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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1. 이런 소설을 이렇게 길게 쓰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젊은 날의 하루키라면 아이디어도 없고 기발한 발상도 없는 이야기를 단편으로도 쓸 수 있을 듯하다. 가령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늘이고 있다. 2권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은 멘시키씨의 집은 방방마다 묘사하는 데 10페이지를 쓴다. 그 중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가 간직한 여성의 옷과 속옷이 나오는 것인데 사이즈는
65c, 5호, 230mm의 신발
2. 사춘기의 소녀가 자신의 가슴이 빨리 크길 바라는 것은 어떤 건지 전혀 짐작도 안 되지만, 소녀는 숨어들었을 때도 그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지내기로 하는 등 가슴 집착이 심하다. 모두 하루키의 집착일 뿐이다. 작가는 이 가슴에 대한 묘사를 얼마나 공들여하는지 모른다. 예쁘다거나 훌륭하다거나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시큰둥한 식으로 표현되는 가슴이 어떤 가슴이었는지는 사이즈로 분명해지고 말았다.
65c, 5호, 230mm의 신발
도대체 65c는 어디 포르노에 나오는 가슴이니, 거기에 5호 옷을 입는다니.
3. 하루키는 독일의 역사와 일본의 난징 대학살 등의 사건을 끌고 오면서 역사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고 오고 싶었던 듯하다. 아울러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소설가로부터 역사도 소재로 삼는 작가가 되고 싶었겠지. 노벨상도 아른거렸을까. 하지만 그 방법이 완전히 틀려먹었다. 1938년에 있었던 사건을 질문하고 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난징대학살의 해다), <악령>의 주인공 이름을 10까지 기억해내는 남자는 그걸 떠올리지 못한다. 대학살에 참가한 피아니스트는 돌아와 손목을 긋고 자살한다. 나약함이라는 군대 내의 비난 등만이 자살 이유로 곁들여진다. 드러난 구덩이와 동독의 벽과 범죄 때문에 감옥에 갇힌 벽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역사적 사실을 개인으로 끌고 들어와 해석하는 전형이다. 독일에서 체포 뒤 일본으로 송환된 일본 화가는, 일본인도 군국주의에 대항해 싸운 사람이 있었다는 "스스로 자유롭고자 하는" 속편한 자유인의 자기 구제일 뿐이다. 일본 작가 하루키여, 가해자의 애처로움에서 벗어나세요.
4. 그에 더불어 그는 도호쿠 지진의 아픔도 한번 걸쳐넣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환상을 갖고 오면서 결국 정체가 안 밝혀진, 별로 위협적인 몸짓도 안 했지만, 무섭다고만 묘사되는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는 이 도호쿠 지진과 이어진 듯이 묘사된다. 도대체 무슨 필연성이 있나요? 당치도 않는 이데아에 메타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