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파 관련 기사를 옮겨놓은 김에 미래파의 '산파'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이장욱 시인에 대한 기사도 옮겨놓는다. 소설가와 비평가도 겸하고 있는 그이지만 이번에 미당 문학상 후보작을 소개하는 기사에 오른 이름이기에 '시인'으로 호명한다. 오후에 후배와 잡담을 나누다가 우연히 그의 시가 최종후보작에 포함됐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는데, 찾아 읽어보니 '미래파'와는 무관한, '소박한' 시여서 마음에 든다. '소규모 인생 계획'에서 열외가 아니기에 공감하는 바도 있고(그가 이런 시를 더 써주었으면 좋겠다). '비둘기' '펭귄' '북극곰' 등이 클리셰로 등장하지만 소시민적 상상력이란 게 본래 클리셰들로 채워지는 법이다...  

중앙일보(07. 08. 22)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⑨

“만만치 않은 문장력과 사회에 대한 통찰… 최근에 나온 소설 중 가장 돋보인다.”(소설가 공지영)

“한국 시의 모더니티의 한 극한에서 서정성 자체를 낯설게 하는 첨예한 시적 감각을 만나려 한다면, 그를 읽는 것은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다.”(평론가 이광호)

“김행숙·황병승·김민정 등의 첫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해설은 모두 한 사람이 썼다. 그는 소위 ‘미래파’의 산파 중 하나다.”(평론가 신형철)

찬사에 또 찬사가 이어진다. 맨 앞의 것은 소설가를, 다음 것은 시인을, 맨 나중의 것은 비평가를 향한 상찬의 변(辯)이다. 그러나 이 모든 찬사는 오로지 한 사람만을 가리킨다. 이장욱. 그는, 문학 장르가 갈수록 쪼개지는 오늘, 시·소설·비평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리고 장르마다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한 전방위 문인이다.

문단에서 그는 소위 ‘미래파’라 불리는, 난해한 요즘의 젊은 시를 옹호하는 비평가로 더 알려져 있었다. 등단은 시가 가장 이르지만, 신형철의 말마따나 이장욱은 권혁웅과 함께 ‘미래파의 산파’로 통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그가 2005년, 소설가로 전격 데뷔한다. 처음 써봤다는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이 덜컥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은 것이다. 앞서 약력에선 시인의 이력인 시집 두 권만 적었지만, 그의 저작은 소설·비평집을 합쳐 다섯 권에 이른다. 그리고 올해, 그는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이장욱의 정체였다.

-정체를 밝혀라.

“끌리는 데로 가겠지. 시에 가장 오래 몸을 담고 있던 건 확실하다.”

-장르마다 당신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느낌은 물론 다르다. 밤과 낮의 느낌 같다고 할까. 내 경우는 시는 밤, 소설은 낮의 느낌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떤 시나 소설은 밤과 낮이 뒤섞이는 황혼의 느낌이었을 수도 있겠고.”

이장욱은 또 열심히 공부하는 문인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동네 독서실에서 온갖 부류의 고시생과 나란히 앉아 시를 읽고 시를 썼다(지금은 안 다닌단다). 하여 ‘공부해서 쓰는 시’란 쓴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공부해서 쓴 시라면 이처럼 처량하진 않을 터이다. 여기서 인용한 ‘소규모 인생 계획’은 거대 도시를 사는 소규모 인생의 옹색한 삶을 서글프게 드러낸다. ‘식빵 가루를/비둘기처럼 찍어먹고’나 ‘친구들은 하나 둘/의리가 없어지고/밤에 전화하지 않았다’란 대목에선 무언가가 얹힌 듯, 가슴 언저리가 먹먹했다.

비평가 이장욱은 환상에 기댄 시 세계를 지지하지만, 시인 이장욱은 자잘한 일상의 복판에 쪼그리고 앉아 있길 좋아한다. 동사무소나 오후의 공터, 횡단 보도, 엘리베이터 등 일상 속 공간이 두루 보이는 건 시인에게 “소시민의 자의식”(이광호 예심위원)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요일’이란 시어가 반복되는 것도 흥미롭다. 요일은, 기필코 되돌아오는, 하나 결코 이탈할 수 없는 일상의 족쇄와 같은 이미지를 자아낸다.

아마도 이장욱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일 터이다. ‘우울한 모던 보이’(평론집 제목)이거나 ‘악무한의 쳇바퀴를 벗어나기 위한 다람쥐’(두 번째 시집 자서)이거나. 아니면 ‘유연하고 무표정한 고양이’(소설 작가의 말)거나. 아니다, 셋 모두일 수 있겠다.(손민호 기자)

07.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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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9-04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 신문에서 스크랩 해놓고는 처음 듣는 이 시인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으흠...이런 사람이었군요.

수유 2007-09-04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연하진 않지만 무표정한 고양이 아닐까요? 해지는 현대백화점 옥상을 기웃거리는..
저는 <중독>을 좋아합니다. 수상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광호의 '서정성 자체를 낯설게 하는 첨예한 시적 감각' 에 동감합니다.

그리고 가져갈께요. 요즘 제 블록 너무 가난해서리..

로쟈 2007-09-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어제의 거리를 다시 걷는 오후. 현대백화점 너머로 일몰. 이건 거의 중독이야. 하지만 어제는 또 머나먼 일몰의 해변을 거닐었지.

이제 삼차원은 지겨워. 그러니까 깊이가 있다는 거 말야. 나를 잘 펴서 어딘가 책갈피에 꽂아줘. 조용한 평면, 훗날 너는 나를 기준으로 오래된 책의 페이지를 펴고. 또 아무런 깊이가 없는 해변을 거니는 거야.

완전한 평면의 바다. 그때 바다를 바라보는 너로부터 검은 연필로 긴 선을 그으면, 어디선가 점에 닿는 것. 그 점을 섬이라고 하자. 그리고 그 섬에서 꿈 없는 잠을. 너는 나를 접어 종이비행기를, 나를 접어 종이배를, 나를 접어 쉽게 구겨지는 학을.

조용한 평면처럼 어떤 내부도 지니지 않는 것들과 함께. 그러므로 모든 것이 어긋나 버렸는지도 모르지. 서서히 늪에 잠겨가는 사람처럼, 현대백화점 너머로 일몰. 일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백화점 옥상에서, 지금 막 우울한 자세로 이륙하는 종이비행기.

2007-09-04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7-09-05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른바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 문학인'이라 보다 더 기대하게 되고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9-05 18:33   좋아요 0 | URL
'애착'까지요?!..

람혼 2007-09-06 03:07   좋아요 0 | URL
애착이 아니라면, 동병상련이랄까요?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