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 강의가 있어 학교에 나오는 길에 읽은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7월 24일)'은 아이작 싱어의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두레, 1999)을 다루었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만큼 예전에 많이 소개된 작가인데 요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주로 그의 동화들인 모양이다. 싱어와 관련한 몇 안되는 기억을 기사를 따라가며 적어본다.

197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이작 싱어가 1991년 7월 24일 87세로 사망했다. 싱어는 폴란드 태생으로 1935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계 작가다. 그는 헤브라이 문자로 표기하는 동유럽 유대인의 언어인 이디시(Yiddish) 어로 작품활동을 했다.

이 동구권 태생의 유대계 작가에 대한 최초의 인상은 아마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 그리고 사랑이야기>(1989)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영어 제목이 'Enemies, a love story'이고 국역본은 <적들, 어느 사랑이야기>). 그 전에도 물론 고려원 등에서 나온 책들을 서점에서 보곤 했지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진 않았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는데(싱어의 아버지는 랍비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 기억엔 영화의 예고편 정도만을 본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어쨌거나 <적, 그리고 사랑이야기>라는 제목만은 기억에 각인이 되었다('적들, 어느 사랑이야기'란 제목보다는 낫지 않은지?). 



 

 

 
 
이디시 어는 지금은 사어(死語)화해 이스라엘에서도 사용을 기피하는 언어이지만, 싱어는 고집스럽게 이 언어에 유대인의 전통과 고난, 지혜를 담았다. <적들, 어느 사랑 이야기> 등 그의 몇몇 작품이 번역돼 있는데,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은 언제 펼쳐 읽어도 재미있고 마음 훈훈해지는, 타고난 이야기꾼 싱어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책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싱어와 접하게 된 건 친하게 지냈던 한 체코 여자의 추천 덕분이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이작 싱어'라고 답했고 영어로도, 체코어로도 많이 나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읽게 된 게 (체코와의 관련 때문이기도 하고) <카프카의 한 친구>(중앙일보, 1978). '아이작 싱거 단편선'이라고 소개됐던 책인데, 표제작과 몇몇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자세한 독후감은 일기에 적어두었는데,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둘러보니 시중에선 구하기 어려운 책인 듯한데 새단장을 해 출간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싱어는 기본적으로 이야기꾼이다). 그나저나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이야기는 이렇다고 한다.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무구한 가족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전쟁과 잔인한 박해로 인해 어른이 될 기회를 잃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에게 바친다”고 싱어는 이 책의 서문에 쓰고 있다. 켈름의 호수에서 잡힌 가장 큰 잉어가 어쩌다 꼬리로 바보 그로남의 얼굴을 후려쳤다. 마을 사람들은 버릇없는 잉어에게 큰 벌을 내리기로 하고 최종판결까지 물통에 가둬 살려둔다. 반 년 후 나온 선고는 ‘잉어를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다’는 것. 그리고 켈름의 현자들은 만일의 경우 그 나쁜 잉어가 물에 빠져 죽기를 거부해 다시 잡힐 때는, 특수한 감옥 즉 나머지 일생 동안 죄수로 지낼 연못을 만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잉어가 받은 최고의 벌, 익사’).

 

 

 

 

추천사로 올라와 있는 뉴욕타임즈의 북리뷰에 따르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아이작 싱어, 찐짜 이야기꾼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지극히 매력적이다. 이 점에서 그에 견줄 만한 사람은 우리 시대에 없다." 동화인지 우화인지 헷갈리지만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에 있어서 아마도 헝가리 태생의 이스라엘 작가 에프라임 키숀과 견줄 만하지 않을까 싶다(내가 읽은 건 <개를 위한 스테이크>밖에 없고, 후보로 자주 오르내린다는 키숀 또한 아직 노벨상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기자의 소감은 이렇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동화이기도 하고 우화이기도 한 스물두 편의 이야기, 그 주인공인 행복한 바보들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무구한 시절을 돌려준다. 세월에 세상에 찌들고 해져버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유대인 작가들 얘기를 하다보니 얼마전 <나이트>(예담, 2007)이 번역돼 나온 노벨평화상(노벨문학상이 아니라) 수상작가 엘리 위젤이 생각난다.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위젤 또한 동구권(루마니아) 태생이고 홀로코스트를 체험한 작가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가 열다섯 살에 나치 강제노동수용소에 이송되었다가 가족을 잃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 소설이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와 함께 홀로코스트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고. 요컨대 '대표작'이 번역돼 나온 셈이다(예전에 <흑야>, <밤> 등으로 소개된 것과 같은 작품인 듯하다).

소개를 보태면, "엘리 위젤은 독일군이 자신의 고향 마을 시게트를 점령하면서 운명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부나 수용소,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겪은 일과 이송 도중에 겪은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나간다. 1958년 프랑스에서 초판이 나왔고, 2006년 작가의 아내인 매리언 위젤의 새 번역판이 출간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새 번역본도 다시금 주목받을 필요가 있겠다...

07. 07. 24.

P.S. 아이작 싱어의 <적,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바뀐 제목은 <원수들, 사랑이야기>(열린책들, 2008). '차별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 번역본들도 저마다 원수인 듯하다...

08.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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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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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노자도 어쩔 수 없이 전국시대(BC 403-221)를 살다간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전국시대에는 춘추시대(BC 770-403)보다 갈등과 대립이 더 심했다. 어떤 제후도 천하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언제까지 국가를 통치할지 장담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이때 노자가 혜성같이 나타나서 국가를 오랫동안 통치하는 방법과 천하를 통일하는 방법을 제안했던 것이다.-92쪽

국가는 기본적으로 통치자(군주)와 피통치차(민중)로 나뉘는 위계적 체계다. 국가가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일종의 교환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라는 체계를 지탱하는 이 교환관계의 고유한 특성이다. '교환'은 기본적으로 A에게 B로 무엇인가 전달되면 B에서 A로도 무엇인가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원활히 기능하려면 통치자가 피통치자에게 무엇을 받았을 때, 통치자도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만 한다. -94쪽

국가 체계를 유지하는 교환의 논리를 어긴 사람은 통치자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통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은 오직 수탈만을 일삼지 그것을 재분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노자는 통치자인 군주가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인 재분배의 도를 외면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97쪽

노자철학은 분명 영원한 진리의 철학이다. 그렇지만 그가 영원하다고 본 것은 '국가'와 '천하'라는 정치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결코 정치구조를 넘어서는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그의 철학은 국가의 형식적 작동원리를 규명하고 정당화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군주'가 이 원리에 따라 '올바른' 통치자가 될 수 있을지에 집중되어 있다. 결국 노자는 '국가'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못한 사상가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104-105쪽

사회민주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자철학도 기본적으로 현존하는 체제를 극복하는 전략일 수 없다. 다만 현존하는 체제를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 영속화하려는 고도의 전략일 뿐이다.(...) 노자철학이 기본적으로 남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출발한다는 사실과 남음의 혜택을 받을 부족한 사람이 다수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다시 말해 노자철학의 재분배는 '남음'과 '부족'이라는 위계성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 -109-110쪽

노자에게 진정한 통치자는 '남는 것이 있는데도 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그것을 부족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와중에 휘말려 있는 국가를 통일할 진정한 큰 국가는, '작은 국가의 아래에 있게 되면 작은 국가를 취할 수 있는' 국가다. 작은 국가의 아래에 있다는 것은 작은 국가를 수탈하기에 앞서 작은 국가를 보호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사랑의 방식을 적용한다는 말이다.-125쪽

노자의 '소국과민'이라는 정치이념에는 통치자의 강력한 지배의지가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노자가 통치자에게 권한 정책의 결과는 물론 겉으로 보면 평안하고 질박하기까지 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것에 현혹되어 노자의 정치이념이 목가적 공동체, 원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평안하고 질박한 풍경 뒤에는 통치자의 강력한 통치권 행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피통치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고 문자를 통한 반성적 사유와 이론적 대화능력을 근본적으로 없애려는 정책이 어떻게 문명에 저항하는 '작은 정부'나 '유토피아적 원시공동체'와 들어맞을 수 있을까?-130쪽

노자는 대가를 바라는 뇌물(수탈)을 마치 선물인 것처럼 포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직 이럴 때에만 피통치자는 통치자에게 알아서 자발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통치자는 통치자에게 자신이 알아서 복종한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무위자연'이라는 노자의 유명한 주장의 실제 의미다. 통치자는 '수탈이나 억압이 아니라는 직접적인 통치 행위', 즉 유위의 정치가 아니라 '재분배나 자애로움이라는 간접적인 통치 행위', 즉 무위의 정치를 수행해야 한다. 오직 이런 무위의 정치만이 피통치자가 통치자에게 '알아서 스스로(自然)' 복종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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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24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죠? :) 쉬우면서 깊이도 있고 재미도 있고. 참 괜찮았던 책입니다. 저자의 생김새와는 달리;;;

가넷 2007-07-24 09:28   좋아요 0 | URL
하하;;; 저자분이 살짝 산적같기는 하지만 ...-_-;;

로쟈 2007-07-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파격적인 노장론이라고 생각하는데('노장철학은 없다'는 것이니까요!) 학계에서도 '이단'으로 내몰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영업비밀을 그렇게 다 누설해놓아서)...

마늘빵 2007-07-25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 분의 관련 책이 꽤 많은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 다른건 못봤습니다. 관심 많이 가는 철학자입니다.

로쟈 2007-08-29 19:3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론 좀더 정치한 연구서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비공개 2007-08-2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서 이분을 초대하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의를 듣고 파격적인 언사때문에 언짢아 하시는 분들도 있으셨지만, 무정부주의자다워서, 그리고 철학자다워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도 한번 읽어보아야 겠네요.

로쟈 2007-08-29 19:35   좋아요 0 | URL
'파격적인 언사'의 수위가 궁금하네요.^^

심승보 2007-10-28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되었던 박이문 교수의 <노장사상>과 김형효 교수의 <노장사상의 해체적 독법>이 가장 유명하면서도 깊이있는 대표적 연구서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김용옥의 관련서 <노자철학 이것이다> <노자와 21세기> 등을 역시 빼놓을 순 없겠구요. 책세상 문고판으로 나온 김시천의 <철학에서 이야기로 - 우리시대의 노장 읽기>는 비교적 최근까지 이루어진 국내외 노장사상 연구사 검토에 유용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로쟈 2007-10-28 10:34   좋아요 0 | URL
'노자 읽기'목록을 예전에 이미 작성해 놓았습니다. 심승보님의 읽기를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심승보 2007-10-2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확인해 보았습니다. 박이문 교수의 <노장사상>과 김형효 교수의 <노장사상의 해체적 독법>이 빠진 것이 다소 아쉽지만 유용히 참고하였습니다. 저도 내년부터 시간이 좀 나게 되면, 제 나름의 리스트들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로쟈 2007-10-28 23:53   좋아요 0 | URL
두 책 모두 저도 읽어본 책들입니다. '노자 읽기' 목록이어서 '노장' 연구서는 배제한 기억이 있습니다. 강신주에 따르면 '노자 & 장자'가 아니라 '노자 vs 장자'의 구도이기도 하구요...
 

컬처뉴스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온다.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자세한, 그리고 가장 유익한 기사이다. 고진의 책은 책상에 쌓여 있는 40여 권의 책들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맨 위에!) 놓여 있는데, 다른 책들에 치이다 보니 나는 뜨문뜨문 듬성듬성 읽게 된다. 고진의 '가장 쉬운 책'이라고도 하니까 보다 많은 분들이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컬처뉴스(07. 07. 20)  GO진! 다시 "맑스로 돌아가자!"

미국의 평론가 고(故) 수전 손택은 자신만의 위대한 작가 분류법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위대한 작가는 남편 아니면 애인, 둘 중 하나다.” 이런 구분법에 따르면 내게 가라타니 고진(1941~   )은 애인이었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에서부터 『유머로서의 유물론』(1993)까지 근 16여 년간이었다. 이 기간은 그가 나쓰메 소세키에서부터 자크 데리다까지, 동서고금의 복잡다단한 사상을 쉼 없이 넘나들면서 깔끔히 정리해내 ‘생각하는 기계’(Thinking Machine)라는 별명을 얻게 된 시기와 겹친다.

그랬던 고진이 언젠가부터 남편이 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지역화폐체제(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LETS)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연대자 운동’(New Associationist Movement, NAM)을 주장한 2000년경부터였다. 그 해 2월과 11월 그는 『윤리21』과 『NAM-원리』를 출간했고, 2004년 5월과 7월에는 앞선 두 저작의 내용을 확장시켰다고 할 만한(또는 앞선 두 저작의 ‘심화’라고 할 만한) 『네이션과 미학』과 『역사와 반복』을 ‘가라타니 고진 저작집’(定本柄谷行人集)의 4권과 5권으로 출간했다.

얼마 전 번역되어 나온 『세계공화국으로』(조영일 옮김)는 이른바 ‘고진의 남편-되기’의 정점에 해당하는 책이다. 우리는 이제 여러 사상들을 현기증 날 만큼 빠르게 넘나드는 솜씨를 과시하는 연인으로서의 고진을 더 이상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변덕스러워 보이고, 때로는 신뢰할 수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위험해 짜릿한 느낌을 맛보여주는 연인으로서의 모습을.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이 남편처럼 보이는 이유, 그러니까 믿음직함, 이해할 수 있음, 관대함, 점잖음 같은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본인 스스로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과거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려고 애쓰며 지금까지 자신이 써온 곳을 콤팩트하고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제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며, 그만큼 자신의 의견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러나 ‘놀던 가락’이 어디 가지는 않는 법,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 역시 짜릿한 느낌을 선사해 준다. 다만 그 느낌이 위험함이 아니라 대범함에서 온다는 게 다르다. 그리고 그 대범함의 핵심에는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가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은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를 떠올리게 만든다. 알튀세르 역시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자로서의 알튀세르와 NAM 운동가로서의 고진은 다르며,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알튀세르가 맑스로 돌아가려 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이후 서구 공산당에까지 불어닥친 ‘탈스탈린주의’의 경향 속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경제주의적 해석(사회의 모든 문제를 토대-상부구조의 문제로 환원해 설명하려는 조류), 인간주의적 해석(인간의 자유 의지나 의도 따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조류), 역사주의적 해석(흔히 맑스-레닌주의의 역사발전론 5단계로 대표되는 사회구성체의 변증법적‧선형적 발전을 신봉하는 조류)과 삼중의 투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그가 보기에 이 세 가지 조류의 해석은 진정한 혁명적 실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고진은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인해 국가사회주의(공산주의)와 복지국가자본주의(사회민주주의)가 소멸되거나 쇠퇴한 신자유주의 주도의 세계라는 맥락에서 다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한다. 즉,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실패로 인해 대안체계를 둘러싼 이념과 상상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시대, 그래서 더 이상 혁명이 아니라 ‘저항’만이 운위되는 시대에서 다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당시로서 파격적으로 보였을지언정 어쨌든 맑스주의의 ‘내부’에서 맑스로 돌아가려고 했다. 과학사가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개념(인식론적 단절)을 빌려와 청년 맑스와 장년 맑스를 구분하고,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의 개념(거울 단계)을 빌려와 이데올로기론을 갱신하고 생산양식의 재생산을 문제삼았지만, 어쨌든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의 언어로 이들을 소화하려고 했다. 그래서 훗날 알튀세르는 다른 전통의 사유를 맑스주의에 끌어온 자신의 시도를 일종의 ‘불장난’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고진은 맑스주의의 ‘외부’에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한다. 고진은 자신이 동반자로 삼은 대표적 두 인물, 독일의 역사학자 칼 비트포겔과 헝가리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논의를 맑스주의의 언어로 윤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계공화국으로』에서 고진이 제시하려고 하는 주장은 더 이상 맑스의 텍스트 ‘내’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맑스를 비판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주장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진은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길, 바꿔 말하면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려고 하며, 이를 위해서 “자본, 네이션,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하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본의 존재양식은 맑스에 의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러나 네이션과 국가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는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을 국가나 네이션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런 맥락에서 비트포겔과 폴라니의 논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 한번 그렇다면,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은 무엇일까? 고진은 맑스가 상품교환이라는 기초적인 ‘교환양식’에서 시작해 복잡한 자본주의 체제의 총체를 해명하려고 했다고 본다. 따라서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을 국가나 네이션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는 말은 국가나 네이션에도 그 기초가 되는 ‘교환양식’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교환양식의 역사적 변형과 접합을 추적해 국가와 네이션의 총체를 해명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요컨대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가 고진표 “맑스로 돌아가자”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고 말한 자크 라캉과 오히려 더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라캉에 따르면 사람들의 흔한 오해와는 달리 프로이트의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에 있지 않다. 프로이트의 위대함은 무의식 자체가 오직 자신의 문법과 논리에 복종하고 있다는 것을, 더 간단히 말하면 무의식은 비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논리의 영역이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라캉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의 외부에서 프로이트로 돌아가려고 했으며, 그래서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벗삼은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맑스주의의 생산양식 개념을 교환양식 개념으로 다시 쓰는 고진의 작업은 프로이트에게서 생리학의 마지막 자취를 제거한 라캉의 작업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생리학의 자취를 제거함으로써 라캉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단순한 심리치료 기법이 아니라 주체(인간 존재)에 대한 일반 이론으로 승화시켰듯이, 생산양식을 교환양식으로 치환함으로써 고진은 맑스의 이론을 단순한 자본주의 분석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다루는” 일반 이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고진의 시도는 성공했는가? 일단 그의 시도는 짜릿할 만큼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교환양식의 네 가지 형태(네이션의 교환원리로서의 증여-답례, 국가의 교환원리로서의 탈취-재분배, 자본의 교환원리로서의 상품교환,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뒷받침할 이념형으로서의 교환 X)라는 개념은 국가와 네이션의 기원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며, 더 나아가서는 이 네 가지 교환양식의 상이한 접합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구성 자체를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진 자신이 폭넓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작정하고 쉽게 썼다는 책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쓰는 것이 적잖이 뻘쭘해 대략 고진의 시도가 갖는 이론적 의의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다보니 더 많은 내용소개를 담지 못했는데, 『세계공화국으로』에는 앞서 말한 생각할 거리들말고도 다른 방향으로 훨씬 더 뻗어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수없이 많다. 이 책은 정말로 쉬우니 꼭 읽어보시라는 당부를 전하며, 이쯤에서 총평으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혼인빙자 사기죄로 고소당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고진 선생, 계속 정진(GO)하시길! 그리고 독자분들도 남편으로서의 고진을 한번 믿어보시길! 다만 인생에서처럼 사유에서도 남편과 연인 둘 다 필요한데,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심히 애석할 뿐!(이재원 그린비 편집장)

07.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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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23 12:51   좋아요 0 | URL
지금 제 책상에서도 이 책이 기다리고 있는데...호기심을 자극하는 리뷰네요.알라딘에는 아직 리뷰가 없었지요? 아마?

로쟈 2007-07-23 13:09   좋아요 0 | URL
두 건이 올라와 있는데요.^^

yoonta 2007-07-23 13:21   좋아요 0 | URL
고진 말대로 이 책은 정말 수월하게 페이지가 넘어가네요. 알라딘 리뷰로는 allnaru님의 페이퍼가 있더군요. 로쟈님과 드팀전님의 리뷰나 페이퍼도 기대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람혼 2007-07-23 14:13   좋아요 0 | URL
알튀세르와 라캉 각각의 'retour' 테마를 가라타니의 작업과 연결시키는 논의가 '남편-애인론'보다 더욱 흥미로운 글이군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맑스를 넘어선 맑스'의 이른바 가라타니식 판본이라고 할까요, <윤리 21>, <트랜스크리틱> 이후 그의 행보는 사람을 신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지만... 어쨌든 맑스 '외부'에서의 맑스로의 접근도 물론 가라타니의 중요한 '기여부분' 중의 하나이겠지만,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부터 <은유로서의 건축>을 지나 <세계공화국으로>에 이르기까지 그가 끈질기게 천착하고 있는 맑스의 저 'Verkehr' 개념에 관한 강조와 (재)해석 역시 가라타니의 주요 작업이라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맑스[-가라타니]의 'Verkehr' 개념이야말로 가라타니가 맑스 '내부'에서 맑스에게로 접근해간 또 하나의 중요한 통로일 테니까요.

드팀전 2007-07-23 16:24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ㅋㅋ 저야 그냥 교양차원에서 읽는거니까.학문적인 리뷰는 나오기 힘들어요.^^ 대신...평범한 사람들한테..이 책 읽어봐라 나도 하는데..정도의 소구력은 갖지 않을까해요.

로쟈 2007-07-24 15:59   좋아요 0 | URL
리뷰를 쓰실 분들이 여럿 계시군요.^^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마케팅 전문가들이 쓴 <럭스플로전>(가야북스, 2007)에 관한 리뷰들을 훑어보다가 '명품'이란 키워드를 검색해보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명품백'이란 기사를 그렇게 해서 읽은 기사이며 뒤에는 <럭스플로전>에 대한 한겨레의 리뷰기사를 붙여놓았다. '명품'에 대한 욕구나 소비욕망의 작동 메카니즘은 더이상 새로울 게 없다(하지만 그런 소비욕구가 '이해'되는 건 아니다. '책소비'에나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럭스플로전>의 저자들도 그걸 모를 리 없다. 문제는 그것을 '비판하느냐, 아니면 이용하느냐'로 보인다(여기서 한 수 위인 건 물론 후자이다. 작년 여름에 화제가 되었던 명품시계 사건에서처럼. 이에 대해서는 '청담동 필립과 치치코프'란 페이퍼(http://blog.aladin.co.kr/mramor/931002) 참조). '아시아 명품 열풍에 대한 보고서'는 우리 소비문화의 자화상으로 걸어둘 만하다.

해럴드경제(07. 07. 20) 욕망이라는 이름의 ‘명품백’

한낮의 거리.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 다가온다. 남자들은 그녀의 얼굴과 몸매에 시선을 꽂지만, 여성들은 재빨리 옷과 핸드백부터 살핀다. ‘앗, 역시 루이비통!’ 여자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떡인다. 남자들은 모른다. 그러나 여성들은 안다. 왜 3초마다 마주칠 정도로 흔해 빠진 루이비통의 ‘모노그램백’을 사기 위해 오늘도 그 많은 이들이 목을 매는지…. 한국에선 이제 무슨 백을 들고, 무슨 구두를 신느냐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대변하는 증명서가 됐으니 이 도도한 흐름을 누가 막을 것인가.



▶여성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3초백, 5초백, 7초백=지하철이나 버스, 거리 곳곳에서 3초, 5초, 7초마다 마주친다고 해서 요즘 젊은층 사이에선 “루이비통은 ‘3초백’, 구찌는 ‘5초백’, 에트로는 ‘7초백’”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물론 정확한 조사를 거친 게 아니어서 이견이 분분할 순 있지만 루이비통, 구찌의 백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 땅을 휩쓰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 명품 백은 한국 여성(일부 남성도!)들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명품 욕망을 한껏 부채질하며, ‘나도 이젠 명품족’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상징물이 되고 있다.

요즘 서울시내 면세점의 루이비통 매장은 열기가 매우 뜨겁다. 해외여행길에 오르며 루이비통 백을 싼값에 사려는 이들로 북새통이다. 그중에서도 ‘스피디(Speedy)’는 면세점마다 하루 약 10~30개씩 팔려나갈 정도로 가히 폭발적이다. 일명 ‘보스톤백’이라 불리는 이 백은 루이비통 핸드백 중 가장 값이 저렴(가로 25.30.35.40㎝별로 52만~59만원)한 데다, 매우 가볍고 아무 옷에나 무난하게 어울려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백화점 매장에서도 마찬가지. 면세점보다 20%쯤 비싸지만 역시 잘 팔린다. 그러다 보니 ‘스피디’는 3초마다 마주치는 ‘3초백’이 됐다.

물론 ‘루이비통 왕국’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다. 도쿄의 20대 여성 94%가 루이비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지로 하타 루이비통재팬 사장은 “일본에서 워낙 강세다 보니 일본 브랜드로 착각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도 만만치 않다. 아시아명품마켓 연구가인 라다 차다는 “20대 서울 여성의 50%가 루이비통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 중에는 ‘짝퉁’도 적지 않겠지만 최근 들어 한국도 명품 소비의 5단계(정복→경제성장→과시→동조→일상화) 중 4단계인 ‘동조’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에 루이비통, 구찌 같은 대표 명품 백들이 더욱 거리를 도배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닌 게 아니라 명품 소비의 최종 단계(일상화 단계)에 접어든 일본에선 초등학생까지 루이비통 지갑을 쓰고, 생선가게 상인들조차 루이비통 가방에 영수증을 보관할 정도니 한국에서는 좀더 갈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즉 일본에서 루이비통이 스시나 녹차처럼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 필수품이 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자판기 커피처럼 흔해질 날이 머지않았다.



▶유니폼이면 어때요? 명품 대열 진입이 더 중요하죠=얼마 전 어머니와 함께 면세점을 찾은 대학생 김지은(22) 씨는 에트로 백을 사려는 어머니와 입씨름을 벌어야 했다. 지은 씨는 “루이비통을 사서 같이 쓰자”고 고집했고, 결국은 루이비통 백을 구입했다. 지은 씨는 “우리 같은 명품 입문자에게 루이비통 ‘스피디’는 딱 맞는 백이다. 또 전 연령대가 쓸 수 있는 백”이라며 “친구 4명과 일본에 갔는데 모두 ‘스피디’여서 가방이 수시로 바뀌곤 했다”고 들려줬다. 또 “지난해까지도 ‘짝퉁’이 꽤 있었지만 올 들어서는 ‘짝퉁’은 졸업하고, 오리지널을 구입하는 게 대세”라고 귀띔했다.

모 특급호텔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유혜영(26) 씨도 얼마 전 ‘스피디 35’(가로 35㎝ 크기)를 샀다. 유씨는 “나도 너무 흔해서 고개를 저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명품치고는 너무 싸고, 쓰임새가 많아 개의치 않게 됐다”며 “당신 같으면 수많은 브랜드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무얼 고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상반된 의견도 적지 않다. 회사원 최은경(33) 씨는 “몇 년 전 ‘모노그램’을 샀는데 요즘은 옷장 속에 처박아 놓았다. 여고생 책가방도 아니고 너무 하지 않느냐?”며 “학창 시절엔 그렇게 똑같은 걸 싫어하더니 죄다 같은 가방을 끼고 명품족입네 하는 건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파리에서 10년 넘게 활동했던 패션컨설턴트 심우찬 씨도 “프랑스인들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루이비통을 유니폼처럼 들고다니는 것을 ‘몰개성의 극치’로 본다”며 “50만~60만원짜리 백 하나 샀다고 명품 대열에 진입했다고 판단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루이비통에 비하면 구찌는 디자인이 다양해 ‘5초백’으로 꼽히긴 해도 ‘이거다’ 하는 대표 아이템은 없다. 구찌의 ‘G’로고가 새겨진 사각 자카드백이 5초백 후보로 가장 유력하지만 G로고의 구찌 백 전체를 5초백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7초백으로 지목되는 에트로는 페이즐리 무늬의 갈색 백이 베스트셀러 백. 주로 40~5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C’로고가 프린트된 셀린느 백과 프라다 백, 체크무늬가 도드라지는 버버리 백이 7초백에 더 가깝다는 설도 있다. 다양한 명품 백 디자인 중에서도 효자상품은 역시 로고가 반복적으로 찍혀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로고피케이션 백’이어서 역시 명품 구입 시 ‘타인의 시선’이 가장 중요함을 입증해주고 있다.

▶강박에 가까운 명품 집착, 누가 막으랴=한국의 명품에 대한 집착은 세계에서도 알아준다. 이미 꼭짓점을 찍은 일본과는 달리, 한국 명품시장은 해마다 10~15%씩 성장하고 있어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 탐나는 시장에서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거의 필사적이다. 게다가 남과 똑같이 보이기 위해 명품을 구입하는 일본인과는 달리, 한국의 젊은층은 ‘같으면서도 튀기 위해’ 명품을 구입한다. 또한 한국 여성들의 ‘외모 및 세련된 패션에 대한 욕망’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준다. 외국 명품업체의 CEO들은 “한국 젊은 여성들의 미적 센스와 명품 소화능력은 정말 놀랍다. 단연 최고 수준”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거의 강박에 가까운 외모와 패션에 대한 집착은 “루이비통과 구찌는 거의 홍역이다. 누가 이를 막겠는가”라는 자조 섞인 탄식도 낳고 있다. 부작용도 많지만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얼마 전 ‘럭셔리 코리아’를 펴낸 김난도 교수(서울대 소비자학과)는 “기성세대 시각에선 명품 백에 목을 매는 젊은층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들에게 물질주의를 버리라고 강변할 순 없다”며 “들로 산으로 나가 놀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요즘의 20대는 소비문화가 놀이문화를 대체한 첫 세대”라고 지적했다. 즉 쇼핑몰 누비기가 최고의 놀이라는 것.

사치의 유형을 ▷과시형 ▷질시형 ▷환상형 ▷동조형 등으로 분류한 김 교수는 최근과 같은 ‘덩달아 명품 백 구입’은 남과 똑같아지길 원하는 동조형 사치에 해당된다고 분류했다. 또 20대 여성의 경우는 ‘질시형 사치’로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명품이 남들의 무시를 막아주는 ‘갑옷’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에 흔하디 흔해도 그 대열에 끼어든다고 분석했다.

한편 명품 백이 대중에게 파급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명품업체가 스타 등 트렌드세터에게 백을 제공하는 걸 시작으로 ‘버즈(buzz.열광)’가 생성되면 VIP고객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단계에 도시 전체가 떠들썩해질 정도로 버즈가 창출되는 것이다. 일반대중은 결국 이 시끌벅적한 버즈를 좇아 행동하며, 지갑을 열고 명품을 구매하며 열풍을 만든다. 그로 인해 똑같은 백들이 사방에 쫘르르 깔리는 것이다.

“이 땅의 소비자들은 세상에 태어나 엄마, 아빠 다음으로 명품을 자각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명품의 유혹은 참으로 강력하다. 파고드는 연령층도 날로 어려진다.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갖기도 전에 무차별 소비에 노출되는 젊은이들에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명품 백 사재기가 팽배하는 건 자명한 일.

게다가 명품 백은 이제 더는 ‘백’만이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신분을 증명하는 증명서요, 프로토콜(규약)인 것이다. “적금통장 없인 살아도 명품 백 없이는 못 산다”고 외치는 젊은층이 늘면서 명품시장은 오늘도 브레이크 없는 기관처럼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명품은 가질 때는 황홀하지만, 가질수록 더 배고파지게 마련이다. 지갑은 얇게 하고, 욕망은 더욱 두껍게 만드는 명품. 이 홍역을 누가 피할 수 있단 말인가.(이영란 기자)

한겨레(07. 07. 21) 한국의 명품 열풍은 ‘남 따라하기’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근래 아시아의 명품 열풍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베블런은 상층 계급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도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상층 계급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필요도 딱히 없는 한국 여대생과 일본 여고생이 명품을 사기 위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원조교제를 마다않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명품 시장은 800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인 산업이다. 이 가운데 아시아 시장은 전체 시장 매출액의 37%를 차지한다. <럭스플로전>은 아시아 지역 마케팅 전문가와 아시아 유통망 기획·개발 컨설턴트가 만나 아시아의 명품 열풍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럭스플로전’은 ‘럭셔리(명품)’와 ‘익스플로전(폭발)’을 합성한 단어다. 책은 아시아에서 어떻게, 왜 명품 열풍이 뿌리 내렸는지를 짚어보고 아시아 각국의 유통 현장을 점검한 뒤, 명품 열풍의 미래를 점친다.

우선 지은이는 일부 유럽 귀족들의 사치품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대중화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차는 있지만 공통된 단계를 밟아 왔고, 또 밟고 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전반 전쟁과 식민통치, 빈곤을 공통적으로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다. 이때부터 엘리트층이 명품을 사기 시작했고, 경제 발전이 계속되면서 명품을 통해 부유함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과시’ 현상이 나타난다(*아래 도표는 조선일보 리뷰에서 인용).

여기에 아시아 국가들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가 더해진다. 다른 사람이 사면 나도 따라 사는 ‘동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 명품 소비가 계속 확산되면 눈이 높아질 만큼 높아져 평생 명품을 구입하는 단계인 ‘일상화’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는 이미 ‘일상화’ 단계에, 한국과 대만은 ‘동조’ 단계에 중국은 ‘과시’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책은 분석한다.

아시아의 명품 유행은 명품 기업들이 전통적인 가족 기업 정신에서 벗어나 복합 그룹을 형성하고,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려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과도 맞물린다. “부동산 투자나 호화 여행, 요트 문화를 비롯해 이미 오래 전 소비 스타일이 정립된 선진국에 비해 현재 성장을 이루고 있는 국가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안겨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틈을 파고 들어가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루이뷔통 전무이사를 거쳐 셀린느의 시이오로 있는 세르주 브룬슈위그의 말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아시아에서 어떻게 소비 규범을 주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의 시장 진출에 맞춰 아시아의 유통망이 백화점과 명품 브랜드 독립 매장으로 재편됐다. 럭셔리 브랜드는 핸드백 전체를 반복적 패턴의 로고로 가득 채우는 ‘로고피케이션’ 전략으로 신분상승의 대리만족을 안겨줬고, 나아가 핸드폰, 레저 용품 등 소비자의 삶 전체를 명품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틀어, 지은이는 명품 열풍의 핵심을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럭셔리 브랜드는 동양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재정립하기 위한 현대적 방식의 상징물이다.”

따라서 지은이는 명품의 대중화가 아시아 국가들의 미래이며, 명품이 일상화되어 포화상태에 이른 일본이 밟아간 모든 단계를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도 차례차례 밟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시아에서 명품 산업은 머지않아 ‘엄청난 잔치’를 벌일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이를 이끌어 갈 ‘거대한 엔진’이다.

아시아 명품 시장의 장밋빛 미래를 치밀하게 예견해가는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의문 하나. 우리는 재빨리 움직여 이 엄청난 잔치에 숟가락 하나 올리기 위해 유럽 명품 브랜드들을 인수해야 하는 걸까,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식민주의를 개탄해야 하는 걸까.(김일주 기자)

07.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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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avinsky 2007-07-22 23:3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루이비통 좋아하는 여자는 질색입니다. 음악 좋아하는 여자(비,이효리 부류 빼고)가 좋습니다.

로쟈 2007-07-22 23:49   좋아요 0 | URL
남성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왠지 mravinsky님을 자꾸 여자로 착각하게 됩니다.^^;

Joule 2007-07-23 01:01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도 마빈스키님이 여자인 줄 알고 있어요.

Joule 2007-07-23 01:02   좋아요 0 | URL
마빈스키님, 이박사 좋아하는 여자는 어때요?

yoonta 2007-07-23 01:50   좋아요 0 | URL
Mravinsky 즉 므라빈스키는 러시아의 유명한 지휘자인것 같네요. 고로 므라빈스키님이 좋아하는 여자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여자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심술 2007-07-23 20:17   좋아요 0 | URL
므라빈스키란 이름은 꼭 Mr.아빈스키인 거 같아서 듣거나 볼 때마다 남성성을 뿜어내는데 로쟈님은 어떻게 여성으로 생각하실까요? 궁금해집니다.^^

로쟈 2007-07-23 20:31   좋아요 0 | URL
아마도 주로 여성 이미지를 쓰셔서 그렇게 각인이 된 거 같습니다...

Joule 2007-07-24 03:11   좋아요 0 | URL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이건...흠... 그러니까 말이죠. 제 자신의 입장에선 말이죠. MRA를 왜 언제나 MAR로 읽었느냐의 문제인데. 그건 제가 골똘히 생각해 본 결과 로쟈님께 어떤 여성성이 더이상 접근하길 원하지 않았던 저의 내심의 발로가 아니었나,라고 결론내리면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저희 프로이트 오빠가 무척 기뻐하실 것 같은데...흐음.

로쟈 2007-07-24 12:42   좋아요 0 | URL
오랜만의 **댓글이네요.^^

2007-07-24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낮에 처갓집에 갔다가 우연히 읽은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장인은 조선일보를 구독하시는지라 내가 가끔 건너가서(아파트 앞동이다) 들여다보는 건 조선일보의 주말판이다. 소설가 김훈과의 장문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안 했던 얘기'만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신작 소설에 대한 구상은 나로선 처음 접한다(동시대를 다룬 그의 소설에 대한 기대는 http://blog.aladin.co.kr/mramor/1367796 참조). 구체적으로는 내년 겨울에 집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하니까 그의 '대표작'을 생각보다는 일찍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아래 인터뷰는 <남한산성>을 7-8월의 사회적 독서목록에도 올려놓은지라 '시회적 독서'로 분류한다. 말미에는 후배작가 김연수의 인물평도 붙여놓는다.    

조선일보(07. 07. 21) [광일 기자가 만난 사람] 베스트셀러 ‘남한산성’ 소설가 김훈

김훈은 재작년 세금만 8700 만원을 냈다. 소설로 밥 먹는 한국 작가 중 최고 납세자 그룹에 속한다. 약속 장소는 일산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김훈은 자전거를 끌고 땀을 흘리며 나타났다. “(이 자전거) 1500만 원짜리야. (기사에) 써도 돼.” 그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자발적 편집이 필요했다. 3시간 반을 인터뷰하다 다시 옮긴 자리에서 그는 부드러운 사케(청주)를 다소 거칠게 마셨다.

2004년에 인터넷서점 YES24에서 대표작가들 중 ‘지금 노벨문학상을 받을 사람’을 물었다. 1위는 ‘토지’의 박경리였다. ‘앞으로 받을 것 같은 사람’은 1위가 ‘칼의 노래’의 김훈이었다. 요즘 그는 여러 북클럽에서 가장 모시고 싶은 첫 번째 손님이다. 4월 중순에 낸 ‘남한산성’은 갖가지 화제를 뿌리면서 이번 주까지 27만부를 찍었다. 물론 종합 1위다. 현대, 삼성, 금호, 아모레퍼시픽 등등 굴지의 그룹들도 그를 모셔간다. 강의료는 ‘200(만원)안팎’인데, 역사와 김훈에게 배우자는 열풍 같은 것이다. 검사들, 현직 교사들, 대학생들 강의 요청은 수십 개가 쌓여 있고, 틈을 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영화사에서도 3곳에서 접촉이 왔다. TV 드라마 제작사 2곳도 출판사에 의사타진을 했고, 뮤지컬도 2곳에서 오퍼를 넣었다. 심지어 CF 제안도 들어왔다. 요컨대 그는 이 시대 최고 인기작가이고 또한 부자다. 본격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약속을 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안 했던 얘기만 합시다.” “…”



―몇 시에 일어나나?

“7시쯤 일어난다. 술 안 먹으면 6시쯤. 방 청소하고, 옷 입고, 신문 본다.”

―침대에서 자는가?

“장판 방바닥에서 요 깔고 홑이불 덮고 잔다. 나는 어디서든 문 열고 잔다. 문 닫으면 답답하다.”

―해외여행가면 호텔 방문도 열어 놓는가?

“해외여행 별로 안 간다. 작년에 프랑크푸르트에 간 것이 구라파(유럽)에 30년 만에 간 것이다. 나는 비행기도 싫다. 사람 묶어놓고 개밥 주고…. 증오하지. 엄마가 미국에 계셔서 뵈러 갈 때가 있긴 하지만 관광목적으로는 안 간다.”

―신문은 뭘 보는가.

“조선일보와 국민일보다. 내가 국민일보 근무할 때 평생 독자가 됐다.”

―신문은 어떤 면을 주로 보는가.

“뉴스면은 제목만 보고, 사설과 오피니언면을 꼼꼼히 읽는다. 논객들이 미리 설정한 틀 안으로 이 세계를 밀어 넣으려는 안간힘이 보인다. 세상이 그 안으로 들어갈 리가 없는데. 보편적 진리를 말하려는 강박에 빠져서 아무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자들은 이념의 일관성을 과시하기도 해. 이념을 일관되게 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나는 그런 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런 논객들을 보면 다 옳아. 틀린 소리 안 해. 그렇지만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옳은 말이 모자라서 이런 것은 아니란 말이지.”

김훈은 말 밭을 솎아 낸다. 뵈게 나 있는 문장들을 못 참는다. 몇 밤을 공들인 문장도 내 것이 아닌 듯하면 고랑을 뒤엎고 다시 김을 매듯 그 자리에서 버린다. 그래서 더디다. 작가라고 명함 박으면 누군들 안 그럴까 싶지만 그는 참 유난스럽다. 그가 2001년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회는 한국 문단에 ‘벼락처럼 내린 축복’이라고 했었다.

―아침은 뭘 먹는가.

“과일, 야채, 된장국, 밥. 마누라가 주는 대로 먹는다. 난 식단과 돈에 대한 권력이 없어.”

―식사 마치면 바로 집필에 들어가나.

“9시쯤 시작되지. 연필 들면 오늘 글이 써지는지 안 써지는지를 알아. 안 되는 날은 종일 앉아 있어도 안 돼. 그런 날은 그냥 나가 놀아. 그러나 아침 9시부터 다음날 새벽2시쯤까지 쓸 때도 있어. 그런데 겨우 5장밖에 안 써지면 환장하지. 그것마저 맘에 안 들어 새벽에 버리기도 해.”

―점심은 어디서 먹나.

“마누라가 집에 있으면 집에 가서 먹고, 외출했으면 근처에서 해결하지. 가장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먹어. 김밥과 자장면. 자장면은 인이 박혀서 한동안 안 먹으면 먹고 싶어져. 맛의 근원 정서를 갖고 있어. 그 빌어먹을 찜찜한 게 생각나.”

―술은 무슨 술 먹나.

“소주는 안 먹으려 해. 빚을 내서라도 좋은 술 먹자는 생각이지. 싼 술 먹으면 몸이 부대껴. 요즘 와인을 배웠는데 최근에는 사케로 바꿨어. 와인을 마시면 계통 없이 취해서 너무 로맨틱해져.”

―계통 없이 취한다니?

“술이 뼈 속에 스며 논리의 계통이 무너져. 대신 위스키는 딱, 취하는 계통이 서지. 사케는 양쪽이 다 있어.”

김훈은 성큼성큼 냉장고로 가서 사케 ‘월계관’을 꺼내왔다. 안주는 마른 오징어에 고추장이었다.

―당신은 뭐 하냐고 물으면 ‘논다’고 대답할 때가 많다.

‘논다’는 건 매우 치열한 행위야. 작가에겐 세상을 관찰하는 행위지. 나는 혼자서 잘 놀아. 자전거 타고 나가 바람 쐬고 노을을 본다고. 놀면서 세상을 들여다 보고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 노을이나 바람 속에 있다는 것은 내가 시간 속에 있다는 얘기야. 생애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언어로 포착해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답함이 있는 거지. 결국 할 수 없는 것이고.”

―당신은 세상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쓴다. 감정을 표백해버린, 강시들의 언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죽고, 통치자로서만 기능한 임금의 언어다. 작가의 매혹적인 오만과 전지전능의 시각에서 나올 수 있는 문장만 쓴다. 유머를 혐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다를 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 나는 내 문장이 뼈만 가지고 있으면 좋겠어. 골격만…. 뼈 안에 모든 정서나 정한(情恨)이 저절로 드러나길 바라는 것이야. 나는 내 문장이, 말하자면, ‘귀족의 문체’를 완성하는 것이길 바래. 유머? 나는 뼈대 안에 유머가 있다고 생각해. 드러나는 것은 물론 아니지. 기자 시절에 배운 스트레이트 문장에 대한 편애와 집착이 있는 것이고.”

―당신은 말과 글을 경멸하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 말은 ‘쓰레기’고 글은 ‘똥’이다. 그래서 꼭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나머지는 절대로 내뱉지 않는다. ‘…같은’, ‘…처럼’ 같은 비유법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말과 글을 경멸하면서 말과 글로 먹고 사는 것, 그것이 당신이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인가.

나는 말과 글을 불신하는 사람인데, 경멸까지는 아니야. 혐의를 두는 정도지. 그것들이 소통 가능한 것인지 의심해. 객관적 진실에 도달할 도구인지 불신하는 것이지. 그러나 결국 말을 안 하고는 살 수 없으니 신뢰할 수는 없고 말을 끌고 살아가.”

―산성에 갇힌 신하들에게 임금으로부터 적장 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글을 쓰라는 명이 떨어진다. 결국 최명길이 그 글을 썼고, 임금은 그 글을 밟고 나가서 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당신은 현실주의자인가. 글을 밟고 지나가 길을 내겠다는 것인데, 그 길은 어디로 뚫려 있는 것인가. 결국 삶을 도모하는 도생(圖生)의 길이 옳은 길인가.

“나는 누구의 편이 아니야. 고립 무원의 성 안에서 양대 담론의 축은 김상헌과 최명길이지. 서로 부딪치고 뒤엉켜 무화(無化)되는 것을 그리려 했던 것이야. 인조가 걸어간 길은 선택해서 간 것이 아니야.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간 것이지. 인조가 서문(西門)에서 삼전도까지 걸어갈 때 비로소 만 백성의 아비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죽더라도 뜻을 남기자는 김상헌과, 임금에게 살길을 열어주려는 최명길, 그들 사이에 임금은 뜻은 양쪽에 다 걸려 있었다. 그러나 대장장이 서날쇠가 결국은 이 땅을 메워간다. 이 작품에서 작가 자신이 가장 많이 투영되어 있는 인간은 임금인가, 최명길인가, 서날쇠인가.

"나는 가령 내가 그 시대에 지식인으로 태어나서 임금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면 어떤 행동으로 47일을 견뎠을까 생각해봤어. 등에서 진땀이 나고 사지가 떨렸어. 글을 못 쓰겠더라고. 짐작컨대 나는 아무 말도 안 하는 자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내 소설 속에 아무 말도 안 하는 자를 그리려 했는데 그릴 수가 없었어. 입 닥치고 있는 지식인을 그리고 싶었는데 못 썼어. 이 놈이 빠졌으니 이번 소설은 미완성인 것이야.”

―일반 독자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고 있는 대목은 김상헌이 강을 건넌 다음 뱃사공의 목을 베는 장면이다. 그리고 김상헌은 눈물을 흘린다. ‘김상헌의 칼이 사공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사공은 얼음 위에 쓰러졌다. 쓰러질 때 사공의 몸은 가볍고 온순했다.’ 독자들은 ‘가볍고 온순했다’에서 전율한다.

“사공은 죽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사람이지. 그러나 김상헌은 그 놈을 살려줄 수가 없는 것이야. 사공을 설치하는 것은 그냥은 못 건너는 강, 그만한 고통을 치러야 하는 강이란 점, 사공을 죽여야 한다는 점 등을 그리려 했던 것이야. 마지막에 ‘눈물’을 넣을까 말까 몇 번 망설였지. 그 놈의 두 글자가 들어가서 이것이 뽕짝이 된 거야. 눈물이 들어가야 인간의 냄새가 나긴 하는데. 그참. 괴로웠어. 그 두 글자가 추잡했어. 써야만 독자가 알아 먹는 것인가. 이상해. 나한테 안 맞는 것 같아. 재판 찍을 때 빼버릴까….”

―당신의 작품들은 놀랍게도 ‘서정적 국가주의’를 호흡하고 있다. 국가주의로만 침투하기 힘들 때는 그곳에 ‘허무’를 함께 섞는다. 당신의 이번 작품도 ‘조국의 성’에 바친다고 했다. 그 조국은 운명론적으로 갈 길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허무라고 말한다. 흡사 파울로 코엘료가 자주 쓰는 ‘마크툽’이란 아랍어를 떠올리게 한다. ‘어차피 그렇게 되어 있는 일’이란 뜻인데, 그들의 운명은 ‘마크툽’이었는가.

“서문에 ‘조국의 성’이라고 썼는데, 나는 조국이란 단어를 내 평생 처음 쓴 것이야. 내가 감히 쓸 수 없는 단어였어. 내가 조국을 쓴 뜻은 내 역사적 혈연을 말한다기 보다 삶은 영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야. 삶은 단념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국가도 마찬가지라 생각해. 개인의 윤리와 국가의 윤리는 다른 것이야. 개인은 치욕을 참지 못해 순국선열처럼 자결할 수 있지. 그러나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어. 국가는 그런 윤리의 길을 갈 수 없어. 국가가 자멸의 길을 간다면 죄악이지. 국가는 치욕을 걸머지고 살아 남는 것이 도덕이야.”



김훈은 “지금도 무슨 부대라고 얘기하면 절대 안 되는” 곳에서 37개월 군역을 치렀다. 고려대 영문과를 다니다 군대 갔는데 돈이 없어서 복학을 못했다. 그는 휘문고 졸업이다. 그는 “군대 가니까 정말 좋더구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말로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육사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것에 실패해서 기자가 됐고, 지금은 작가다. 사적인 이야기로 잠시 화제를 바꿨다.

―키, 몸무게?

“172㎝, 63㎏”

―시력은? 안경은 언제 쓰는가?

“시력도 청력도 나빠. 귀가 안 들려 병원에 갔더니 노화 현상이라면서 못 고친대. 귀가 나빠져도 괜찮아. 듣고 싶은 것도 없고. 그러나 눈이 안보이면 안 되지. 책을 못 읽잖아.”

―영화 볼 때는 안경을 쓰지 않나.

“영화를 안 봐. 내 생애에 지금까지 5개도 안 봤어. 나이 먹고 가려니 컴컴한데 가기 싫고, 냄새 나고, 껌 씹고…. 영화뿐만 아니라 테레비도 안 봐. 뉴스만 봐. 인이 박힌 것이지, 기자질을 많이 해서. 뉴스는 하루만 안 봐도 큰 일이 벌어져 있더군. 나라가 뒤죽박죽이니까 그렇지. 뭔가 무너져 가고 있어. 뉴스 장사 해먹기가 정말 좋은 나라야.”

―삐뚜름하게 모자를 쓰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머리카락이 빠져서 그래. 병원 갔더니 직사광선 받지 마라고 하데. 패션이 아니야. 일종의 노인용품인 게지. 겨울에는 안 써.”



김훈과 이야기하면서 자전거를 빼놓을 수는 없다.

―1500만 원짜리 자전거도 있나.

처음 10만 원짜리는 타다 버렸어. 지금이 네 번째야. 조립품이니까 다국적이지. 내가 원하는 것은 가볍고, 튼튼하고, 고장 안 나고, 세 가지야. 미관은 필요 없어. 4000만 원짜리도 봤어. NASA가 개발한 카본소재로 만든 자전거야. 어떤 놈이 그 자전거를 끌고 왔길래 10분만 타 보자고 해놓고 1시간을 탔지. 진짜 좋더군. NASA는 얼마나 위대해. 나 같은 놈까지 매혹시키니까. ‘남한산성’ 팔아서 그거 살 거야. 귀족 취미라고 비웃는 놈들이 있는데 30년 동안 야근한 끝에 지금 1500만 원짜리 타는데 뭐가 잘못이야.”

―대회에도 나간다는데.

“9월7일부터 8일까지 전남 월출산에서 40㎞코스를 열 번 왕복하는 400㎞ 대회가 열려. 전국 레이서들이 오는데 나도 가서 한판 붙을 거야. 월출산을 넘는 아름다운 코스야. 차밭도 지나고. 꼴등을 하더라도 갈 거야. 지금 체력 강화훈련을 하고 있어. 최소한 20등은 해야 되는데….”

― ‘기록’이 얼마나 되나.

“경기장에서 쟀더니 내리막에서 50㎞가 나오데. 선수들은 평지에서 80㎞쯤 나오고, 나는 평지에서 30㎞수준이야. 그것도 무서워. 30㎞로 10분 이상을 못 달려. 400㎞를 간다면 지구력으로 가는 것인데, 몇 놈 꼬꾸라지겠지. 나중에 스퍼팅해서 따라잡아야지.”

김훈은 자기 이름이 새겨진 원고지에 연필로만 집필한다. 김훈이 팬 사인회를 할 때는 그에게 반한 여성 독자들이 장사진을 친다. 그들 중에는 연필을 선물하는 여성도 많다. 최고급품으로 치는 연필이 독일산 스테드틀러 HB다. 김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 연필을 자랑했다. “나 좋아하는 ‘부녀자’가 준 것이야.” 이런 대목에서 그냥 ‘여자’라고 하면 김훈이 아니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공개 장소에서 대화를 할 때 말을 문어체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들과도 그런 식으로 대화하는가.

“나는 어문일치에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말과 글은 전혀 다른 것이야. 한글지상주의자들이 한자를 배격하는 것은 야만적 폭거야. 나는 나의 글과 말에 한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다 써.”

―‘비호’를 쓴 소설가이자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광주 선생이 아버지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무엇인가. 문장인가. 정신인가.

나는 유산이라고는 숟가락 하나 받은 게 없어. 우리 집에 장안의 글쟁이들이 다 왔어. 그러나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버지를 묻고 와 그 묘지 값을 못내 13개월 월부로 갚았어. 제대 후(1973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는데 첫 월급이 2만5000원이야. 아버지가 장흥에 있는 공원묘지에 묻히셨는데, 외판원이 와서 내 봉급에서 묘지 값으로 7000원씩 떼 갔다고. 월부로 다 갚고 나자 그쪽에서 10평 묘지에 대한 문서를 주데. 이제 네 것이다. 그날 산소 가서 소주 먹고 통곡했어. 그런 아버지야. 허랑방탕하고 술을 엄청 먹었지. 상해에서 김구 캠프에서 한 20년 먹고, 광복된 서울에서 먹고, 6·25때 부산 피난 가서 먹고, 수복 후 명동서 박인환과 먹고…. 나는 지금 술 먹는 것도 아니야. 아버지는 동아시아의 격변기를 따라다니며 술 먹었지. 술의 본류를 따라다니며 먹은 것이지.”

―지금도 아버지 편인가.

“지금도.”



김훈의 소설에는 열렬한 팬들이 많다. 반대로 그의 문장에 대해 안티들도 있다. 문체 미학의 매혹이 너무 강렬해서 금세 피로증세를 느낀다는 독자도 있다. 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목숨 걸고 쓰는데 하루에 원고지 3장 밖에 못 쓰고, 그나마 갖다 버리는데, 그들이 모르겠다면 난들 어쩌겠어. 헤어질 뿐이지. 사실 나는 독자들을 고문하고 싶었어. 잔혹하게 끝까지 고문하자. 희망은 안 보이는데 고문만 하면 결국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었어.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독자를 고문해서 사지로 몰아넣듯이 했어. 기름 짜는 압유기에 넣어 독자를 짜려고 했어. 그래야 그들이 정신을 차리는 것이지. 그래야 김훈을 욕하더라도 삶과 역사를 생각할 것 아냐.”

그런 김훈의 책상 위에는 천칭저울이 천장으로부터 걸려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한의사였는데 물려 받은 것이다. 김훈은 한의사도 소설가도 시대의 중인(中人)계급이라고 생각한다. 중인만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믿는다.

―내년이면 육체적 나이로 ‘환갑’이다. 그러나 당신은 소설을 낼 때마다 ‘나는 신인이다’고 했었다. 이제 세계적으로 이름이 크게 알려지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신인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신인으로 살다 죽으려고 해. 신인은 문화의 꽃이지. 전위와 아방가르드라는 점에서. 이류나 삼류더라도 전위가 돼야 해. 그게 안 되면 문학은 망해.”

―대표작을 썼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내년 겨울에 쓰려고 해. 내가 살아온 시대, 아까 말한 희망이 좌절된 시대를 쓰는 것이지. 세상과 부딪쳐 좌충우돌하는 기자를 주인공 삼을 거야. 애인은 도망가고 좌충우돌만 남은 기자. 금방 쓸 수 있을 거야. 당대를 쓰는 것은 소설가로서 치사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어. 우리 청춘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지.”

―당신이 살아온 시대의 대부분을 당신은 기자로 살았다. 기자(언론인)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은 무엇이 가장 크게 다른가.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점 말고.

작가가 되면 자기가 자기를 통제해. 기자는 육군처럼 삼엄한 기율과 통제가 있잖아. 소설가는 스스로 통제 않으면 날라리 깡패가 되는 것이지. 자기 통제가 어렵고 슬퍼. 나를 통제할 놈은 없고, 대신 욕하고 비판하는 놈은 많아. 그것은 처절하게 외로워. 나는 우리 선배들이 정계, 금융계, 관계로 가는 것 좋다고 생각해. 언론계의 수많은 엘리트가 경륜을 펴고 세상에 발전을 가져오니 좋잖아. 언론계에 뼈를 갈아 바치는 것만이 순수한 언론인이라고는 생각 안 해.

―기자로서의 경력 가운데 한국일보, 시사저널, 국민일보 그리고 한겨레신문으로 옮겨다닌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나는 조직과 후배에 대한 불화가 많았어. 나는 엉기는 것이 싫어. 그들은 자꾸 신문사를 혈연집단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나는 정말 싫었어. 나는 회사를 떠날 때도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 지금도 미래에 대한 공포가 없어. 나의 천부적인 자질이야. 백척간두에 서면 뛰어내리는 거야. 그리고 살아 남아. 나는 낙법을 안다고. 노무현 대통령은 못 뛰어내린 거야. 그래서 지금 저 모양이 된 거지. 1989년12월31일 한국일보에서 나올 때 다시는 언론사에 안 가려고 했어. 80년대를 하도 비굴하게 살았기 때문이지. 굴욕, 치욕, 죄악이 있었지. 90년대 들어 1년을 방랑하니까 쌀이 없어. 그때는 술 많이 먹었어. 남해안을 돌면서 뼈가 삭고 똥물이 나오도록 마셨지.”

김훈은 국가에 감사한다고 했다. 자신의 책을 사고,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교육 받은 독자를 국가가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조국이 수십 년 동안 수백 조의 돈을 투자해서 교육 받은 인간을 만들어 놓았기에 자신이 먹고 산다는 것이다. 국물을 부어주던 단골 어묵집 직원 정혜은 양은 “(김훈 선생이)처음에는 무서웠으나 갈수록 따뜻하고 귀엽다”고 말했다. 김훈은 마지막에 말했다. “ ‘남한산성’에 그 모든 역사의 하중을 걸지 말라고!” 그는 취했다. “민중들이 숫자의 힘으로 덤비면 안돼. 나는 숫자의 힘에 절대 지지 않아. 문체라는 것은 문명을 지배하는 것이야.”

조선일보(07. 07. 21) 소설가 김연수 ‘내가 본 김훈’

그의 작업실 칠판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말이 적혀 있다. 10년 전쯤, 나는 잡지사 기자, 그는 신문사 기자였을 때 그의 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삼각파도 대처법에 관한 매뉴얼 책을 추천했다. 선원들이 보는 책이었다. 그는 닦고 조이고 기름칠 때,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혼은 수리공에 가깝다. 공구에 대한 그의 페티시즘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공구로도, 매뉴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일에 관해서라면 그의 문장은 그쯤에서 멈춘다.

공구와 매뉴얼이 없다면 아마도 그는 쓰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가 20여 년 간 몸담았던 직장의 직업윤리였다. 그가 ‘겨우’ 쓰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는 단어의 운용에도 매우 인색한데, 그 역시 공학적으로 한글을 다루기 때문이다. 자음과 모음을 이리저리 연결시켜서 얻어내는 문장이어서 그의 글은 만연체가 불가능하다. 그 글은 또한 언제라도 자음과 모음으로 해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문장은 허무한 느낌마저 든다. 언젠가 해체될 것을 알면서도 조립해야만 하는 자의 허무다.

조립하고 해체하는 세계 너머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만지는 언어로는 그 세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그럴 때 보면 그는 ‘공자(孔子)주의자’다. 매뉴얼대로 공구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셈이다. 그가 최상의 인간으로 믿고 있는 사람은 육군 대위인데, 그 까닭은 육군 대위야말로 필드 매뉴얼에 가장 근접하게 행동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에게 육군 대위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음악가다. 그들은 공학적으로 행동한다.

그의 고향은 서울 삼청동이다. 그러므로 그건 사대문 안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감각이리라. 시정에는 시정을 움직이는 원리가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 원리를 지킬 때, 시정은 즐길 만한 곳이다. 공구와 매뉴얼의 세계를 믿을 때, 그는 세상 안에서 잘 놀 수 있다. 그러니 계속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만 하리라. 그래야만 이 세계를 한 번 더 지독하게 긍정하면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내가 들은 가장 인상적인 말은 “내년 봄까지 술값은 모두 내가 낸다”였다. 어느 해 가을이 한참일 무렵, 들었던 말이다. 적어도 꽃이 필 때까지는 함께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고 혼자 안도하던 찰나, 그가 덧붙였다. “내년 연말까지는 김연수가 사라.” 다행이다. 그리고 몇 해가 더 흘렀지만, 우린 지금껏 아주 잘 놀고 있다. 술은 거의 대부분 그가 산다. 정말 다행이다.

07. 07. 22.

P.S. 김훈의 오랜 독자로서(내가 기억하는 건 한국일보의 '문학기행'을 연재하던 시절부터의 김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풍경과 상처>(문학동네, 1994)와 <남한산성>(학고재, 2007)이다(그 사이에 <자전거여행>이 있다). 나는 <남한산성>을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풍경과 상처>는 여러 권의 책을 사서 여러 번 읽었다. <풍경과 상처>에도 윤선도와 관련하여 남한산성이 언급되는 대목이 한 군데 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쫓겨간 임금이 삼전도로 내려와서 청태종에게 투항하자, 해남에 은거해 있던 윤선도(1587-1671)는 지체없이 배를 내어 섬으로 향했다. 윤선도의 배는 치욕의 육지 맨 끝, 토말(土末)에서 출항했고, 육지의 한복판에서 임금은 치욕을 수용하는 용량을 극대화함으로서(*'극대화함으로써'의 오타이다) 창민과 국토를 겨우겨우 보존했다. 임금이 인욕의 붉은 옷을 걸치고 성문을 나설 때 눈덮인 겨울 산성에 통곡소리 가득했으나, 울기는 쉬운 일이었고 살아남기는 어려운 일이었다."(56쪽)

이 대목을 포함하고 있는 글 '낙원의 치욕'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윤선도는 향년 85세로 부용동 낙서재에서 죽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유배되었다. 그의 유배기간은 모두 20년에 달했고 유배지는 함경도 경원, 혹은 삼수갑산 같은 극지였다. 그는 유배와 유배 사이의 19년을 보길도나 해남에서 은둔했다. 은둔과 은둔 사이사이에 그는 또다시 격렬한 언어를 동원하여 당대현실을 공격했고, 그 결과는 또다른 유배였다. 보길도가 윤선도의 낙원인지, 아니면 함경도 경원과 삼수갑산이 윤선도의 낙원인지 보길도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당대 현실의 양쪽 극지에 보길도와 삼수갑산이 있다. 보길도에서 삼수갑산의 거리는 멀고 멀다. 그의 낙원은 아마도 그가 한번도 발붙일 수 없었던 '당대 현실' 안에 혹시 있다면 있을 터이었다."(59쪽)

그렇게 적은 김훈 또한 소설가로서 바야흐로 '당대 현실'에 밭을 내딛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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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22 16:27   좋아요 0 | URL
이 글 보고 김훈에게 궁금한거 두 개. 하나는, 한국일보, 시사저널, 국민일보 그리고 한겨레신문. 근데 왜 국민일보에 애착을 가지고, 조선일보를 구독하는지 묻고 싶어요. 두번째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묻고픈데 전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네요. 이번에 참언론실천연대 지지성명에 김훈과 고종석씨 빠져있었는데... 제게는 관심은 많이 가는 사람이면서 호감도는 마이너스인 작가입니다.

로쟈 2007-07-22 20:08   좋아요 0 | URL
어떤 신문을 보느냐는 그의 취향이죠.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이전에 다른 인터뷰들에서 언급한 걸로 기억됩니다. 그가 후배들에게 한 얘기들도 찾아보면 나올 듯한데요...

과객 2007-07-22 22:2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비싼 자전거라 딱 김훈의 포즈와 맞아 떨어지는군요. 누구는 놀라 쳐다볼수도 누구는 그래봤자 자전거지... 나름대로 합치된 몬가를 꾸미는 모양인데 그게 몰지... 그것까지 확인해본 후 판단해도 늦지 않을듯...

바벨의도서관 2007-07-23 19:03   좋아요 0 | URL
왜 국민일보를 -애착이 아니라- 구독하냐면, 필시 수년 전 국민일보 평생구독 운동을 펼칠 때에 국민일보 직원들도 모두 강제로 해야 했기 때문이겠죠(당시에 들어온 엄청난 수입을 조용기 목사의 철없는 아들의 경영 실패로 날려버렸지만 말입니다).

수유 2007-07-23 21:56   좋아요 0 | URL
와인을 마시면 계통 없이 취해서 너무 로맨틱해져..나는 저런 말이 좋습니다. <풍경과 상처>도 좋고. <남한산성>도 좋고. <칼의 노래>도 좋았습니다.


마누스 2007-08-09 16:14   좋아요 0 | URL
김훈 소설이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만,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그의 소설을 '비판'적으로 논한 글(고명섭 기자의 글 정도)을 별로 못 봤습니다. 김훈 소설(및 김훈 소설이 많이 팔리는 현상)을 '좌파'(김훈이 스스로 우파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므로)의 입장에서 치밀하게 비판하는 글이 하나쯤 나왔으면 좋겠군요.

로쟈 2007-08-09 16:26   좋아요 0 | URL
'좌파소설'과 '우파소설'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해주시면 비판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누스 2007-08-09 16:49   좋아요 0 | URL
저는 '좌파소설'과 '우파소설'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김훈의 소설이 우파소설이라고 한 적도 없는 걸요. 다만, 김훈이 인터뷰에서 스스로 '보수주의자'다, '혁명은 실패했다' 등의 말을 하는 걸로 보아 좌파(적어도 지젝이 말하는 급진적 좌파)는 분명히 아니고, 그렇다면 아직도 '(자본주의를 뒤엎는) 혁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좌파의 입장에서 뭔가 그럴듯한 비판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마누스 2007-08-09 16:53   좋아요 0 | URL
써놓고 보니, 굳이 '좌파'의 입장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좌파의 입장이 아니라도 괜찮으니 그럴듯한 비판이 좀 나왔으면 합니다. 김훈 소설이 너무 '무비판적'으로 읽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로쟈 2007-08-10 18:39   좋아요 0 | URL
이견을 표시하는 문단의 한 가지 관행은 '침묵'입니다. 김훈은 대중적인 지명도에 비해서는 비평적 주목을 덜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공지영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한 바 있지요). 언제부터인가 '불편함'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비판'이 아니라 '무시'이며, 이 점은 김훈에 대해서도 충분히 표현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