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의 <오월의 밤>(생각의나무, 2007)과 함께 낮에 배송받은 책은 이인식의 <유토피아 이야기>(갤리온, 2007)이다. 과학저술가의 책으론 이채롭게도 '유토피아'란 단일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다가 516쪽의 분량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매품 <미래교양사전>(갤리온, 2006)을 같이 껴준다는 '이벤트'도 고려가 됐다(작년에 과학저술로는 호평을 받은 책이었다).

한데, 결론을 말하자면 '오판'이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부터 조지 오웰의 <1984년>까지, 세상이 두려워한 위험한 생각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라고 하지만 저자가, 아니 '편역자'가 해놓은 일이란 건 10쪽의 프롤로그의 외에 각 저자의 생애와 줄거리에 관한 간단한 소개, 그리고 발췌 번역이 전부이기 때문이다(무엇을 추적했다는 말인가?). '이인식 쓰고엮다'라고 적었지만 분량으로 치자면 그냥 '옮기고 엮은 책'이라고 해야 온당하다.

소개대로 "다루고 있는 책은 플라톤의 <국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며>,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 예프게니 자먀틴의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년> 등이며 세계 문학사의 이정표가 된 작품들을 해석과 함께, 원문을 소개한다."

나는 미처 '원문을 소개한다'는 걸 간과한 탓에 이 책이 저작이라기 보다는 발췌번역본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것이고, 그게 나의 불찰이라면 불찰이다. 프롤로그의 첫문장대로 "이 책은 이상사회를 묘사한 대표적인 저술을 문학작품 위주로 골라서 그 내용을 간추려놓은 유토피아 길라잡이"인 것이다. 일종의 다이제스트북인 셈. 그게 이 책의 주제이다. 자기 주제.  

때문에 "이 책은 그러한 면에서 국가와 종교, 문학과 철학,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사상가들의 창조적인 성찰과 통합적 사유의 모습을 보게끔 인도하는 나침반이라 할 수 있다."는 광고는 과장으로 읽힌다. 개별 작품에 대한 자세한 분석도 해설도, 전복적인 해석도 제시하지 않는 책이 무슨 '나침반' 구실을 할 거라는 건 공상에 가까운 것 아닐까? 해서,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사들인 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실망스러운 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결과적으론 비매품 <미래교양사전>만을 고가에 구입한 것이 돼 버렸군...

07. 05. 08.

P.S. 책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지 않은 나의 불찰을 적었지만(인터넷 구매의 맹점이다. 서점에서 책을 미리 살펴봤다면 절대로 구입하지 않았을 책이다), 저자의 불찰도 만만치는 않다. 9종의 책을 소개하면서 "원문은 번역판이 출간된 7종의 경우,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원문을 좀더 충실히 소개하기 위해 직접 옮기는 작업을 했음을 밝혀둔다."(6쪽)고 했는데, 그런 수고를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도 의문이거니와, 플라톤의 <국가> 등은 '원문'을 옮긴 것이 아니라 '영역본'을 옮긴 것이다. 게다가 <국가>의 경우 참조한 책도 원전 번역인 박종현본이 아니라 영역본을 중역한 최현본이다. 기본적인 서지에도 둔감한 경우이다.  

 

 

 

 

거기에 "국내에 번역판이 나오지 않은 <뒤를 돌아보며>와 <우리들>의 원문은 이상헌 박사가 옮기는 작업을 맡아주었다."고 돼 있는데, 이 또한 절반은 불필요한 수고였다. 편자가 '예프게니 자먀틴'이라고 옮기고 있는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열린책들, 2006)은 이미 오래전에 번역되었고 개정판까지도 작년에 출간됐기 때문이다('Zamyatin'은 '자먀찐'으로도 '자먀틴'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Yevgeny'를 '예프게니'로 읽는 건 무지이거나 겉멋의 소산이다. 음악 애호가들이 <예브게니 오네긴>을 <예프게니 오네긴>으로 잘못 읽는 것처럼).

러시아 작품이어서 먼저 훑어보았지만 '편자'는 <우리들>에 대해서, 작가의 생애에 관해 4쪽 가량, 그리고 줄거리 10쪽 가량, 나머지 30쪽 가량은 작품 일부의 발췌로 채워놓고 있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교양'을 채워주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작가 생애나 작품 줄거리는 인터넷상에 얼마든지 떠다닌다), '허접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상 편자 자신이 그러한 우려를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지난 여름부터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나에게 반신반의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과학 저술에 전념해온 내가 유토피아 문학작품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어째 어색하고 미덥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은 표정들 같아 보였다."('책을 펴내며') 

그런 표정을 편자는 '과학과 문학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통념'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나는 '문학'을 너무 만만하게 본 편자의 '편견'에 더 큰 책임을 돌리고 싶다. 편자의 책을 몇 권 더 갖고 있지만 이런 '얕은 수준'의 책을 엮어내느니 그냥 과학저술가로서의 명망을 이어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공연히 나머지 책들에 대해서까지 의심을 사게 할 필요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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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5-08 18:38   좋아요 0 | URL
카테고리명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책이라, 이 말씀이군요.
그건 그렇고 <오월의 밤>은 어떻던가요?
고딕총서 시리즈도, 대강 훑어보기만 했지만, 왠지 땡기던데...

로쟈 2007-05-08 23:37   좋아요 0 | URL
'카테고리명'이라 하심은?(제가 낚였다는 말씀이군요^^;) <오월의 밤>은 <지칸카 근교 야화>에 실린 작품 댓편이 새로 번역되었기에 구입한 책입니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고, 액면으로야 고전이죠. 고골이 쓴 거니까...

2007-05-0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5-08 20:29   좋아요 0 | URL
허 이런. 저도 보관함에 넣어놨던 책이고, 당연히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럴수가. 엮은 책이군요. -_- 흠. 감사합니다. 서점가서 보고 사야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사면.

기인 2007-05-08 22:07   좋아요 0 | URL
오옷;;; 저도 감사;;;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

자꾸때리다 2007-05-08 22:54   좋아요 0 | URL
낚시질을 당하신 로쟈님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ㅋ

2007-05-09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5-09 01:16   좋아요 0 | URL
M님/ 번역 관련으로 문의드릴 일이 있었는데, 조만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프님/ 역시 물건은 실물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지요.--;
기인님. Mravinsky님/ '위로'까지야.^^;
G님/ 그렇군요. 사실 이런 낭패는 자주 겪는 일은 아닙니다. 잠시 이벤트에 눈이 멀었던 것이죠.--; 그리고 본의아니게 '압박'을 드린 셈이 됐는데, '가책'까지는 안 가셔도 되지 않을까요?^^;
 

요즘 당면한 과제 때문에 두통과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자투리 시간에 읽는 책들이다(일종의 '당의정'이다). 엊그제부터 붙들고 있는, '현대 역사학의 거장 9인의 고백과 대화'를 담은 <탐史>(푸른역사, 2007)가 그런 책이다. 이미 책이 출간되었을 때 소개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지만, 불만스런 제목과 포맷에도 불구하고 책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며 내용 또한 알차다. 나는 이 탐할 만한 책을 도서관에서 몇 주 전에 대출해놓고 바로 며칠 전부터야 한두 페이지씩 읽고 있다.

 

 

 

 

아홉 명의 역사학자들 중 가장 먼저 읽고 있는 건 <치즈와 구더기>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이다. "카를로 긴즈부르그(1939년생)는 현재 활동 중인 역사가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그만큼 글을 잘 쓰는 경우를 찾기 힘들며, 게다가 엄청나게 폭넓은 관심사를 따라갈 사람도 거의 없다."(464쪽)는 게 서두이다.

사실 긴즈부르그에 관해서라면, 주경철 교수의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문학과지성사, 1999)에서인가 처음 이름을 접해보고 <치즈와 구더기>(문학과지성사, 2001)도 구입했었지만 아직 읽어보진 않았기 때문에 명성만을 알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눈길을 잡아끈 건 그가 러시아계라는 사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1939년 토리노에 정착한 러시아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아래 사진의 부부가 그의 부모이다). 

"아버지 레오네 긴즈부르그(1909-1944)는 러시아 문학 교수였는데, 카를로가 다섯 살이었던 1944년 파시스트 치하의 감옥에서 죽었다. 반면 어머니 나탈리아 긴즈부르그(1916-1991)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이탈리아 작가들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가로서 카를로가 풍부한 문학적/문필가적 재능을 어디에서 물려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그의 아버지는 소설가인 어머니의 편집자이기도 했다). 대담 중에 카를로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아버지 레오네는 고골(리)의 <대장 불(리)바>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했으며, 어머니 나탈리아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권('스완네쪽으로')을 이탈리아어로 옮겼다(대단한 집안 아닌가?!).  

호기심에 나는 그의 가계에 대한 뒷조사(?)를 좀 해봤는데, 이유는 긴즈부르그란 이름에서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러시아의 유명한 문학자 리디야 긴즈부르그(1902-1990)가 카를로의 인척이 되지 않나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리디야의 저작은 내년쯤에 우리말로 출간될 것이다). 리디야는 카를로의 아버지 레오네보다 46년을 더 살았지만 나이는 7살이 더 많다. 두 사람은 모두 러시아에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오데사 태생이다(20세기초반에 '오데사 마피아'가 유명했다). 정확한 촌수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모두가 '긴즈부르그 패밀리'에 속했을 거라는 건 미루어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 가계에 속하는지라 카를로는 어린시절 문학에 투신하겠다는 생각을 품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역사학이었으며 일찍부터 학계를 놀라게 할 독창적인 업적들을 내놓게 된다. 그가 27세에 펴낸 첫 저작이 바로 <베난단티>(1966)이다. 우리말로는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길, 2004)라고 옮겨진 책인데,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의식'이 그 부제이다.

나도 아직 구입하지는 않은 책인데(이번 여름방학에 읽어볼 계획이다) 소개를 잠시 옮겨오면 "미시사 방법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1966년 작을 한국어로 옮긴 책. 널리 알려진 <치즈와 구더기>보다 10년 앞서 발표된 것으로 긴즈부르그 저술세계의 출발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책은 1618년에 일어난 마리아 판초니의 재판을 중심으로, 자생적인 민중문화가 기독교로 대표되는 엘리트 문화의 탄압을 받으면서, 어떻게 '이단'으로 규정되고, 마법으로 동화되어 갔는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단히 논쟁적이면서 혁신적이라는 평을 얻은 이 데뷔작에 이어서 그를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국제적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세계관에 대한 연구인 <치즈와 구더기>였다."(465쪽) 이 작품을 통해서 긴즈부르그는 '미시사'의 선두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며 그뒤 '미시사'란 이름은 곧 유행의 물결을 타게 된다(긴즈부르그 자신은 미시사와 거시사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시사와 거시사, 사건과 구조를 상호 보완하려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동안 긴즈부르그는 개척자적인 연구의 많은 부분을 책이 아니라 에세이 형태로 간행해왔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경우가 <징후들>이라는 그야말로 뒤엉킨 실타래 같은 인상의 이름을 가진 글인데, 무려 13개 국어로 번역된 바 있다."(468쪽)

이에 대해 역자인 곽차섭 교수는 "아마 이제는 적어도 14개 국어라고 해야 할 듯싶다. 왜냐하면 2000년에 한국어로도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곽차섭 엮음, <미시사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00), 제4장('징후들: 실마리 찾기의 푸리')"라고 주석을 붙였는데, 보충하자면 이 에세이가 포함된 책 <신화, 상징, 징후>(1986)가 지난 2004년에 러시아어로도 번역이 됐으므로 '적어도 15개 국어'라고 해야 할 듯싶다(현재로선 유일하게 러시아아어로 번역된 책이며, 오래전에 모스크바 통신에 적어놓은 바 있지만 데이비드 로웬덜의 <과거는 낯선 나라다>(개마고원, 2006)와 함께 지난 2004년 한 러시아 언론이 뽑은 역사부문 '올해의 책'이었다).

Мифы - эмблемы - приметы. Морфология и история.

1998년 볼로냐에 있는 긴즈부르그의 자택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질문자인 '마리아 루시아 팔라레스-버크'가 처음 던진 질문은 "당신의 생각과 관심사를 이해하는 데 출신과 교육의 어떤 측면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470쪽)였다.

긴즈부르그는 "한 개인이 어린애로부터 어른으로 가는 식으로 역사를 일직선적으로 보는 목적론적 접근방법에는 회의적"이라는 단서를 먼저 단 후에 자신의 성장배경에 대해서 자세하게 답한다. 이미 언급한 부분이지만 "내 외할머니를 제외하고는 아버지나 어머니 쪽 모두 유대계입니다. 아버지는 오데사 출신으로 어릴 때 이탈리아로 건너와 토리노에서 성장하여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 시민이 되었어요. 그는 자신이 러시아 출신이라는 것만큼이나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에 대단히 집착했습니다." 아버지의 반파시스트 활동은 그러한 정체성과 연관된 것일 텐데, 그 결말은 감옥에서의 이른 죽음이었다.

해서 소설가인 어머니와 함께 어린시절을 보낸 긴즈부르그의 이런 고백은 자연스럽다. "젊은 시절 나는 어머니처럼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곧 그쪽에 별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쨌든 나는 지금도 그와 같은 글쓰기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치 역사 서술을 향한 열정이 소설을 쓰는 데 대한 열정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죠."(472쪽)

유려한 번역서이지만 강조한 대목은 문맥상 맞지 않는데(역자의 방심이겠다), 긴즈부르그가 결국엔 소설가가 아니라 역사가가 됐으므로 '소설을 쓰는 데 대한 열정'이 '역사 서술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문도 확인해보니 "...as if my passion for writing fiction was diverted to my passion for historical writing."(187쪽)이라고 돼 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댐이나 도랑같은 것이라 할까요. 어딘가를 억지로 막아놓으면 옆으로 더 세게 뿜어져 나오니까요. 어떤 것이든 아무리 길을 막아놓아도 결국에는 새로운 길의 일부가 되는 법이지요." 사실 아이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그걸 억지로 막아놓으면 '댐'만 터질 뿐이다!

"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또 다시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다른 아파트로 이사할 때 그동안 그린 그림 전부를 남겨둔 채 그냥 떠나버렸어요.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 역시 내 일부로 되었습니다. 마치 잘못된 행마가 결과적으로 오히려 좋은 행마로 바뀌듯이 말이죠. 나는 미술사가가 되겠다는 생각까지도 한 적이 있습니다만, 결국 나중에 조금은 그것을 이룬 셈이 되었지요."(474쪽)

그렇다는 것은 긴즈부르그가 따로 미술사가로서의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티치아노, 장 푸케 등 미술과 관련한 여러 편의 글을 썼기 때문이다. 긴즈부르그 왈 "전쟁은 너무 중대한 일이라 장군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했다는 클레망소의 말을 당신도 알고 있겠지요. 이는 다른 영역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말이라고 봅니다. 미술은 너무 중요한 일이라 미술사가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거지요."(491쪽)

그의 미술 사랑? "난 단순히 그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림을 사랑하죠. 난 정말로 그림을 사랑합니다. 실제로 나는 도서관에서 요청한 책이 올 동안 역사 잡지가 아니라 미술사 잡지를 읽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예요.(...) 화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나에게 중요한 경험이지요. 꽤 오래 전의 일인데요. 루벤스에 무지한 상태에서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느낀 전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는 새로운 장소, 작은 마을과 교회들을 찾아 이탈리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지요. 그때 난 죽을 때까지도 이탈리아 대부분을 여전히 알지 못할 것이라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모든 것을 다 보려면 아마 서른 번 정도를 살아야 될 겁니다. 하물며 이탈리아 바깥 세계는 또 어떻겠어요."(491쪽)

해서, 긴즈부르그를 읽는 데만도 수년은 걸릴 것이다. 하물며 다른 저자들은 또 어떻겠는가...

07. 05. 07.

P.S. 본문에서 러시아어로 번역됐다고 한 <신화, 상징, 징후(Miti, emblemi, spie)>('징후'보다는 '실마리'가 더 적합한 번역이겠다)의 영역본은 지난 1992년에 나온 <실마리, 신화, 그리고 역사학의 방법>이다. 서문을 포함하여 248쪽인데, 348쪽 분량인 러시아어본과 대비된다(대조해봐야겠다). 책은 러시아어본이 나왔을 때 이미 10개 국어로 번역된 상태였다. 한국어본은 언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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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7-05-0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저요!! 추천추천!!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지만 고양이 대학살이랑, 마르탱게르의 귀향도 미시사 관련 서적이지요.. 긴즈부르그가 러시아인이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어요. 막연하게 유럽인이라고 생각했는데..그러고보니 러시아도 유럽이죠.. 아.. 그렇구나..(혼자 무슨 말을 하는거냐!!)

로쟈 2007-05-08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저요!'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네요. 추천은 감사합니다. 별로 반응이 없던 페이퍼였는데.^^;
 

집에서 라면을 먹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이런저런 기사들을 읽고 옮겨놓는 것이다. 더구나 며칠 전에 읽은 기사라면 불은 라면 먹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다. 얼마전부터 '6월민주항쟁20주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상상변주곡’가 열리고 있는데, 총 9회에 걸쳐서 이루어질 이번 토론회는 현재 두 차례 진행되었다. 도정일 교수에 이어서 발제자로 나선 이는 문화평론가 진중권씨인데, 컬처뉴스의 관련기사와 함께 그 발제문 '신체의 지질학'을 옮겨놓는다.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돌입한 한국사회 정치의식의 변화추이를 '지질학'적 시각으로 포착하고 있는데, 그의 강점이 '진중함'에 있다기보다는 '순발력'에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그는 담론의 유희가 무엇인지 아는 평론가이다).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 ‘상상변주곡’ 두 번째 행사가 지난 5월 3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렸다.

컬처뉴스(07. 05. 04) 새로운 '몸'을 어떻게 볼 것인가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 ‘상상변주곡’ 두 번째 시간(5월 3일)은 진중권 문화평론가의 발제로 시작됐다. 진중권 평론가는 「신체의 지질학」이라는 발제를 통해 농경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정보화 사회로 돌입한 한국사회의 사회적 특징과 변화된 ‘정치의식’을 분석했다.

 

 

 

 

 

 

 

 

 

 

진중권 평론가는 “급격한 지각 변동이 지질학적 지층에 고스란히 기록되듯이, 급격한 사회 변동 역시 한국인의 사회적 신체 안에 고스란히 축적”되는데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를 거쳐 정보사회로 변모하는 것이 반세기도 안되는 동안에 이뤄”짐으로써 “한국사회 안에는 농경사회의 신체와 산업화의 신체, 정보사회의 신체가 공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은 “생존을 걸고 싸우는 처절한 투쟁으로서의 정치와 일종의 퍼포먼스의 성격을 띤 놀이로서의 정치가 공존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시위 모습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 같은 두 가지 형태의 정치가 공존하는 것은 압축성장으로 인해 한국사회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민중운동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NL’과 ‘PD’의 대립과 관련해서도 ‘신체의 차이’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NL은 “산업화 과정에서 몰락한 농민들의 좌절감, 개발에서 배제되어 낙후된 농촌지역의 소외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로 위협받는 농민계급의 위기감 등을 미제에 대항하는 민족주의로 승화시킨 것”이며, PD는 “7~80년대에 이루어진 산업화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혁명가들이 갖춰야 ‘철의 규율’은 무기물(철)을 유기적 신체의 모범으로 삼는 산업화의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NL과 PD의 대립은 두 개의 다른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실은 두 개의 다른 신체의 대립”이라는 것이다(*그 신체는 물론 '농민의 신체'와 '노동자의 신체'로 일반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세계적으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이행은 역사의 종언, 서사의 종언, 정치의 소멸, 그리고 주체의 죽음과 같은 문자문화의 종말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을 완료한 한국 역시 “정보가 재화가 되고, 상품이 비물질화하고, 소비가 기호화하고, 생산이 정신화하고, 노동이 오락화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보사회의 특징은 “그저 지적인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력의 수준이 과거의 산업적 신체와는 다른 신체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보적 신체를 가진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의 변화된 정치의식은 이러한 탈문자화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역사에 최종목표가 있다고 믿지 않”으며 “그들에게 미래는 그저 SF의 시간일 뿐이고, 역사는 그저 퓨전사극의 배경일 뿐”이다. 때문에 “이것을 단지 젊은 세대의 ‘보수화’로만 볼 수 없으며, 진보나 보수의 이항대립을 넘어선, 완전히 차원이 다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방송 3사의 고구려 드라마를 예로 들면서 “문자로 씌어지는 역사가 사라진 곳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신화가 등장하고 있”으며 “텍스트로 무장한 386세대의 역사적 의식은 디지털 영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의 신화적 의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 토론에서 손석춘 전 한겨레 논설위원은 “NL이 우리사회에서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북쪽에 전쟁위협을 가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유지되고 있고 한국사회에 미치는 규정력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며 “농경 신체적 특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비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정보사회에서의 노동자계급 해체논리와 관련해 “노동자계급의 단결 문제는 새삼스럽게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며, 그 해체논리에는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준영 문화평론가는 “농경사회 신체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진중권 선생이 말한 요즘 세대가 가진 정보사회의 신체가 불과 10년 만에 확고하게 형성될 수 있는가에 의문이 생긴다”며 “90년대 이후 대학가에서 발견한 변화된 모습은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라기보다는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 세대들이 소시민화되는 경향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진중권 평론가는 “정보사회가 빠르게 우리사회에 흡수될 수 있었던 것은 문자문화의 전통이 짧고 낙후돼 있었기 때문이며, 농경사회에서 남아있던 구술문화, 다시 말해 소리와 이미지를 기억하는 신체는 바로 인터넷이라는 기술과 만나면서 급속하게 이입됐다”고 답했다. 그 밖에도 ‘황우석 사태’에서 보여준 젊은 세대들의 ‘디지털파시즘’의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와 연관돼 산업화 시대로 역행하고자 하는 ‘보수화’된 젊은 세대의 경향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위지혜 기자)

진중권 (문화평론가, 중앙대 겸임교수),  신체의 지질학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거기서 다시 정보사회로. 이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반적 변화의 양상으로 보인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이 모든 변화가 한국에서는 유례없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변모하는 것이 반세기도 안 되는 동안에 이루어진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급격한 지각의 변동이 지질학적 지층에 고스란히 기록되듯이, 급격한 사회의 변동 역시 한국인의 사회적 신체 안에 고스란히 충적되어 있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은 19세기에 일어났다. 그래서 서구인들에게 농경사회는 아득한 역사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한두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바로 농경사회의 추억과 연관된다. 거의 모든 인구의 가정에 농경사회의 신체를 가진 이가 존재한다. 신체는 늘 자신을 재생산하려는 경향을 보이기에, 산업사회로 이행을 완료한 다음에도 농경사회의 기억이 가까운 사회의 성원들은 몸속에 여전히 농경사회의 습속을 갖고 있게 된다.

다른 한편, 근대화의 흐름에 뒤쳐져 식민통치를 겪었던 뼈아픈 역사적 경험은 한국인들을 미래주의적으로 만들었다. 황우석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에 대한 믿음은 한국에서 거의 종교적 신앙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국은 사회의 일반적 발전 수준 이상으로 IT 인프라가 발달해 있다. 오늘날 한국인들, 특히 젊은 세대의 신체는 온갖 디지털 기기와 결합되어 있다. 한국인의 몸은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사이보그화한 신체가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한국전쟁 후에 일어난 사회운동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이승만 정권의 붕괴는 신체의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무능에서 비롯된 정치적 현상이다. 신체의 ‘근대화’에는 크게 두 가지 과제가 따른다. 첫째는 사회 성원들을 자율적 판단과 행위의 능력을 가진 독립적 인격으로 바꾸어 놓는 민주화의 과제이고, 둘째는 그들의 신체를 자연에서 떼어내어 기계와 결합시키는 산업화의 과제이다.

이승만 정권은 이 두 과제 중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비록 미국식 민주주의의 형식을 취했지만, ‘국부’라는 호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승만 정권의 통치 스타일은 외려 봉건적 군주제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 정권은 미래에 대한 아무런 비전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부패와 비효율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4.19 혁명은 결국 시민들이 막연하게 느끼던 정치적, 경제적 근대화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시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4.19 혁명 이후 내각제를 받아들인 것은 나름대로 대통령제의 제왕적 성격을 수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또 민간정부에서 수립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4.19가 그저 정치적 혁신의 운동에 그치는 게 않고, 경제적 산업화를 포괄하는 폭넓은 의미에서 근대화 요구라는 것을 그 정부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혁명으로 수립된 준비 안 된 정권이 이 두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기란 불가능했고, 바로 그 좌절에서 탄생한 것이 5.16 쿠데타였다.



민주화 없는 산업화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전략은 ‘민주화 없는 산업화’였다. 박정희가 즐겨 사용하던 ‘인간개조’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의 시급한 문제는 신체를 자연에서 떼어내 기계와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저곡가 정책 등 박정희 정권이 도입한 이농정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해방 후 90%에 이르렀던 농민의 비중은 그 후 급속히 감소한다. 자연을 등지고 도시로 올라온 신체들은 군사정권의 군대식 훈육을 통해 폭력적으로 기계와 결합하게 된다.

한편, ‘인간개조’는 남한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 역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서는 사회개조, 자연개조와 더불어 무엇보다 ‘인간개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주화 없는 산업화라는 점에서 북한의 성과는 적어도 60년대까지는 남한의 것보다 더 눈부셨다. 하지만 경제적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체제의 유지를 위해 농경적 신체의 봉건적 충성심을 온존시켰다. 북한식 사회주의가 가진 그로테스크한 특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산업화의 초기 단계에는 군대식 훈육이 어느 정도 작동한다. 노동력의 단순투입으로 생산력을 제고하는 단계에서는 군대식 충성심을 가진 기계화한 신체야말로 외려 효율적이다. 하지만 사회의 생산력은 결국 사회 성원 개개인의 수행능력(이른바‘노동력의 질’)에 달려 있다. 게다가 노동력의 단순투입에는 절대적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산업화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외려 군대식 신체가 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사회 민주화의 요구는 이때 터져 나오게 된다.

박정희의 죽음과 더불어 ‘민주화 없는 산업화’의 시대는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두환 정권은 역사에서 반동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이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폭압적인 통치를 행했지만, 경제의 영역에서만은 국가통제에서 벗어난 자유주의 정책을 편 것은 데에 주목해야 한다. 한 마디로, 당시의 산업의 발전수준에 맞는 개혁을 도입하되, 그것이 민주화로 확산되는 것을 폭압적으로 막으려 했던 것이 전두환 정권의 존재이유였다.

민중운동
하지만 그런 봉합의 시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는 6월 항쟁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6월 항쟁을 주도한 것이 학생과 넥타이 부대였다는 것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자유주의를 경제의 영역에만 가두어둘 것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라는 요구로 볼 수 있다. 물론 민주세력의 분열로 노태우 정권이 등장하고, 이로써 군사정권은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계속되었지만, 이미 그때부터 통치는 연성화하기 시작한다.

이어 87년 6월 항쟁으로 열린 정치적 민주화의 분위기 속에서 그 동안 가장 억압을 받아왔던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다. 이미 운동의 이념화는 80년대에 급속도로 진행되었지만, 그것의 계급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88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의 일이다. 다른 한편, 민주화로 인해 열린 비교적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념적 금기를 깨려는 시도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통일운동’이다.

하지만 80년대 말에 일어났던 동구권의 몰락과, 북한 사회의 답보 내지 퇴보는 너무 늦게 나타난 이런 이념운동의 싹을 잘라 버렸다. 사회주의권의 급작스런 붕괴는 이념세력으로 하여금 자기 혁신을 통해 현대화를 할 틈을 주지 않았고, 역사적 텔로스를 잃어버린 이념운동은 곧 불어 닥친 포스트모던의 탈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혹은 30년대에나 어울릴 구태의연한 수사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박제가 되어갔다.

NL과 농경적 신체
민중운동의 두 기둥은 실은 한국사회가 거쳐 온 두 개의 발전단계, 그 과정에서 형성된 두 개의 신체를 대표한다. NL은 농경적 신체의 이데올로기다.
산업화 과정에서 몰락한 농민들의 좌절감, 개발에서 배제되어 낙후된 농촌지역의 소외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로 위협받는 농민계급의 위기감 등을 미제에 대항하는 민족주의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NL의 이데올로기다. 게다가 NL 이념에 원형을 제공한 북한 체제 자체가 농경적 특성을 온존시킨 봉건사회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

NL적 신체들이 산업화 이전의 농촌공동체 정서를 가지고 있음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조직화를 하기보다 ‘관계 맺기’를 활용하고, 논리적 설득보다 정서적 ‘감동’을 강조하고, ‘품성’이나 ‘의리’와 같은 전근대적 수사법을 사용하는 것은 문자문화가 이전의 구술문화에 속한 신체들의 전형적 특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렸던 신학철 화백의 그림, 즉 농부가 쟁기로 미제 문화를 몰아내는 그림은 NL적 신체의 이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NL의 이상 속에는 미국에 반대한다는 네거티브한 요소와 산업화로 잃어버린 공동체적 삶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라는 포지티브한 요소가 공존한다. 80년대 운동권에서 NL이 주류로 떠오른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것은 한국인들 신체가 여전히 농경문화에 젖어있음을 말해준다. 해방 직후 한국 사회의 문맹률은 90%에 달했다. 오늘날 문맹자는 거의 없게 됐지만, 문자문화로의 진입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의 신체는 여전히 구술문화의 특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

PD와 기계적 신체
PD는 7~80년대에 이루어진 산업화의 정서를 대변한다. 재미있는 것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이들도 역시 ‘군대’의 은유를 즐겨 사용했다는 것이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로 시작되는 인터내셔널가의 번역에는 기계와 결합한 노동자의 군대적 신체가 세계를 해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농업생산과 달리 신체를 기계에 맞춰야 하는 산업생산에는 규율이 필요하다. 그것이 또한 혁명가들이 갖춰야 ‘철의 규율’이 된다. 이 표현에는 무기물(‘철’)을 유기적 신체의 모범으로 삼는 산업화의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

PD는 문자문화의 전형이다. NL이 인간을 믿는다면, PD는 텍스트를 믿는다. 그들은 인간관계보다 사상서적을 더 신봉한다. 이들에게는 품성보다는 논리가 중요하고, 의리보다는 원칙이 더 중요하다. 농경적 신체에게 이런 태도는 당연히 ‘차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논리보다 정서를, 원칙보다 인간미를 더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그 영향력이 일정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NL과 PD의 대립은 두 개의 다른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실은 두 개의 다른 신체의 대립이다.

문자문화의 소산인 PD는 세계와 문자의 동일성을 굳게 믿는다. ‘자본주의를 알고 싶은가? 그러면 자본론을 읽으라.’ 이것이 문자문화의 상식이다. 하지만 80년대 말에 있었던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이들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무너진 것은 사회주의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자본주의)=텍스트(자본론)’이라는 믿음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때부터 텍스트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고, 이들은 대거 ‘텍스트 바깥은 없다’는 포스트모던의 정신적 분위기 속에 빠져들게 된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역사주의’는 문자문화의 산물이다. 텍스트는 선형적이어서 거기에는 처음이 있고, 또한 끝이 있다. 창세가 있고, 종말이 있다. 가장 위대한 책인 성서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묵시론으로 끝난다. 마르크스의 역사도 원시공산주의에서 시작하여 발달한 공산주의사회로 끝난다. 포스트모던은 이런 문자문화적 사고방식의 종언을 의미한다. 종교적 의미에서든, 세속적 의미에서든 사람들은 더 이상 역사에 최종목적(telos)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역사의 종언, 서사의 종언, 정치의 소멸, 그리고 주체의 죽음. 서구 자본주의가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산업혁명기에 형성되었던 문자문화의 역사주의는 종말을 고한다. 이것은 그저 지적인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력의 수준이 이전과는 다른 신체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담론의 변화는 토대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를--앞서서 혹은 뒤늦게--반영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사회주의권 몰락의 충격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한국사회에서도 ‘탈정치화’는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90년대 이후 한국이 정보사회로 진입한 것과 관련이 있다. 한 사회의 노동인구 중에 재화의 직접적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에 종사하는 이들의 비율이 절반을 넘을 때, 그 사회를 ‘정보사회’라 부른다. IT 분야에서 선두권에 속하는 한국은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을 완료했다. 정보가 재화가 되고, 상품이 비(非)물질화하고, 소비가 기호화하고, 생산이 정신화하고, 노동이 오락화하는 사회는 당연히 과거의 산업적 신체와는 다른 신체를 요구하게 된다.

미래의 노동자계급
한때 인구의 90%를 차지하던 농민계급은 오늘날 인구의 10%로 줄어들었다.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가운데 노동자계급이 농민계급을 해체시켜 버린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다시 정보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 역시 해체의 운명을 맞는다. 노동계급의 힘은 시간과 공간의 동일성에 기반한 조직력에 기초한다. 하지만 미디어는 시간과 공간의 동일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유비쿼터스의 시대에 ‘조직’이라는 말은 고루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 대신 새로운 관계맺음의 방식, 즉 네트워크가 등장한다.

산업사회에서는 산업노동자가 세계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정보사회에서 주요한 가치는 정보노동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이미 산업 노동자의 다수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여 주변화하고 있다. 그들의 대다수는 ‘계급’이라는 이름의 집단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위탁업체와 개별 계약을 맺어야 하는 고독한 노마드로 존재한다. 한편, 노동계급 중의 상층부는 일종의 ‘엔지니어’ 혹은 ‘매니저’로 특권화한다. 이런 시대에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란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블루칼라는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며 정보사회에 필요한 디지털 반사신경을 발달시키고 있다. 미래의 화이트칼라는 고학력을 가지고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이른바 ‘R&D’에 몰두하고 있다. 이 새로운 노동자들을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산업사회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의 욕망을 과연 산업혁명기에 형성된 ‘계급의식’이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낡은 좌파 이념을 리사이클링하는 것만으로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사회의 정치의식
빌렘 플루서는 정치를 ‘저개발의 정치’와 ‘과개발의 정치’로 구별한다. 저개발의 정치는 생존을 걸고 싸우는 처절한 투쟁으로서 정치다. 과개발의 정치는 일종의 퍼포먼스의 성격을 띤 놀이로서의 정치다. 이미 우리는 거리에서 두 가지 형태의 시위를 본다. 파이프와 화염병이 난무하는 투쟁으로서 시위. 그리고 문화 콘서트와 함께 열리는 촛불 집회. 한국에 저개발의 정치와 과개발의 정치가 공존하는 것은, 압축성장으로 인해 한국사회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티조선 운동은 네티즌들이 즐기는 가벼운 오락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노사모 운동은 온오프를 넘나드는 일종의 버추얼 리얼리티 게임으로 존재했다. 탄핵반대시위는 거대한 종합예술의 퍼포먼스로 진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놀이로서의 정치, 즉 과개발의 정치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과잉진압으로 농민이 사망하고, 절망한 노동자가 분신을 하고, 시위대와 경찰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저개발의 정치가 공존한다. 시위를 하는 취향의 차이는 당연히 신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농경적 신체는 애써 기른 농축산물을 거리에 뿌려대며 절망감을 표현하고, 산업적 신체는 군대를 방불케 하는 조직적 전투로써 항의를 표현한다. 반면 정보적 신체는 비(非)물질적이어서 이런 저항의 물리적 방식에 거부감을 갖는다. 농경적, 산업적 신체에게 정치란 육체의 생존이 걸린 진지한 행위이나, 정보적 신체에게는 정치마저 비(非)물질화한 채로 가상, 유희, 오락의 영역에 편입된다. 저개발의 정치는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과개발의 정치는 이미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대선은 보수신문이라는 활자매체 대(對) 방송과 인터넷이라는 영상매체의 대립으로 치러졌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인쇄의 정치 대신에 영상의 정치가 들어선다. 공약은 흑백이다. 그것은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잉크로 적힌다. 반면 이미지는 칼라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보라색과 초록색의 이미지뿐이다. 그 선거는 철저하게 가상으로 치러졌다. 문자로 공약을 하던 진지한 정치는 이제 시각적 스펙터클을 동원한 판타지의 정치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역사에서 신화로
역사는 문자문화의 소산이다. 문자문화의 종언과 더불어 역사주의 의식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정보적 신체를 가진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역사에 최종목표(telos)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해방된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현재를 위하여 과거에 있었던 피억압의 기억을 조직해야 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그저 SF의 시간일 뿐이고, 역사는 그저 퓨전사극의 배경일 뿐이다.

시간이 클릭할 수 있는 공간이 될 때, 시간의 선형성에 대한 믿음도 약화된다. 그들에게 세계는 역사의 진행이 아니라, 동일한 이미지의 영겁회귀일 뿐이다. 때문에 정보적 신체를 가진 젊은 세대가 역사의식을 갖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것이 텍스트 세대의 눈에는 ‘보수화’로 보일지 모르나, 이것은 진보나 보수의 이항대립을 넘어선, 완전히 차원이 다른 현상이다. 진보/보수의 이항대립은 선형적인 역사관을 전제하나, 정보적 신체는 이미 그 지평을 떠났기 때문이다.



문자로 씌어지는 역사가 사라진 곳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신화가 등장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정치인과 학자들이 문자로 역사를 고쳐 쓸 때, 한국에서는 PD와 작가들이 미래주의적으로 역사를 영상으로 극화하고 있다. 방송 3사의 고구려 드라마가 일깨워준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의식’이 아니다. 판타지로 이루어진 황홀한 환각의 체험이다. 텍스트로 무장한 386세대의 역사적 의식은 디지털 영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의 신화적 의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07.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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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뮤지션 2007-05-07 23:22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분석입니다. 사회의 성격 변화에 대한 진단을 그의 전문 분야의 언어로 훌륭하게 '변주'해내어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NL과 PD에 대한 언급까지 잊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진중권은 자신을 배출한 '신체'에 대한 소속감을 은연중에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같습니다. (의외로 안 그런 것 같은 사람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자신이 배운 학문을 발판 삼아 그 학계의 지루한 풍토에 젖어들지 않고, 저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 결국 다 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네요.. ^^;

로쟈 2007-05-07 23:36   좋아요 0 | URL
그런 부러움은 천재뮤지션님의 닉네임과는 잘 안 어울리는 듯한데요.^^
 

어제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정간물실에서 잠시 문학잡지들을 훑어보았다. 걔 중에는 <21세기문학>(2007년 봄호)도 껴 있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인문학 위기에 관한 기획좌담을 읽어보았다(실은 그 좌담자의 한 사람이었다). 사회자의 표현을 빌면, '인문학 임파서블 시대'의 인문학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 다른 두 분 선생님들과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나눈 자리였다. 생각난 김에 내가 거들었던 대목들만 추려서 창고에 넣어둔다.    

■ 최근 인문학 서적의 출판 동향

제가 출판동향 분석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기존의 인문학에 대한 도전’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문학 서적의 새로운 수용자를 찾으려는 움직임, 소위 ‘쉬운 인문학’의 유행입니다.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처럼 인문학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반인들,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인문학의 희망을 나누려는 움직임도 있죠. 그런데 쉬운 인문학이 급증하는 현상은 논술시장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두 번째는 ‘제 3의 문화’인데, 일련의 자연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인문학자들도 포함시켜서 일종의 인문학과 자연학 사이의 구분, 곧 ‘두 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존 브록만 같은 편집자와 리처드 도킨스,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인문학자(New Humanists)’라고 부르더군요. 국내에서도 최재천․도정일 교수의 <대담> 같은 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디지털 미디어와 인문학의 접속입니다. 소위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인데, 인문학 분야 가운데서는 가장 ‘돈 되는’ 축이 아닌가 싶습니다. 끝으로 정신분석학의 도전, 혹은 대중화를 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문학비평뿐 아니라 영화비평 쪽에서 라캉과 지젝 같은 이론가들의 작업이 활용되고 있지요. 아카데미즘 내부에서는 아직 비주류이지만 대중문화 비평이나 대중적인 채널 속에서는 이런 정신분석학 계열의 책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인문학 위기 담론


사실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이 제도적인 문제이고 학문 후속 세대와 관련된 문제이지요. 인문학과 내부에서도 서로 이해관계가 상당히 다르고요. 어문계열만 하더라도 영문과 중문과 독문과 불문과 등등 각각의 분위기가 다르죠.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 좋은 영문과나 중문과는 전혀 위기의식이나 문제의식을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볼 때는 인문학 전공자들의 생계와 관련된 문제도 얽혀있죠. 같은 전공자라 하더라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또 같은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학진(학술진흥재단)에서 제도적인 지원을 받고 있느냐 안 받고 있느냐에 따라서 서로 입장이 다르지요. 언론에서는 크게 뭉뚱그려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각자 자기의 소속이나 지위에 따라서 ‘위기의식’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멘토로서의 인문학


저는 포커스를 다른 점에도 맞추고 싶은데요. <천개의 공감>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독서치료, 문학 치료, 영화치료, 음악치료 이런 것들이 유행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 듯해요. 최근에는 문학이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이러한 문학 치료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소설을 읽으면 정서적 불안이 해소되고 시를 읽으면 우울증이 해소되고 이런 식입니다. 이것은 인문학을 굉장히 ‘실제적인 요구’에 맞추는 행위이기도 해요. 인문학에 대한 대중과 출판계의 요구도 아마 이런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겠죠.

 

 

 

 

 ■ 정서산업과 인문학

이게 한국적 문화코드예요. 신경증이라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것 아닌가요. 프로이트 말대로라면 현대인은 모두 노이로제 환자이기도 하구요. 한국사회에서는 정신과에 가는 데 여러 가지 심리적∙문화적 장벽이 있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통해서 적절히 제어하는 거죠. ‘인문학의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부분이 다뤄져야 할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인문학의 운명이 최근의 산부인과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출산율 저하되면서 산부인과 광고가 전부 피부관리, 비만관리, 보톡스 이런 거예요.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인문학도 보톡스 인문학, 체형관리 인문학, 피부관리 인문학 이런 식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문학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또 요즘은 그런 걸 요구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인문학의 생존술?


그렇죠. 한데 체형관리, 피부관리가 산부인과 본래 목적은 아니듯이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슬림’하게만 만드는 것이 과연 인문학의 본업에 맞는 일일까 의문은 갖게 됩니다. 제가 아는 전통적인 인문학은, ‘이렇게 살면 행복하다’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를 스스로 반문해보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인문학 자체가 원래 인간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요? 나의 안락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 그런데 요즘 유행하고 있는, 또 한편에서 요구받고 있는 인문학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위무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이게 인문학의 살길로 포장되고 있고. 새로운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이거야말로 반(反)인문학이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 배고픈 인문학


예전에 인문학은 배부른 학문으로 유한계급의 학문이었죠(*혹자는 '왕후장상의 학문'이라고 했다). 이제는 전형적으로 배고픈 학문이 되었어요.(웃음) 요즘 학문 후속 세대들은 수료 이후에 학위까지 받고 10년, 길게는 20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로 버텨야 하거든요. 이것이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가장 실제적인 이유지요. 제가 간혹 동창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보면 이야기의 결론은 다 부동산이더군요. 그런 부동산-테크가 없는 저로선 뭐 할 얘기도 없고 끼워주지도 않아요. 인문학자들이 저마다 고상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한가하거나 한심하게 보이는 거죠. 이제 이런 인문학의 형편이 들통 나는 바람에 더 이상 사회적 존경도 유지할 수 없는 그런 처지죠. 비관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위기 타개는 그런 정직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라이프 스토리

 

중학교 때부터 서점 순례가 취미였어요. 집에 가기 전에 동네 서점 다 둘러보고 들어오는 게 버릇이었는데, 늘 새 책이 별로 없어 본 책 또 보면서 반복적인 서점 순례를 했었죠. 그런 서점 순례 습관이 계속 이어지다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되다보니 서점 순례를 인터넷 공간에서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건 단순히 인터넷 탓만은 아니구요. 모든 생산이 위기에서 비롯되잖아요. 제 경우도 비슷합니다. 대학에서 박사과정 수료하고 결혼했는데(제가 원래 현실감각이 좀 없어서요), 상당히 암담하더군요. 담벼락에다 과외광고 붙이고 다니고 학원강의도 뛰고 그랬죠. 저대로는 위기국면이었는데 그렇다고 별수가 있었던 건 아니고 할 줄 아는 게 책읽기밖에 없어서 그거 가지고 버티다 보니까 어느 순간 다른 구멍으로 빠져나오게 되더군요.


■ 인문학 위기가 아니었다면?


논문만 써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논문 쓰는 것 좋아합니다.(웃음) 러시아 문학 같은 경우 국내 연구진들이 뭐든지 연구만 하면 ‘최초’일 경우가 많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최초의 단행본 연구서가 작년에 나왔을 정도니까요. 러시아 문학이 번역은 꽤 되었지만 제대로 된 연구서는 여전히 빈약하죠. 연구인력도 부족하고요. 한데, 제도적인 뒷받침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관심도 돌보랴 생계도 유지하랴 정신없죠.(웃음)


■ 글쓰기와 인문학


프랑스 같은 경우 유명한 정치인 같으면 나름대로 역사서든 소설이건 내야지 자기자 제대로 된 정치인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예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까요.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든 철학서 역사서를 쓰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가 된다면 말이죠. 사회적인 동의도 필요하고, 붐도 있어야 하지만, 그저 자동적으로는 안 되죠.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과 글쓰기의 강제도 필요한 것 같아요.

 


■ 인문학과 소통의 어려움


분과 학문 체계를 어차피 넘어서기로 했다면 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문화 콘텐츠 학과도 생기고 문화 콘텐츠 진흥원도 생길 정도로, ‘문화 콘텐츠’라는 말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죠. 그런데 실제로 ‘본토’에서는 안 쓰는 말이라네요. ‘문화산업’이라고 더 많이 쓰고요. 그런데 이게 한국적인 용어로 ‘문화 콘텐츠’란 말이 상용화된 거죠. 그러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 이런 게 붐을 이루고 있고요. 더불어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들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제 생각엔 학제간 연구 자체가 기이한 알리바이입니다. 기존의 학과 구분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면 경계를 부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잘은 모르지만, 동경대 같은 경우 표상문화학부 이런 식의 편제가 있더군요. 나름대로 파격적이죠. 좀 더 파격적으로 학제간 연구를 재구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끝으로 덧붙이자면, 오늘 좌담의 주제가 계속 인문학의 ‘대중적 소통’에 맞춰지고 있는 듯한 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문학 자체가 ‘소통 불가능성’ 내지는 ‘소통의 어려움’ 자체를 탐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쉽게 소통되지 않는 부분이야말로 인문학의 독특한 관심 아닐까요?..

 

07.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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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09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막간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력 사건과 관련한 칼럼 두 개를 옮려놓는다(사건은 김회장이 구속되는 선에서 조만간 마무리될 모양이다). 사건 자체야 어처구니 없지만(사실 더 뉴스거리가 될 만한 건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태도였다), 과연 그게 국민적 에너지를 투여할 만한 일인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인민재판식 여론몰이 또한 국외자적 시각에서 보자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인 코드'와 관련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한국인 코드'가 새삼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뒷맛은 씁쓸하다. 아래는 그런 씁쓸함을 되새기게 해주는 칼럼들이다.  

문화일보(07. 05. 04) 미국과 다른 한국의 문화

한국에 20여년 살면서 한국인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집단적으로 무척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좋게 말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뜻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집단편집증 같기도 하다.

우선, 2002년 당시 효순·미선 양 사건을 돌이켜보자. 그 꽃다운 여학생들의 불행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 뒤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미군 운전병이 그 학생들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 불행한 사고가 마치 주한미군, 나아가 미국 전체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식의 반미감정 차원으로 비화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근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사건이 터지자마자 미국 정부는 가장 먼저 조승희 부모의 신변 보호에 들어갔다. 사건 초기 한때 재미 한국인들에 대한 보복 우려가 제기됐지만 기우로 끝났다. 한국교포가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발상은 어떻게 보면 한국인 스스로의 피해 의식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오히려 조승희 가족도 피해자라면서 동정론까지 펼쳤다.

한국인인 아내와 함께 미국이나 유럽여행을 하던중 전철이 고장나 발길이 묶인 적이 가끔 있다. 그러나 그 사고가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면 이용객들은 묵묵히 전철이 출발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아내는 한국에서라면 벌써 전철 역무원과 거친 목소리가 오갔을 것이라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은 미국에서라면 이렇게까지 1주일 이상 전국이 들썩거릴 정도로 난리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김 회장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별적인 사안인 이 사건을 마치 한국 대기업 전체의 문제, 나아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립구도 식으로 몰아가는 듯한 움직임은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본인이 술집에서 얻어맞으면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참았을 것이라고 한다. 술집 배후의 조폭 보복이 무섭기도 하거니와 술집에서 얻어맞아 이마를 10바늘 꿰맸대서 그것을 법에 호소한다고 쉽게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 문제로 가면 달라진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의 본질은 자식 사랑이 지나친 어느 아버지의 성급한 과잉대응이 아닐까.

한국인들의 끔찍한 자식 사랑은 사실 유별난 데가 있다. 한국인 아버지들은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내심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자문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속마음은 깊이 감추고 돌연 이 사건을 대기업 총수의 문제로 보아 가진 자와 힘 있는 자가 당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과연 이번 사건을 막강한 대기업 총수 대 무력한 술집 종업원이라는 전형적 이분법의 틀에 담는 게 바람직한 자세일까. 미국인들은 조승희 사건에 대해 민족·인종·계급의 문제와 무관한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면서도 그 사회·문화적 맥락을 차분히 따져보는 성숙한 자세를 보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우선 개별 사안이라는 전제를 분명히한 뒤 혹시 그 배경에 있을지 모를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생각해보는 게 문제 해결의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다섯살 때 하루는 동네 형에게 얻어맞고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아버님의 동정을 살 요량으로 울어보았지만, 아버님은 오히려 내게 다시 가서 그 형을 때리고 오든지 아니면 당신한테 한 대 더 맞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게 아닌가. 물론 나는 몽둥이를 숨기고 그 형을 불러내 한대 때리고 줄행랑을 쳤다. 그 형의 몸집이 아버님의 절반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아무리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도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에릭 함슨 / 명지대 교수·영문학)

한겨레(07. 05. 07) 김승연 회장은 곧 잊혀진다

“당신들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내 생명도 소중합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제발, 제발 …” 참수를 당하기 전 화면에 비쳐진 고 김선일의 절규 앞에서 전율을 느꼈었다. 온나라가 아니 온세계가 다 그러했을 것이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 사건은 또 어땠을까. 희대의 줄기세포 사건, 황우석 교수 얘기는?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겠다. 바로 얼마 전, 눈동자 너머로 깊은 우물이 패어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줬던 총기 난사범 조승희의 동영상을 보던 심정은 어떠했던가.

사건·사고라는 이름으로 세론에 떠오르는 온갖 ‘세상의 일들’은 언제나 늘 그렇게 터지고 그렇게 잊혀져가는 것일까. 김승연 사건, 정확한 명칭으로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부자의 보복폭행 의혹사건’이 휩쓰는 세상 속에서는 버지니아의 조승희도 서귀포의 양지승 어린이도 벌써 까마득한 옛일 같기만 하다. 냄비근성에 대한 탄식 못지않게 인간사가 본래 그렇지 뭐, 하는 체념이 앞서기도 한다. 날마다 일정 분량의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듯이 사람은 늘 일정한 감정 격발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감정’ 문제다. 더 정확히 속내를 드러내자면 감정‘만’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가 하는 자기반성이 그것이다.

김승연 회장 사건을 언론에서 처음 접했던 순간에는 자동반응처럼 특권층의 초법적 행동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 정도 갖춘 사람이 그런 수준의 보복행동으로 대응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경멸감이 일었다. 그 와중에 택시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기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매섭고 날카로웠다. 그는 사건의 내역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그 내역을 빌미로 해서 자신의 분노를 토로하는 듯이 느껴졌다.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보세요! 저 악질 기업가가 정말 나쁜 일을 저질렀어요!’쯤을 외치는 듯이 전달되어 왔다. 보도라는 공적수단을 통해 한 인격체가 저렇게 매도되어도 되는 것일까. 더욱이 수사가 확정되기도 전에. 기자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폭력을 휘둘렀다는 ‘회장님’에 대한 동정이 치미는 기분은 참 미묘했다.

김수영의 시 ‘풀잎’에서 풀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묘사된다. 학교시절에 그 풀은 민초를 뜻한다고 배웠다. 과연 민초가 그러한가. 한국의 언론보도가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고 더 먼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하긴 언론의 선정주의는 말하기도 지겹다. 과당경쟁 상황에서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렇게 과잉되게 ‘울고불고’ 해야 반응이 오는 사회심리에 더 큰 탓이 있는 것도 같다.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지는 불의 연료는 감정이다. 감정이 사건을 지배하는 한 그 사안에 종횡으로 연루된 복합적 성격은 규명되지 않으며, 은폐된 본질이 미처 토론의 수면으로 떠오르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이란 끊임이 없는 법이어서 새 사건이 이전 사건의 파장을 금세 뒤덮어 버리기 때문이다. 흥분 곧 감정격발의 연쇄상태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이다. 사회문제 관심 주기는 상상할 수 없이 짧다.

법 위에 올라서서 쇠파이프를 휘두른 당사자들은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금방 잊혀질 테니까. 선행폭력을 휘두른 이른바 술집 종업원(?)들은 희희낙락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불쌍한 희생자로 둔갑했으니까. 기자들은 슬슬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미 식상한 사안이 돼 버렸으니까. 그리고 국민은? 물론 또다른 사건으로 흥분할 준비를 하고 있겠지. 늘 그래왔지 않은가.(김갑수 문화평론가)

07.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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