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리뷰만을 보자면 이번주의 화제작은 단연 필립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웅진지식하우스, 2007)이다. 엊그제 서점에서 잠깐 봤을 때는 '대단한 두께'라는 것 말고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었는데('무슨무슨 이펙트'란 제목을 단 책들은 그저그런 책들이 아닌가란 편견 때문에) 몇 개의 리뷰를 읽어보니 책은 두께 이상으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심리학' 책이다. 소위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모의 교도소 실험'의 결과가 책의 포인트이다(이 유명한 실험 자체는 다른 책들에서도 읽어볼 수 있는데, 이번에 번역된 저자 짐바르도가 그 '저작권자'라고 한다). 두 개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7. 11. 24) 악마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자행된 미군의 만행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적나라한 사진들과 함께 외부에 공개되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해 9월 만행의 중심인물 칩 프레더릭 하사를 만난 필립 짐바르도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당시 37살의 그가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2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침례교 교회에 나갔으며, 스스로를 도덕적이고 영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프레더릭은 아부그라이브 학대 만행에 가담한 뒤에도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심리학자들은 모범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던 그가 자신의 근무환경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학대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정신병적 성향의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정신분열증·우울증·히스테리를 비롯해 주요 심리학적 병리학과 관련해 그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범위”에 속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악마’로 돌변했을까? 짐바르도 교수의 <루시퍼 이펙트>(웅진지식하우스)는 바로 그 문제,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를 구체적 실험을 통해 추적해가는 방대한 저작이다. 루시퍼(Lucifer)’는 원래 하느님이 가장 사랑한 천사였으나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지옥으로 떨어진 사탄이다. 그러니까 ‘루시퍼 이펙트’는 멀쩡한 사람이 악마로 돌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지은이는 본장 첫머리에 네덜란드 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의 그림 <서클 리미트 Ⅳ>를 보여준다. 둥근 구 표면에 날개를 편 천사들이 셋씩 짝을 이뤄 나뭇잎처럼 촘촘히 그려져 있는데 묘하게도 초점을 천사한테서 그들 옆 빈공간으로 옮기는 순간 뿔달린 박쥐모양의 악마들이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도로 변한다. 이 그림이 보여주고 있는 심리학적 진실은 이렇다. 세계는 선과 악으로 가득하다.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고 불완전하다. 천사가 악마로 될 수도 있고, 악마가 천사로 될 수도 있다.

지은이는 오랫동안 이웃으로, 친척으로 함께 오손도손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날 살인마로 돌변해 1백만 이상을 죽인 르완다의 후투족-투치족 비극,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 영국군의 미국독립전쟁 당시 주민학살 등의 예를 들면서 만행 당사자들이 칩 프레더릭처럼 평소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었음에 주목한다. 그 ‘정상’ 뒤 깊숙한 곳엔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을까?

<루시퍼 이펙트>의 핵심 주제는 ‘인간의 악행은 개개인의 기질 탓인가, 아니면 그가 놓여 있는 상황 탓인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상자 안의 사과가 썩는 것은 사과 자체가 먼저 썩었기 때문이냐, 사과는 원래 멀쩡했는데 썩은 상자가 썩게 만들었기 때문이냐? 여기서 짐바르도의 유명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이 등장한다. 이 실험이 책의 뼈대다.

아부그라이브 만행이 자행되기 33년 전인 1971년 8월14일 짐바르도는 하루 15달러씩 주기로 하고 실험참가자를 모집해 그들 중 24명의 ‘지극히 정상적인’ 대학생들을 뽑았다. 실험은 스탠퍼드 대학 지하실에 모의 교도소를 만들어 놓고 모집학생들을 교도관과 수감자 두 그룹으로 나눠 2주간 일반 교도소와 같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해 그들 사이에 어떤 심리·행동 양식상의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었다.

경찰에 부탁해 일반적 절차에 따라 그들을 체포한 뒤 3 × 3. 크기의 방 3개에 각각 세 명씩 수감자를 넣고 1개조 3명씩의 교도관 3개조와 지원근무자, 교도소장이 배치됐다. 두 그룹으로 나뉜 학생들은 그것이 실험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여차하면 실험을 포기할 수도 있으며, 부모들도 사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험 시작 첫날 점호시간부터 상황은 그들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교도관 역을 맡은 학생들은 진짜 교도관처럼 행세하기 시작했고 그들 정체성마저 거기에 맞춰 변해갔다. 수감자들 역시 저항도 하고 일부 탈락하기도 했으나 심리상태는 일반 교도소 수감자들을 닮아갔다. 책은 그런 변화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보여주는데, 실험의 전모를 완전히 드러내기는 이 책이 처음이라 한다.

실험은 사태가 매우 우려할 만한 지경으로 번져가던 제6일째 중단되고 말았다. 교도관과 수감자, 그리고 관찰자, 외부방문자들의 시선을 교차편집해 실험 당시의 사건과 참가자들의 심리상태, 종료 뒤의 평가, 회고 등이 종합적으로 제시돼 있다. 참가자들은 왜 실험인 줄 알면서도 극한상황으로 빨려들어갔는가. 왜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실험은 33년 뒤 아부그라이브 비극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났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루시퍼 이펙트는 개인 기질보다는 상황, 상황을 조성하는 시스템, 곧 썩은 사과보다는 썩은 상자 탓이 더 크다는 게 결론이다. ‘밴두라 실험’ ‘깨진 유리창’ 이론 등도 등장한다. 물론 그것이 개인의 비도덕적, 불법적 악행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고 책임을 면제해주지도 않는다는 걸 짐바르도는 거듭 강조한다. 그는 누구든 악마로 전락할 수 있지만 누구든 영웅이 될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악에 맞서 싸우면서 루시퍼 이펙트에서 벗어나기 위한 영웅적 노력을 보통 사람들에게 촉구한다.(한승동 선임기자)

세계일보(07. 11. 24)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변하게 하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주로 긍정적으로 사용되지만, 부정적인 경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특별히 악한 ‘상황’ 또는 ‘시스템’에서는 얼마든지, 끝없이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가학행위를 하고 사진을 찍은 미군 헌병들은 원래부터 변태성욕자에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정신병자들이었을까?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을 일으킨 조승희는 태어날 때부터 살인을 즐기고 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유혈사태를 일으켰을까? 답은 ‘아니다’.

1971년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행하게 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이하 SPE)의 결과를 발표해 심리학계는 물론 전 세계적인 충격을 가져왔던 필립 짐바르도 박사는 이를 ‘루시퍼 이펙트’, 즉 악마효과라 명명했다. 스탠퍼드 대학 지하실에 임시로 설치한 감옥에 자원자인 대학생 24명을 임의로 교도관과 죄수로 나눠 2주 동안 생활하도록 한 이 실험은, 저자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악몽 같은 실험이 되고 만다. 교도관 역을 맡은 학생들은 손에 쥐어진 권력에 심취돼 엄청난 가학행위를 끝없이 저질렀고, 죄수 역할의 학생들은 신경쇠약과 정신질환에 시달렸으며, 실험은 6일 만에 종결됐다.  

 

이 실험 결과는 짐바르도 박사의 학회 발표와 다큐멘터리·영화(‘엑스페리먼트’) 등을 통해 수없이 알려졌고 심리학은 물론 사회학·정치학 등 관련서적에 빼놓지 않고 실릴 정도로 유명한 실험이 됐다. 그런데 36년이 지난 SPE의 내용을 다시 책으로 엮어낸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촉매제는 2004년의 아부그라이브 사건이었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에서 미군 헌병들은 이라크 포로들의 옷을 벗기고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가학행위를 저질렀으며, 심지어 이를 활짝 웃으며 사진으로 찍어 기록을 남겼다. 짐바르도 박사는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이 사건을 지켜보며 놀라기는커녕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헌병들은 포로들의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옷을 벗기고 수치스러운 행위를 하게 했다. SPE의 교도관들이 저지른 행동과 유사했던 것이다. 이들은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이런 일을 웃으며 할 정도의 정신이상자라면 미국 군인으로 참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스탠퍼드대에서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다시 한 번 루시퍼 이펙트에 대해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수십년이 지난 SPE의 자료를 모두 모아 정리하면서, 교사가 학생에게 끝없이 심한 체벌을 가하는 ‘밀그램 실험’ 등 심리학계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관련 실험들을 함께 분석한다. 르완다와 난징의 학살과 강간사건 등 집단광기를 보인 역사적 사건들도 조명한다.

한국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내용도 있다. 이 책을 마무리하던 지난 4월, 저자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을 접한다. 이 사건 역시 그는 루시퍼 이펙트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미디어가 조승희의 ‘왕따’현상을 집중 조명하고, 한국에서는 그의 가족들이 머리숙여 사죄했다. 그러나 짐바르도 박사는 이 같은 분석이 잘못된 접근이라고 본다. 그 사건이 미국 학교에서 처음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이라면 범인의 성장배경과 인간성 등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겠지만, 미국 학교의 총기사건은 벌써 11번째다. 루시퍼 이펙트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사람은 악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믿는다.

그러면 악한 상황이 생기면 악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루시퍼 이펙트 벗어나기’에 초점을 맞춘다. 집단 광기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시스템에 저항하고 선을 추구하는 ‘작은 영웅’은 항상 있었다. 저자는 루시퍼 이펙트에서 벗어나는 10단계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감을 갖고, 정체성을 인식하고, 부당한 권위에는 반항하며, 집단 내에서도 나의 독립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것 등이다.

루시퍼는 악마를 뜻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악마였던 것은 아니다. 원래 천사였으나 신에게 반기를 들고 악마로 변한 장본인이다. 이 책의 제목이 ‘데빌(devil) 이펙트’가 아닌 루시퍼 이펙트인 이유다. 루시퍼는 악마의 수장이지만, 얼마든지 악마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악한 시스템은 항상 우리를 위협하지만, 이를 당당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7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의 결론이다.(권세진 기자)

07. 11. 24.

P.S. 몇 가지 생각을 덧붙이자면, 먼저 원저 자체가 올봄에 출간된 신간이라는 것. 576쪽의 방대한 분량인데, 불과 6개월만에 국역본이 나왔다는 건 놀라운 순발력이다. 아마도 원저가 출간되지 이전에 판권 교섭이 이루어진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이 경우에도 작년 조승희 사건이 기획의 모티브가 된 거라면 기획으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주에 소개된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빛나는 태양> 또한 원작이 올해 나온 소설이니 그 정도면 거의 '동시 출판' 시대로 접어드는 거 아닐까 싶다(굼뜨디 굼뜬 인문/이론서들의 경우와 대조된다). 

 

 

 

 

아부그라이브에 대해서는 당대비평 특별호로 나왔었던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생각의나무, 2004)를 참조할 수 있다(나는 물론 슬라보예 지젝의 글을 주목해서 읽었다). 그리고 '악의 평범성'과 관련하여 바로 떠오르는 책은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2006)이고. 리뷰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웃으로, 친척으로 함께 오손도손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날 살인마로 돌변해 1백만 이상을 죽인 르완다의 후투족-투치족 비극"과 관련해서는 임마꿀레 일리바기자의 <내 이름은 임마꿀레>(섬돌, 2007)를,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는 작년에 여러 차례 언급했던 책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미다스북스, 2006)를 더 참조할 수 있다. '르완다 대학살'을 다룬 영화로는 <호텔 르완다>가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946292). 그리고 '난징 대학살'을 다룬 새 영화들이 올해 개봉예정으로 돼 있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007817), 어찌된 영문인지 '조용하게' 한 해가 지나고 있다(1937년 소련에서의 대숙청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명 없이 올해가 저물 것 같다). 이 또한 무슨 '음모'의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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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1-24 19:18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서점에 나갔다가 좀 들춰보았습니다. 내가 지금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에 놓았습니다.
대신 <대단한 책>을 들고왔습니다. 미술책 몇 권하고.

로쟈 2007-11-24 19:40   좋아요 0 | URL
<대단한 책>은 저도 지난주에 '거금'을 주고 구입했죠...

읽는기계 2007-11-24 23:10   좋아요 0 | URL
이주에 나온 가장 '비싸고 대단한' 책은 아렌트 전기인 것 같습니다. 서점에 갔다가 들었다 놨다 팔운동만 하고 왔습니다. ㅠㅠ

로쟈 2007-11-24 23:26   좋아요 0 | URL
아, 영-브륄의 책이 번역됐군요! 955쪽이라... 하긴 원서만 거의 600쪽에 육박하는 책이니. 한데 역자의 <혁명론> 번역이 좀 실망스러웠던지라 구입은 한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2007-11-25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1-25 00:19   좋아요 0 | URL
엄청난 작업을 하셨군요(아니 하고 계시군요).^^