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서 연재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명저50'에서 김훈, 박래부 두 기자의 <문학기행>(따뜻한손, 2004; 한국문원 1997)에 대한 꼭지를 옮겨놓는다. 자사에서 연재한 기획기사를 '우리 시대의 명저'로 꼽는 건 팔불출 같은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책이기에 그 정도의 부덕은 눈감아 주기로 한다. 사실 '문학기행'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들 가운데 이만한 책이 또 있는지도 모르겠고(공동 작업으로는 김현-김윤식의 <한국문학사>에 비견할 만하다). 한국문원과 따뜻한손에서 판을 바꿔가며 출간됐지만 내가 갖고 있는 건 <문학기행: 명작의 무대>(한국일보사, 1987)이다(그래봐야 어느 박스 속에 들어가 있겠지만). 여유가 생기면 최신판도 소장용으로 사두고 싶다.  

한국일보(07. 10. 04) [우리 시대의 명저 50] <39>'김훈·박래부 기자의 문학기행'

문학작품을 창조하는 일이 시인ㆍ작가의 일에 속한다면, 문학을 탄생시킨 현장-그 지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보존하는 일은 문화의 향수자인 우리 모두의 기쁜 책임이기도 하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중한 명작의 본적지를 찾아 창조적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그 문화의 원형을 복원ㆍ보존ㆍ재창조하는 길을 구상해 본다.”

한국일보 1986년 5월11일자 5면엔 이 같은 편집자 주(註)가 실려 ‘문학기행-명작의 무대’(이하 문학기행)란 기획 연재의 시작을 알렸다.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생존 작가와 함께 그들의 대표적 소설 및 시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지역을 찾아, 문학과 현장의 창조적 길항 관계를 탐색하겠다는 참신하고도 묵직한 포부였다.

입사 9년차의 출판 담당 박래부(56ㆍ현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 기자는 당시 탈고 막바지에 다다른 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 평사리를 답사하고 마수걸이 기사를 썼다. 한 주 뒤인 18일자엔 문학을 담당하던 13년차 김훈(59ㆍ소설가) 기자가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씨와 함께 가상 공간 ‘무진(霧津)’의 본적, 전남 순천만을 둘러보고 한 면 가득 기사를 부려놓았다. 86년 5월~87년 8월, 88년 10월~89년 5월에 걸쳐 무려 85회 연재된 문학기행은, 몇몇 후배 기자의 일시적 참여를 제외한다면, 온전히 김훈, 박래부 두 기자의 성실한 취재와 유려한 문장으로 쌓아올린 기념비적 성과였다.

연재가 시작된 86년은 언론사 정ㆍ폐간 결정권을 손에 쥔 문공부가 산하의 홍보조정실을 통해 매일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전달하던 시기였다. 기관원들이 신문사를 무람없이 드나들며 편집권을 침해하던 억압의 시절, 명작의 모태를 찾아 삶과 아름다움을 논하던 문학기행은 암담한 세월을 겨우 살아가던 이들이 망명할 수 있는 ‘말의 공화국’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문학평론가 박철화씨는 “문학기행은 저 엄혹한 80년대를 말의 사랑으로 끌어안으며, 현실 앞에 절망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한 편의 서사시”이자 “그 기행을 쫓아감으로써 악몽과도 같은 청춘을 견디게 해주었던 아름다운 마약”이었다고 추억했다.

문학기행의 전반기(86~87년) 연재분은 87년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고, 97년엔 두 사람의 기사 71편을 묶은 <김훈ㆍ박래부 기자의 문학기행>(전 2권ㆍ한국문원 발행)이 나왔다가 절판됐다. 저자들의 신문사 후배 김창영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따뜻한손’은 2004년 홍명희, 김지하, 박노해, 권정생, 전경린 등 다섯 꼭지의 글을 추가하고 전체 분량을 50편으로 추려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전 2권)이란 제목의 증보판을 펴냈다. 어느덧 머리가 허옇게 센 우리 시대의 문사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마주앉았다.(이훈성기자)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김훈=86년 봄에 장명수 문화부장(한국일보 고문)이 남도 여행을 다녀와서 문학기행 연재를 지시했다. 불과 열흘 만에 취재에 착수했으니 전체 계획이 미진한 채 시작된 셈이다. 준비는 안됐는데 마감은 숨막히게 돌아왔다. 우리가 속을 좀 썩이긴 했지만, 장 선배 말을 알아들었고 그 말을 향해 몸을 던졌다. 장 선배가 이걸 좀 알아주시길 바란다.

박래부=장 부장에게 등을 떠밀려 원주에서 박경리 선생을 만나고 다시 평사리로 갔다. 밤을 세워 원고지 30여 장짜리 첫 회 원고를 넘겼다. 2회가 김형 차례였는데 순천에 다녀와 원고를 넘기곤 못하겠다고 했다. 김형이 마음을 고쳐먹기까지 한 달 간 혼자서 참혹하게 시리즈를 끌고 갔다. 세상일이 신통한 것이, 1년쯤 뒤 내가 일본 연수를 떠나는 바람에 김형이 예전의 나처럼 한 달 반가량 혼자서 기사를 써야 했다. 결국 힘에 부쳐 한동안 연재가 중단됐다가 내 귀국 후 재개됐다.

-작품 선정 기준은 뭐였나.
박래부=생존 작가 중심으로 꾸린다는 것이 큰 원칙이었다. 87년 대거 해금된 작가 중 정지용 등을 부분적으로 편입하기도 했다. 서사성이 중요한 기획이다보니 소설을 많이 다뤘다.

김훈=당시 문학을 비롯한 우리의 정신사는 양극화된 상태였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진영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조화롭게 안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작품 선정에 신경을 쏟았다.

박래부=부끄러운 얘기지만 기자로서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다. 넘으면 신문사를 떠나야 하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상황에서 투사적 면모를 보이기란 쉽지 않았다. 연재가 시작되고 네 달 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말>지에 보도지침의 존재를 폭로하고 이듬해엔 6월항쟁이 일어나면서 민주적 분위기가 많이 확산됐다.

김훈=언론의 속성이자 한계이겠지만 문학기행이 한국 현대문학사를 관통하면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골라 다뤘다고 보긴 힘들다.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이광수부터 시작해야할 텐데 ‘흥행’을 고려해야 하는 대중 매체가 그렇게 하긴 힘들다.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 작품을 현장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나.
김훈=현장은 문학과 무관하지 않고, 명백히 그 뿌리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글로써 증명해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문학이 리얼리즘의 바탕에서 떠나있는 오늘날엔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면에서 문학기행은 우리 세대가 읽고 자란 문학에 대한 헌사 같은 것이었다.

박래부=작품 속 시간과 공간 배경엔 작가 나름대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파악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문학기행은 그런 역사적 의미를 발췌해서 하나의 시리즈로 기록해두는 작업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과 달리 공간적 원형이 어느 정도 보전돼 있었다. 원래 모습이 훼손되기 전에 현장을 포착하고 작가의 얘기를 적어둔 것은 이젠 불가능하기에 더욱 의미있는 기록 작업이었다.

-암울한 시대에 정신적 탈출구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김훈=‘한국문학 지도 그리기’가 원래 기획 취지였지만 그것은 너무 방대한 작업이었고 결국 지도를 다 그리지 못했다. 대신 회를 거듭하면서 문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이로써 야만의 시대에 인간과 시대에 대한 소통을 열어줄 수 있었다는 보람을 느낀다. 가령 조해일의 <아메리카>를 다루며 기지촌 여성의 쓰라린 삶은 ‘부도덕이 아닌 불행일 뿐’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 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작은 단서가 됐다고 믿는다.

박래부=억압적 상황이 상존하던 당시, 문화부 내에서 억압의 최전선에 있던 기자는 문학 담당 기자였을 것이다. 80년대는 문학의 위상이 크고 독자에 대한 영향력도 강한 시기였다. 죽은 고정희 시인은 자기 시를 “의미를 숨길 수 있는데까지 숨기고, 표현을 우회할 수 있는데까지 우회해서 쓴 것”이라고 했는데, 그 작품 속 메시지를 수위조절을 해가며 독자에게 전하는 일이 문학 기자의 몫이었다.

김훈=문단을 비롯한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고 진지했다. 편지, 전화가 많이 오고, 찾아와서 격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자기 작품 안 다뤄준다고 항의하는 소설가들이었다(웃음).

박래부=당시 신문 발행면이 12, 16면 정도였는데 그 중 한 페이지를 할애해 장기 연재하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이후 다른 신문사에서도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다시 느끼기는 힘들었다.

-서로 경쟁심을 느끼진 않았나.
김훈=박형은 나와 한 번의 분란도 없었던 이상적인 파트너였다. 장 선배가 좋은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래부=각자 자기 일 하느라 바빴다. 한 주는 다녀와서 기사를 써야 했고, 다른 한 주는 다음 문학기행을 위해 읽어야만 했으니까.

07.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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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글날이기도 하면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기일이다. 3년전 10월 9일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뭔가 꾸며보려고 하다가 형편이 닿지 않아 예전에 써둔 페이퍼만 잠시 손질해두었다(http://blog.aladin.co.kr/mramor/1053649). 낮에 도서관에 갔다가 웬일인지 <목소리와 현상>(인간사랑, 2006)에 자꾸 손이 가서(연구실에 꽂아놓은 내 책은 누가 들고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출했는데(불어본은 복사했다), 혹 데리다의 유령이 잡아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딴은 며칠전부터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에 대한 페이퍼를 쓰려고는 하고 있지만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렵다. 지난 주말의 서평기사를 옮겨오는 걸로 오늘의 입막음을 대신한다.  

동아일보(07. 10. 06) 자본주의가 군림하는 한 마르크스는 되돌아온다

2004년 타계한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저서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인용도 많이 된 책이다. 언어유희에 가까운 데리다의 난해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간 제목 저자 내용 등 네 가지의 어긋남(out of joint)에서 발생한다. 이 책이 ‘햄릿’의 유명한 문구, ‘시간은 이음매에서 어긋나 있다(The time is out of joint)’에 대한 심오한 독해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첫 번째 불일치는 그 반시대성에서 발생한다. 이 책은 1993년에 출간됐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가 선언된 시점이다. 구체적으론 자본주의의 승리를 ‘역사의 종언’으로 찬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 출간된 지 1년 뒤다. 그런 시점에서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소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회귀할 것임을 주장했다.

두 번째는 저자와 주제의 불협화음이다. 데리다는 좌파 전통이 강한 프랑스 지식사회에 있기는 했지만 마르크스의 철학이나 저작을 다룬 적이 없었다. 그의 주된 활동 영역은 서구 형이상학의 해체와 재구성이란 ‘이론’에 있었지 ‘실천’에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돌연 마르크스를 들고 나오며 ‘정의’와 ‘책임’의 문제를 제기했다.

세 번째는 유물론자인 마르크스와 유령, 그것도 복수의 유령을 병치한 제목의 충돌이다. 이 제목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1848년 공산당선언 첫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거기서 유령은 일종의 반어법으로 사용된 것이었고 그것도 ‘공산주의’라는 단 하나의 유령만 지칭했다.

네 번째는 그처럼 과학성을 강조해 온 마르크스주의를 역설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 위를 넘나드는 유령적 실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독특한 ‘유령론(hantologie)’으로 해체 및 재구성해 낸 파격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도구로서, 억압과 착취와 차별에 맞서는 해방운동의 대명사로서 어디선가 불러 대는 목소리가 있는 한 마르크스주의는 망령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올 것이란 논리가 그것이다. 그래서 헤겔이 마르크스를 낳았다는 주장보다 셰익스피어가 마르크스를 낳았다는 주장이 더 강조된다. 따라서 데리다의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이 아닌 ‘운동’이며 정교한 ‘과학’보다 메시아주의에 기초한 ‘종교’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이 책은 가상과 환영, 유령과의 단절을 강조하며 과학적 이론을 표방해 온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하나 이상인 그것을/더 이상 하나 아닌 그것을’로 끝나는 서장의 마지막 문장이야말로 그런 전통적 마르크시즘에 대한 전복을 함축한다.

이 책은 1996년 한 차례 번역됐으나 절판됐다. 국내에서 번역된 데리다 저술에 대한 비판을 펼치던 진태원 박사가 직접 나선 이 책의 미덕은 데리다 철학의 까다로운 개념과 용어를 세심하게 안내한 점이다. 이를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으로 맨 뒤에 실린 옮긴이의 ‘용어해설’부터 일독할 것을 권한다.(권재현 기자)

07. 10. 09.

P.S. <이론 이후의 삶>(민음사, 2007)도 사놓은 지 꽤 됐는데(데리다에 관한 건 예전에 <세계의 문학>에 번역된 걸로 읽었다), 복사해놓은 원서를 찾지 못해서 페이퍼를 쓰지 못하고 있다. 이음매에서 어긋나 있는 건 시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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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0-1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다른 철학자들에 비하면 데리다는 쉬운 편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초반이 어렵다고 하니까 역자의 충고대로 2장부터 읽으셔도 될 듯하네요...
 

이번주가 소위 '인문주간'이다. 인문학 위기 담론과 함께 작년에 마련된 프로그램이니까 올해가 두번째 행사인 셈이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할 듯한데(나도 참여해본 적이 없으니 생소하지 않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간략한 뉴스보도를 인용하면 이런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최하는 '2007 인문주간' 행사가 '열림과 소통의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오늘 서울대에서 개막식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인문학자들은 개막식에서 문명의 횃불을 밝히는 동력으로서 과학기술과 산업이 중요한 것처럼, 사람다운 삶의 길을 넓혀 가는 지혜와 통찰력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이런 내용의 인문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또 물량적 성장 위주의 산업화와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구도 속에서 인간성을 경제적 효율성의 하위 가치로 전락시킨 우리 사회의 위기가 인문학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분석했습니다.

오늘부터 오는 14일까지 부산과 광주를 비롯한 전국 8개 도시에서 계속되는 이번 인문주간 행사 기간 동안 학술제와 대중강좌, 문화체험, 공연, 전시 등 74개의 모두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이번 인문주간 행사는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 참여를 끌어 올려 인문학의 부흥을 꾀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입니다.(YTN뉴스)

 

'인문학 부흥'을 위해서 나대로 애쓴다고는 생각하지만 인문주간 행사와 관련하여 내가 힘을 보탠 건 전혀 없고 이런저런 일정상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없을 듯하다. 다만 오늘 지난번에 언급한(http://blog.aladin.co.kr/mramor/1598990) 무크지 <소문>(민음사, 2007)을 받아서 예전에 기고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오래전 글이라 좀 낯설었다!) 마침 '인문주간'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옮겨놓기로 했다. 타이틀이 또 '인문학, 맨주먹으로 일어서다!'이기도 하고(내가 쓴 문구지만 좀 낯설게 느껴진다!). 이게 저작권과도 관계가 있으므로 마지막 두 문단은 생략했다. 결말이 궁금하신 분들은 서점에서 살짝 들춰보시길. 다소 의외의 모양새이긴 하나 멀쩡한 글들과 인터뷰 꼭지들(방송인 손석희 교수, 민세원 KTX 여승무원 노조지부장)이 실려 있으므로 사보셔도 좋겠다. 그럼, 로쟈의 '인문학 근심기'를 읽어보도록 한다.

“당신이 신춘문예 당선자든 뭐든 상관없다.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게만 써라. 이래 가지고 꼴리겠어.” 한 중앙일간지 등단시인이 무작정 상경하여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야설(야한 소설)까지 쓰다가 에로배우 겸 사무원인 여직원에게 들었다는 얘기이다. 한데, 이거 야설 쓰는 동네 얘기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찜찜하다. 요즘 위기라는 문학 동네나 인문학 동네라고 해서 사정이 다를까, 싶어서이다.

특히 인문학, 요즘 애로가 많다. 잘나가던 인문학, 한때 독서 대중의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그이들의 인생 자체를 바꿔 놓기도 했다지만, 이제는 꼬이는 인문학, 인생 망친다는 푸념을 더 자주 듣는다.(“아니, 어쩌다 인문학을 하셨어요?”) 그렇다고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지라 사회적 관심과 무관하게 자력 구제에라도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세계를 평평하게 해 준다는 디지털 시대. 그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변신을 해야만 한다면, 그 인문학의 변신은 무죄인가? 그걸 좀 따져 보고 싶다.


 

 

 

지난 1990년대 인문학 동네를 도배한 가장 대표적인 구호는 ‘문학에서 문화 연구로’였다. 구닥다리 같은 문학 연구 그만 하고 문화 연구로 관심을 확장하자, 라는 게 취지였다. 한데, 이 문화 연구, 비록 나중에는 새로운 직업군으로서의 문화비평가들을 양산해 내는 일에나 이바지하게 되지만, 태생은 좌파 정치학이다. 대중문화의 숨겨진 이데올로기 따위를 폭로하자는 계몽적 시각이 기본적인 입지점이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문화 연구라는 간판을 단 교양서들이 좀 뜸하게 나오는 듯싶더니 이윽고 쏟아지기 시작한 건 문화산업 관련서들이다. ‘문화 연구에서 문화산업으로’가 2000년대의 새로운 구호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산업’이라는 명칭이 너무 나이브하다고 하여 간판에 페인트칠을 좀 한 것이 이름하여 ‘문화 콘텐츠’이다.(이거 본토에서는 잘 안 쓰는 말이라고 한다.)  

 

 

 

 

‘문화’라 불리던 것의 간판이 ‘문화 콘텐츠’로 바뀌면 그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라 정치적 행보 또한 좌에서 우로 게걸음 치게 된다. 디지털 시대에 오직 ‘돈 되는 문화’, ‘돈 버는 문화’만이 ‘문화 콘텐츠’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격을 얻는 것이다. 같은 취지의 국가 진흥기관까지 설립되니 이건 아주 노골적이지 싶다. 그러고는 인문학의 ‘비즈니스’에 대해 묻는다. 인문학, 너는 뭐 할래? 제법 존중해 주는 것인가? 글쎄다. “인문학이 뭐 별건가, 인문학 콘텐츠가 인문학 아냐?”라는 계산을 파일 공유 하듯이 나눠 가진다면 그나마 알아주는 게 고맙긴 하다. 중과부적인 주제에 “이건 아니잖아!”라고 딴죽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궁여지책의 변명은 이런 거다. “제가 좀 게으르잖아요.” 

이런 인문학 스토리를 늘어놓자니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인문학의 유구한 위엄이기도 하다. ‘니 주제를 알라’(소크라테스)거나 ‘니 운명을 사랑하라’(니체)는 게 인문학적 정언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럼, ‘완전소중’은 아니지만 ‘대략만족’ 정도는 된다. 해서, “아무리 개 같은 짓이라도 (인)문학으로 먹고 살자.”라는 결심 정도는 가질 수 있겠지. 그리하여 상경한 우리의 시인, 인터넷에서 ‘야설 작가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그러고는 수십 편의 야설을 썼지만 원고료는 한 푼도 못 받았단다. 되레 봉변만 당했단다. 다시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리얼리즘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 언제부턴가 인문학 동네에 스토리텔링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니 스토리텔링 관련 논문들이 집중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게 2000년 이후이다. 인문학 논문에도 ‘드래건(dragon)’과 ‘소드(sword)’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문학의 미래를 여는 화두로 ‘컴퓨터 게임과 문학’이 회자되기 시작하고,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키워드로 부상한다. 이건 대세인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스토리텔링 전도사들의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먼저, 바츠 해방 전선에서 혁명에 헌신하고 있는 사용자(user)-전사들: “<리니지2>의 사용자 스토리는 약한 사람들의 정의와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체험의 존엄성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존엄성은 굴욕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주눅 들게 하고 타락하게 하는 사회적 구조에 반대하는 행동으로부터 태어난다. (...) 한국 온라인 게임은 사이버 공간에서 진행되는 미래의 인간 커뮤니케이션들이 어떤 윤리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가를 보여 주는 인류사의 시금석이다.”(이인화,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한데, 이러한 행동과 윤리가 온라인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천재적인 이야기꾼’ 빈 라덴의 경우: “빈 라덴은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짜고 수십 번, 수백 번에 걸쳐 연습했다. 잘 짜인 대본에 피나는 연습으로 이루어진 공연이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퍼졌을 때 세계인들은 엄청난 반향을 보였다. 그것이 슬픔이든 경악이든 기쁨이든 간에 어떤 예술이 이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빈 라덴은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철저히 활용한 것이다.”(최혜실,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을 만나다』)

하여, 스토리텔링 만세다! 그러니 ‘문화에서 문화 콘텐츠로’라는 구호에 상응하여 ‘스토리에서 스토리텔링으로’라고 목청껏 외쳐 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런데, 사실 따져 보면, 스토리 이전에 스토리텔링이 먼저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 전에 먼저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 다시 디지털 문화로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이 변천해 왔다고 할 때, 그 디지털 문화의 환경이 지금 다시 만나는 것은 ‘오래된 미래’로서의 구술 문화이다. 그리하여 과거 문자의 도입이 전래의 ‘이야기’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면 디지털 기술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또 거기에 걸맞은 새로운 이야기 방식, 곧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한데 이 ‘새로운 이야기’는 ‘포스트모던은 새로운 중세’(움베르토 에코)라는 진단이 무색하지 않게 어떤 ‘오래된 이야기’와 조우하고 있다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둘러보면 어느 틈엔가 우리는 다시금 그리스․로마의 신화들과 중세적 판타지와 마술적 이야기들의 포로가 된 지 오래다. 우리의 주인공은 해리 포터이고, 우리의 연대기는 나니아 연대기이며,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모든 난관들을 극복해 나가는 모험 서사이다. 이미 오래전에 러시아 민담학자 프로프가 정리한 바대로 이러한 판타지적 모험 서사에서 인물은 캐릭터로, 행동은 기능으로 환원/축소되지만 그러한 평면성은 3D 입체 공간 속에서 새로운 깊이를 부여받는다. 아니 그런 것으로 가장/가정된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이러한 근심은 디지털 스토리텔링과는 또 다른 스토리텔링에 관해서도 이어진다. ‘리더십 스토리텔링’이라 이름 붙일 만한 이것은 기업 경영에서의 성공 신화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다. 이 스토리텔링은 허구적 상상의 세계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을 무대로 하며, 스토리텔링은 그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다. 무엇을 위한?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리하여 기업의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는 게 이 리더십 스토리텔링 전도사들이 주장하는 바다. 아무리 정확하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라 하더라도 그 커뮤니케이션 효과 면에 있어서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스토리텔링은 무미건조한 데이터들을 생생한 현장성과 현재성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이미지들로 전환시키며 이를 통해 설득력에 힘을 실어 준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쉽고 단순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 청중에게 불씨만을 제공해야 더 효과적인 까닭에 너무 자세한 디테일(세부사항)을 묘사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그것이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의 비결이란다. 그리하여 들려오는 성공학적 정언명령. ‘스토리텔링으로 성공하라!’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옛날 이야기다. 요즘은 어디서나 이야기 좀 달라고 한다.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부추긴다. 나름 ‘이야기의 보고(寶庫)’로서 (인)문학도 덩달아 우쭐거릴 만한가? 하지만 사정은 또 그렇지만도 않다. 구술 문화(전근대)와 디지털 문화(탈근대)의 합종연횡으로 말미암아 도토리 신세가 된 건 문자 문화(근대)이다. 그리고 모험 서사와 성공 신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리알 신세가 된 건 근대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소설이다.

 

 

 

 

근대 소설이란 무엇인가? 짚신 두 짝이다. 한 짝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버려진 리얼리티(현실)이고, 다른 한 짝은 리더십 스토리텔링에서 버려진 디테일(세부 묘사)이다. 그 리얼리티와 디테일의 조합으로 근대 소설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 질문하고 반성하고 탐구했다. 우리가 ‘재미’로만 사는 것도 ‘돈’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 주었다. 인간으로서의 위엄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인가. 스토리텔링이 번창하는 시대에 이야기 문학의 최고 정점으로서의, 하지만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밀란 쿤데라)으로서의 근대 소설이 점차 찬밥 신세가 된다는 건 아이러니컬한 일이다...(하략)   

07. 10. 08.

 

P.S. 사실 나는 '문화콘텐츠'나 '스토리텔링'이 부각되고 있는 작금의 인문학 현황에 대한 소회를 몇 자 적으려고 했을 뿐이고, '인문학, 맨주먹으로 일어서다!'란 '선정적인' 제목을 제안한 건 편집자이다. 그 카피성 문구를 말미에 쓴 건 나지만. 그나저나 이런 '궁상맞은' 이야기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오히려 꺾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떠오른 카피 하나. "인문학, 음란과 궁상 사이에서 길을 잃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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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 2007-10-0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요즘 문화컨텐츠학과의 스토리텔링을 접하면서 느낀 게 역시 세상은 돈과 재미가 대세인가라는 것이어서 슬프던데요...그냥 이렇게 변해가는 걸까요?

로쟈 2007-10-09 13:47   좋아요 0 | URL
쉽고 편한 걸 지향하는 게 인간의 게으른 본성일 테니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동물로서의 인간'의 시대인 것이죠...

마늘빵 2007-10-0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문,철학이 문화콘텐츠학과 교양학부 쯤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인문학이 변해야 산다고들 말하지만, 인문학을 실용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기본 바탕은 깔아놓고 응용을 해야하는데, 무조건 변화를 요구하는거 같단 인상입니다.

로쟈 2007-10-09 13:45   좋아요 0 | URL
인문학 내부적으론 그런 변화에 대응할 만한 내공 자체도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자꾸때리다 2007-10-0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것 관심없고 그냥 인문학 서적들 마음껏 신청할 수 있고 빌려볼 수 있는 도서관이나 많이 지어졌으면 좋겠네요. 아니면 콜레쥬 드 프랑스 같이 비 전공자들도 마음껏 인문학 석학들의 깊이있는 강의를 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나...

로쟈 2007-10-09 13:44   좋아요 0 | URL
그런 발상의 전환은 십수 년내로 어렵지 않을까요?..

심술 2007-10-0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츠 해방 전선'이 리니지2 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인가요?

로쟈 2007-10-09 13:43   좋아요 0 | URL
저도 인용한 거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리니지를 해본 적도 없구요.^^;

hdachi 2007-11-01 23:43   좋아요 0 | URL
리니지2의 '바츠'라는 서버에서 있었던 일종의 민중 봉기 사건입니다.
당시에 봉기를 주도했던 유저가 썼던 선동문 등이 온라인 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찾아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거에요.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결말까지, 결국은 현실의 재탕이라 그게 디지털 스토리 텔링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매 2007-10-0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레쥬 드 프랑스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학강좌"라는 강좌가 열린다고 하네요. 한국의 석학들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살펴보시는 것도 흥미로울듯 합니다. http://hlectures.krf.or.kr/ 여기에 소개가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 인문학 공부 안(못)한다고 시부렁거리는 사람들 많은데, 저는 원전번역의 미비등 인문학의 초석도 제대로 쌓지 못한 한국의 원로 학자들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국내용 석학들이셨어라는 뒷담화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로쟈 2007-10-09 23:04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다는 얘기는 접한 적이 있는데, 장기적으로 운영되는 듯하군요. 동영상 서비스가 된다고 하니까 기대를 해봅니다...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아마도 이번주부터 각 부문별 수상자들이 발표될 듯한데, 역시나 백미는 문학상이 아닌가 싶다. '노벨상 프리미엄'이 출판계에서 별로 재미를 못본 지는 오래됐지만(오르한 파묵은 좀 예외적인가?) 몇 년전부터 한국인 작가의 수상 가능성이 조금씩 흘러나오면서 언론의 관심은 한층 높아졌다(늦어도 10년안으로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은 시인의 수상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배당률 10:1이라고 한다(그러니까 10%의 확률이다). 이번주 목요일이면 수상자가 발표된다. 바람으로는 러시아를 포함해서 '변방'의 작가들이 수상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시야를 그만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도 되겠기에. 게다가 미지의 문학적 언어와의 만남은 언제나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니까...

한국일보(07. 10. 08) '대문호의 계보' 이을 100번째 주인공은 누가 될까?

노벨문학상이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리돔을 첫 수상자로 배출한 이래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휴지기를 거쳐 올해 100회를 맞았다. 노벨문학상 심사를 주관하는 스웨덴 아카데미는 11일 오후 1시(현지 시간)에 수상자를 발표하겠다고 5일 웹사이트에 공고했다. 한국 시간으론 11일 밤 8시. 작가, 언어학자 주축의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 18명 중 호선된 5명(임기 3년)으로 구성되는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는 전 세계에 의뢰해 받은 수백 통의 추천서를 검토, 현재 5명의 최종 후보를 추려놓은 상태다.

선정 과정 일체를 비밀에 부치는 선정위의 방침 때문에 수상자 예측은 물론, 어떤 작가가 후보로 거론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만 문학적 성취에 있어 우열을 따지기 힘든 거장들이 경합하기 때문에 수상자 결정엔 언어권ㆍ지역 안배, 정치적 고려 등 문학 외적 요소가 반영되리란 추측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이런 '허약한 전제' 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수상자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 누가 받을까
역대 수상자 103명(2명 공동수상 4회) 중에서 미국, 유럽을 제외한 비(非)구미권 국적 작가가 15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들어 노벨문학상의 지역 편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하지만 15명 중 9명이 80년대 이후 수상자인 만큼 노벨문학상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문학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도니스(시리아ㆍ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팔레스타인ㆍ시인), 야샤르 케말(터키ㆍ소설가), 치누아 아체베(나이지리아ㆍ소설가), 바르가스 요사(페루ㆍ소설가) 등의 비구미권 작가들은 올해도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프랑스 국적의 가오싱젠(시인, 2000년 수상)을 논외로 치면 수상자가 전무하다는 점을 들어 모옌(소설가), 리뤠이(소설가)의 수상을 점치거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68년), 오에 겐자부로(94년)를 잇는 세 번째 일본인 수상자가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미국 작가가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통산 10명의 수상자를 낸 문학 강국인데도 93년 토니 모리슨(소설가) 이후 수상자를 못 내고 있는 정황이 그 근거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작가는 소설가 필립 로스, 조이스 캐롤 오츠, 토머스 핀천, 노먼 메일러가 있다. 스웨덴 현지에선 이탈리아계 미국 소설가 돈 델리오를 지목하기도 한다.

선정위원회가 불어권 작가들의 기를 살려줄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불어권은 85년 클로드 시몽(프랑스ㆍ소설가) 이후 수상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 알제리 여류 소설가 아시아 제바르 등이 기대주다. 벨기에 시인 위고 클로스, 네덜란드 소설가 세스 노테봄은 네덜란드어권 첫 수상자로 촉망 받는 작가들이다.

한편 영국의 대형 온라인 베팅업체 래드브록스(ladbrokes.com)가 개설한 노벨문학상 코너에선 이탈리아 소설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가 배당확률 5대1을 기록하며 '으뜸 후보'로 꼽히고 있다. 래드브록스는 작년 오르한 파묵(터키ㆍ소설가)을 비롯, 3차례에 걸쳐 수상자를 맞춰 주목 받는 사이트다. 이 곳에선 작년 최종 후보 5인에 포함됐다고 알려진 고은 시인이 아모스 오즈(이스라엘ㆍ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위고 클로스, 조이스 캐롤 오츠와 더불어 배당확률 10대1로 상위에 올라 있다.

고씨보다 등급이 높은 작가론 레스 뮤레이(오스트레일리아ㆍ시인), 필립 로스(미국ㆍ소설가), 토머스 트란스트로메로(스웨덴ㆍ시인), 아도니스가 있다. 시인이 많은 이유는 96년 비슬라바 쉼보르스카(폴란드) 이후 10년 간 시인 수상자가 없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 한국 작가 수상 가능성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 작가로는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씨가 첫 손에 꼽힌다. 이들의 작품은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들의 주요 가독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로 다수 번역돼 있다. 특히 고씨는 2000년대 들어 <만인보> <순간의 꽃> 등 시집 5권과 소설 <화엄경>을 스웨덴에 출간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황씨도 4월 첫 스웨덴어 번역작 <한씨 연대기>를 내고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 수상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작년 수상자가 터키에서 나온 만큼 대륙 안배 차원에서 한국인 수상자는 향후 2~3년 간 나오기 힘들 것"(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이란 분석도 있고, "노벨 재단이 스웨덴 독자에게 알려진 작가 위주로 상을 주는 만큼 작년 시상식 이후 스웨덴어 작품 2권을 더 보탠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이 밝다"(고영일 한국문학번역원 사업본부장)는 예측도 나온다. 뮤즈의 노래를 듣는 젊은이가 새겨진 메달의 진짜 주인공은 3일 뒤에 가려진다.(이훈성 기자)

07. 10. 08.

P.S. 올 노벨문학상은 영국의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에게 돌아갔다. 한동안 단골로 거명되던 후보자였지만 최근 몇 년간 유력한 후보 명단에는 빠지더니 끝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최고령 수상. 작가도 일단은 오래살고 볼 일이다. 상대적으로 여러 작품이 소개돼 있는 편이어서 국내 출판계나 독자들로서는 반길 만한 수상 소식이다.

경향신문(07. 10. 12) 20세기 이데올로기 넘나든 ‘시대의 반역자’…도리스 레싱 작품세계

노벨문학상 발표가 임박하면서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정작 그 영광은 영국의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88)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레싱 역시 ‘20세기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아온 영국문학의 중심 인물로 노벨문학상 후보군에 올라있던 작가여서 예상을 영 빗나간 것은 아니다. 영국 문단으로서는 2005년 해롤드 핀터의 수상에 이은 2년 만의 개가다. 노벨문학상 107년의 역사상 최고령이며 여성작가로는 11번째다.

런던 북부의 자택에서 수상소식을 접한 레싱은 “(포커게임에서) 로열 플러시 패를 쥐고 있는 기분”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레싱은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줄도 모르고 집 밖 상점에 잠깐 나갔다가 뒤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30년간 후보에 올랐다. 유럽의 모든 상들을 다 받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레싱을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그린 서사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또 1962년 발표된 ‘황금노트북’을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으면서 “막 싹트는 페미니스트 운동을 선구적인 활동으로 평가하고, 남성과 여성간의 관계를 20세기의 시각으로 조망한 책”이라고 밝혔다. ‘어두워지기 전의 여름’(1973년), ‘다섯째 아이’(1988년), ‘폭력의 아이들’ 연작(1952~69년)도 주요 작품으로 꼽았다.



레싱은 1950년대 전후 현실에 대한 분노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던 ‘앵그리 영 맨’의 대표작가이자 페미니즘 문학의 기수로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레싱의 작품세계는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식민주의와 인종차별, 생명과학, 신비주의 등 20세기의 거의 모든 문제를 망라한다.



1950년 발표한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2007년작 ‘틈’에 이르기까지 57년간 발표된 그의 작품들은 장르와 사건, 주제가 다양하며 마르크시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20세기의 이데올로기를 거의 섭렵하고 있다. 기법적으로도 자연주의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모더니즘 수법을 오가면서 우화, 설화, 로망스, 공상과학소설 등을 써냈다. 그래서 여성작가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선이 굵은 남성적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항상 주류에서 벗어난 ‘시대의 반역자’를 자처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였으며 14살 이후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성장 배경 자체가 기성의 가치와 제도, 체제, 이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때 사회주의에 경도됐다가 전후의 행태에 염증을 느껴 1956년 결별했으며 자신을 페미니즘 작가라고 부르는 데 대해서도 반감을 갖고 있다. 남아프리카에 대한 지속적 비판 때문에 1956년부터 95년까지 남아공 입국이 금지됐다.

레싱이 1950년 발표한 ‘풀잎은 노래한다’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로디지아를 지배한 백인식민주의자와 원주민의 갈등을 사회적·정치적 입장에서 묘사했다. ‘마사 퀘스트’를 시작으로 17년간 발표된 5부작 ‘폭력의 아이들’은 한 여성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으로 ‘황금노트북’과 더불어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

레싱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이슬람 신비주의에 기반한 ‘카노푸스’ 시리즈를 비롯한 다수의 공상과학 소설을 썼으나 평론가들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다. 1980년대 이후 인기가 서서히 시들해지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빼고 작품으로만 평가를 받아보겠다며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한윤정기자)

-도리스 레싱 연보-

▲1919년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출생(본명 도리스 메이 테일러) ▲1925년 아프리카 로디지아(짐바브웨)로 이주 ▲1938년 프랭크 찰스 위스덤과 결혼 ▲1943년 이혼, 45년 고트프리트 레싱과 결혼 ▲1949년 이혼 후 런던 정착 ▲1995년 미 하버드대에서 명예학위 수여 ▲1999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명예 훈작’ 칭호 수여 ▲작품 ‘풀잎은 노래한다’(1950), ‘마사 퀘스트’(1952), ‘황금노트북’(1962), ‘어두워지기 전의 여름’(1973), ‘다섯째 아이’(1988), ‘나의 속마음’(1994·자서전) ▲서머싯 몸상(1956), 유럽문학상(1986),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2001)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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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11-18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적인 페미니즘이 '버지니아 울프'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도리스레싱'의 '페미니즘은 다른 이념의 한 가닥'일 뿐이라는 것에 큰 호기심을 갖습니다.1962년작, '황금노트북'을 꼭 읽어 보면 그 동안 막혔던 어떤 것을 찾을 것같은 예감입니다.
 

대학신문에서 옮겨오고 있는 '21세기의 사유들' 연재의 이번주 꼭지는 '가라타니 고진'이다. 문학평론가이자 가라타니 번역자로 잘 알려진 조영일씨의 소개를 옮겨놓는다.

대학신문(07. 10. 06) [연재] 21세기의 사유들 ⑤ 가라타니 고진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비평가로서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자(또는 사상가)로서의 얼굴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를 비평가로 여기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다. 물론 얼마 전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를 제출해 한국문단을 한동안 긴장시킨 바 있지만, 그런 주장은 도리어 그가 문학을 완전히 떠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그와 같은 판단에는 『트랜스크리틱』이나 『세계공화국으로』와 같은 사상서들이 그의 주저로 간주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사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흔히 아는 의미에서의 문학비평을 거의 쓰지 않고 있으며, 대신 철학이나 사회사상 쪽으로 관심대상을 넓혀왔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정작 가라타니 자신은 비평가로 불리길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철학자이기보다 비평가이길 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개념을 좇기보다 문제를 좇기 때문이다.



20세기는 ‘극단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철학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는 완전히 이질적인 두 상황이 각각 존재했다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전자의 시대였기에 후자의 시대가 가능했다는 의미다. 지난 세기 수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그런데 들뢰즈의 말처럼 철학사가 개념창조의 역사라고 한다면, 철학이란 서로 다른 개념들 간에 이뤄지는 힘겨룸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개념들은 어떻게 생성되고 또 어떻게 사라지는 것일까? 바로 개념들의 배치에 의해서다. 즉 ‘이항대립’을 통해 구축되기 마련인 개념들은 어느 쪽을 더 우위에 놓느냐에 따라 이전 개념군이 파괴되고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개념군이 자리잡는 방식으로 배치된다. 이런 이유로 알튀세르는 철학에는 무의미한 형식적인 전복운동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평은 이와 다르다. 그것은 철학과 달리 개념에 대한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주어진 문제들에 집착하면서 그에 대한 인식이 개념화되는 것을 끊임없이 회피한다. 그러므로 비평의 관심은 항상 개념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를 향한다. 다른 말로 비평을 한다는 것은 개념을 낳는 문제(조건)들과 씨름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오로지 이동을 통해 가능하다는 말이다. 가라타니가 비평을 ‘대립’이 아니라 ‘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비평은 이를 통해 ‘개념의 노동’(헤겔)을 넘어서는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우리에게 소개돼 왔다. 그러나 동시대 사상가 중에 가라타니만큼 널리 읽힌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그의 책을 그토록 탐독해온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라타니의 책은 여느 철학서보다 쉽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슷한 한자어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에게는 중심개념이라고 할 만한, 다시 말해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 할 개념(핵심용어)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대신에 기존 개념들의 의미를 조금씩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논의를 펼쳐가기에, 딱히 철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약간의 수고만 들인다면 그 흐름을 쫓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이들이 철학의 대중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그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혹 대중적으로 성공을 하더라도 기껏해야 지적 임팩트가 제거된 요약본을 내놓는 데 그쳤다. 그러므로 가라타니는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대중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저서들이 마냥 쉽게 이해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니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소화하기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세계공화국으로』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의 전환이나, 생산자 투쟁에서 소비자 투쟁으로의 이행,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리로 이야기하는 ‘제비뽑기’, 점진적으로 주권을 양도함으로써 이룩해가는, 규제적 이념으로서의 ‘세계공화국’과 같은 것들은 개념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같이 우리가 자명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이동’시킨 결과다.

따라서 우리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 ‘가라타니 철학’이라는 실체와 접하는 경험 따위는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가라타니의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라타니를 읽은 후 이제 더 이상 이전 같이 사고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비평의 철학이란 바로 이처럼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 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세기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상가들이 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우리와 함께 숨 쉬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상가는 가라타니 한 사람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까닭은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한국 비평과 한국 철학의 빈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조영일_문학평론가)

07.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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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2008-01-04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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