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만에 작년 문학판의 주요한 이슈였던 '미래파' 관련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내친 김에 이슈 정리기사까지. 특정한 유파라기보다는 젊은 시인들의 시적 상상력의 어떤 경향을 지칭하는 말로 제시된 것이 '미래파'였는데, 문단에서는 여러 가지 파문을 불러일으켰었다(지금은 한 풀 잦아진 듯하다). 아무래도 '-파'가 함축하는 '패거리'의식이 호오를 불러일으킨 빌미였던 듯하다. 한 잡지에서 미래파라는 '비평적 호명'에 대해서 정작 시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다소 뒤늦은 '반응'을 다루고 있다는데, 이들이 보여줄 '미래파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약간) 궁굼하다(사실 나는 젊은 시인들이 '소통가능성'에 대한 히스테리와 '시적 자유'에 대한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결국엔 읽을 만한 시(인)들이 남게 될 것이다...

 

한국일보(07. 09. 03) "우리는 '미래파 논쟁' 에 갇혀있지 않겠다"

2005년 초 문학평론가 권혁웅씨가 낯선 시풍으로 무장한 일군의 젊은 시인을 ‘미래파’로 명명한 이래 한국 시사(詩史)엔 ‘미래파 논쟁’이란 굵은 획이 그어지고 있는 중이다. 명칭이 적절한지, 이들 시인을 한 무리로 묶을 수 있는지 등의 기초적 문제부터 미래파의 작풍에 대한 미학적 가치판단까지 논의는 무성하지만, 많은 논쟁이 그렇듯 ‘미래파 논쟁’에 미래파의 목소리는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발행된 시 전문 계간지 <시로 여는 세상> 가을호가 마련한 특집 ‘미래파의 자기 진단과 미래파의 미래’는 미래파로 거명되면서도 논쟁의 객체에 머물렀던 시인들이 작심하고 자기 입장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 기고한 시인은 김언, 서영처, 유형진, 이근화, 이민하, 장석원, 장이지, 조동범, 진은영씨 등 9명.

 

 

 

 

 

 

 

 

  

 

기고자 대부분은 시인들을 범주화하는 움직임을 경계했다. 유형진씨는 “개성적 시인들을 카테고리화해서 그 담론에 묶어두는 일은 그들의 행보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문단 내부의 단절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동범씨는 “미래파 논쟁이 과거 참여-순수 논쟁처럼 자기 영역을 고집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우려하며 “젊은 시인들의 작품은 기존의 시적 흐름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승해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썼다.

장이지씨는 “부정과 파괴를 통해 새로운 전통을 세우려는 전위적 충동이 미래파라면 황병승, 김민정, 김경주 등 세 명의 시인만 이에 해당할 것”이라며 “결국 모두 서정시를 쓰고 있는데 미래파의 시는 서정시가 아닌 듯 말하는 것은 묘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미래파 담론 이면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의견도 있었다. 김언씨는 “미래파 논쟁을 시단의 중심에 떠오르게 한 일등 공신은 다름아닌 그 반대파 평론가들”이라며 “이들이 스스로 일으킨 논쟁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가장 싫어했던 시인들을 띄워주는 우를 범한 것”이라고 조소했다.

이근화씨는 미래파 담론을 “그 속에 무엇이든지 채워넣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음식인 만두”에, 장석원씨는 “먼 곳에서 널 사랑한다는 주문을 외며 나를 협박하는 님의 사랑 고백”에 빗대며 논의의 ‘불순함’을 지적했다.

서영처, 이민하씨는 젊은 시인들의 시풍이 이전과는 차별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서씨는 “이들의 다양한 불협화음과 추함은 새로운 표현양식이자 미의 추구”라고 규정했고, 이씨는 “뻔한 맛보다는 뻔뻔한 맛을 즐기는 감각의 전문가”들에 대한 동질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시적 흐름을 고정된 틀에 가두려는 시도에 대해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다른 필자들과 달리 진은영씨는 젊은 시인들에게 낯선 이미지들의 수집에 머물지 말고 현실에 대해 집요한 탐구를 할 것을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시 작업을 낚시에 비유한 진씨는 “풀의 배내옷으로 덮은 바구니에 담아온 물고기처럼 신선한 이미지들에 깔려 예감됐지만 의지박약 때문에 발견되지 못한 현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라고 권했다.

이번 특집에 기고하지 않았지만 미래파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김경주 시인은 지난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시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싸움에서 현재는 ‘미래파’란 이름으로 모더니즘이 앞서나가는 형국”이라며 “그런 경향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며, 시인은 예술의 전위로서 정형화되지 않기 위한 긴장을 부단히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이훈성 기자)

중앙일보(06. 06. 05) '미래파' 논쟁 "젊은 시인들의 낯선 어법, 새 상상력"

한국 문단에 화끈한 논쟁 한 판이 벌어졌다. 이른바 '미래파' 논쟁이다. 최근 주목받는 몇몇 젊은 시인들의 새롭고 낯선 어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놓고 편이 갈렸다. 6~7년 전 문단권력 논쟁 이후 오랜만의 본격 논쟁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 미래파의 등장
'미래파'란 어휘는 지난해 '문예중앙'봄호에서 처음 선보였다. 평론가 권혁웅은 '미래파-2005년, 젊은 시인들'이란 글에서 "새로운 세대가 생산하는 시는 요령부득의 장광설이거나 경박한 유희의 산물이 아니"라며 "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혁웅은 위 글에서 장석원.황병승.김민정 등 젊은 시인 셋을 인용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첫 시집을 발표했고, 첫 시집으론 이례적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중앙)를 발표한 황병승은 중진 비평가 황현산이 "완전소중 시코쿠"('창작과비평'2006년 봄호)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흥미로운 건 1년 사이 미래파 숫자가 확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미래파가 한 평론가의 재기 발랄한 호명을 넘어 문단 이슈로 떠오른 까닭이 여기 있다. 애초에 호명된 건 셋이었지만, 2000년 전후 등단한 비슷한 어법의 또래 시인들, 예컨대 김행숙.김언.이민하.유형진.이장욱 등도 미래파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다. 언제부턴가 미래파는 '길고 낯설고 섬뜩한 시를 생산하는 요즘 시인들'이란 뜻의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 미래파에 대한 반격
미래파에 대한 급작스런 주목은 끝내 반발을 불러왔다. 몇몇 계간 문예지들이 최근 발간된 여름호에서 미래파를 비판하고 나섰다. 가장 적극적인 건 시 전문 계간지 '시작'이다.


'시작'은 "환상.전복.엽기.난해성.무의식 등을 특징으로 한 일군의 젊은 시인과 '다른 미래'를 꿈꾸고 사유하는 시인들을 선정한다"며 김선우.김이듬.박상수.박판식.손택수 등 젊은 시인 18명을 특집으로 다뤘다. 이 특집에서 비평가 이명원은 "권씨는 문단연령론과 문학세대론을 반복함으로써 시단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선배 시인들의 후배 세대에 대한 이유 있는 경계심을 오히려 부추기는 데 앞장섰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작가세계'도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 세계 비판'이란 특집을 기획했다. "새롭고 낯선 징후들에 바쳐진 요란한 찬사를 걷어내고 차분한 시선으로 2000년대 상반기의 시적 현상을 돌아볼 필요"를 제기하며, 황병승.장석원.김민정 등에게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한걸음 물러나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자기 언어의 전략과 한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기 바란다"(이경수)고 충고했다. 이외에 '창작과비평'이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는 시대적 징후'란 특집에서, '실천문학'이 '탈주체론을 넘어서'란 특집에서 젊은 시인들을 다뤘다.

# 미래파는 정의가 아니라 수사다
논쟁의 진원지 '문예중앙'도 여름호에서 관련 특집을 실으면서 전선을 확대했다. 권혁웅은 '행복한 서정시 불행한 서정시'란 글에서 서정시를 두 종류로 나눴다. 시적 주체와 대상이 일치되는 이른바 전통적 방식(또는 정서)의 서정시가 행복한 서정시이고, 그렇지 못한 것이 불행한 서정시라고 구분한 것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는 말장난이나 실험시가 아니라 "시적 주체와 세계가 엇갈리는 비정합적인 불행한 서정시"란 주장이다.



권혁웅의 반론은 문단 일각의 오해에 대한 해명이기도 하다. 권혁웅은 미래파를 '청록파'나 '시문학파'처럼 일종의 동인(同人)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어법이 기존 문법과 다르다고 해서 말장난이나 환상으로 치부하지 말기를, 또 하나의 진지한 문학으로 바라보기를 당부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권혁웅의 미래파는 "정의(定義)가 아니라 수사(修辭)"(김수이, '세계의문학' 2006년 봄호)다.

'미래파 논쟁'은 한국문학이 새 국면에 진입했음을 암시하는 일종의 지표다. 그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들의 낯선 어법과 새로운 상상력은 일단 인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개인의 별난 실험이 아니라 집단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미래파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비평가 박수연은 '서정과현실' 2006년 상반기호에서 "한국적 아방가르드의 진폭은 그들 각각의 개별적 성취로만 여겨졌을 뿐 유사한 지향과 형식을 갖춘 집단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경향은 문학사적 사건임이 분명하다"고 의의를 밝혔다.(손민호 기자)

07.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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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5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9-05 18:31   좋아요 0 | URL
랭보도 오래 쓰진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