. 때마침 마크 로스코 전시회가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 '마크 로스코: 숭고의 미학'이 그것인데, 서울 한남동 리움에서이며 기간은 지난 6월말부터 9월 10일까지이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06. 17) “분석 말고 느껴봐요” 색의 손짓…로스코 걸작선
 
-2차 세계대전 후 미술의 중심지는 파리에서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옮아갔다. 이와 함께 뉴욕에는 일명 액션 페인팅으로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의 물결이 몰아쳤다. ‘뿌리기 선수’ 잭슨 폴록을 위시해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등은 눈에 보이는 현상·사물을 묘사하지 않고 자유롭게 물감을 사용해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이들은 뿌리기와 즉흥적 붓질 등 본능에 의지한 작업을 통해 화폭 위에 미술을 창조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려 했다.
 


-이와 동시에 액션 페인팅과는 전혀 다른 경향의 추상표현주의가 있었으니 바로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70), 바넷 뉴먼으로 대표되는 색면추상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화들이 우리나라에 왔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로스코의 작품을 선보이는 ‘마크 로스코: 숭고의 미학’이 9월10일까지 서울 한남동 리움에서 열린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에는 시기별 걸작 27점이 전시돼 구상에서 추상으로 차츰 변화하는 화풍을 감지할 수 있다.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조도를 낮춘 전시실에는 1920년대 그린 수채화 작품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한 70년에 그린 작품까지 고르게 걸려 있다.

-로스코는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갔다. 젊은 시절 드라마와 신화, 정신분석학에 심취했던 그는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과 니체의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로스코는 생전 회화를 음악과 시가 지닌 통렬함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어 화가가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도시풍경과 건축구조물에 관심을 갖다가 점점 절제된 형상, 화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색채를 그렸다.
 


-“어떤 화가들은 모든 것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말을 적게 할수록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는 믿음을 견지했던 로스코는 대형 캔버스에 두세 개의 색을 칠했다. 서로 다른 색면이 서로 부드럽게 스며있는 듯한 ‘로스코표’ 색면추상화 양식은 50년대 이후 완성됐다. 직사각형의 테두리는 몬드리안의 기하추상처럼 반듯하지 않다. 삐뚤삐뚤하고 제목도 ‘무제’다. 붓자국도 없다. 보이는 것은 거대한 색면뿐이다. 대형 화폭 위에 그려진 색면들은 묘한 아우라를 뿜어내면서 관람객을 압도한다.

-처음 작품을 접하는 관객들은 아름다움도 추함도 느낄 수 없는 그림 앞에서 당혹해한다. ‘대체 무얼 그린 걸까.’ 분석하려 하지 마라. 평온하고 차분한 색면화를 응시하다보면 어느 틈엔가 캔버스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로스코가 원했던 것이다.

-로스코는 형상을 재현하고 싶어했던 전통적인 서양 미술사의 욕망을 뛰어넘어 그림을 통해 숭고의 경험을 극대화하고 싶었을 뿐이다. 전시 준비를 위해 내한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의 루스 파인 큐레이터는 “로스코는 예술가와 감상자 사이의 진지한 대화를 원했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보다 감상하기를 희망했던 작가였다”고 소개했다. 로스코전과 함께 고 백남준을 추모하는 특별전 ‘백남준에 대한 경의’도 함께 열린다.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14점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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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6-07-1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코는 언젠가부터 저에게는 후기 자본주의 허상의 극대점으로 보여져 영 마음 안가는 화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단순무식하게 생각해서 그 비싼 물감을 그렇게 거대한 크기로 범벅해놓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가 싶어요.

로쟈 2006-07-1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림만 좀 본 적이 있을 뿐이고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합니다. 한데 비싼 물감을 범벅으로 칠해놓았다는 거 정도가 흠이 되는 건가요? 사실 그러한 탕진 행위는 '자본주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데요. 북미 인디언들의 포틀래치를 봐도 그렇고...

Joule 2006-07-1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모든 이야기를 너무 머리로 이해하시는 경향이 있군요. 그런 게 흠이 되지는 않지요, 물론.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더란 말이었습니다. 사실 내막은 모르지요. 그런 그가 알고 보면 10평도 안되는 방에서 일주일 내내 다깡 하나 놓고 밥먹는 화가일 지도 모르잖아요.

로쟈 2006-07-1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로 이해하는 게 제 단점이죠.^^ 한데,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머리로 이해하는 거라고 해서 그런 단점도 쓸모는 있는 거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biosculp 2006-07-1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폴록의 작품을 하나 사서 집에 걸어놓았는데(복사본입니다), 전공한 분들이 그냥 느끼라고 해서 그냥 느꼈는데 별로 안느껴 지더군요. 그래도 보던 그림에 대한 글을 보니 반갑군요. 로스코는 처음 듣는 화가인데 이화가 작품도 한점 구입해서 봐야겠군요.

주니다 2006-07-1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경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의 설치 장면입니다. 작품이 굉장히 큽니다. 실제로 보면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엄습할 듯 합니다.^ ^ 네덜란드 가서 꼭 보고 싶습니다.

로쟈 2006-07-1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생한 사진이네요! 근데, 렘브란트는 아래 페이퍼인데요.^^

biosculp 2006-07-1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경의 크기를 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군요.
이런건 복사본으로는 안되겠고 빔프로젝트로 봐야되겠군요.

주니다 2006-07-1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실수를..ㅋㅋ 렘브란트 관련 페이퍼의 제목도 수정하실겸 해서 본문으로다 좀 옮겨주세요. ㅎㅎㅎ

2006-07-19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19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제가 그럴 역량은 안되구요. 지젝이 간단히 언급한 걸 그냥 이미지 버전으로 만들어보았을 뿐입니다. 로스코 전시회가 있었나요?^^

2006-07-20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2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